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와이 트리오
“네가 거기 나간다고?”
“네.”
“진심이야?”
“네.”
“이거 정말 대단한 뉴스네, 네가 오디션을 나간다니. 햐…….”
박 대표는 수철의 오디션 참가 소식에 놀라워했다.
“그런데 뭐로 나가려고? 거긴 작곡자를 뽑는 건 아니잖아.”
“생각 중이에요.”
“밴드?”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부터 생각해 보려고요.”“흠, 어쨌든 재밌는 일이 생겼네. 근데 수철이 너, 노래는 안 해? 너, 노래도 잘하잖아.”
박 대표는 수철을 처음 봤을 때 스캣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노래 실력이 뛰어났던 거로 기억하는데 어쩐 일인지 수철은 노래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노래는 안 해요.”
“왜?”
“……그냥 안 해요.”
수철은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지 등을 돌려 버렸다.
‘이상하네, 다른 건 적극적인 녀석이 왜 노래엔 과민 반응일까?’
박 대표는 궁금했지만 수철이 싫어하기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거 잘하면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하겠는걸? 재밌다, 재밌어.”
박 대표는 생각만 해도 재밌는지 연신 생글거렸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디션에 참가할 생각을 한 거야? 너는 그런 데에 나가는 거 싫어하잖아.”“작업실 만들고 싶어서요.”“작업실? 작업실은 여기 쓰면 되잖아.”
“그래도요.”
“아하, 개인 작업실 갖고 싶어?”“네, 여긴 쌤이 작업하셔야죠. 괜히 저 때문에.”“난 괜찮아, 밤에 작업하면 되니까. 그래도 개인 작업실 꾸릴 생각이면 언제든 말해. 도와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쌤.”
“나도 그 맘 알아. 아무래도 네 작업실이 있는 게 좋지. 작곡가는 마음이 편해야 곡도 잘 써지니까.”
* * *
수철은 며칠간 오디션에 관한 정보를 다 찾아봤다. 심지어 외국에서 벌어지는 오디션 영상까지 챙겨 봤다. 그리고 다혜에게 전화했다.
“내일 시간 돼?”
“응. 결정했어?”
“응.”
“알았어, 학교 마치면 연락할게, 도어스에서 봐.”
“그래.”
다음 날 다혜가 터벅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가 도어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수철아.”
“어서 와.”
수철과 인사하는데 홀에서 청소하는 청년이 보였다.
“저 사람은 누구? 새로 온 알바생?”“응, 인수인계 중이야.”“드디어 네가 여길 떠나는구나. 난 이제 누구랑 노나?”“걱정 마, 자주 놀러 올 거야.”
다혜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병 꺼내 와서 바에 앉았다.
“이제 네 생각을 말해 봐. 어떻게 할 작정이야?”
“트리오 하자.”
“트리오?”
“그래, 트리오가 그림이 괜찮을 거 같아.”“자세히 말해 봐. 트리오 구성을 어떻게 하자고?”
“보컬과 투 건반.”
“투 건반? 다른 악기 없이 건반만 두 개 간다고?”“응,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수철은 기존 밴드의 틀을 깰 생각이었다.
“네가 무슨 얘기하는지 감이 안 잡혀. 그러니까 네 말은 보컬 한 명 세우고 건반 두 개로 가자는 얘기잖아?”
“응.”
“그럼 하나는 피아노고, 하나는 스트링?”
“비슷해.”
“비슷해? 설마 피아노 두 개로 갈 생각이야? 네 연주력을 뽐내려고? 네 연주 실력을 알려서 결선에 진출하려고? 그게 며칠간 생각한 네 계획이야? 우릴 마네킹으로 세울 계획?”“야, 진정해. 조울증 있어? 왜 혼자서 오버하고 그래?”“흠. 알았어. 말해 봐. 네 작전이 뭔지.”
다혜는 듣기만 하겠다고 팔짱을 꼈다.
“두 개의 신디사이저로 하나는 스트링, 다른 하나는 리듬을 맡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그러니까 하나는 현악기 음원을 쓰고, 하나는 리듬악기 음원을 쓰겠다?”“그래, 거기에다가 포인트는 효과음이야.”
“효과음?”
“영화에서 쓰는 거 말이야.”“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효과음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쓴다는 거야?”“곡의 분위기에 맞춰서 효과음은 내가 미리 만들어 놓을 거야. 그리고 필요한 섹션에서 쓰는 거지. 신디사이저가 가진 역량을 극대화할 거야.”“신디사이저로 오케스트라를 할 생각이야?”“그럴 수도 있고. 생각은 다 열려 있어.”
다혜는 이제야 수철의 의도를 알았다. 수철은 단순한 반주를 넘어 사운드 디자인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소통할 수 있도록 멤버를 트리오로 단순화하고, 즉석에서 사운드를 만들어 입힐 생각이었다.
“야, 너 참 대단하다. 즉석에서 편곡하고 편집을 다 하겠다는 거네, 신디사이저의 특징을 살려서 영화음악처럼.”
