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45화 (45/239)

#45화. 보안관을 쐈어요(3)

특히 수철과 같이 연습한 드럼과 베이스의 얼굴엔 자신감이 붙었다. 그 결과 합주에서 음악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음악에 윤기가 생겼네.”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며 리듬이 조여졌다. 처음 스윗키드가 했던 ‘I Shot The Sheriff’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 곡이 원래 이렇게 좋은 음악이었어?”

합주가 끝나고 보컬은 멤버들을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음악이 별로였던 건 너희 연주의 문제였네.”

“풉!”

보컬이 업된 기분에 오버를 했다. 멤버들은 어이없다며 헛웃음을 보였다.

“수철 씨, 아까 알려 준 방법 있잖아요.”

보컬이 메트로놈을 챙기고 있는 수철에게 다가갔다.

“어떤 방법이요?”

“고음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면 누워서 연습해 보라는 거요.”

“그게 왜요?”

“완전 특효약이었어요.”

수철이 알려 준 방법의 효과가 대단했다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해 봤어요?”

“네, 아까 연습하다가 갈라지기에 누워서 10분 정도 해 봤는데, 효과가 바로 생기더라고요.”“다행이네요. 그 방법이 잘 맞나 봐요.”

“정말 고마워요.”

수철은 연습을 시작하기 전보다 자신감을 찾은 보컬이 보기 좋았다.

“그럼, 무대에서 기대해도 되겠네요?”“네! 열정을 다 바쳐 볼게요!”“하하, 듣기 좋네요. 이 곡은 열정보다는 절제가 필요한 곡인데.”

수철이 모여 있는 멤버들을 돌아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을 만들어 볼까요?”“좀 쉬었다 하죠, 휴식이 필요해요.”“그럼, 30분만 쉬었다 할까요?”

“네, 좋아요.’

스윗키드 멤버들은 수철이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연습이 힘들었는지 휴식이라는 말에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커피를 뽑아서 들어오는 다혜와 은주를 수철이 불렀다.

“부탁할 게 있어.”

“뭐?”

“은주 넌 율동 좀 해 줘.”“율동? 나 율동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축제 때 봤으면서…….”

은주는 난감 얼굴로 쳐다봤다. 축제 공연 때에 코러스를 할 때도 율동이 어색했었다. 그건 수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음악은 뻘쭘히 서서 코러스만 넣을 수는 없는 곡이다. 그래서 수철이 부탁을 했다.

“너도 율동 연습할 거라고 했잖아.”“그건 컬러풀 SA 공연 다닐 때고. 난 앞으로 코러스 할 일 없을 줄 알았지. 즉흥적으로 하는 건 모르겠는데, 연습해서 동작을 맞추는 건 아무래도 쑥스러워서…….”

수철의 말이라면 반발이 없던 은주가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거울 보면서 율동 연습 좀 해 줘.”“정확히 말해 봐. 어떤 율동을 연습하라는 거야?”“보컬 한 발짝 뒤에 떨어져서 코러스를 할 거잖아?”

“응.”

“코러스 안 할 때는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리듬만 타 주고, 코러스 넣을 때는 동작을 좀 더 크게 흔들어 줘.”“풉, 그게 나한테 어울릴 거라 생각해?”

은주는 자신이 무대에서 율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내 생각엔 괜찮을 거 같아. 리허설 때 맞춰 보고, 별로면 나도 포기할게.”“그냥 지금 포기하지? 아무래도 그림이 이상할 거 같은데.”“아냐, 재밌을 거야.”“재미? 재밋거리에 날 희생시키겠다?”

은주가 빠져나갈 꼬투리를 잡았다.

“그럴 리가, 넌 우리 와이 트리오의 자존심인데 그럴 순 없지. 내가 말하는 재미는 사람들이 더 관심 가질 거라는 얘기야.”

“음…….”

은주가 수철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크게 몸을 흔드는 것은 어색하다. 하지만 결국 수철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알았어, 도전해 볼게.”“고마워. 넌 리듬감이 있으니까 동작이 멋있게 보일 거야.”

“칭찬이야?”

“칭찬이지.”

은주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뭔데?”

“이건 다혜도 같이.”

옆에서 은주가 율동하는 것을 상상하던 다혜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나도? 나한텐 뭘 시키려고?”

