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가가 가가?
다혜는 수철이 후다닥 편곡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기로 했으니까 놀라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음악에 관해서는 수철을 의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난 뭘 하면 돼?”
* * *
수철은 다혜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후다닥 편곡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곡에 대한 건반 악보를 보여 주며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말했다.
“이 부분은 하몬드 오르간으로 바꿔서 8bit로 리듬을 넣어주고, 이 부분에서는 인트로를 교회 오르간으로 바꿔서 화음만 눌러 줘. 그리고 이 부분은 알토 색소폰으로 바꿔서 짭짭이 기타처럼 엇박으로 리듬을 쳐줘. 그러면 나머지는 트럼펫이 다 알아서 할 거야. 넌 분위기만 잡아 주면 돼.”
수철은 악보를 짚어 주며 중요한 부분을 체크했다.
“생각보다 별로 할 게 없네, 괜히 쫄았잖아.”“내가 별거 없다고 그랬잖아. 쫄았었어?”“뭐, 살짝 긴장한 정도?”
이로써 다혜의 곡과 수철의 곡에 대한 편곡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이제 합주하면서 붙여 보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트럼펫이다.
수철은 오늘 벌어질 공연에 맞춰 원곡을 다시 편곡했다. 그래서 모든 악기가 트럼펫을 받치고 있는 구성이다. 트럼펫이 주인공이다.
이제 연주가가 모든 악기를 딛고 날아오르면 된다. 그러면 오늘 공연은 볼만할 것이다.
‘조수미 씨와 같이 연주할 정도야.’
수철은 박 대표가 소개해 준 인물이 어떤 사람일지 기대됐다.
“일찍 왔네?”
편곡을 마무리 짓고 부스 밖으로 나오니 멤버들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다
“수철아, 편곡은?”
“다 했어.”
“두 곡 다?”
“응.”
“역시 대단해.”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트럼펫 연주자로 보이는 사내가 작업실에 나타났다.
“어서 와.”
박 대표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그도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는 생각보다 젊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모델처럼 보였다. 몸매도 좋았고 입고 있는 옷도 모델 뺨칠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수철은 그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 무대를 이끌어 가는 독주자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반면에 멤버들은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트럼펫 연주자가 저분이었어?”
멤버들은 연주자를 알고 있었다.
“정말 유명하신 분이야.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재즈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
다혜가 귀띔해 줬다. 수철은 몰랐지만, 멤버들은 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수철아, 인사해. 내가 말한 연주자야. 트럼펫뿐만 아니라 다른 관악기도 잘 다루는 실력 있는 아티스트지.”
박 대표는 뮤지션이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안녕하세요, 용수철입니다.”
수철이 꾸벅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선배님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오늘 공연이 기대되네요.”
트럼펫 연주자는 이미 수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물론 박 대표가 얘기했겠지만, 수철을 보는 눈빛이 달랐다.
“오늘 공연에서 저분이 나오면 좋아하는 사람들 많을 거야.”
다혜의 말대로 그 정도의 인지도라면 축제 측에서도 좋아할 게 뻔했다.
합주는 빠르게 진행됐다. 트럼펫 연주자는 마치 오랫동안 같이 연주한 것처럼 밴드에 녹아들었다.
박 대표의 말대로 연주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같이 연주하게 돼서 영광이에요. 교수님.”
드러머의 말처럼 같이 연주할 수 있어서 멤버들은 영광이었다.
수철도 그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소리는 선명하고 명확했다.
나서야 할 때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소리를 거침없이 뽑아냈고, 연주가 끝나고 나서는 슬그머니 뒤로 빠져 다른 악기들을 배려했다.
한국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정서가 있었다.
“뉴욕에서 오래 활동해서 그럴 거야.”
수철의 물음에 박 대표는 그렇게 답했다. 수철은 시디에서나 듣던 분위기를 그의 연주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합주가 끝나자 그가 물었다.
“어땠어요?”
“정말 좋았어요, 교수님.”
모두 앞다투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가 물어본 건 그 뜻이 아니었다.
“이번엔 다르게 해 볼게요. 어떤 것이 오늘 공연에 잘 어울리는지 들어 보세요.”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자를 넣었다.
“원, 투, 원 투 쓰리!
빰―!
그의 박자에 드럼과 베이스가 바로 따라붙었다.
