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32화 (32/239)

#32화. 손 모양만 고치면

“그 학생은 특별하게 얘기할 게 없어요. 고아라는 것 말고는요.”“아, 수철 군이 고아였군요. 언제 고아가 됐나요?”“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고, 어머니는 고2 때 돌아가셨어요.”“혹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아세요?”“아버지는 경찰이었는데 순직하셨고,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어요.”“지금도 수철 군과 연락을 하시나요?”“다들 그렇듯 졸업하면 연락이 없죠. 아까 기자님도 선생님과 연락이 없다면서요?”“네, 보통은 다 그렇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죄송합니다, 여기까지만 할게요.”“선생님!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수철 군이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더 이상은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그럼 이만.”

담임은 말을 끊고 서둘러 학교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음……. 고아였다, 역경을 극복한 천재, 뭔가 그림이 나올 것 같긴 한데…….’

편집장은 혼자 남아 담임의 말을 되뇌었다.

그는 이미 수철과 관련한 자료를 많이 모았다. 낙원상가, 학교, 축제 영상까지 다 모았고, 축제 관계자와 관객의 인터뷰도 받았다.

이 정도면 잡지에 실을 기사를 쓰는 데 충분하다. 그런데도 직접 나서서 이렇게까지 취재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돈 때문이었다. 편집장은 수철을 처음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수철이 음악계에서 이슈가 될 것을. 이 바닥에서 오랜 시간 짬밥을 먹은 촉이 발동했다.

음악 잡지는 품격을 떨어트린다는 이유에서 음악가의 가십거리는 싣지 않는다.

무엇보다 음악가들이 싫어한다. 음악가들이 내는 광고비로 먹고사는 잡지인데, 그들이 떨어져 나가면 밥줄이 끊긴다.

그런데도 편집장이 취재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팔아먹기 위해서다.

자신의 잡지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이런 것에 관심 두는 매체가 있다. 그들은 가십거리를 사이트에 올리고, 모이는 사람들에게 B급 광고를 때려 박아서 돈을 번다. 가십거리로 시선을 끌어서 광고를 노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쓸 만한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지 돈을 주고 사들인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공생하고 있다.

사람들은 천재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역경을 딛고 성장한 천재 음악가는 항상 흥미로운 이슈 거리다.

편집장은 이 방면의 전문가다. 자신의 잡지엔 주목받는 천재 음악가 정도로 소개하고, 나머지 정보는 팔아넘길 작정이었다. 애초에 용돈 좀 벌어 볼 요량으로 시작한 취재였다.

* * *

“에구구, 몸이 찌뿌둥하네.”

소파에 앉아 있던 박 대표가 기지개를 켜며 어깨를 주물렀다.

“수철아, 사우나 갈래?”“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다녀오세요.”“그럼 작업하고 있어, 갔다 와서 같이 점심 먹자.”

“네.”

―지이이잉.

박 대표가 나가고 수철이 혼자 작업하는데 전화가 진동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며칠 전 전화했던 월간 쿨뮤직의 최 편집장입니다.”“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인터뷰 안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오늘은 인터뷰가 아니라 수철 씨에게 좋은 일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좋은 일이요?”

“네,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면 좋겠는데, 위치를 알려 주면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무슨 일인지 먼저 얘기해 주세요. 제가 지금 작업 중이라서요.”“뭐, 많아요. 다 수철 씨에게 도움 되는 일이에요. 작곡 일도 있고요.”

수철은 작곡이라는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작업실 근처 카페의 위치를 알려 줬다.

“그럼, 30분 후에 카페에서 봬요.”

“네.”

수철은 전화를 끊고 박 대표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사우나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쌤, 쿨뮤직 편집장이라는 분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다 올게요. 작곡을 부탁하려나 봐요. 점심은 갔다 와서 먹을게요.

박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고 수철은 편집장을 만나러 작업실을 나섰다.

* * *

사우나에서 나와 옷을 입던 박 대표는 수철이 보낸 문자를 보고 얼굴빛이 변했다.

“잡지 편집장이 작곡? 이런 썩을!”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사우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같은 시각,

편집장은 다리를 꼬고 앉아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내가 많은 음악가를 만나 봤지만, 수철 씨는 꽤 인상적이었어요. 재능이 상당하더라고요.”