“빙고.”
“하하, 대단한 발상이다. 음악을 즉석 철판구이처럼 하겠다니. 용수철답다.”
다혜는 수철의 생각이 놀라우면서도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고 음악을 하기에 최적화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밴드의 개념을 깨는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밴드의 본질이다. 음악을 입체감 있게 만드는 것, 수철은 그것을 하려는 것이다.
“이해돼?”
“응, 트리오와 투 건반 구성은 이해했어. 그림은 신디사이저 두 개로 밴드 전체를 커버하겠다는 거고.”“기본 구성은 그렇고, 상황에 따라서 변화를 줄 생각이야.”
“뭐가 또 있어?”
“너도 기타 칠 줄 알고 나도 아니까. 아르페지오나 스트로크는 진짜 기타로 치는 거지. 신디사이저 기타 사운드는 별로잖아.”
“구리지.”
다혜가 고개를 저었다. 신디사이저 기타 사운드는 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퍼커션도 직접 쳐 볼 생각이야.”“퍼커션? 그건 신디사이저 사운드도 쓸 만하잖아?”“그래도 직접 치는 거랑 건반 누르는 거랑은 그림이 다르잖아.”“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런데 오디션에서 악기를 막 그렇게 바꿔도 되나?”“악기 구성은 자유롭더라고. 새로운 악기를 요구하는 건 좀 그렇지만, 우리가 들고 가는 악기는 상관이 없더라고. 전기만 꽂으면 되니까.”
“그렇구나.”
다혜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철이 다시 정리했다.
“다시 정리하면, 두 명이 동시에 건반을 치거나, 아니면 한 명은 기타 치다가 건반으로 갈아타거나. 그렇게 되는 거지. 그때그때 곡에 맞춰 컨셉을 바꾸는 거야.”“그런데 신디사이저로 드럼 치는 건 흔하잖아.”“그래서 다른 악기를 병행하자는 거야. 그렇게 하면 편곡도 사람들의 예상을 확 뒤집으면서 할 수 있잖아. 이런 구성이면 표현의 폭이 넓어지니까.”“그래, 어쨌든 네 말대로 그렇게 가면 그림은 괜찮겠어. 사실 5명씩 몰려다니는 건 좀 정신 없지.”“그것도 있고, 세 명이 하면 소통하기가 더 편하잖아.”“그렇지. 며칠 고민하더니 그림 잘 잡았네, 맘에 든다.”
다혜는 수철이 말하는 그림이 완전히 이해됐다.
“이제, 보컬 오디션만 보면 되는 건가?”“오디션은 안 봐도 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누구?”
“유은주.”
“유은주? 코러스 유은주?”
수철은 처음 트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보컬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같이 무대에 섰던 코러스 중의 한 명인 유은주다.
수철은 같이 팀을 하고 연습을 하면서 은주에게 독특한 컬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은주는 아직 어리지만 보이스엔 뭔가 세상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은 깊이가 있었다.
때로는 제니스 조플린 같은 샤우팅도 내재되어 있었다. 평소엔 수줍게 얘기하고 숫기가 없지만 노래할 때는 달랐다.
수철의 눈엔 그게 보였다. 연습하면서 그녀 안에 잠재된 엄청난 에너지를 봤다. 그녀는 억누르고 있지만, 수철에겐 그게 보였다.
“진짜 나도 끼워 주는 거야?”
은주는 얘기를 듣자마자 좋아했다.
유명한 곳에 캐스팅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은주는 수철에게 음악적 믿음이 있었다.
“친구들이 무슨 노래 잘한다고 해?”“특별하게 그런 얘기는 없어. 다들 재즈를 하니까. 고딩 때는 있었는데.”
“누구?”
“고딩 때는…… 호호.”
은주는 말하기 쑥스러워했다.
“말해 봐. 누군데?”
“잘 모를 거야. 옛날 락 밴드야. 레드 제플린이라고.’
“오호.”
수철은 기대했던 답변을 듣자 탄성을 내뱉었다.
“레드 제플린을 알아?”“당연히 알지, 나도 좋아해.”“넌 참 다방면으로 많이 아네.”“그러니까 로버트 플랜트 노래를 잘 따라 부른다는 거네?”
“그랬었지.”
수철은 흥미로운 눈으로 은주를 봤다. 앞으로 재미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수철과 반대로 다혜는 갸우뚱했다.
“락을 하려고?”
“왜?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해 본 적이 없어서. 오아시스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재밌을 거 같기도 한데.”“너무 유명한 밴드는 피해야지. 많이 몰릴 테니까.”“그렇겠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락에서 건반이 할 게 없는데.”“할 게 있게 만들면 되지. 그렇게 편곡하면 되잖아.”“그래도 락은 좀…….”
“장르를 왜 따져?”
수철은 장르를 얘기하는 다혜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수철은 장르를 한정 지어서 음악의 폭을 줄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수철이 강하게 밀어붙이자 다혜도 한발 물러섰다.
“쩝, 알았어.”
