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44화 (44/239)

#44화. 보안관을 쐈어요(2)

“음역대는 좁지만 소리가 두꺼워요.”“소리가 두꺼워요? 제가 그런가요? 그런데 그게 장점인가요?”

보컬은 자신의 소리가 두껍다는 말에 갸웃하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큰 장점이죠. 듣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니까요. 게다가 흉성에서 나는 쇳소리가 없으니까 더 매력적으로 들려요.”

수철의 입에서 매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보컬은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나머지 멤버들은 어색한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게다가 중음역대가 좋게 들리니까, 두 키만 낮추면 듣는 사람이 좋아할 거예요. 두꺼운 소리가 주는 장점을 잘 살려서요. 어때요, 그렇게 해 볼 생각이 있나요?”“네, 해 볼게요.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못 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요…….”

“……?”

보컬은 수철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눈치였다.

“저는 두꺼운 소리보다 고음을 잘 지르고 싶은데, 방법이 없나요?”“우리 몸도 악기랑 똑같은데, 올린다고 얼마나 올라갈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음역에서 더 멋있는 소리를 내면 되죠. 두꺼운 소리는 분명 좋은 장점이에요.”“감사해요, 그런데 뭐 하나 더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고음에서 자꾸 소리가 갈라지는데, 연습해도 잘 고쳐지지가 않아요. 방법이 있을까요?”

고음에 대한 미련이 남는지 수철에게 계속 고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건 누워서 연습하면 도움이 될 거예요. 의식적으로 음을 자꾸 올리려고 해서 소리가 갈라지는 건데, 누워서 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거든요. 한번 해 보세요. 분명 좋아질 거예요.”“오! 그런 비법이 있었군요?”“비법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음역대도 확실해지고 소리도 더 탄탄해질 거예요.”“네, 고마워요. 바로 해 봐야겠어요.”“나중에 해 보세요. 우선 팀 연습 먼저 하고요.”

“그래야죠.”

수철은 보컬과의 대화를 마치고 이번엔 스윗키드의 연주자들을 봤다.

“연주자분들께도 솔직한 평을 말해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세 분 다 동작이 너무 과한 거 같아요.”

“…….”

수철의 말처럼 세 명의 연주자는 연주할 때 쓸데없이 동작이 컸다. 그 이유는 회사에서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동작을 최대한 크게 해야 사람들의 눈에 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수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채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완전히 교정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번 미션만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자신들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동작은 크고 화려한데, 연주는 정확하지 않으니까 가볍게 보여요. 그리고 보컬이 노래하기 편하게 연주가 받쳐 줘야 하는데, 연주가 흔들리니까 노래도 흔들리는 것 같아요.”

“네, 고쳐야죠.”

연주자들도 수철의 의견에 수긍했다. 수철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엔 우리가 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음악도 좋은 음악이고, 밴드에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서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아요.”

“다행입니다.”

수철의 말에 스윗키드 멤버들의 어두웠던 표정이 밝아졌다.

보컬이 물었다.

“그런데 이틀 만에 가능할까요?”“충분해요.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요?”

“바로요?”

“왜, 싫어요?”

“아뇨. 싫은 게 아니라, 준비를 좀 하고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무슨 준비요?”

“목도 좀 풀고, 악기랑 손도 좀 풀고…….”

보컬은 말끝을 흐리며 멤버들을 돌아봤다. 자신의 말에 동조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철은 바로 밀어붙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하면 돼요. 다혜야, 메트로놈 좀 꺼내 줘.”

보컬이 대꾸할 틈도 없이 수철은 다혜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철의 스타일을 잘 아는 다혜는 웃으며 가방에서 전자 메트로놈을 꺼내서 건넸다.

스윗키드 멤버들은 뻘쭘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네.”

“의자 끌고 와서 둥그렇게 같이 모여 앉아 보죠.”

수철의 말에 스윗키드 멤버들은 흩어져 있던 의자들을 주섬주섬 끌고 와서 모여 앉았다.

VJ는 카메라 각도를 맞추며 흥미로운 미소를 보였다.

“I Shot The Sheriff. 이 곡은 이거 하나만 잡고 가면 돼요. ‘빰! 빠바밤― 빠바바. 빰! 바밤―’ 반복되는 리듬, 이것만 잘 맞추면 절반은 끝나요.”

