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41화 (41/239)

#41화. 변심

“그 정도 가치는 넘는다는 얘기지?”―네, 아깝지 않습니다.

“오케이! 나중에 문제 생기지 않게 각서 한 장 받고, 돈은 계좌로 바로 송금해 준다고 해.”―네, 알겠습니다.

* * *

얼마 후, 고 피디가 씩씩한 모습으로 컨트롤 룸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각서 받았어?”

“네.”

“돈 보내 주고, 적당한 명목 하나 붙여서 비용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일단 영상부터 틀어 보자.”

고 피디는 받아온 시디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에 수철이 낙원상가에서 피아노 치는 모습이 떴다.

“뒷모습이네? 용수철 맞나?”“네, 자세히 보시면 맞습니다.”“음…… 맞는 거 같네. 그런데 지금보다 더 어리네?”

영상이 계속될수록 장 피디는 점점 말이 줄어들고 감탄만 내뱉었다. 눈빛이 점점 초롱초롱해졌다.

학교 영상은 숨죽이며 지켜봤고, 축제 영상에서는 묘한 미소만 띠었다. 생각이 많아 보였다.

“이 녀석, 이 정도였어? 이건 슈퍼스타가 아니라 슈퍼맨이네, 음악 슈퍼맨.”“네, 정말 놀랍습니다.”“아직 본 사람 없지?”

“네.”

“좋았어! 이건 여러모로 쓸데가 많겠어. 잘 보관해 놨다가 방송 나가면 막내 작가 시켜서 시청자 이름으로 게시판에 올리라고 해. 그러고 나서 친척들 아이디로 댓글 달라고 해서 게시판 떠들썩하게 만들고. 그다음에 우리가 몇 개 컷을 편집해서 노출시키면 되겠네.”

“알겠습니다.”

장 피디는 다시 한번 영상 속 수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놈, 정말 볼수록 대단한 놈이긴 한데…… 잘못하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겠어.”

“양날의 검이요?”

“그렇잖아, 승부가 박진감 넘쳐야 하는데 얘가 다 독식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재능으로 뽑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얘가 당연히 1등이잖아. 얘를 누가 이겨?”

장 피디가 생각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1등 빼고 2, 3위 싸움에 포커스를 맞출 수는 없잖아.”“그럼 영상을 올리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요?”“우리가 안 올린다고 영상이 안 퍼질 거 같아? 이런 건 언젠가는 알려지게 돼 있어. 어차피 그럴 거라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유리하게 써먹어야지.”

“아, 그렇겠군요.”

“일단 용수철이 혼자 나온 게 아니고 팀이 있으니까, 거기서 허점을 찾아봐야지. 탑 10까지만 가고, 탑 3에선 빠져 주는 게 그림이 가장 좋긴 한데…….”“만약에 탑 3까지 가게 되면요?”“그때는 어쩔 수 없지. 시청자 판단에 맡겨야지.”“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음악 감독님 지금 어딨어?”“밖에 무대에서 음향팀과 얘기 중이십니다.”“얘기 끝나면 여기로 좀 오시라고 해.”

“네.”

* * *

“무슨 일이야?”

음악 감독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 형. 바쁜데 자꾸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해요. 좀 보여 줄 게 있어서요.”

장 피디는 음악 감독에게 고 피디가 가져온 영상을 보여 줬다.

음악 감독의 입이 벌어졌다.

“진짜 천재였네? 어떻게 이런 애가 여길 왔지? 클래식으로 안 가고?”“그러게 말이에요.”

다음 영상을 보고 나서는 더 입이 벌어졌다.

“끝났네, 끝났어.”

“감이 오죠?”

“감이 아니라 이건 누가 봐도 게임 끝이네, 결선 올라가면 얘가 다 씹어 먹겠어. 너희가 말하는 슈퍼스타가 바로 나다! 미션 클리어!”

음악 감독은 팔을 움직여 심판의 동작을 흉내 냈다.

“그래서 말인데 형, 어떻게 비책이 없을까요?”

“무슨 비책?”

“얘한테 뭐 허점 같은 게 좀 있어야 하는데, 얘 혼자 다 해 버리면 프로그램 깨지잖아요.”“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가 아니라, 나 이제는 좀 걱정돼요.”

수철의 등장에 신나서 춤을 추던 장 피디가 이제 수철을 두려워하고 있다.

“막말로 얘 혼자 음악 독식 다 해 버리고, 뭐라 하는 심사 위원들을 다 압살해 버리고, 내가 바로 니네들이 말하는 음악 슈퍼스타다! 어쩔래? 이런 그림 나오면 어떡해요? 미리 대비해야죠.”“편집하면 되잖아.”

