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35화 (35/239)

#35화. 장 피디

장 피디는 타 방송사에서 연출을 했던 인물이다. 거기서 기획한 프로그램이 연속으로 흥행을 터트리자 ‘엔 벗 앰’에서 거액을 주고 스카우트해 왔다. 그런 만큼 회사에서는 그를 팍팍 밀어주고 있다.

“제작비 걱정하지 말고 프로그램만 잘 띄워 봐. 그러면 자네 앞날은 탄탄대로야.”“감사합니다. 이사님.”

장 피디는 제작비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그리고 작가와 스텝이 모인 회의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1차 영상 선별 작업은 외부 인력과 시청자들에게 맡기는 거야. 별도의 장소를 빌려서 거기에 외부 심사자와 시청자 심사자를 투입하고 선별 작업을 시키는 거지.”

오디션에 참여하겠다고 보내오는 비디오 클립만 100만 개가 넘는다. 그래서 많은 인원이 달라붙어 며칠 밤낮으로 정신없이 골라내야 한다.

그렇게 1차로 10%인 10만 개를 고르면, 바로 2차로 다시 10%인 만 개를 골라낸다. 100만 명 중에 1%인 만 명 정도만 선택을 받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지역 예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장 피디는 1차 선별 작업을 외부 인력과 시청자 심사단에게 맡길 생각이다.

“외부 인력과 시청자 심사단은 어떻게 선별하시려고요?”“외부 인력은 음악 아카데미 선생들 쓰면 되고, 시청자는 지원받아서 선별해야지. 그렇게 하면 밖에서 보기에도 공정하고, 우리도 일이 수월하잖아.”“좋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호텔도 통째로 빌릴 생각이야.”

“호텔을요?”

“심사자들이 3박 4일은 머물러야 하니까. 호텔을 빌려야지.”“비용이 많이 들 텐데, 제작비는 어떻게 하시려고요?”“제작비는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심사자들에게도 넉넉하게 수고비를 챙겨 줄 생각이야. 그리고 호텔에 보안 요원 배치해서 철저하게 외부와의 소통도 막을 거야. 휴대전화 사용도 막고.”

장 피디는 심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수고비를 넉넉히 챙겨 주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건 보여 주기 위한 쇼일 뿐이다.

“보안 요원이요? 그럴 필요까지 있나요?”“그럴 필요라니? 그래야 이슈가 될 거 아니야. ‘나는 슈퍼스타다! 제작진, 프로그램 공정성을 위해 호텔 곳곳에 보안 요원을 배치. 철통 보안 중.’ 헤드라인 좋잖아? 기삿거리를 만들어 줘야지.”

그제야 장 피디의 의중을 알아채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방송에도 내보내고 다른 매체들에도 쫙 뿌리는 거지. 우리가 공정성을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을 알리는 거야. 그러면서 일찌감치 붐을 일으키는 거지.”

장 피디는 공정성과 프로그램 홍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생각이었다.

회의실에 모인 작가와 스텝들을 휙 한번 쳐다봤다.

“돈이 들더라도 초반엔 좀 편하게 가자. 그래야 마지막까지 몸살 안 나고 버티지. 우리가 건강해야 프로그램도 건강할 거 아냐.”

* * *

영상을 보내는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서 공정하게 음악성을 평가해서 선별하길 기대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럴 시간이 없다. 바쁘다. 빨리 골라내야 한다.

물론 대단한 실력을 갖췄거나 눈에 띄는 뭔가가 있는 사람은 쉽게 뽑힌다. 도드라진 끼가 있는 사람도 선택받는다.

“얘는 정말 노래 잘하는데요?”“얘는 비주얼 쓸 만하네, 시청자들이 좋아하겠어.”“와. 얘는 똘끼 충만이네요.”

쉽게 선택을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시간 끌지 말고 빨랑빨랑 넘겨.”

눈길을 끌지 못하거나, 흥미롭지 않으면 묻혀 버린다.

소개서에 애틋한 사연을 적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불우 가정 스토리야?”

많은 참가자가 기존 오디션의 사례를 보고 에피소드를 만들어 보내지만, 이걸 아는 작가들은 신선한 에피소드가 아니면 다 넘겨 버린다.

설령, 영상이 뽑히고 사연이 선택받는다고 해도, 음악 탤런트가 없으면 이들의 생명은 길지 않다. 시청률을 높이는 불쏘시개로 쓰이고 금세 버려진다.

“자. 이제 정글을 만들어 보자고.”

방송사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정글 생존 서바이벌 게임처럼 만들어 버린다. 출연자들을 최종 결선에 오르기 위해 목숨 걸고 달려드는 정글 야수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야 참가자도 시청자도 손에 땀을 쥐며 집중한다.