대꾸는 없었지만 모두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시겠지만 이 음악은 핵심 박자가 조여지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도 꽝이에요. 음악이 엉성하게 들리거든요. 아까 연주하실 때도 박이 틀린 건 아닌데, 너무 늘어져 있더라고요.”

스윗 키트 멤버들은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컬이 나서서 물었다.

“그럼, 어떻게 연습해야 할까요?”“메트로놈 켜 놓고 잡아야죠. 이건 금방 잡을 수 있어요. 우선 10분 정도 같이 박수를 쳐 보죠.”

“박수요?”

“네, 핵심 박자를 머리에 박아 버려야죠.”

“헐.”

“표현이 좀 과격한가요? 그런데 이건 그렇게 하는 게 좋아요. 우리 일곱 명이 똑같이 머릿속에 박자를 새겨 넣어야 음악이 살아서 꿈틀대니까요. 아니면 이 음악은 정말 재미없어져요.”

수철의 말에 다혜와 은주는 빙그레 웃었다. 음악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핵심 리듬이 자꾸 틀리는 이유는 중간 박자에 트리플(triple)이 껴서 그래요. 그러니까 5분간 트리플만 먼저 손뼉으로 쳐 볼게요.”

수철은 메트로놈을 켜고, 빠르기를 90에 맞춘 다음, 트리플 노트를 눌렀다. 그러자 메트로놈이 불빛을 반짝이며 트리플 노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수철이 메트로놈을 중간에 놓고 계속 말했다.

“트리플 완전 정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쉬워요. 먼저 첫 박에 악센트를 줘서 한번 쭉 돌고, 그다음에 중간 박에 악센트, 그다음에 마지막 박에 악센트. 이렇게 5분만 하면 금세 익혀요.”

“헐.”

스윗키드 보컬의 눈이 동그래졌다.

5분 만에 트리플 박자 완전 정복이라니, 선생들과 연습할 때도 들어 보지 못한 얘기였다. 이때 기타가 물었다.

“메트로놈 템포가 원곡보다 느리지 않나요?”“네, 느리죠. 그런데 박자는 느린 박자로 해서 잡아야 탄탄해지잖아요.”

“아, 그렇죠.”

원래 알고 있었는데 잠시 까먹었다는 표정이다.

“그럼, 제가 먼저 해 볼게요.”

수철은 메트로놈에 맞춰 악센트를 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박. 타! 타타. 타! 타타. 타! 타타. 타! 타타.”“그리고 중간 악센트. 타타! 타. 타타! 타. 타타! 타. 타타! 타.”“그리고 마지막 악센트.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타타타!”

수철이 시범을 보이자, 스윗키드 멤버들은 빙그레 웃었다. 쉬워 보였다.

“이번에는 같이해 볼까요?”

“네.”

다 같이 메트로놈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다혜와 은주는 같이 연습해 봐서 이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같이 손뼉을 쳤다. 스윗키드의 드러머도 쉽게 따라 했다.

그렇게 5분간 트리플 노트를 익히고, 수철이 다시 8bit로 메트로놈의 박자를 바꾸고 원곡의 빠르기에 맞췄다.

“자, 이제 핵심 리듬에 맞춰서 연습해 보죠.”

수철이 먼저 메트로놈에 맞춰 다시 손뼉을 쳤다.

“빰! 빠바밤― 빠바바. 빰! 바밤…….”

그러자 모두 따라서 했다.

“빰! 빠바밤― 빠바바. 빰! 바밤…….”

그렇게 쉬지 않고 5분을 계속 ‘I Shot The Sheriff’의 핵심 리듬에 맞춰 손뼉을 쳤다.

“여기까지 할게요.”

수철이 메트로놈을 껐다.

“이제 메트로놈 없이 해 보죠.”

수철이 입으로 박자를 넣기 시작했다.

“원, 투, 원 투 쓰리 포!”“빰! 빠바밤― 빠바바. 빰! 바밤…….”

수철의 신호가 끝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일곱 명 전원의 손뼉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햐…….”

보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손바닥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쳐다봤다.

‘이게 되네?’ 하는 표정이었다.

“신기하네요, 박이 조여진다는 느낌을 이제 알겠어요. 10분 만에 이런 엄청난 성장을, 역시 음악의 신!”

보컬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려 하자, 수철이 손을 흔들어 막았다.

