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29화 (29/239)

#29화. 공룡

놀라서 되묻는 편집장의 질문에 관계자는 팔짱을 낀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바로 저 기타리스트가 음악 괴물이고, 학교에 나타났던 음악 천재입니다.”

“진짭니까?”

편집장은 믿기 어렵다며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음악 잡지 편집장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못 봤다.

‘피아노에 기타까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

‘특종 냄새가 확 나는걸.’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는 도깨비 같은 캐릭터가 편집장의 구미를 당겼다.

독자들은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캐릭터를 좋아한다.

기사는 기사대로 쓰고, 수철을 기획사랑 연결해 주면 소개비도 두둑이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어느새 손가락은 문자를 누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컬러풀 SA에 대한 자료 있는 데로 다 모아 봐, 특히 기타리스트와 관련한 건 모두 모아 놓고. 서둘러서 취재 준비해, 특종감이야!

편집장은 문자를 보내고,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관계자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관계자가 가진 정보를 더 알려는 수작이었다.

“어떻게 저런 존재가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죠? 아니, 다시 물어볼게요. 왜 저런 애를 기획사에서 가만히 놔뒀을까요? 데려다 작곡자로만 써도 돈이 될 텐데 말이에요. 거기에다 생긴 걸 보면 바로 아이돌인데. 음악 재능에, 악기 연주에, 비주얼까지. 완전 3박자를 다 갖춘 대박 물건인데 가만히 놔둔 게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혹시나 알까 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편집장도 기사를 떠나서 진심으로 그 이유가 궁금했다.

“놔둔 게 아니라 저 친구가 나타나질 않은 거죠. 우리 학교에서도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한 거로 알고 있어요. 뭔가 세상에 드러나는 걸 꺼린다는 느낌이 있어요. 암튼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정말 신비로운 존재군요. 기삿거리가 한두 개가 아니에요. 게다가 저 팀까지 유명세를 타서 오늘은 위원장님도 공연 보러 오신다고 들었어요.”“그럴 만도 하지요. 예상치 못한 밴드의 공연이 대박 나서 축제가 뜻밖의 횡재를 했으니까요.”

“그러게요.”

편집장은 관계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철의 모습을 뚫어져라 봤다.

* * *

수철은 리허설을 하면서, 마이클이 빠지고 트럼펫 연주자가 등장하는 장면이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이클에게 변화를 주자고 제안했다.

“헤이, 마이클.”

“와썹 맨!”

“네가 빠지고 트럼펫 선생님이 무대에 등장하실 때, 그냥 나타나면 뻘쭘하니까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수철은 마이클에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오, 굿 아이디언데? 오케이, 그렇게 해 보자.”

마이클은 흔쾌히 오케이 했다.

수철은 그 생각을 트럼펫 연주자에게도 말했다. 연주자도 좋다고 했다.

“재밌겠네요, 그렇게 해 볼게요.”

멤버들은 메인 무대에 서는 만큼 집중해서 리허설을 하고 마이클은 작은 동선 하나하나를 다 챙겼다.

리허설이 끝나고 저녁 식사 후 축제 이벤트를 구경하다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10분 후에 큐(Q) 들어갑니다. 준비해 주세요. 공연팀도 무대 뒤로 와서 스탠바이해 주세요.

스텝이 든 무전기에서 공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관객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메인 무대는 오프닝 무대와는 확실히 달랐다. 관객들 규모도 차이가 났지만, 무엇보다 무대가 달랐다. 무대 연출이 더 화려했다. 양옆에는 스피커들이 큰 탑처럼 쌓여 있었고, 조명은 더 화려했다.

특히 밤이 되자 조명은 마치 레이저 쇼라도 하는 것처럼 화려하게 움직였다. 조명만으로도 관중들을 흥분시켰다.

컬러풀 SA의 돌풍은 메인 무대 피날레에 참석한 최정상급 뮤지션들의 인기를 훌쩍 뛰어넘었다.

관객들은 엄청난 호응과 함성을 질렀다.

