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인터뷰
프로그램 작가는 와이 트리오의 인터뷰도 진행하고, 기이하게 생긴 원시 악기도 구경할 겸 심사 위원 김명석과 함께 연습 장소를 찾았다.
“……?”
복도를 꺾었을 때 처음 들렸던 디저리두의 굵고 낮은음은 기괴했다.
마치 다른 행성의 우주인이 쓰는 언어 같았다. SF영화에서나 듣던 소리였다.
와이 트리오의 연습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점점 커졌다. 작가는 문을 열면 어떤 모습의 악기가 나타날지 긴장감마저 들었다.
반면, 김명석은 소리를 듣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디저리두를 쓴단 말이지?’
음악 재능이 탁월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용수철이 디저리두를 써서 어떻게 편곡했을지 기대됐다.
작가와 김명석이 들어서자 와이 트리오가 연습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김명석이 먼저 인사하자, 모두 같이 인사했다.
VJ는 입구에 들어서며 인사하는 모습부터 세세하게 찍기 시작했다.
“연습을 방해해서 미안해요. 인터뷰를 해야 해서요. 팀 인터뷰를 먼저하고 개별 인터뷰를 할게요. 같이 진행하실 김명석 선생님과 함께 왔어요. 다 아시죠?”
“네, 팬이에요”
“하하. 고마워요.”
다혜와 은주는 잘 아는 눈치였다.
작가가 수철이 든 악기를 봤다.
“수철 씨가 들고 있는 악기가 말씀하신 그 악기인가요?”
“네, 맞아요.”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수철이 디저리두를 끌어서 작가에게 건넸다.
“와, 정말 특이하게 생겼네요. 어떻게 이걸로 소리 낼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신기하네요.”
작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디저리두의 관 안을 살펴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김명석이 악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
“이게 저음 관악기예요. 여기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대고 소리를 내는 게 금관악기 부는 거랑 같죠. 요즘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지만, 원래는 유칼립투스 나무의 속을 흰개미가 파 놓으면 그 몸통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원주민 전통악기가 된 거죠.”“와, 역시 선생님은 잘 아시네요.”
작가는 김명석의 해박한 지식을 칭찬했다.
다혜와 은주도 놀랍다는 듯 손뼉을 부딪쳤다.
“사진 좀 찍을게요.”
작가는 게시판에 올릴 생각으로 디저리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김명석은 수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떻게 편곡했을까?”
김명석은 수철이 디저리두를 써서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을지 궁금했다. 너무 궁금해서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결국 입을 뗐다.
“음악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디저리두의 입체감이 너무 궁금하네요.”“아직 편곡을 다 못 했어요. 내일 무대에서 보여드릴게요.”
수철은 거절했다. 그러자 김명석은 한 번 더 부탁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들려줘요. 디저리두가 어떻게 섞일지 정말 궁금하네요. 부탁할게요.”
평소와 다른 김명석의 모습에 작가가 힐끗 쳐다봤다.
그가 누구한테 부탁하는 건 처음 보는 모습이다.
멤버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16마디만 해 볼까?”
“그래.”
수철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위치에 섰다.
‘원, 투, 원 투 쓰리 포!’
눈짓으로 박자를 맞추고는 은주의 보이스와 디저리두의 굵은 울림이 동시에 시작됐다.
뿌우― 와―!
“와…… 역시!”
김명석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다혜의 하몬드 오르간이 따라붙으며 리듬을 만들자, 김명석의 미소는 더 깊어졌다.
“유재하의 지난날에 디저리두를 붙인다고?”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김명석의 눈은 번쩍 뜨였다.
상상도 못 했었다.
‘지난날에 디저리두를 붙일 생각을 하다니!’
음악에 디저리두의 굵은 저음이 깔릴 걸 생각하니 놀랍다 못해 소름이 돋았다.
아마 유재하 씨가 디저리두라는 악기를 알았으면 분명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명석의 예상대로 수철이 불어 대는 디저리두는 드럼도 베이스도 필요 없게 만들었다.
탄탄하게 아래 음역대를 형성하며 굵은 리듬을 만들어 냈다.
나머지 악기들은 그 위에서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됐다.
보컬도 뛰놀고 건반도 뛰놀면 됐다. 그만큼 음악과 악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음악을 듣는 김명석은 연신 눈을 반짝였다. 도입부의 16마디만 들려줬는데도 음악이 끝나고 박수를 쳤다.