다혜도 뱁새눈을 떴다.

“너희 둘 다 의상을 스윗키드랑 맞춰 줘.”

“뭐? 이런!”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희생 맞네! 수철이, 네가 스윗키드를 위해서 우릴 희생시키려는 거네!”

이번엔 다혜가 희생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진심이야? 우리한테 저런 복장이 진짜 어울린다고 생각해?”

와이 트리오가 지난번에 레게를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카메라 앞에서 튀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스윗키드가 연습실에 입고 나타난 옷은 자메이카 전통 의상이었다.

그러니 다혜와 은주가 놀랄 만했다. 은주가 얼굴을 내밀며 수철의 말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저런 알록달록한 복장을 하고 율동을 하라는 말이지? 그것도 코러스만 넣으면서 말이야.”“응, 그런 말이야…….”

수철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다혜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음악 잡아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지금 우리가 메인도 아니고 쟤네들한테 다 맞춰 주고 있잖아.”“우리가 메인이 되면 지금 상황에서 스윗키드가 우리를 따라올 수가 없잖아. 그리고 곡을 보컬의 능력에 맞추다 보니까 전개가 이렇게 된 거고. 어차피 할 거, 잘하는 게 좋지 않아?”“그래도 그렇지…… 그런데 방송국 사람들이 좋아할까?”“방송국 사람들은 왜?”“두 팀의 성과물을 보겠다는 거지, 두 팀이 한 팀이 되라는 뜻은 아니잖아.”“그걸 우리가 꼭 따라야 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리고 이럴 때 해 보는 거지, 또 언제 해 보겠어?”“이러다 우리 완전히 찍히겠다. 지난번에도 미운털 박혔을 텐데.”

“겁나?”

“…약간.”

다혜가 입을 삐죽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의상은 한번 입어 보고 싶긴 했어.”

“뭐?”

“그건 나도 그래, 색깔이 예쁘더라고.”

“너도?”

다혜와 은주가 갑자기 돌변했다.

“수철이, 너도 입을 거야?”

“그래야지.”

“그럼 넌 추장 복장으로 입어라.”

휴식 시간이 끝나고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수철은 다시 합주하면서 그림을 잡기 시작했다.

“우선 무대에 맞춰서 각자 위치에 서 보죠. 은주는 보컬 뒤로 한 발짝 빠져 주고, 다혜는 베이스 옆에서. 그리고 기타는 저랑 같이. 드럼은 정중앙이고.”

모두 경연 날 무대에서 자신의 위치에 맞춰 자리를 잡고 섰다.

“보컬 분은 노래 중반부터는 음악에 맞춰서 리듬을 좀 타 주면 좋을 거 같아요. 연습은 은주랑 같이 거울 보면서 맞춰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보컬은 힘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은주의 얼굴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기타와 건반은 떨어져 있지만, 마주 보면서 연주를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가볍게 흥을 타면서요.”

“네.”

“그럼 다시 가 볼까요? 원 투 쓰리 포!”

합주가 계속될수록 음악은 점점 더 탄탄해졌다. 수철은 쉬지 않고 디테일을 챙겼다.

“기교는 빼고, 기본 음악에만 충실히 해 주세요.”

“네.”

모두 진지하게 합주에 집중했다. 덕분에 연습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됐다.

“내일 한 번 더 맞춰 보고, 모레 무대에 서면 되겠어요.”

반나절 만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의상 팀에 말해서 의상을 구하고, 율동 연습만 좀 하면 된다.

* * *

“인터뷰 좀 할게요.”

와이 트리오가 연습을 마치고 방을 정리하는데, 작가와 김명석이 들어왔다. 둘은 VJ가 찍은 영상을 돌려 보더니 인터뷰를 시작했다.

먼저 작가의 팀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요?”“스윗키드 보컬과 잘 맞아서요.”“음악을 스윗키드에게만 맞춘 것 같은데, 지나치지 않나요? 영상 보니까 와이 트리오는 세션맨처럼 보이던데요?”“악기 구성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우린 드럼과 베이스 연주자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깜짝 편곡을 붙일 수도 있어요.”“깜짝 편곡이라니, 어떤 건가요?”“그건 무대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수철이 카메라 앞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호호.”

작가는 재밌다는 듯 웃고는 날카로운 질문을 계속 이었다.