이것이 프로그램 기획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지역 예선을 통과한 100여 팀은 최종 10위 안에 들겠다는 꿈을 갖고 노력한다. 10위 안에만 들어도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최종 결선에 오를 사람 중에 절반은 이미 정해져 있다. 뒤에서 엄청난 입김이 작용되었거나, 프로그램 기획자와 암묵적인 기브 앤 테이크가 오갔거나, 아니면 애초에 입소문이 떠들썩해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섭외가 들어간 재능 넘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프로그램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인물들이고, 조력자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만이 순수하게 밑에서부터 단계를 밟고 올라와 오직 재능만으로 ‘내가 슈퍼스타다!’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시청자를 울리는 사연까지 갖췄다면, 그 사람은 바로 ‘내가 슈퍼스타다!’의 영웅이 된다. 모두가 기대하는 개천에서 히어로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획자도 시청자도 바라는 그림이다. 평범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그림말이다.

* * *

“아무리 시청률에 환장했어도 그렇지…….”

프로그램의 목표는 당연히 시청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눌러야 한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사전 영상 심사에 돈과 인력을 투입해서 이슈를 만들어, 불공정함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초반부터 붐을 만들어 보겠다는 계산기 두드려 보고 나온 계획.

일은 장 피디의 생각대로 벌어졌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호텔을 빌리고 심사자들을 투입하고 보안 요원까지 배치해 외부와의 접촉을 막았다.

“쇼하고 있네.”

타 방송사 피디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장 피디가 이러는 속내를 알기 때문이다.

“완전 개 오버지. 누가 지역 예선도 치루기 전에 이런 헛짓거리를 해? 대통령 선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거긴 돈 많은 곳이잖아. 이슈 만들어서 홍보하려는 거지. 장 피디가 원래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잖아.”“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돈을 뿌리는 것도 아니고. 진짜 제작비 없는 사람은 일할 맛 안 난다.”

방송 관계자들의 질타와 상관없이 ‘앤 벗 엠’은 호텔에서 심사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찍어서 홍보했다. 그리고 신문을 비롯한 다른 언론매체에서도 이를 집중 보도했다.

[내가 슈퍼스타다! 새로운 심사방식으로 공정성의 문제를 넘다.]

[공정성에 온 힘을 쏟는 제작진.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프로그램의 열정을 칭찬했다. 물론 회사에서 지원사격을 해 준 것이다.

어쨌든 장 피디의 계획대로 이슈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너희가 뭔 짓을 해도 난 끝까지 의심할 거야.

―나도. 나도.

부정 댓글에 ‘좋아요’가 몇 만 개씩 달리며 이슈 몰이에 한몫했다. 이 또한 막내 작가의 작품이었다.

1차에서 10만 개가 선별되자, 장 피디의 인력들이 달라붙어 다시 만 개를 골라냈다.

1차에서 많이 걸러 냈지만, 그래도 자세히 볼 겨를이 없다. 비주얼이 뛰어나거나, 특이하거나. 재밌는 춤, 포즈, 분장 등. 눈에 띄는 것들만 휙휙 골라냈다.

* * *

“작가님, 이거 좀 보세요.”

와이 트리오의 영상을 본 막내 작가가 메인 작가를 불렀다.

“오, 이거 냄새가 나는데? 나한테 보내 봐.”

메인 작가는 영상을 들고 피디에게 갔다.

“이거 한번 보세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피디는 영상 속 인물들의 비주얼부터 살폈다.

“와. 이거 누구야? 비주얼 죽이는 데?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이 눈빛 봐. 완전 누나들 녹겠다.”“비주얼도 좋지만, 컨셉도 참신해요. 이거 보세요, 신디사이저로 퍼커션을 치고 있어요. 레옹 OST를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하고 있어요. 어때요, 느낌 나지 않아요?”“심상치 않은데? 보컬도 특이하고. 퍼커션 치는 얘는 비주얼에 악기까지 시청자들 난리 나겠어.”

“대박 느낌 나죠?”

“응, 그림을 보면 기획사 작품은 아닌 거 같은데.”“소개서 보니까 두 명은 학생이고, 얘는 그냥 작곡가로 적혀 있어요.”“작곡가라, 몇 살이야?”

“19살이요.”

“19살 비주얼 좋은 작곡가. 우리 프로그램에 딱 맞아떨어지는 녀석이네, 팀 이름이 뭐야?”

“와이 트리오요.”

“남자 녀석 이름은?”

“용수철이요.”

“오케이, 얘네 리스트에 올리고 3차까지 바로 통과시켜. 그리고 인터넷 뒤져서 애들 정보 있는지 찾아봐. 쓸 만한 스토리 나오면 잘 각색해서 모아 놔. 그림 나오면 한방에 띄워 버리게.”

“네.”

“그리고 담당 VJ 하나 붙여서 지역 예선 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다 찍으라고 해. 대기실부터 무대까지 싹 다.”

“네.”