주객이 전도된 거 같았다. 드럼과 베이스가 그의 세션맨 같았다.
그렇게 트럼펫 연주자는 각기 다른 분위기로 3번을 연주했다.
“3번의 연주 중에 어떤 게 좋았나요?”
그의 물음에 멤버들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 좋았기 때문이다. 같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일 뿐, 선택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철은 달랐다.
“저는 두 번째가 마음에 들어요. 대신 비피엠(BPM, beats per minute)을 5 정도만 빠르게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연주자는 깊은 미소를 보였다.
“역시 작곡자는 다르네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럼 그렇게 바꿔서 다시 한번 해 볼까요?”
그는 수철의 요청에 맞춰 다시 한번 연주했다.
연주는 퍼펙트했다. 수철도 만족했고, 덕분에 자작곡에 대한 합주를 한 시간 만에 마무리 지었다. 다혜의 곡까지 포함해서였다.
수철의 편곡도 후다닥 한 거처럼 보였지만 오차도 오점도 없었다. 멤버들도 만족하고, 연주자도 만족했다.
“나가 있을게요.”
자작곡의 연습을 마치고 연주자는 부스 밖으로 나갔다. 멤버들은 남아서 오늘 공연할 곡을 한번 쭉 다시 합주했다.
* * *
“마셔 봐, 향이 좋아.”
트럼펫 연주자가 앉아 있는 소파 테이블에 박 대표가 원두커피 두 잔을 올려놓았다.
“네, 고맙습니다.”
“음악은 어땠어?”
박 대표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수철의 자작곡이 어땠냐고 묻는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좋았어요. 제 취향이었어요. 그리고 편곡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어요. 제가 연주하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마치 제 밴드처럼요.”“그랬을 거야. 오늘 공연에 맞춰서 편곡했겠지.”
박 대표는 수철의 의도를 꿰뚫고 있었다. 연주가가 계속 말을 이었다.
“기타 치는 테크닉을 보면 전문적으로 배운 것 같진 않은데, 소리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어요. 음악도 결국 소리잖아요.’“그렇지, 음악은 소리지. 나중에 피아노 치는 거 보면 더 놀랄걸?”
“피아노도 쳐요?”
커피를 마시려던 연주자가 눈을 크게 떴다.
“치는 정도가 아니야,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들어.”“선배님이 그 정도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대단하겠네요. 나중에 제 공연 때 세션을 부탁해야겠어요.’“그래 둘이서 같이 한번 해 봐. 정말 볼만할 거야.”
박 대표는 일어나 뜨거운 물을 다시 커피잔에 부었다. 트럼펫 연주자는 아까 수철이 건네준 악보를 들여다봤다.
“선배님, 이 악보 말이에요.”
박 대표가 다시 자리에 앉자, 연주자는 악보를 들어 박 대표에게 보였다.
“악보 뭐?”
“제가 이 악보 처음 봤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가지 생각?”
“네, 첫 번째는 영화 미션의 오보에가 생각나더라고요.”
“넬라 판타지아?”
“네, 선율이 그만큼 감각적이고 아름다웠어요.”
연주자는 박 대표와 눈을 마주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대표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두 번째는?”“두 번째는 소리였어요. 같이 합주하면서 느낀 건데, 보통 우리같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잘 안 쓰는 진행을 쓰더라고요. 그런데도 신기할 정도로 소리가 주는 긴장감을 잘 조절하더라고요. 마치 본능적으로요.”“맞아, 정확히 봤네.”
트럼펫 연주자의 얘기에 박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나도 맨 처음 놀란 부분이 그거야. 소리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정도였군요.”
“그리고 또 하나, 수철이는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른 구석이 있어.”
“어떤 거요?”
“보통 우리가 아는 천재들은 눈이 좀 풀려 있거나, 어딘가 어리숙하고 그러잖아.”
“그렇죠.”
“그런데. 봐 봐. 쟤는 그렇지 않잖아. 오히려 자기가 나서서 다 끌고 가 버리지.”
연주자는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요. 아까 합주 때도 그렇더라고요.”“볼수록 놀라운 녀석이야.”“그래서 선배님이 그렇게 집중하시는 거군요.”“집중까지는 아니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도움을 주는 정도지. 나도 내 일이 있으니까.”