“수철 씨가 너무 독단적으로 편곡을 진행하는 거 아닌가요?”

“…….”

“은주 씨와 다혜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갈등을 부추겼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잘 아는 다혜와 은주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저희가 편곡이 약해요.”“에이, 재미없게. 솔직히 말해 보세요, 수철 씨가 너무 강압적인 거 아니에요? 음악 재능이 뛰어나다고 막 밀어붙이는 거 아니에요?”

작가는 무슨 특명을 받았는지 지난번과 질문의 뉘앙스가 달랐다.

다혜와 은주는 조금 얼굴이 벌게지긴 했지만 미소를 유지했다.

“언니, 왜 저희를 괴롭히세요?”“호호, 제가 그랬나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할게요.”

“네.”

“누가 우승할 거 같나요? 이름과 이유를 말해 주세요.”

다혜와 은주가 수철을 쳐다봤다. 수철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전 모르겠어요.”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아니요, 전 여기에 어떤 참가자들이 있는지 몰라요. 음악을 들어 본 적도 없고요.”

다혜와 은주가 피식 웃었다. 수철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은 그걸 알고 수철에게 답변을 넘긴 것이다.

팀 인터뷰가 끝나자, 작가가 VJ에게 카메라를 끄라는 신호를 보냈다. 카메라가 꺼지자 작가가 은주와 다혜를 봤다.

“오늘 질문이 좀 셌지?”

“네.”

“언니가 원래 그런 사람 아닌 거 알지?”

“…….”

팀 인터뷰가 끝나고 개별 인터뷰가 시작됐다. 수철의 차례가 되자 김명석이 의자를 끌고 와 마주 앉았다.

“난 한 가지만 질문할게요.”

그 말에 지켜보던 작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김명석은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영상 보니까 보컬 트레이닝을 잘했던데, 수철 씨가 생각하는 최고의 보컬은 어떤 건지 말해 봐요.”

“질문이 좀…….”

“질문이 왜요?”

“너무 거창해서요.”

“하하! 수철 씨, 카메라 의식하지 말고 말해 봐요. 생각이 있잖아요? 수철 씨답지 않게 왜 그래요?”

수철은 김명석의 말에 한번 씨익 웃고는 질문에 답했다.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보컬은 사라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라져요?”

김명석은 말뜻을 알 수가 없어서 갸웃하며 되물었다.

“네, 보컬도 사라지고 연주자도 사라져서 오로지 이야기만 무대에 둥실둥실 떠 있는 거요.”

“이야기요?”

“네, 그 이야기를 후- 불어 주면 관객들의 귀를 향해 날아가겠죠? 저는 그게 보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 *

경연 날 아침부터 리조트는 떠들썩했다.

참가자들은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발성 연습을 하고, 계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악기 치는 시늉을 했다. 팔굽혀펴기를 하며 가슴 근육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바쁜 사람들과 달리 와이 트리오는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저 나무들, 단풍 들면 진짜 예쁘겠다.”

은주가 나무를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나중에 오디션 다 끝나고 쌤이랑 다시 오면 진짜 재밌겠다. ‘여기가 그랬던 곳이란 말이지?’ 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다혜가 박 대표를 흉내 내며 웃었다.

와이 트리오가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할 때, 스윗키드는 어두운 방 안에 모여 있었다.

“야! 뭐 해! 패스해야지!”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 * *

둡둡. 따답. 둡둡. 따다다답.

갑자기 모든 악기가 멈추더니 수철의 퍼커션 솔로가 시작됐다. 곧이어 다혜가 따라 들어와 수철과 리듬을 맞추며 텐션된 화성을 강하게 눌러 댔다. 둘은 잠시 연주를 주고받았다.

‘원 투 쓰리 포!’

그리고 박자에 맞춰 다시 밴드가 들어왔다. 모든 악기가 동시에 절정을 향해 치달렸다. 그러다 다시 음악이 멈췄다.

이번엔 스윗키드 보컬과 은주과 동시에 크게 입을 벌렸다.

“I Shot The Sheriff~!”

보컬의 호흡이 다할 때쯤 모든 악기가 동시에 등장했다.

빰! 빠바밤― 빠바바. 빰! 바밤!

핵심 리듬을 맞추며 음악이 끝났다.

사람들은 잠시 여운을 느끼다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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