“아, 네.”

수철은 찾아온 이유는 말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편집장을 불편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반면에 편집장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는 수철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수철 씨는 음악계에서 매거진 편집장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죠?”“네, 저는 잘…….”

“음악가들이 날 만나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 와요. 우리 매거진이 없으면 공연이나 앨범을 어디에서 홍보하겠어요? 거기에다가 내가 워낙 마당발에 편집장까지 하다 보니까…… 흠, 뭐 내 자랑 같지만 친해지려는 사람이 좀 많아요.”

편집장이 마주 앉아 거들먹거리며 얘기했다.

수철은 그런 잘난 사람이 왜 자신을 찾아와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이해가 안 됐다.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자. 이것 봐 봐요.”

그는 휴대전화를 열어 유명 음악가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 줬다. 그만큼 자신이 이 바닥에서 잘나간다는 뜻이었다.

“수철 씨도 나랑 친하게 지내면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예요.”

자신의 말만 잘 들으면 돈도 벌고 출세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편집장은 아직 나이가 어린 수철을 구슬려서 자신이 원하는 기삿거리를 뽑아낼 생각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수철에게 잘 먹히지 않자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슬쩍슬쩍 수철을 떠보는 중이었다.

반면에 수철은 편집장의 잘난 체에 금방 집중력이 떨어졌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며 눈만 껌뻑거렸다. 참을 만큼 참은 수철은 찾아온 본론을 물었다.

“아까 작곡 부탁한다고 해서 나왔는데 말씀해 주시겠어요?”“아, 그거요. 작곡 일은 뭐 많아요. 몇 개나 하고 싶어요? 내가 금방 물어다 줄 수 있는데. 그전에 인터뷰를 좀 해야겠는데…….”

편집장의 말뜻은 인터뷰해 보고 말이 통하면 작곡을 소개해 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 * *

같은 시각.

카페로 향하는 박 대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놈이 어디서 감히!”

달려가다시피 하는 박 대표의 코 평수가 넓어져 뜨거운 김을 내뿜었다.

박 대표는 이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잡지들의 행태는 뻔하다. 그리고 한두 번 부딪친 게 아니었다.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했고, 문제를 키워서 법정까지 간 적도 있었다.

박 대표는 이들이 뮤지션의 등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라고 생각했다. 몇몇 잡지를 제외하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박 대표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를 갈았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거머리 같은 기자들도 박 대표는 피해 다녔다.

“이런 양아치 새끼!”

씩씩거리며 달려가는 박 대표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만나면 주먹이라도 날릴 분위기였다.

“헉!”

흥분한 박 대표가 카페의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서자 편집장은 순간적으로 헉 소리를 냈다.

급히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자를 발견한 토끼의 모습이었다.

“이런, 젠장!”

두리번거리던 박 대표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자 편집장은 엎드린 채 똥 마려운 개처럼 엉덩이를 들썩였다.

“……?”

그 모습을 본 수철이 등을 돌렸다. 박 대표를 발견한 수철이 손을 들었다.

“쌤! 여기까지 오셨네요?”

수철이 아는 척을 하자 편집장의 얼굴은 노래졌다. 그렇게 열심히 취재하면서도 수철의 뒤에 박 대표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거의 엎드린 편집장은 다리까지 떨고 있었다.

그는 박 대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박 대표의 성향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것을 알기에 박 대표가 코뿔소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자 오금이 저렸다.

저벅저벅. 뚝.

박 대표가 앞에 와서 멈춰 섰다. 그러자 편집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박 대표님 아니십니까?”

크게 웃음소리를 내며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손을 잡지 않고 편집장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날 알아요?”

편집장과 달리 박 대표는 편집장을 모르는 눈치였다.

“아, 그럼요. 오며 가며 여러 번 뵙습니다. 유명하신 분이시잖아요. 하하.”

편집장은 적당히 둘러대며 큰 웃음소리를 냈다. 박 대표는 잠시 쳐다보다 핵심을 물었다.

“수철을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구구절절 다른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아, 그게. 수철 씨가 워낙 축제에서 유명해져서 인터뷰도 좀 하고 친해지려고 뭐…….”