“잘 들었어요. 디저리두는 신의 한 수네요. 탁월한 선택이에요.”
“감사합니다.”
“솔직히 유재하 씨 지난날에 디저리두를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소름 돋았어요.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더라고요. 영화 미션의 오보에처럼 노래와 궁합이 잘 맞을 게 뻔하니까요. 이제 눈앞에서 확인까지 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네요. 이거 미리 축하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김명석은 평소답지 않게 오버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작가는 시간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재촉했다. 다른 팀의 인터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빨리 진행해야겠어요.”
와이 트리오가 한 자리에 모여 앉고, 카메라가 자리를 잡자 작가가 준비해 온 질문지를 펼쳤다.
“와이 트리오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얘요.”
다혜와 은주가 동시에 손가락으로 수철을 가리켰다.
“트리오 구성이 특이한데,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얘요.”
다혜와 은주가 다시 한번 수철을 가리켰다.
작가가 피식 웃었다.
“세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은주 씨와 다혜 씨는 학교가 같으니까 알겠는데, 수철 씨는 학생이 아니라서 궁금하네요.”“네, 처음에 제가 먼저…….”
다혜가 어떻게 수철을 처음 만났는지 얘기를 시작하자 작가는 흥미로운지 도중도중 추임새를 넣으며 귀 기울여 들었다.
몇 번의 상투적인 질문이 더 이어지고 나서 개별 인터뷰가 시작됐다.
수철의 인터뷰는 김명석이 진행했다. 그게 그가 작가와 같이 온 이유였다.
VJ가 신호를 주자 김명석이 질문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뮤지션이 있어요?”
“많아요.”
“그중에 한 사람을 뽑으라면?”“마일즈 데이비스요.”“레전드죠, 마일즈 데이비스는 저도 존경합니다.”
“아, 네.”
“수철 씨가 생각하는 건반 연주자 다혜 씨의 매력은?”“음악에 대한 끈기요.”“보컬리스트 은주 씨의 매력은?”“다양한 음색이요.”
“에이, 재미없네.”
김명석이 느닷없이 도발을 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다 갑자기 질문지를 덮어 버렸다.
“……?”
수철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VJ도 김명석에게 카메라를 맞췄다.
“아, 미안해요. 질문지의 질문이 너무 재미없어서요. 작가들은 음악가보다 창의성이 떨어지나 봐요.”
씨익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내가 물어보는 게 낫겠어요.”
“네.”
김명석은 질문지를 덮고 자신이 궁금한 질문을 던지자 VJ도 씨익 웃으며 카메라 각도를 다시 잡았다.
“수철 씨 음악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됐으니까, 다른 질문을 할게요. 우리나라에서 노래 누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요?”
“네?”
김명석의 공격적인 질문에 수철이 살짝 당황했다. 카메라에 눈을 대고 있는 VJ의 눈썹도 꿈틀거렸다.
“말해 봐요. 괜찮으니까. 카메라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문제가 될 거 같으면 빼 버리면 되니까. 그렇죠?”
김명석이 카메라를 쳐다보자 VJ가 오케이 신호로 카메라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누구 한 명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네, 우리나라도 많고, 다른 나라에도 많고요.”“음, 그럼 수철 씨가 생각하는 노래 잘하는 가수의 기준이 뭐예요?”“얘기가 잘 들리는 사람이요.”
“얘기?”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는 사람이요.”“아, 맞아요! 그건 정말 중요하죠. 요즘 그렇지 못한 가수가 많아서 좀 안타깝지만 무엇보다 가수의 생명력은 가사 전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네.”
수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노래의 힘을 믿는 가수요.”
“……노래의 힘?”
“네.”
“노래의 힘이라……. 그걸 어떻게 알까요?”“눈빛이 달라요. 자신의 소리를 믿고 메시지를 전달하죠. 그래서 자신의 노래처럼 세상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보컬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말만 들어도 흥분되네요.”
김명석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런 가수의 모습을 상상했다.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런 가수 만나서 곡 한번 써 보는 게 소원이에요.”
“네…….”
“그래서 한국에 그런 가수가 누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요.”“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래요.”“그럼, 나한테만 살짝.”
김명석이 몸을 기울여 귀를 내밀었다. 수철은 빙그레 웃고는 대답을 해 줬다.
