#25화. 이건 무슨 경우임?
“오늘 열심히 해서 내일은 사람들을 많이 모아 보자. 그리고 마지막 날엔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메인 무대 부럽지 않은 멋진 공연을 해 보자.”“그래, 비록 오프닝 무대지만,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파이팅!”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팀의 분위기는 이랬다. 이게 멤버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축제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구경하다 시간이 돼서 대기실로 돌아오는데, 오프닝 공연이 열리는 컬러풀 SA의 무대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이건 뭐지?’
이름도 모르는 신인 밴드의 무대에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일 리가 없다.
아무리 심심해도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가지, 신인 밴드의 오프닝 무대에 모일 인원이 아니었다.
“메인 무대랑 착각한 건가?”
멤버들은 사람들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인 무대는 9시에 시작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뭐지?”
영문을 모르는 멤버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 * *
몇 분 후, 오프닝을 담당하는 진행 요원이 뛰어 들어왔다.
“준비해 주세요! 10분 후에 큐(Q) 사인 들어가면 바로 시작합니다.”
“저기요, 언니.”
“네?”
궁금함을 못 이긴 다혜가 물었다.
“원래 오프닝 무대에 사람들이 저렇게 많아요? 메인 무대로 착각한 거 아니에요? 설마 저 사람들이 우리를 보러 온 건 아니죠?”
영문을 모르겠다는 다혜의 질문에 진행 요원은 웃음을 보였다.
“하하, 모르셨구나? 그게요, 아까 리허설 때문이에요.”
“리허설이요?”
다혜가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크게 뜨자, 진행 요원은 빙그레 웃으며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말했다.
“아까 리허설 때 말이에요.”
이유는 마이클 때문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마이클은 펑크 가발에 반짝이 옷까지 갖춰 입고 리허설을 했다.
‘연습은 공연처럼, 공연은 연습처럼.’
그런 마음가짐으로 리허설에 임했다.
마치 자신이 밴드의 운명을 책임지겠다는 듯 진지하게 동선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춤도 장난 아니었다. 빗 잇(Beat It)의 허리 돌리기 춤과 빌리 진(Billie Jean)의 문워크(Moon walk)는 누가 봐도 딱 마이클 잭슨이었다. 멤버들도 놀랄 정도였다.
다른 멤버들도 진지하게 리허설을 했지만, 마이클은 유난히 튀었다.
“너, 진짜 대단하다.”
마이클은 검은 바지와 구두 사이에 보이는 하얀 양말에 ‘컬러풀SA’라는 팀 이름까지 새겨 넣었다. 다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누가 보면 뜨고 싶어 환장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마이클이 공연에 임하는 자세였다.
그리고 반응은 어이없게 본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어졌다.
―오프닝 무대에 마이클 잭슨 등장.
―똘끼 장난 아님.
페스티벌 자원봉사자들이 리허설을 구경하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마이클의 존재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무대 앞에서 인증샷까지 찍어서 올렸다. 소문은 축제에 모인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운드가 정말 깔끔하게 잘 빠지더라고.”
리허설을 담당했던 음향 엔지니어도 입소문에 힘을 실었다.
“귀가 다 시원해요. 그 팀 하고 나니까 다른 팀의 리허설은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하하.”
공연을 앞두고 가진 미팅에서 ‘컬러풀 SA’를 칭찬하며 우스갯소리까지 늘어놓았다.
“이렇게 사운드가 시원하게 빠져 주면 오퍼레이팅(Operating) 할 맛 나죠. 생각지도 않은 오프닝 밴드가 흙 속의 진주였어요.”
계속 이어지는 칭찬에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어느 정돈데 그래?”“궁금하면 이따 보러 오세요. 깜짝 놀랄 거예요.”
그 말에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공연장 한편에 모여 있었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오퍼레이팅 엔지니어의 말은 공연 현장에서 중요하다. 그날 흥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이렇게 자원봉사자와 엔지니어의 입소문에 힘입어 ‘컬러풀 SA’의 무대 앞에는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핏 봐도 천 명은 넘어 보였다.
“사진 봤어?”
“완전 대박!”
“몇 분 남았어?”