“얘네들 마지막 예선 때 심사 위원이 누구지?”“김준영, 제임스 박, 이승미 씨요.”“알았어. 내가 미리 주지시켜 놓을게. 고 피디 찾아서 영상 보여 주고 나한테 보내.”

“알겠어요.”

―똑똑.

잠시 후, 고 피디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 피디는 신입 피디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특채로 방송사에 들어와 장 피디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선배님, 찾으셨습니까?”“그래, 영상 봤어?”

“네.”

“어땠어?”

“좋았습니다. 신선하고요.”

“그것뿐이야?”

“네?”

“영상보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좋았습니다. 신선하고요. 그것뿐이냐고.”

장 피디는 고 피디의 식상한 표현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고 피디는 이를 잘 모른다. 이과 출신이다.

“아니면, 어떤…….”“피디 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감각이 떨어져서야. 쯧쯧, 지금 리스트에 올라간 사람이 총 몇 명이야?”

“모두 7팀입니다.”

“지금 얘네 와이 트리오까지 합쳐서?”“합치면 8팀입니다.”“그러면 이제 두 팀 남은 거네?”

“네.”

“만약에 중간에 튀는 물건들이 나오면 11팀이나, 12팀까지 늘려도 돼, 감동 스토리 하나 만들어서 갖다 붙이면 시청자들도 눈물 짜면서 이해할 거야.”

“알겠습니다.”

“용수철인가? 걔, 잘생겼지?”“네, 외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야, 고 피디.”

“네.”

“너 표현을 좀 현장감 있게 해 봐. 명문대 나왔다고 고상한 표현만 골라 쓰냐?”

“그게 아니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해야 감각이 사는 거야.”

“알겠습니다.”

고 피디는 장 피디의 말에 대답하고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메모했다. 장 피디는 이를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뭐 하냐?”

“좋은 말씀 하셔서 적어 두는 겁니다.”“적어서 암기하려고? 와, 너 진짜 쩐다. 내가 슈퍼스타다! 가 아니고, 고 피디, 네가 슈퍼스타다! 너도 지원서 넣고 노래해, 내가 결선까지 밀어줄게.”“그럴까요? 사실 제가 대학 때 기타 동아리를…….”“됐다, 됐어. 에휴.”

장 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왜?”

“저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뭐가?”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 피디는 마지막 멘트는 농담이었다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쩝, 시간 없으니까 핵심만 얘기할 게. 잘 봐 봐. 얘네는 분명 계속 올라올 거야. 결선까지 갈 수도 있어.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잖아. 뒤에서 우리가 밀어도 반발할 사람 없다는 얘기야. 시청자도 불만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이런 애들은 처음부터 작업이 들어가야 해. 딱, 그림 보니 뒤에 기획사도 없어.”

“어떻게 아세요?”

“기획사면 이렇게 그림을 짜지 않지. 얘네를 찢어서 따로따로 내보내거나 아니면 용수철이라는 놈한테 포커스를 맞추겠지.”“노래가 안 되는 거 아닐까요?”“노래가 뭔 상관이야? 적당히 분위기만 잡아 주면 되는데. 음정이 안 올라가면 적당히 낮은 소리만 내면서 표정만 몇 개 보여 주면, 바로 시청자들 침 흘릴 텐데. 그리고 바로 배우로 데뷔하는 거지.”

“아.”

“암튼 기획사 루트가 그래,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한테 작업 들어온 기획사 애들 중에 쟤네들은 없잖아.”

“네.”

“그러니까 내 말이 맞는 거지.”“듣고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그제야 고 피디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핵심은 이거야, 그놈이 작곡가라고 하니까 빨리 순위를 끌어당겨서 자작곡을 띄우는 거야. 그러면 우리가 음원 수익을 챙길 수 있겠지? 저작권 걱정도 줄이고 말이야.”

“그렇겠네요.”

“가산점 팍팍 주면서 한 곡이 아니라 몇 곡 띄우는 거지. 그러면 얘는 우리가 키우는 거고, 나중에 대형 기획사와 거래할 때도 기브 앤 테이크를 할 수 있잖아. 연말에 우리 방송에 일 순위로 출연하는 조건 걸고 말이야.”

“아, 역시.”

“암튼, 그것 말고도 우리가 좀 더 챙겨야 해. 스타 하나 만들어서 거저 넘겨주는 거잖아. 그냥 앉아서 몇 억은 낼름 먹을 텐데 말이야. 생각해 봐. 아무것도 안 하고 행사만 일 년 뛰어도 그냥 10억은 챙기겠다.”“역시 선배님 대단하십니다.”“대단하긴, 기본이지. 이 정도는 짬밥 먹으면 그냥 나오는 거야.”“그런데 영상을 보면 편곡 실력은 좋은 거 같은데, 작곡 실력은 아직 모르잖아요. 확인해야 하지 않나요?”

쾅!

장 피디가 열 받았는지 다이어리로 책상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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