“너무 걱정 마, 꼭 락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안 한다는 얘기도 아니고.”
“……?”
“내 얘기는 재즈든 락이든 장르를 가리지 말자는 거야. 우리에게 맞게 편곡하면 되니까.”“알았어, 그래서 영상은 무슨 곡으로 할 건데?”“심사 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선택해야지.”“생각하는 곡이 있어?”“스팅(Sting)의 Shape of My Heart.”
“레옹 OST?”
“맞아.”
“그 곡은 나도 좋아해.”
뾰로통하던 다혜의 얼굴이 펴졌다.
“은주, 너는?”
“나도 좋아. 네가 어떻게 편곡할지 기대돼.’“오케이, 음악은 편곡해서 바로 연습 시작하면 되고. 팀 이름은 뭐로 할까?”“……이번에도 쌤한테 물어볼까?”“이번엔 우리가 정하자. 심플하게.”“생각해 놓은 게 있어?”“없어. 셋이니까 트리오로 할까? 트리오 앞에 뭐 하나 붙여서.”
“뭘 붙이지?”
“음…… 와이(Y) 트리오? 윤 씨, 유 씨, 용 씨. 다 Y로 시작하잖아.”“와이 트리오? 왜 트리오 하냐고 묻는 거 같은데?”“한 번 더 관심 가지면 좋지 뭐.”“알았어, 팀 이름은 그렇게 하고, 이제 뭘 해야 하지?”“연습하고 영상 만들어서 보내야지. 드러머하고 베이시스트는 어떡할까? 같이 못 한다고 알려 줘야 하잖아.”“게네는 걱정 마, 따로 팀 짜서 참가할 생각인가 봐.”
“잘됐네.”
지난번엔 다혜가 제안했지만, 이번엔 수철이 먼저 제안하고 진행했다.
편곡도 이번엔 먼저 하지 않고 연습하면서 바로 맞춰서 했다. 트리오는 그게 편했다.
수철은 ‘Shape of My Heart’의 아름다운 선율을 기타로 치다가 다혜가 건반으로 멜로디를 이어받으면 퍼커션으로 바꿔 리듬을 덧붙였다. 그러자 스팅의 명곡은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나는 음악으로 변모했다.
“이 버전으로 OST를 쓰면 레옹은 흑인이 연기해야 할 거야.”
다혜가 농담을 할 정도로 음악이 바뀌었다.
수철은 신디사이저의 스트링으로 다혜와 주고받으며 연주하다가 다시 퍼커션으로 바꿔 리듬을 쳤다. 기존 밴드의 개념을 무너트렸다.
보컬은 수철의 예상대로였다. 노래에 독특한 컬러를 담아냈다. 스팅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제니스 조플린이 발라드를 부르는 것처럼 바뀌었다. 매력적이었다. 다혜도 만족했다.
“은주야, 너 완전 대박이다! 너한테 이런 면이 있었어?”
다혜도 독특한 은주의 보이스 컬러에 눈을 반짝였다. 대박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빨리 찍어서 보내자. 마감까지 기다리지 말고.”
수철은 빠르게 편곡을 마무리하고 영상을 찍었다.
팀 소개, 멤버들의 프로필을 작성해서 영상과 함께 오디션 프로그램 담당자 앞으로 보냈다.
* * *
“난 솔직히 네가 안 할 줄 알았어.”
“왜?”
“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난 아직도 좀 낯설어.”“어려울 거 없잖아. 해 보는 거지 뭐. 이번 기회에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이번 기회에 하고 싶은 거.
자작곡 평가받기, 상금 받아서 작업실 꾸리기.
수철은 상금을 못 받더라도 곡이 알려지면 작곡 일이 많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좋은 장비와 악기들로 가득한 자신만의 작업실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이 불러올 엄청난 파장은 예상하지 못한 채, 순진하게 작업실 꾸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
* * *
‘내가 슈퍼스타다!’는 국내 3대 재벌 기업 중 하나인 씨진 그룹의 계열사, 엔 벗 엠(N But M)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로열티를 받고 판매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맡은 피디도 능력자였다.
장성민 피디는 직급은 피디지만 CP(Chief Producer)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만큼 간부들의 기대와 관심이 크다는 얘기다.
“이미 여러 오디션에서 공정성에 대한 다툼이 많았고, 그래서 흥행의 시비가 엇갈렸잖아.”
오디션의 흥망성쇠는 공정성에서 갈린다.
장성민 피디는 작가들과 스텝들이 참여한 첫 회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 들었다.
“우린 처음부터 이 문제를 확실히 잡고 가자. 사람들이 공정성의 ‘공’자도 못 꺼내게 입을 막아 버리는 거지.”
장 피디는 팔까지 걷어붙이고 회의를 주도했다.
메인 작가가 물었다.
“어떻게요?”
“처음 영상 선별 작업부터 철저하게 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거야.”“영상 선별 작업을요? 그걸 어떻게 홍보해요?”
“방법이 있어.”
장 피디는 생각하는 비책이 있다며 힘을 줘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