“20분.”
사람들은 유명 뮤지션을 기다리듯이 ‘컬러풀 SA’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인 밴드의 첫 오프닝 공연이 대박 날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거예요. 저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좀 놀랐어요.”
진행 요원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도 신기해했다.
“아.”
이유를 들은 멤버들은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마이클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마이클은 거기에 화답하듯 다리를 꼬더니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시작 3분 전입니다. 3분 후에 큐 사인 드리면 바로 시작하세요.
진행 요원이 든 무전기에서 공연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멤버들은 서둘러 무대 뒤로 가서 올라갈 준비를 했다.
* * *
무대에 올라온 멤버들은 처음 보는 많은 관객에 긴장이 올라왔다.
반면에 마이클은 빼곡히 모인 관객을 보자 더 신이 났다. 좋아서 헤죽거렸다. 박 대표의 말대로 무대 체질인 거 같았다.
다혜는 흥분되면서도 한편으로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공연으로 관객을 휘어잡으려고 했는데 리허설 입소문으로 떠 버리게 됐으니 말이다.
수철은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무덤덤하게 무대에 놓인 기타를 집어 들었다.
“와!”
조명이 마이클을 비추자 관객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이클은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공연 한 번 안 하고 말이다. 기네스북에나 나올 일이었다.
운이 좋든, 입소문이 퍼졌든, 그건 그거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무대를 불태워야 한다.
마이클이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위로 팔을 쭉 뻗었다.
“준비됐습니까!
“예!”
관객의 대꾸가 섬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오늘 한번 제대로 미쳐 봅시다!”
“와!”
관객의 함성과 함께 펑키한 사운드가 시작됐다.
쿵! 쿵! 딴딴. 쿵! 쿵! 딴따단!
리듬에 맞춰 마이클이 몸을 흔들자, 관객들도 따라서 몸을 흔들었다.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졌다.
첫 곡은 와일드 체리의 ‘플레이 댓 펑키 뮤직’이었다.
곧바로 공연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저거 옛날 노랜데 재밌게 해 봤자 뻔하지, 뭐. 달라질 게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던 관계자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놀란 시선이 무대로 쏠렸다.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가 만드는 리듬의 조화는 그만큼 환상적이었다.
펑키한 소리가 귓속까지 파고들어 오감을 자극했다.
몇몇 사람은 소리가 주는 쾌감에 몸을 꼬았다.
“와! 와!”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무대는 빠르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은 공연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관객들이면 밴드는 공연할 맛이 난다.
마이클의 목청이 더 커졌다.
“계속 달려!”
무대 끝에서 방관자처럼 서성였던 사람들까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어두워질수록 조명은 더 화려해졌다.
마이클의 가발은 어느새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셨다는 반짝이 의상도 조명에 쉴새 없이 반짝였다.
“음악 죽인다.”
마이클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은 곧바로 밴드의 사운드에 빠져들었다.
마이클이 호객 행위로 끌고 온 사람들을 밴드가 맛깔난 연주로 입맛을 사로잡은 셈이었다.
“우와. 우와. 우아예―!”
율동을 하며 화려하게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코러스도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쿵! 칙. 팍! 칙. 쿵! 칙. 팍! 칙.
마지막 곡인 빌리 진이 시작되자 무대는 절정에 다다랐다.
음악은 리허설때 보다 더 그루브하고 펑키했다. 거기에다 눈앞에서 마이클 잭슨의 판박이가 춤을 추고 있으니, 흥은 극도로 치솟았다.
챙! 촤앙! 따라라, 따라라라.
흥이 극도로 오르자, 이번엔 수철의 기타가 뛰어들었다. 리듬을 치며 동시에 연주하는 수철의 솔로는 듣는 이의 귀를 자극했다.
“와―!”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철이 만들어 내는 펑키한 사운드는 흥을 끌어 올릴 대로 끌어 올렸다.
“그루브 죽인다, 죽여.”
예외는 없었다.
관객, 스텝, 관계자. 심지어 구경 온 다른 밴드의 사람들까지 몸을 들썩였다.
음악의 완성은 퍼포먼스라는 박 대표의 말이 실감 났다.