“뒷감당은 누가 책임지고요? 그리고 내가 까이잖아요.”“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허점을 찾아 달라?”“네, 형이 좀 도와줘요. 내가 누구한테 부탁하겠어요. 적당한 탈락 사유를 미리 하나 만들어 놔야죠. 나중을 대비해서요.”“음…… 지금은 어렵고, 3차 때 상황을 봐야지. 얘네들은 분명 자작곡을 할 테니까 거기서 방법을 찾아볼게.”

“네, 부탁해요.”

“심사 위원들은 어떡할 거야?”“그건 제가 알아서 입을 맞출게요. 형은 그럴듯한 허점만 좀 찾아 주세요. 그러면 작가들이 크게 부각할게요.”“알았어. 진행되는 거 보면서 생각해 볼게.”

“고마워요. 형.”

“그리고 만약에 정말 프로그램에 위협이 된다면, 그것도 생각해 놔야 할 거야.”

“어떤 거요?”

“좀 비겁하긴 하지만 다 써먹는 거 있잖아.”“아, 인성 건드리는 거요?”

“그래.”

지난 몇 번의 오디션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악마의 편집을 사용해 인성을 건드렸다가 들킨 사례도 있었고, 누군가 게시판에 과거 인성 문제를 들춰내 탑 3에 오른 참가자를 하차시킨 예도 있었다. 나중에 가짜 뉴스로 밝혀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형, 내가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그 정도 인간은 아니에요. 회사의 기대도 크고, 무엇보다 스카우트까지 받아서 왔는데, 그런 짓 하다 들키면 나중에 갈 데가 없어요. 형도 잘 알잖아요.”“그래, 나도 권하진 않아. 참고만 하라는 거지.”“알았어요. 만약에 어쩔 수 없이 탑 3까지 간다면 그때는 박빙 구도로 만들어서 정면 돌파해야죠. 그 정도 편집은 시청자도 넘어갈 테니까요.”“그렇게 하면 가장 좋은 거지. 암튼, 네가 말한 뜻 잘 알았으니까, 고민해 볼게.”

“고마워요, 형.”

장 피디는 어제 수철이 레게를 하면서 도발한 후, 수철을 보는 시선이 180도 달라졌다. 나이도 어리고 해서 적당히 키워 주며 컨트롤할 생각이었는데, 어제 돌발 발언과 오늘 천재 영상을 보는 순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앞으로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언제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디션에서 탄생한 스타는 평생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달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이 스타가 돼도 방송사와 척을 질 일은 없다. 자신을 키워 준 방송사를 외면해서 좋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디션 스타의 이미지를 활용해 브랜드 마케팅을 한다.

하지만 수철은 다르다. 조력자가 될 싹이 안 보인다. 어제 무대에서 내뱉은 말도 괜한 말이 아니다. 스타에도 관심이 없고, 기획사로 갈 스타일도 아니다. 잘못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잘못했다간 죽 쒀서 개 줄 수도 있어.’

그럼 이쯤에서 결정해야 한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노선을 정해야 한다.

끝까지 밀고 갈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탈락자로 만들 것인가.

“음.”

어떻게든 수철을 끌어 올려서 멋있는 그림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장 피디가 이제 수철을 끌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다.

* * *

다음 날, 아침부터 리조트는 시끄러웠다. 어제 늦은 시각까지 연습했는데도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발성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아. 에, 에, 에. 오, 오, 오.”

참가자들이 묵고 있는 리조트는 방을 연습실처럼 사용해도 무리가 없었다.

제작진과 협의도 한 상태였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자유롭게 연습했다.

독특하게 발성 연습을 하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맨발에, 카펫 복도에 누워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창가에 서서 귀를 막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뽑아내고 있었다.

목적은 단 하나, 오늘 벌어질 2차 본선을 통과하는 것이다.

VJ들은 이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쓸 만한 그림이 많아서 VJ들의 입가엔 미소가 보였다.

반면 트레이너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빡빡한 일정 탓에 담당한 참가자들의 트레이닝을 충분히 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윤진주는 아침부터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메인 작가에게 볼멘소리로 불만을 털어놨다.

“언니, 저 이러다 진짜 욕먹겠어요.”“왜? 뭐가 잘 안 돼?”“아니, 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요. 어디서 이상한 알앤비 발성을 배워 와서 모든 노래를 다 그렇게 불러요. 소리가 붕붕 날아다니는데, 잡아 보려고 해도 잡히지가 않아요.”