예상대로 무대는 빠르게 달아올랐다. 관객들의 흥이 어느 정도 오르자, 마이클은 또다시 빌리 진을 열창하며 화려한 춤동작을 선보였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모인 관객의 절반은 마이클의 춤을 보러 온 것 같았다.

마이클은 열정을 불태우며 관객들의 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빌리 진이 끝나갈 무렵 문워크를 하며 무대를 빠져나갔다.

조명이 꺼졌다.

잠시 후, 다시 조명이 켜졌을 때 마이클이 사라진 자리엔 트럼펫 연주자가 마이클이 썼던 중절모를 쓰고 서 있었다. 마치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갱처럼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빰! 빠 빠암―!

곧바로 트럼펫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퍼져 나갔다. 첫 곡은 다혜의 곡이었다. 곡은 16bit의 빠른 리듬으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흥겨운 트럼펫 소리에 다시 몸을 흔들며 그루브를 탔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곡에서 사람들은 몸짓을 멈추고 무대 위의 색소폰을 바라봤다. 커플들은 서로 몸을 붙이고 눈을 감은 채 트럼펫의 선율을 음미했다.

음악으로 만드는 신비의 섬이라는 페스티벌의 로고에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트럼펫 소리는 섬 곳곳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감성에 젖어 들었다.

빠암―!

길게 이어진 마지막 멜로디.

연주자는 호흡이 끝날 때까지 트럼펫을 누른 마지막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사람들은 숨죽이며 트럼펫을 바라봤다.

잠시 후, 연주자의 마지막 호흡이 끊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을 떼었다.

모자를 벗어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와아!”

짝짝! 짝짝!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연주자는 잠시 그 환호를 음미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명이 꺼졌다.

다시 조명이 켜졌을 땐, 연주자가 아닌 마이클이 중절모를 눌러 쓰고 있었다.

“와! 와와!!”

다시 돌아온 마이클의 모습에 관객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곧바로 음악이 시작됐다.

둥뚜. 딴따. 둥뚜. 딴다단―!

사람들은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뛰었다.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이라도 한 듯 아까보다 더 거센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 * *

“관객들이 모두 마이클 잭슨 흉내 내는 보컬만 쳐다보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사운드는 바로 저 기타 치는 친구에게서 나오는 거야.”

리허설이 끝나고 사라졌던 관계자가 다시 나타나 무대를 보고 있었다. 이번엔 편집장이 아니라 방송 피디가 옆에 서 있었다. 둘은 친분이 있는지 서로 말을 놓았다.

“잘생겼네, 기타 안 쳐도 되겠는데?”

피디는 관계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기타리스트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잘생기면 기타 안 쳐도 돼? 피디라는 사람이 말하는 거 하곤.”

관계자는 그 말이 듣기 싫은지 피디를 면박 줬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암튼 저 잘생긴 청년이 뭐?”“잘 기억해 둬.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니까.”

“뜬다는 말이야?”

“뜨는 정도가 아니야. 앞으로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질 거야. 음악 꼰대들이 뒤 목 잡고 줄줄이 쓰러질지도 몰라. 왜냐? 말로 설명 안 되는 애거든. 으하하.”

관계자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크게 웃었다.

“흠.”

피디는 관계자의 말에 다시 한번 수철을 유심히 쳐다봤다.

“나한테 팁이라도 주는 거야? 뜨기 전에 미리 잡아 놓으라고?”“팁? 잡아? 네가 잡는다고 잡히는 사람이었으면 우리 학교에서 벌써 잡았지. 내 말은 네가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는 말이야.”“흠, 그 정도다……. 음악 정글에 사자가 나타났다는 말이네?”

피디는 관계자의 말을 음미하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관계자가 코웃음을 쳤다.

“뭐? 사자? 사자는 차라리 귀엽지. 저 친구는 공룡이야, 공룡.”

“공룡?”

“그래, 사자가 왕 노릇을 하는 정글에 공룡 한 마리가 툭 튀어나온 거라고.”“흠, 대체 어느 정도길래…….”