편집장은 박 대표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자세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내가 누군지 아시는 거 같은데, 쓸데없는 기사 쓰면 각오해야 할 거예요. 난 바로 찾아갑니다.”

박 대표는 짧고 굵게 말했다.

“하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편집장은 애써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그러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어, 이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수철 씨,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대표님도 다음에 또. 그럼.”

편집장은 박 대표의 기에 눌려 제대로 말도 못 붙이고 부리나케 꽁무니를 내뺐다.

“편집장님!”

박 대표가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편집장의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네? 왜 또?”

허리를 웅크린 채 돌아보는 편집장에게 박 대표는 테이블 위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이건 내고 가셔야죠.”

* * *

“와, 생각보다 좋은데요?”

트럼펫 연주자는 작은 콘서트라고 말했지만, 교육 방송의 공연 홀은 작은 예술의 전당 같았다.

“여기는 저도 좋아하는 곳이에요. 분위기가 꽤 괜찮죠?”“네, 맘에 들어요.”

잠시 후, 아이들이 몰려와 객석을 채웠다.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무대 위의 연주자를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트럼펫 연주자의 인사에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트럼펫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를 아이들 앞에 들어 보였다.

“이 악기는 트럼펫이라는 악기예요. 관악기 중에서도 금관악기라고 불러요. 금관악기는 이렇게 생긴 관에 공기를 ‘후.’ 불어넣어서 진동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말하는 거예요. 그럼 트럼펫의 소리를 들어 볼까요?”

“네!”

트럼펫 연주자는 수철과 눈을 마주치고는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와!”

짝짝.

아이들은 연주가 끝날 때마다 작은 손바닥을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다.

수철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같이하는 시간이 좋았다.

“수철 씨, 수고했어요.”“네, 수고하셨습니다.”

트럼펫 연주자도 수철과 같이한 짧은 공연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지난 합주에서 수철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입이 벌어졌다.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음을 가지고 노는 연주는 천재적이었다. 자신이 만나 보지 못한 연주 스타일에 한껏 고무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피아노 테크닉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들었다.

“얼굴 한번 봐야 하는데 서로 바쁘네.”

박 대표였다.

“선배님, 뭐 좀 여쭤볼게요.”

“그래.”

“수철 씨가 선배님 말씀대로 천재는 분명한데, 피아노 테크닉이 좀…….”“문제가 있다는 말이지?”

“네.”

“그거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고, 악기를 혹독하게 연습하지 않아서지.”“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수철 씨한테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해서요.”

“제안?”

“저랑 친한 선생님 중에 이쪽으로 트레이닝을 잘하시는 분이 있는데, 수철 씨한테 소개하면 어떨까 해서요.”“하하, 피아노 선생이라…… 직접 물어보지그래?”“먼저 선배님의 생각이 어떤지 듣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글쎄, 나도 피아노 스킬이나 테크닉 관련해서는 선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약에 수철이 피아노 연주자가 될 생각이 있다면 말이야.”“선배님도 저랑 같은 생각이시군요.”“그래, 그러니까 직접 한번 물어봐.”“네,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릴게요.”

박 대표는 수철이 작곡을 해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지나친 간섭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펫 연주자는 공연이 끝나고 수철의 자존심을 고려해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나도 몰랐었는데 촬영한 걸 보니까, 수철 씨 피아노 치는 손 모양이 조금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수철 씨는 손 모양만 조금 교정하면 완전 퍼팩트인데.”“아, 제가 좀 그렇죠.”

트럼펫 연주자의 말에 수철은 자신은 손을 휙 한번 살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아는 선생님 중에 그것만 잘 잡아 주는 분이 계신 데, 어때요? 한번 만나 볼래요?”

“아니요.”

수철은 단번에 거절했다.

트럼펫 연주자는 묻자마자 거절하는 수철에게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니, 왜…… 요? 수철 씨는 몇 가지만 고치면 완전 대한민국 최고, 아니 외국으로 나가도 견줄 사람이 없을 건데요…….”

트럼펫 연주자는 흥분해서 말을 더듬으며 수철을 빤히 쳐다봤다.

다시 돌아온 답변도 짧고 명확했다.

“저는 음악을 만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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