윤진주는 흥분해서 말했다. 그런데 메인 작가는 시큰둥한 얼굴이다.

“그런 애들 많잖아? 새삼스럽게.”“아니에요, 얘는 정말 심해요. 완전히 습관으로 굳어진 거 같아요. 이거 고치려면 몇 달은 잡아야 할 거 같은데. 나 이러다 여기저기서 욕먹고 일도 끊기겠어요. 악플 달릴 거 생각하면 진짜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어요.”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요.”

윤진주가 눈에 힘을 주고 작가를 쳐다봤다. 자신의 심정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음, 그러면 안 되지.”

메인 작가는 잠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고민해 봤자 방법은 없다. 고민하는 척만 하는 것이다. 윤진주가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너랑 비슷한 불만이 많아.”

그 말에 윤진주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메인 작가가 물었다.

“너희는 무슨 노래 하는데?”“이소라의 ‘제발’이요.”“헐, 그 노래는 가사가 선명해야 하잖아.”“그래서 더 문제라는 거예요. 나는 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음을 다 꼬아 버리니 정말 미치겠어요.”

“머리 아프겠네.”

“네, 진짜 얘는 노답이에요, 노답.”“그래도 트레이너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윤진주가 자신이 맡은 참가자를 깎아내리자, 메인 작가가 살짝 목소리에 힘을 줬다.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너보다 더한 경우도 있어. 그러니까 힘내서 잘 마무리 지어 봐.”

“어떤 경우요?”

“그건 말하기 좀 그래, 그냥 욕설이 오갔다는 정도만 알아.”“헐…… 언니도 머리 많이 아프시겠어요.”“봐 봐. 나 머리카락 많이 빠진 거 같지 않아?”

메인 작가는 너스레를 떨며 머리를 내밀었다. 윤진주는 자신의 불만은 잊고 오히려 작가를 위로했다.

“언니, 힘내세요.”

“그래, 너도 힘내서 최대한 잡아 봐. 누구처럼 선창해서 그대로 따라 하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잖아.”“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요.”“다들 그게 가장 큰 불만이야.”

메인 작가는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진주는 슬쩍 눈치를 보며 남은 불만을 다 꺼내 놨다.

“진행을 왜 이렇게 급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참가자들 인터뷰도 따고, 에피소드도 만들어야 하잖아요? 음원 녹음도 해야 하고요.”“이번엔 처음부터 이렇게 기획을 했어. 최종 10위까지는 빠르게 진행하고, 그다음부터는 10명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최대한 뽑으려고. 마지막엔 음악 축제처럼 분위기 조성하고, 아쉬움을 만드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이잖아. 그래서 초반 스피드를 빠르게 잡은 거야.”“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빠르잖아요. 그런다고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쩝. 나도 막상 진행해 보니 불만이 많아. 그래도 어떡해? 결정했으면 밀어붙일 수밖에.”

작가는 트레이너들의 불만을 공감하지만, 자신의 위치도 이해해 달라는 뜻으로 말했다.

“10명은 윤곽이 나왔겠네요?”

“뭐, 대충은.”

“우리 애는 당연히 없죠?”“뭐, 암튼. 마무리 좀 잘해 봐. 문제 생길 거 같으면 내가 편집 부탁할 테니까, 밥줄 끊길 걱정은 하지 말고.”“고마워요, 언니. 신경 좀 써 주세요.”

“그래.”

트레이너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각자 맡은 참가자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노래는 첫 박이 가장 중요해요. 정확한 박에 맞춰 들어와야 듣는 사람이 시원한 느낌이 들어요.”“음악을 끊지 말고 쭉 연결하면 안 되나요? 자꾸 박자를 놓치게 돼요.”“편곡은 문제가 없어요. 음악을 이렇게 만들어야 멋있게 들리고, 시청자도 좋아해요.”

“……네.”

“자, 다시 한번 가 볼게요. 첫 박에 신경 쓰고, 드럼이 멈추면 바로 들어와요.”

“네.”

“원, 투, 쓰리. 고!”

트레이너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열성을 보였다. 참가자들의 퍼포먼스와 자신들의 능력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 * *

와이 트리오는 일찌감치 편곡과 노래연습을 마무리 지었다. 편곡은 어제 김명석이 들었던 것에서 더 변화를 줬다. 첫 8마디는 노래와 같이 시작하지 않고, 수철이 혼자서 디저리두를 불며 초반 분위기를 잡았다. 그 결과 더 입체감이 생겼다.

“내 느낌이 어떤지 알아?”

“어떤데?”

“코끼리가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노을 위를 걸어가는 것 같아.”“와, 표현 예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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