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보안관을 쐈어요(1)
‘스윗키드’는 규모가 작은 기획사의 실장이 직접 기획한 아이돌 락 밴드다. 보이 그룹을 만들려다가 회사의 자본력이 달리니까 락 밴드로 급전환했다. 비주얼로 밴드의 틈새시장을 공략할 작정이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이 춤 연습을 할 때 ‘스윗키드’는 악기를 연습했다. 음악 선생들이 달라붙어 일 년 넘게 개인 연습을 시켰다. 하지만 음악적인 능력은 다른 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들은 음악이 아니라 비주얼과 끼로 승부를 보는 팀이다.
회사도 이들을 데뷔시키는 게 목적이지, 뮤지션으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건 스윗키드 멤버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비주얼에 잔뜩 힘을 준 채 로큰롤을 했다.
이런 ‘스윗키드’가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있었다.
“쟤네 고정 팬들이 많다며?”“행사를 많이 다녀서 몰고 다니는 누나 팬들이 꽤 많아요.”“회사가 돈이 없으니까 데뷔도 안 시키고 행사부터 돌리나 보네? 암튼 쟤네들 올리면 도움이 되겠어.”
‘스윗키드’는 줄곧 탈락 1순위였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의 팀 이름처럼 귀여운 비주얼을 좋아하는 누나 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걸 고려한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는 올라갈 수가 없다. 시청률을 고려한다 해도 너무 음악이 안 된다. 안 돼도 너무 안 된다. 그게 모두의 평가였다.
그런 밴드를 ‘와이 트리오’와 묶어서 팀 미션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메인 작가가 다시 물었다.
“추첨도 안 하고 그냥 통보하시겠다고요?”“그래, 적당한 이유 하나 붙여서 알려 줘. 불만 생기지 않게.’“두 팀 실력 차가 너무 나잖아요. 1등과 꼴찐데.”“그러니까 더 재밌지. 대단한 그림이 나올 거 같지 않아?”
메인 작가의 우려와 달리 장 피디는 흥미롭다는 얼굴이다.
“선생과 제자 그림인데요?”“그런 그림도 괜찮지.”“스윗키드 팬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요.”“그건 찍어 보고 생각하자. 편집만 잘하면 내 생각엔 기막힌 드라마가 한 편 나올 수도 있어. 그리고 밴드의 실력이 들쑥날쑥하니까, 가장 잘하는 팀과 못하는 팀을 묶어야 어느 정도 평준화가 되지.”
“평준화요?”
메인 작가는 장 피디의 말이 이해 안 됐다. 음악은 그렇게 평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장 피디가 더 잘 알 텐데 말이다.
“실력이 비슷한 팀끼리 모아 놓으면 흥미가 떨어지잖아. 실력 차가 큰 팀이 만나야 시청자들도 재미를 느끼지.”“아무리 그래도 와이 트리오와 아이돌 락 밴드는 좀 그렇지 않아요? 얘네들은 너무 음악이 안 되잖아요.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의심의 눈초리가 많고, 프로그램 질 떨어트린다는 얘기까지 있는데요.”“뭔 상관이야? 얘네들 지난 영상 봐 봐. 누나들 환장하잖아. 시청률 팍팍 올려 줄 거 같지 않아?”“그래도 얘네는 정말……. 사람들 불만이 심할 텐데요.”“불만 담을 쓰레기통도 하나는 있어야지.”
“…….”
메인 작가는 장 피디의 강한 주장에 말을 멈췄다. 어차피 떨어질 꼴찌 팀을 1위 팀과 포커스를 잡으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쓸데없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작가의 우려와 상관없이 장 피디는 계속 주장을 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만 가고 끝이야. 얘네들은 시청률만 올리고 빠지면 돼. 그리고 편하잖아? 이런 애들은 떨어져도 불만이 없을 테고. 바로 자르더라도 문제 될 게 없잖아. 그러니까 일단은 끌고 가는 거지.”
최종결선까지 갈 것이 유력한 팀과 탈락 1순위가 확실한 팀을 붙이면 얼핏 보기에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꼴찌 팀의 성장 같은 것을 기대하지만, 그런 그림보다는 갈등적인 요소가 더 많다.
꼴찌는 1위 팀에게 끌려다닐 뿐이다. 1위가 주연이고, 꼴찌는 조연도 아닌 지나가는 사람이 된다. 게다가 시청자들의 불만도 생기기 십상이다.