수철이 소곤대자 김명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VJ는 수철의 입 모양을 보고 두 명은 알아들었다.
조수미, 나윤선이었다.
수철의 답을 들은 김명석은 환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내밀어 수철과 마주쳤다.
* * *
“고마워. 차 실장. 내가 한턱 쏠게.”“나중에 우리 애들 기사나 잘 써 줘요. 그리고 그거 대외비니까 안 퍼지게 조심하세요.”“내가 편집장인데 당연히 조심하지. 고마워!”
‘쿨뮤직’ 편집장은 기획사 핫라인을 통해 본선 2차 진출자의 명단을 손에 넣었다.
“음…….”
그는 명단을 확인하더니, 안경을 벗어서 책상 위에 놓고 잠시 사무실 안을 서성였다.
전화를 집어 들었다.
―‘내가 슈퍼스타다!’ 제작팀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긴 쿨뮤직입니다. 오디션 참가자 관련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쿨뮤직? 오디션 참가자 관련?
―무슨 일인데 그러시나요?
전화를 받은 작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편집장이 연출 책임자를 찾자, 고 피디를 불렀다.
“고 피디님. 전화 한번 받아 보세요.”
“누군데요?”
“모르겠어요. 잡지사 같아요.”
고 피디는 작가가 내민 전화기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쿨뮤직 편집장입니다. 거기 오디션 참가자 중에 용수철이라고 있죠? 팀 이름이 와이 트리오일 거예요.
순간, 고 피디의 미간이 좁혀졌다.
“여기에 용수철 씨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시죠?”―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이래서,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미안합니다.
“음.”
고 피디는 대꾸하지 않았다. 심각하게 얼굴이 굳었다.
편집장도 말을 멈췄다. 잠시 머뭇거리다 전화를 건 본론을 꺼냈다.
―용수철 씨에 관한 귀중한 영상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영상이요?”
―네.
“어떤 영상인데요?”
―그건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음…….”
고 피디는 수화기를 들고 잠시 망설였다. 엉뚱한 수작에 말려드는 거 아닌지 우려했다.
“그럼, 저희가 어디서 촬영하는지도 알겠네요?”―네.
“여기 1층 커피숍으로 오셔서 전화 주세요.”―거긴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다른 곳에서 뵀으면 합니다.
“그럼 근처로 와서 장소를 잡고, 문자를 주세요. 제 번호는 010…….”
* * *
“아니, 보안 유지를 어떻게 했기에 잡지사 편집장까지 진출자 명단을 알아!”
성난 장 피디의 목소리가 콘트롤 룸을 울렸다.
고 피디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괜히 움찔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진짜 기획사고 누구고 다 안 봐주고, 우리도 제대로 가는 수가 있어! 빡빡하게 가면 절반은 떨어져 나갈 텐데 그때 가서 징징대면 무슨 소용이 있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정말 짜증 나는구먼.”“기획사가 아니라, 참가자들 아닐까요? 휴대전화 사용을 허락했으니까요.”“게네들은 각서까지 다 썼잖아! 참가자들은 아닐 거야, 단단히 교육을 받았으니까. 괜한 실수로 탈락은 물론이고 손해배상까지 해야 한다는 말에 애들 다 쫄았잖아!”“그럼 역시 기획사겠군요.”“그럴 거야. 이번 기회에 기획사들 다시 한번 입단속 시켜. 참가자들도 한 번 더 주지시키고. 안 될 거 같으면 전화 다시 압수해 버려!”
“네.”
장 피디는 다시 의자에 앉아 무릎을 꼬았다.
“그런데 그 편집장이 뭐라고 그랬다고?”“용수철에 관한 영상을 갖고 있답니다. 그것도 3개씩이나요.”“3개? 어떤 영상인데?”“만나서 보여 주겠다고 하는데, 깜짝 놀랄 거라고 합니다. 천재를 증명할 자료랍니다.”
“천재?”
“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근처에 와서 연락 주기로 했습니다.”“일단 한번 만나 봐. 요구 사항이 뭔지 물어보고 나한테 바로 전화해.”
“네.”
* * *
고 피디가 연락을 받고 나간 지 30분쯤 지났을까, 장 피디의 전화가 울렸다.
“영상 확인했어?”
―네.
“어때?”
―아주 쓸 만합니다.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 정도야?”
―네.
“요구 사항은?”
―현금 500에, 전면 광고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