박 대표와 대화하던 연주자는 오랜만에 묘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와 공연할 때도 긴장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직 20살이 채 안 된 수철이 만든 곡을 봤을 때는 달랐다. 자신을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철의 곡은 오늘 공연이 초연이다. 트럼펫 소리로 첫선을 보이는 것이다.
수철의 멜로디를 세상에 처음 내보내는 역할을 맡았기에 묘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화이팅!
연습이 끝났는지 부스 안에서 파이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멤버들이 부스 밖으로 나왔다.
“이쪽으로 와서 커피 한 잔씩 해.”
박 대표가 다시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멤버들이 의자를 모아서 테이블 주위에 모여 앉자, 박 대표가 커피에 물을 채워 한 잔씩 건넸다.
“너희, 완전 스타 됐다며? 특히 마이클, 너. 눈독 들이는 기획사가 많은 거 같던데?”
박 대표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네, 헤헤.”
마이클은 멋쩍게 웃으며 명함을 5장이나 받았다고 했다. 멤버들도 몰랐던 사실을 박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 공연 잘 마무리하고, 나중에 따로 밥 한번 먹자.”
“네, 선배님.”
박 대표는 작업실을 나서는 트럼펫 연주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배웅했다.
“너희도 마지막 공연 잘하고, 끝나면 다 모여서 쫑파티 한번 하자.”
“네, 좋아요.”
박 대표는 작업실을 빠져나가는 멤버들과도 일일이 손바닥을 부딪쳤다.
* * *
오후 해가 기울어 갈 무렵, ‘컬러풀 SA’의 멤버들이 무대 앞에 나타났다. 마치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조종사들처럼 쭉 늘어서서 등장했다.
오프닝에서 메인 무대로 껑충 뛰어오른 루키(Rookie) 들이다.
“안녕하세요!”
멀리서 손을 흔드는 엔지니어가 보였다. 그의 옆에서 바람에 날리는 축제 홍보지도 보였다.
거기에 실린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일랜드 뮤직 페스티벌이 만든 스타 ‘컬러풀 SA’.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채를 가진 7명의 뮤지션이 오늘 밤 9시 메인 무대에 나타납니다.]
“이 선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지금은 리허설이에요, 이따 본 공연 때 들어오세요!”
오늘은 다른 무대를 고려해 리허설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했다.
몇몇이 입은 옷에 새겨진 문구가 보였다.
[리허설이 낳은 스타. 마이클(고광필) 만세!]
[펑키! 펑키! 컬러풀 SA!]
[마이클아 형아가 왔다. by 잭슨 파이브]
사람들은 SNS에 떠도는 문구들을 옷에 새겨 입고 나타났다.
“드럼 킥부터 갈게요.”
사운드 체크가 시작됐다. 그리고 곧바로 리허설이 시작됐다.
쿵! 칙. 팍! 칙. 쿵! 칙. 팍! 칙.
마지막 공연인 만큼 멤버들 모두 진지하게 임했다.
* * *
“저기 기타리스트 보이시죠?”
멀찍이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리허설을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축제 모니터 프로그램에 참석한 다혜 학교의 관계자였다. 그는 리허설을 지켜보다 무대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네, 보여요.”
옆에 서 있던 음악 잡지 편집장이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보며 대답했다.
“저 기타리스트가 지난번에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었던 그 청년입니다.”
“그래요?”
편집장은 수철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안경을 닦아서 다시 썼다.
“그런데 그 천재는 피아노를 친다고 하지 않았나요?”“그러게 말입니다. 오늘은 기타를 치고 있네요.”“헐, 정말 놀라운 광경이군요.”
편집장은 대꾸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무대에서 기타 치는 수철의 모습을 찍었다. 관계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말입니다.”
“……?”
학교 관계자는 말을 하다 말고 무대를 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말을 멈추자 편집장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관계자는 시선을 수철에게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몇 년 전 낙원상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영상 있지 않습니까? 음악 괴물이라고.”“네, 기억합니다. 결국 누군지 찾지 못했죠.”“그 인물도 동일 인물이라는 겁니다.”
“……?”
편집장은 연결이 잘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학교 관계자를 빤히 봤다.
“그러니까, 지금 무대에 있는 저 기타리스트가 얼마 전 학교에 나타났던 천재 소년이고, 몇 년 전 떠들썩했던 그 음악 괴물이라는 말입니까?”
편집장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특종감이다. 리허설 구경하다 뜻밖에 횡재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