피디는 관계자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얘기를 듣고 보니 무대 위의 기타리스트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용수철”

피디는 수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용수철이라, 음악 정글에 나타난 공룡…….’

피디는 관계자의 말을 다시 읊조렸다.

* * *

첫 번째 앙코르곡은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였다. 사람들은 야광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앙콜! 앙콜!”

첫 번째 앙코르곡이 끝나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번째 앙코르를 외쳤다.

“와아!”

‘컬러풀 SA’는 결국 세 번의 앙코르까지 하고서야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야말로 무대를 하얗게 불태웠다. 남은 한 조각 에너지까지 다 쏟아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참여한 모든 스텝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눴다.

무대는 누구 하나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끝났다.

“안녕하세요. 경인방송의 ‘축제 현장을 가다’입니다. 잠시 인터뷰 부탁합니다.”

악기를 챙겨서 출연자 대기실을 나오니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컬러풀 SA’는 축제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기자들은 마이크를 내밀며 인터뷰 요청을 했고, 축제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악수를 청하며 공연의 성공을 축하했다.

기획사 관계자로 보이는 사내들은 명함을 내밀며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까지 나타나 손을 내밀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제 조직위의 위원장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저도 젊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오늘 공연은 두고두고 회자될 멋진 공연이었어요. 다음 축제 때도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아울러 영향력 있는 음악가로 성장하길 기원합니다.”

멤버들은 위원장이 내민 손을 두 손으로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이클! 고광필!”

마이클은 환호하며 모여든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팬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옷에 일일이 사인을 다 해 주고 나서야 빠져나왔다.

그리고서 멤버들은 빠르게 축제 현장을 벗어났다.

섬을 벗어나 서울로 올라온 멤버들은 새벽 늦게까지 축제의 흥행을 자축했다.

그렇게 모든 축제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 * *

―지이이잉.

아침부터 수철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어제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과 늦은 시간까지 어울려 노느라 아침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래서 모처럼 늦잠을 잤다. 공연 때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였다.

커튼을 걷으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그레이트 사운드의 박 실장입니다.”

음향 오퍼레이팅을 한 엔지니어였다.

“네, 안녕하세요.”

“3일간 수고 많으셨습니다.”“네, 수고 많으셨어요.”“전화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공연 출연 요청을 드리려고요. 이번에 저희가 음향을 맡은 서울시 주최 공연이 있는데, 거기서 섭외 부탁이 와서요. 축제 영상을 보고 저희가 ‘컬러풀 SA’의 음향을 맡았다는 걸 알았더라고요. 출연료도 꽤 괜찮습니다. 500입니다.”

엔지니어는 어서 미끼를 물라며 두 배 가까이 오른 출연료를 제시했다.

신인 밴드치곤 엄청 후한 출연료다. 인디밴드는 상상도 못 할 금액이다. 한 번 출연하면 멤버당 100만원이나 챙길 수 있다.

“언제까지 말씀드려야 하나요?”“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네, 그럼 멤버들이랑 통화하고 바로 전화드릴게요.”“시간과 장소는 다시 확인하고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수철은 통화가 끝나고 멤버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우리랑 같이했던 엔지니어분에게 전화가 왔는데, 서울시 공연에 출연해 달래. 출연료는 500이래.

예상대로 빠른 답장이 왔다.

―컥, 500? 무조건 한다고 해! 어서 목숨 걸고 붙잡아!

―시간과 장소는 금방 알려 준대.

―그딴 거 안 알려 줘도 돼. 땅끝 마을이라도 간다고 해.

―그래, 수철아, 어서 한다고 해! 우리 일 인당 백씩 챙기는 거잖아? 그 돈이면 동남아 배낭여행도 갈 수 있어.

―야, 진정해. 그래도 어디서 하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캬캬.

멤버들은 무조건 하겠다며 나섰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문자를 보내는데 다시 전화가 진동했다.

―지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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