“그거, 그만하기로 했잖아요!”“아, 죄송. 그런데 음악이 막 재밌어지네요. 하하.”

너스레를 떨었다. 다혜와 은주도 스윗키드 멤버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웃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해 볼까요?”

“네, 좋아요.”

“우선 파트로 나눠서 연습하고, 그다음에 같이 합주를 해 보죠.”

“네.”

수철이 은주를 봤다.

“은주야, 넌 보컬분과 먼저 보이스를 맞춰 봐. 메인 멜로디는 보컬 분에게 맡기고, 넌 3도 화음을 기본으로 코러스를 만들어 줘.”

“그래, 알았어.”

이번엔 다혜를 봤다.

“다혜야, 넌, 기타 치시는 분과 리듬을 맞추면서 화성을 더 붙여 봐. 텐션시켜서.”“알았어. 화성도 나눠 볼게. 지금은 너무 단순하니까.”

“그러면 좋지.”

각자 파트에 맞춰 연습 공간으로 흩어졌다.

“그럼, 드럼과 베이스는 저랑 같이 연습하면서 박자를 더 탄력 있게 조여 볼까요?”

“네.”

* * *

참가자들이 팀 미션에 집중하고 있을 때 김명석은 리조트 창가에 서서 밖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커피를 든 손이 김명석 앞으로 쑥 들어왔다.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메인 작가였다.

김명석이 커피를 받아들며 미소를 지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엔 이곳이 너무 아름답다는 말이지.”“호호, 감상적이시네요.”“나도 뮤지션이니까. 준비는 잘돼고 있어?”“네,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고생이 많네.”

“프로그램 끝나면 좀 쉬어야죠.”“그래, 사람은 누구나 충전이 필요하지.”

둘은 말없이 잠시 바깥 경치를 감상했다.

메인 작가가 다시 입을 뗐다.

“선배님이 보시기엔 지금 진행이 어떤 거 같아요? 오디션 많이 겪어 봐서 잘 아시잖아요.”“글쎄,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이때쯤 되면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지지.”“다 마찬가지군요.”

“그렇지.”

김명석이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지 되물었다.

“장 피디는 용수철 올리고 싶은 거 아니었어?”“저도 잘 모르겠어요.”

메인 작가는 김명석의 질문에 말을 아꼈다.

“근데 왜 그러세요?”“뭔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같아서.”

“…….”

메인 작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김명석은 장 피디의 속내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자신이 참견할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많이 다녀 본 경험자로 보면, 항상 비슷하게 돌아가.”

“어떻게요?”

“처음엔 기획자가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만, 오디션이 시작되면 그때는 기획자가 관여할 수 없어. 이미 프로그램은 하나의 유기체가 되거든. 누가 어떻게 한다고 바뀌지 않아, 잘못하다간 오히려 망치기가 십상이지.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었고.”

“…….”

뼈 있는 말이었다.

메인 작가도 그 말의 뜻을 알지만 대꾸하지는 않았다. 대신 속으로 곱씹었다.

김명석은 잠시 창밖의 경치를 감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용수철 말이야.”

“네.”

“그 녀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녀석이야.”

“거대해요?”

김명석의 독특한 표현에 작가가 쳐다봤다.

“우리는 지금 그 녀석의 재능을 놓고 얘기하지만, 정작 그 녀석은 오디션에 관심도 없을 거야. 그냥 지나가는 재미난 경험에 불과하겠지. 여기저기서 용수철을 끌어가 보려고 분주한 거 보면 웃음이 난다니까.”

“왜요?”

“그 사람들 중에 용수철의 재능을 담을 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은 없거든. 그런 거 보면 오디션도 그렇고, 스타 한번 키워 보겠다고 날뛰는 기획사도 그렇고, 참 재미난 상황이야. 정작 용수철은 저 밖의 풍경처럼 아무 말이 없는데 말이야.”

김명석은 세상 돌아가는 게 재밌다며 냉소적인 투로 말했다.

메인 작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김명석이 처음 했던 말을 읊조렸다.

“선배님 얘기대로 경쟁을 하기엔 이곳이 너무 아름답네요.”

* * *

“이제 모여서 같이 맞춰 볼까요?”

얼마간의 개인 연습이 끝나고, ‘와이 트리오’와 ‘스윗키드’가 다시 모였다.

파트별 연습을 마친 멤버들의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만큼 연습의 효과가 좋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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