뜨거운 관객의 열기는 앙코르곡이 끝나도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앙코르 요청에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한 곡을 더했다. 그리고 나서야 뜨거웠던 첫 오프닝 무대가 끝이 났다.
대기실로 돌아온 멤버들은 가시지 않는 열기 탓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밤공기가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얼굴에서 열이 났다. 발갛게 변한 볼을 문질렀다.
“정말 대단하지 않았어?”“난 아직도 믿기지 않아.”
드러머가 먼저 입을 떼자 베이시스트가 고개를 흔들며 대꾸했다.
“와!”
짝!
그제야 소리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직도 함성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다혜가 열이 나는 볼을 문지르며 말했다.
“우리 오늘 오프닝 한 거 맞아?”
코러스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첫째 날, 둘째 날 열심히 해서 마지막 셋째 날을 기대해 보자였는데, 첫날부터 터져 버렸다.
덕분에 멤버들은 모든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다.
다들 지쳤지만, 입에선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기 마이클이다!”
기운을 좀 차린 멤버들이 대기실 밖으로 나오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마이클에게 몰려들었다. 마이클을 둘러싸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몇몇은 멤버들에게 다가와서 같이 사진을 찍고, 앨범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수철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마이클을 재미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용수철 씨?”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수철을 불렀다. 돌아보니 입소문을 낸 주인공인 오퍼레이팅 엔지니어였다.
수철은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 많으셨어요.”
서로 인사를 했다.
“저는 그레이트 사운드의 박 실장입니다.”
엔지니어가 명함을 내밀었다. 수철은 두 손으로 명함을 받았다.
엔지니어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오늘 음향 사운드 어땠나요?”
“좋았어요.”
“저도 오늘 ‘컬러풀 SA’ 공연이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수철 씨의 기타는 압권이었어요. 정말 잘 치시더군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저도 공연을 즐겼습니다. 혹시 솔로로도 활동하시나요?”“아니요, 그렇진 않아요.”“그렇군요, 어쨌든 앞으로 같이 공연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희한테 공연 소개 요청이 들어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 근데 저는 명함이 없어서요.”“축제 측에서 준 전화번호를 적어 뒀습니다.”
“아,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네, 내일 뵙겠습니다.”
사내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수철은 얼떨결에 받은 명함을 들고 사라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공연장에서 음향 오퍼레이터의 귀는 정확하다. 그들은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금방 구분해 낸다.
* * *
다음 날 출연자 대기실에 나타난 멤버들은 어제와는 달랐다. 피곤한 기색은 사라지고 다시 충전돼서 나타났다.
“나 어제 가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쓰려져 잤다니까?”“캬캬. 난 양말도 안 벗고 뻗었다니까? 엄마가 죽은 줄 알았대!”
어제 탈진하다시피 해서 돌아갔는데, 다시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반가웠다.
“저녁부터 먹을까?”
멤버들은 어제와 같이 쿠폰을 받아들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안녕하세요, 어제 공연 잘 봤어요. 오늘도 구경 갈게요.”
식당에서 밴드를 알아본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꺅! 마이클이다!”
식사하고 소화도 시킬 겸 축제를 구경하러 돌아다니는데, 마이클을 알아본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 사람들의 사진 요청에 마이클은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마이클도, ‘컬러풀 SA’도 하루 만에 스타가 되어 있었다.
* * *
조직위의 국장이 미간을 좁혔다.
“컬러풀 뭐라고 했죠?”
“컬러풀 SA요.”
“대체 어떤 밴드길래 다른 밴드의 관객까지 끌어간 겁니까?”“죄송합니다. 저도 아직 정보가 없어서요.”“일단 한번 가 봅시다.”“국장님도 가시게요?”“나도 궁금해서 그래요. 얼마나 대단하길래 다른 밴드의 무대를 텅텅 비게 만들었는지요. 흥행도 좋지만 다른 무대가 비어선 안 되죠.”“그럼 같이 가 보시죠. 저도 거기 가는 길입니다.”
조직위 국장과 팀장은 바쁜 걸음을 움직였다. 대체 어떤 밴드길래 하루 만에 난리가 난 건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