1위 팀에겐 ‘네가 그렇게 음악을 잘해?’ 하는 질투와 밉상 이미지가 생길 수 있고, 꼴찌 팀은 ‘어떻게 쟤네들이 음악 한다고 돌아다니지?’ 하는 반감을 만들 수 있다.
두 팀 팬들 간의 갈등도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굳이 왜?’
메인 작가는 장 피디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 * *
“두 배가 뭐야? 기왕이면 세 배는 줘야지.”“하. 욕심도 많네.”
“욕심이 아니지. 한 번 더 찍으면 음원 수익만 얼만데? 이번 미션 곡 중에 한두 개만 떠도 얼마겠어? 두 배 주고도 한참 남지.”“그것까지 우리가 알 필요 없잖아. 우린 돈만 더 받으면 되지. 뭔 상관이야?”
트레이너들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지난 미션보다 하루가 더 늘어난 것도 있지만 둘이서 한 팀만 맡으면 되니까, 여유로웠다. 출연료 얘기하며 잡담을 떨 시간까지 생겼다.
심사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심사는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좀 더 편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제작진의 무리한 진행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발뺌을 할 기회를 손에 쥐고 있었다.
* * *
와이 트리오 멤버들은 작가가 보여 주는 ‘스윗키드’의 지난 영상을 봤다.
“음…….”
영상이 끝났지만 멤버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얼마 후, 수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선 때는 무슨 노래 했어요?”“신해철 선배님의 민물장어의 꿈이요.”
“그렇군요.”
수철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보컬 분은 어떤 노래 잘하세요?”“오아시스 노래 좋아해요.”“좋아하는 노래 말고, 잘 부를 수 있는 노래요.”“……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의 I Shot The Sheriff요.”“그 음악은 보컬 곡이 아니잖아요.”“그렇긴 한데, 사람들이 그 노래가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수철은 말을 멈추고 머릿속으로 ‘스윗키드’와 I Shot The Sheriff를 매칭시켜 봤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멤버들 모두 이 곡을 연주할 줄 아나요?”
“네.”
“한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이요?”
“네.”
‘스윗키드’ 멤버들은 잠시 뜸을 들이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각자의 위치로 옮겨갔다.
“원, 투, 쓰리, 포!”
드럼의 신호에 맞춰 음악이 시작됐다.
빰! 빠바밤― 빠바바. 빰! 바밤―
“I Shot The Sheriff~!”
‘스윗키드’는 마치 오디션을 보듯, 긴장한 얼굴로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했다.
“음…….”
음악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짝짝짝짝!
잠시 후, 수철이 박수를 치자 멤버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잘 들었어요.”
수철이 인사를 하고 은주와 다혜를 봤다.
“너희는 이 곡 알지?”“응, 우린 앙상블 시간에 해 봐서 알아.”“잘됐다. 그럼 같이 만들면 되겠다.”
수철이 이번엔 작가를 쳐다봤다.
“어디까지 관여해야 해요?”“그건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너희는 트레이너 없이 하기로 했으니까 너희끼리 상의하면서 해야지.”
작가는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수철은 같은 질문을 ‘스윗키드’에게 다시 던졌다.
“우리가 어디까지 관여해야 해요?”
수철의 물음에 보컬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냥 막 얘기하셔도 돼요. 우린 믿고 따를 준비가 됐어요.”
“네?”
수철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보컬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많이 관여할수록 저희는 좋아요.”
보컬이 돌아보자, 나머지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밴드의 낯선 모습에 다혜와 은주가 서로를 쳐다봤다.
수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죠.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팀만의 색깔이 있고, 음악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있는데 지나친 간섭은 오버예요.”“저희는 진짜 괜찮아요, 편하게 해도 돼요.”
보컬의 작심 발언에 수철은 스윗키드 멤버들을 바라봤다.
“그럼 이렇게 하죠, 박자와 무대 그림만 좀 참견할게요.”“아니에요. 팍팍 참견해 주세요. 이번 기회에 저희도 많이 좀 배우게요.”
“네?”
스윗키드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실장한테서 미리 얘기를 들은 상황이었다.
