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천국으로 가는 계단
얼굴이 빨개졌던 장 피디가 잠시 호흡을 골랐다.
“고 피디, 너, 자꾸 이럴래?”
“제가 뭘 또…….”
“내가 챙겨 보라는 거, 다 챙겨 봤어? 지난 오디션 프로그램들 말이야.”
“네, 봤습니다.”
“거기서 수익 모델 어떻게 잡는지 봤어?”
“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런 초짜 같은 말을 해? 여기서 작곡 실력이 왜 필요해? 만들 줄만 알면 되지. 음악이야 우리가 틀어대면 좋아하는 거잖아. 지금 스타 작곡가들이 작곡 실력이 좋아서 스타 됐냐? 다 우리가 질리도록 틀어 대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지. 작곡 실력? 밖에 나가 봐, 작곡 도사들 널렸어.”
“…….”
“작곡 실력은 뭔 작곡 실력? 자꾸 얘기 끊기게!”
“죄송합니다.”
“만약에 진짜 곡이 엉망이면 우리 쪽에 선수들 많잖아, 그 사람들 붙여서 그럴듯하게 손봐 주면 되지. 뭐가 문제야.”“아, 네, 알겠습니다.”
고 피디는 장 피디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막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 피디의 핀잔이 이어졌다.
“너, 진짜 이 바닥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냥 다큐멘터리나 탐사 프로그램, 그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열심히 하겠습니다!”“열심히는, VJ나 잘하는 사람으로 하나 골라 놨다가 얘네들 나타나면 바로 붙여.”
“네, 선배님!”
* * *
―축하합니다. 영상 심사에 통과하셨습니다. 지역 예선은…….
영상을 보내고 몇 주 뒤, 합격 통보가 날아왔다. 막내 작가가 직접 수철에게 전화해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수철은 다혜와 은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합격이래.”
“연락 왔어?”
“작가라는 분한테 전화 받았어.”“지역 예선은 언제래?”“일주일 후에 상암동에 있는 체육관으로 10시까지 오래.”“그날은 새로운 곡 하는 거 아니지?”“그날은 영상 보낸 곡 하면 되고, 그다음부터는 새로운 곡 해야지.”“그럼 그날 결과 보고 다음 곡 준비하면 되겠네?”“그냥 바로 준비해 놓지 뭐. 연습도 할 겸.”
“알았어.”
수철은 멤버들과 함께 오디션에 참가할 다음 곡을 선정하고, 박 대표의 작업실에서 연습했다. 다음 곡은 은주의 보이스 컬러가 돋보일 곡으로 선택했다.
연습이 끝나고 작업실을 벗어나려는 수철을 박 대표가 불렀다.
“수철아, 나 좀 보고 가.”“하실 말씀 있으세요?”
“응.”
수철과 박 대표와 마주 앉았다.
“당분간 네가 작업실 사용을 못 할 거 같아.”“무슨 일 있으세요?”“내가 작업할 게 좀 많아졌거든, 그래서 낮에도 작업실을 써야 해.”
“아, 알겠어요.”
“그리고 너희 연습도 다른 곳에서 해야 할 거 같아.”
“연습도요?”
“그래, 노래 녹음도 해야 해서. 부스를 사용해야 하거든.”
“아, 그렇군요.”
“갑자기 얘기해서 미안한데, 몇 주만 그렇게 해. 그다음엔 다시 써도 돼.”“저 신경 쓰지 마시고 작업 많이 하세요. 다혜가 있으니까 연습실도 금방 구할 거예요.”
“그래.”
수철은 느닷없는 통보에 다소 난감했지만, 박 대표의 말을 따라야 했다.
박 대표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는 수철에게서 발을 뺄 생각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을 잘 알기에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방지하려는 생각이었다.
“용수철 뒤에 힘 있는 조력자가 있는 거 같은데?”“음반 제작자라는 거 같아.”“어쩐지, 참가한 이유가 있었네.”
그런 구설수를 막겠다는 거였다. 박 대표야 그런 소문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수철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우려한 선택이었다.
나중에라도 수철의 뒤에 박 대표가 있다는 걸 알면 껄끄러워할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항상 폭풍을 몰고 다닌다. 큰 파장을 일으키며 음악 꿈나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방송국 놈들, 또 아이들을 갖고 노네. 저 상실감과 후유증은 누가 책임질 거야?”
박 대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부정적이다. 방송사의 농간에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놀아나는 것에 분노할 때가 많다. 참가자만도 못한 심사 위원들의 멘트도 듣기 싫고, 방송사와 기획사 간의 커넥션은 증오스럽다.
“문광부가 지원하고 방송사가 협력하면, 음악가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순수하게 지원할 방법이 많습니다.”
박 대표는 정부와 제작자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좋은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시장 논리라는 게 있는데 그걸 거스르면 안 되죠.”
아이들의 꿈보다 어른들의 시장 논리가 항상 먼저였다.
“네가 오디션에 나간다고? 아니 왜?”
그런 상항에서 수철이 오디션에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박 대표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수철은 굳이 오디션이 필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 대표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난 상상을 했다.
어쩌면 수철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들의 관습을 뚫어 버릴지도 모른다. 수철의 재능이 이들의 판을 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수철의 엄청난 음악 재능이 사람들을 다시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시선을 돌려놓을 수 있다. 시청률 높이기에만 급급해서 갈등을 조장하고 악마의 편집을 해대는 저들을 깨트릴 수도 있다.
수철은 저들의 관행에 편승할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것을 강요했다간 튕겨 나갈 것이다. 그래도 저들은 수철을 자를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수철에게 집중될 것은 뻔하다. 저들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시청자 모두의 눈을 가릴 수는 없다.
그러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철이 저들의 판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
게다가 결선까지 올라가서 편집할 수 없는 생방송에 출연한다면 음악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 * *
1차 지역 예선은 후다닥 치러졌다. 부스가 빼곡한 체육관에 모여 각자의 번호에 맞춰 들어가서 노래했다.
“됐습니다.”
마치 짧은 면접을 보듯이 노래는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영상에서 본 실력을 확인하는 절차 정도였다.
심사 위원들은 빠르게 평가하고 필요한 사항만 체크만 했다. 누가 봐도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기는 어려운 현장이었다.
수철은 오디션에 모여든 많은 사람을 보며 놀랐다.
진작 이렇게 많이 모이는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참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심사는 몇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끝났다. 기다린 시간이 허무할 정도였다.
“잘 치르셨나요?”
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전화를 했던 막내 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예선도 잘 치르시고요, 다음부턴 방송 촬영을 하니까 참고하세요.”
막내 작가는 대화 중간중간 필요한 정보를 알려 줬다. 수철과 멤버들은 막내 작가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합격입니다.
바로 다음 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마지막으로 본선 진출자를 가리는 예선에 참여했다.
마지막은 장충동의 한 체육관에서 열렸다.
분위기는 지난번과 사뭇 달랐다. 방송 카메라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무대도 꾸며져 있었다. 대기실에선 모니터로 오디션 현장을 볼 수도 있었다.
심사 위원석엔 방송에서 몇 번 본 가수들이 앉아 있었다.
체육관에 들어설 때부터 ‘와이 트리오’에겐 전담 VJ가 달라붙었다. 물론 포커스는 수철에게 맞춰져 있었다.
무대에 올라서자 심사 위원이 물었다.
“오디션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네, 저는 노래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경험을 쌓고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은주의 답변이 끝나자 마이크가 수철에게 넘어왔다. 심사 위원이 갑자기 수철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심사 위원의 우두머리격인 김준영에게 수철을 인터뷰해 달라는 작가의 요청이 있었다.
“직업이 작곡가로 적혀 있는데, 발표한 곡이 있나요?”
“없어요.”
“앞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음악이 있나요?’“다 해 볼 생각이에요.”“어떤 작곡가가 되고 싶나요?”“좋은 음악 만들고 싶어요.”“작곡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윤다혜 씨는…….”
수철이 계속 짧게만 대답하자, 난감한 표정을 보인 김준영은 다혜에게 질문을 옮겼다.