“너흰 무조건 바짝 엎드려서 따라가. 그게 우리가 살길이야.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도 나 진짜 발바닥에 땀 났다.”“고생 많았어요, 실장님. 우리가 꼭 성공해서 보답할게요.”“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 우선은 이번에 잘해 봐. 의외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
“어떻게요?”
“우린 여기까지라고 알고 있었잖아? 인정하기 싫지만 탈락 1순위라는 말도 돌았고.”
“심하네요.”
“원래 이 바닥이 그래, 그런데 너희가 이번에 와이 트리오랑 한 팀이 될 거 같아.”
“진짜요?”
“그래, 제작진은 너희가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거 같은데, 어쨌든 우리는 상관없어. 와이 트리오랑 같이하면 그만큼 노출도 많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럼 우린 이번 오디션에서 얻을 건 다 얻는 거야. 혹시 알아? 탑 10에 올라갈지.”
“네?”
“놀라긴, 안 될 거 없잖아? 너희가 입이 없어서 노래를 못 해, 아니면 손이 없어서 기타를 못 쳐? 아니잖아. 그냥 음악성만 조금 차이 나는 건데, 그건 너희 비주얼로 다 커버가 되잖아. 그러니까 바짝 엎드려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라가.”
“네, 알겠습니다.”
“혹시 알아? 방송 나가고 누나들이 밀면 이변이 생길지.”
밴드의 목표는 명확했다. 최대한 방송 노출을 많이 해서 행사 몸값을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앨범도 내고, 데뷔해서 말빨을 인정받아 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서거나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의 계획에 음악은 없다. 음악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자신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잃을 것도 없다.
“자, 화이팅!”
“화이팅!”
이들은 최대한 이슈 거리를 만들어서 카메라에 노출을 많이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늘 연습실에도 옷을 맞춰 입고 나와서 VJ 앞에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VJ의 관심은 이들이 아니라 와이 트리오다.
스윗키드의 보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자존심 같은 거 오디션 끝날 때까지 내려놓기로 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와이 트리오는 음악의 신이잖아요.”
“신이요?”
“우리끼리는 그렇게 불러요. 음악의 신. 지난번 ‘No Woman No Cry’도 죽여줬고, 특히 ‘Stairway To Heaven’은 우리 완전 거품 물었어요.”
“맞아. 맞아.”
보컬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수군대며 동의했다.
“음…….”
다혜와 은주는 처음보다 표정이 밝아졌다. ‘스윗키드’가 적극적이어서 불필요한 충돌은 피할 것 같았다.
그건 수철도 마찬가지였다. 수철은 한 술 더 떠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해 보죠. 대신 음악의 신 같은 말은 하지 마세요.”
“네.”
보컬도 웃으며 수철과 손을 맞잡았다.
“제 생각엔 스윗키드 분들이 적극적이어서 음악은 금방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네, 맞습니다. 저희가 마인드는 좋죠. 그러니까 걱정 말고 냉혹한 평가를 해 주세요.”“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수철은 잠시 망설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편하게 제 생각을 말해 볼게요. 우선 보컬 분부터요.”
“네.”
“보컬 분은 노래에 기교가 너무 심해요.”“네, 제가 좀 그렇죠. 처음부터 잘못 배워서 그래요.”
진짜 자존심을 버렸는지 인정이 빨랐다. 수철은 잠시 빙그레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기교가 많으면 청각보단 시각만 자극하게 되죠. 노래에 집중이 안 되니까, 결국 듣는 사람은 불편해지거든요.”
“아…….”
“다른 사람도 저랑 생각이 비슷할 것 같은데요.”
수철이 다혜와 은주를 쳐다보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법을 알려 주면 고쳐 볼게요. 제가 적응 능력 하나는 빠르거든요.”
수철은 적응 능력이 빠르다는 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긍정적인 건지 연예인의 끼가 많은 건지, 생각보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음악은 어설퍼도 끼가 많으니까 잘 조율하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르신 노래의 키를 자신의 키보다 높게 잡았던데, 왜 그렇게 잡았어요?”“낮게 부르면 맛이 안 나서요.”“높게 부르면 맛이 나나요?”“그래도 락 느낌이 나잖아요.”
그 말에 수철이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보컬 혼자 자뻑이라는 뜻이다.
수철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컬 분은 자신의 장점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네? 저한테 어떤 장점이…….”
장점이라는 말에 보컬은 놀라며 말끝을 흐렸고, 다른 멤버들은 수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귀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