“윤다혜 씨도 작곡과 학생이네요?”
“네.”
“음악 공부하는 게 재밌어요?”“네, 저는 적성에 맞아요.”
다혜에게도 학교생활과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상투적인 질문만 던지고, 마이크는 다시 은주에게 넘어갔다.
“오늘 부르실 노래는 무엇인가요?”“Stairway To Heaven이요.”“Stairway To Heaven? 레드 제플린이요?”
“네.”
질문을 던진 김준영은 눈을 크게 떴다. 여자 보컬이 레드 제플린의 락을 부르겠다는건 의외였다. 더군다나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를 부른다는 게 상상이 안 됐다. 지금까지 이런 시도는 없었다.
“Stairway To Heaven이 뭐야? 레드 제플린은 또 뭐고?’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구경하는 대부분 참가자는 이 노래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만큼 오래된 노래라는 뜻이다.
곡 선정을 의아하게 생각한 이승미가 다시 물었다. 이승미는 심사 위원 중 한 명이다.
“지금 말씀하시는 보이스는 굉장히 여성스러운데, 로버트 플랜트를 하겠다면 샤우팅은 아니겠네요?”
“해 보려고요.”
3명의 심사 위원은 모두 갸웃했다. 그림이 안 잡혔다.
‘신디사이저 두 개로 뭘 하겠다는 거지?’
기대 반, 의심 반의 눈초리 속에 수철이 신디사이저 뒤편에 놓여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다.
따라라란, 따라라란.
Stairway To Heaven의 기타 인트로가 시작됐다. 분명 신디사이저건만 지미 페이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곧이어 다혜의 몽환적인 신디사이저가 따라붙었다.
심사 위원 중 한 명인 제임스 박은 눈을 감고 수철의 아르페지오를 음미했다.
기타 아르페지오 진행이 한 바퀴 돌고 나자, 은주가 아르페지오의 끝을 물고 들어와 부드러운 톤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There’s a lady who’s sure All that glitters is gold. And she’s buying a stairway to heaven”
노래가 시작되자 심사 위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감상했다.
노래가 레전드인 만큼 심사 위원 중에 이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만에 듣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자 보컬은 처음 예상과 달리 보이스 톤이 부드러우면서도 찢어진 듯 독특했고, 중년 여성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깊은 톤의 맛이 있었다.
빠밤~! 빠밤! 빰빠빠라 빠라바라밤!
보컬의 전반이 끝나자 수철의 솔로가 시작됐다. 솔로는 기타가 아니라 신디사이저의 알토 색소폰으로 이어졌다. 뇌를 자극하는 연주에 모두가 몸을 움찔움찔했다.
연주가 끝나고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자, 갑자기 상상도 못 한 은주의 샤우팅이 튀어나왔다.
“And as we wind on down the road! Our shadows taller than our soul~!!”
“헉!”
심사 위원의 입이 동시에 쩍 벌어졌다. 놀란 심사 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제야 ‘와이 트리오’가 이 음악을 선택한 이유를 알았다. 보컬의 기량을 알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심사 위원들은 처음과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보컬의 샤우팅이 멈추자 이번엔 갑자기 음악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신디사이저 연주자가 알토색소폰과 피아노를 주고받으면서 거침없이 내달렸다.
음악은 절정에서 또 다른 절정으로 치달았다.
“예에~!!”
보컬은 다시 등장해 야수라도 된 듯 거침없이 샤우팅을 내뿜었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신디사이저는 쉴 새 없이 긴장감을 주는 화성을 찔러 넣으며 음악을 이끌고 있었다. 편곡을 넘어 하나의 작품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음악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레드 제플린이 이걸 들으면 뭐라고 할까?’
제임스 박이 궁금해할 무렵, 은주의 호흡이 가늘어졌다.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
“And she’s buying a stairway to heaven…….”
샤우팅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은주는 마지막에 다시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로 바뀌어 마지막 숨을 길게 내뽑았다. 그리고 뒤이어 수철이 나지막하게 아침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페이드 아웃(fade―out) 했다.
이로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는 음악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는 여인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서 마무리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