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46화 (46/239)

#46화. 본능

“와!”

“대박!”

짝짝짝!

무대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손뼉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중에서도 스윗키드의 실장은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 입이 벌어질 대로 잔뜩 벌어졌다.

두 팀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미션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와이 트리오가 스윗키드를 얼마나 잘 가르쳤나 볼까?”“일등이 가르친다고 꼴찌가 얼마나 성장하겠어? 더군다나 이틀 만에? 한 번 꼴찌는 영원한 꼴찌야.”“맞는 말이야. 적당히 액세서리 역할이나 하겠지, 마네킹처럼 말이야.”

이 모든 사람의 예상을 한 방에 무너트렸다.

더군다나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와이 트리오가 아니라 스윗키드였다.

“……쟤가 저렇게 노래를 잘했었나?”“그러게 말이야. 밴드도 오늘은 음악을 잘하네, 진작 저렇게 하지.”

무대를 지켜본 스텝들도 한마디씩 했다.

“유은주가 오늘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네.”

은주도 눈에 띄었다. 불만을 표하면서도 율동 연습을 많이 했는지 예전의 은주가 아니었다. 리듬에 맞춰 좌우로 움직이는 몸동작은 율동을 넘어 섹시해 보였다.

“그런데 이거 좀 반칙 같은데요?”

“뭐가?”

“그렇잖아요? 모두 의상도 맞춰 입고, 유은주는 코러스만 넣고 있잖아요. 팀 미션인데 대놓고 스윗키드를 밀어줄 작정을 한 거 같아요.”“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그림은 좋잖아. 이거 내보내면 시청자들 좋아하겠어.”“스윗키드 탈락하면 편집 때 다 드러낼 텐데, 그러면 이 영상도 못 쓰는 거 아닌가요? 이건 와이 트리오가 주축이 아니잖아요.”“나도 그 점이 염려스럽긴 한데, 방법을 찾아봐야지. 어차피 팀 미션은 그걸 예상하고 진행한 거니까.”

무대를 지켜본 작가들은 좋아하면서도 이번 무대의 영상을 걱정했다.

어쨌든, 은주는 코러스만 넣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율동 때문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한 팀처럼 맞춰 입은 의상도 시선을 끄는 데 한몫했다.

다혜도 텐션을 주며 피아노 화성으로 입체감을 받쳤고, 수철도 퍼커션으로 리듬의 흥을 끌어 올렸다.

“그림이 잘 빠졌네, 팀 미션이 재미 좀 보겠어. 제작진들 입 좀 벌어지겠는걸.”“그럼 스윗키드는 꼴찌 탈출인가? 이제 누가 꼴찌가 되는 거지?”“그러게, 쟤네 저러다 탑10 욕심내는 거 아냐?”“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관계자들도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심사 위원 이정성은 한참 웃다가 표정을 바꿨다. 지난번 장 피디의 불만이 떠올랐다. 자세를 가다듬고는 냉담한 투로 심사평을 시작했다.

“음악은 상당히 좋았어요. 노래도 좋고 연주도 좋았어요. 그런데 오늘 미션의 목적은 좋은 음악보다는 두 팀 간의 하모니였어요. 물론 하모니가 나빴다는 건 아니지만, 한쪽 팀에 편중된 거 같아 그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정성은 평소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자제하고 나름 까칠한 심사평을 내놓았다.

다음은 박선정이 이어받았다. 박선정은 일찌감치 긍정 모드로 나섰다. 지난번 엉뚱한 질문을 했다가 눈총을 받은 걸 의식했다.

“잘 봤어요. 음악이 참 시원했어요. 무엇보다 이틀 만에 생긴 스윗키드의 변화가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두 팀이 어우러지는 모습도 정말 보기 좋았어요. 제 생각엔 이번 팀 미션은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좋은 그림이 나올 줄 몰랐거든요. 여러분의 이번 무대는 많은 밴드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무대였어요.”

미리 준비해 온 멘트 같았다. 두루두루 돌아가며 제작진까지 칭찬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이어서 김성철이 심사평을 말했다.

“스윗키드의 보컬은 오늘 좋았습니다. 하지만 몸에 힘을 빼고 소리를 좀 더 담백하게 뽑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기교를 줄이고 키를 안정시킨 건 좋았습니다. 잘 봤습니다.”

제작진을 의식해서 까칠한 멘트를 덧붙였다. 그래도 마무리는 나름 완곡하게 했다.

김성철이 심사평을 마무리하자, 마지막으로 새로 합류한 기획사 대표 백진석이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 두 팀은 주어진 미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두 팀의 색깔을 잘 조합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달라는 거였지, 일방적으로 한 팀에게 맞추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미션의 핵심을 놓친 부분은 마이너스가 큽니다. 와이 트리오의 오늘 무대는 의도적으로 절제한 부분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스윗키드는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오늘 무대가 터닝 포인트가 되길 바랍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새로 투입된 심사 위원답게 깔 건 까면서 나름 신선한 평을 내놓았다.

‘왜 갑자기?’

무대 위의 멤버들은 심사 위원의 평에 다소 당황했다. 몇몇은 얼굴이 굳어졌다. 좋은 평가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실컷 음악을 잘 들어 놓고 돌변해서 엉뚱한 반응을 내놓는 심사 위원이 이해가 안 됐다.

수철은 이번에도 시큰둥했다. 빨리 끝나고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말 많은 심사 위원들이 귀찮은 표정이었다.

이 모습을 본 김성철은 불끈해서 질문을 던지려다가 멈췄다.

괜히 건드렸다가 불똥이 튈까 봐 우려했다.

촬영감독은 수철과 김성철의 표정을 정확히 카메라에 담았다.

* * *

짝짝짝!

컨트롤 룸에서 공연을 지켜본 장 피디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수철, 인정!”

오늘 무대는 보안관을 쏜 게 아니라 삐뚤어졌던 장 피디의 마음을 쐈다.

옆에서 같이 무대를 지켜본 음악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음악이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 아주 깔끔해.”“최고의 찬사네요.”

“심사 위원도 솔직히 다 똑같은 생각일걸?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한쪽에 편중된 게 아니라, 와이 트리오가 스윗키드에게 잘 녹아든 거지. 봤잖아, 스윗키드는 기본만 하고 디테일은 와이 트리오가 다 챙겼잖아?”

그 말에 장 피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유은주는 코러스, 윤다혜는 피아노, 용수철은 퍼커션까지. 가만히 보면 쟤네들은 우리를 우습게 아는 것 같아요. 우리의 뜻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요.”“태생이 아웃사이더인 거지. 그리고 밴드는 그래야 멋있잖아.”

장 피디의 말에 음악 감독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머리띠 두르고 멋있게 락을 하든가. 지난번 편집장이 가져온 영상이랑, 이번 오디션에서 하는 음악을 보면 특별한 선호 장르도 없는 거 같아요.”“쟤한테 장르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거지. 필요에 맞춰 장르의 장점을 다 갖다 쓰니까. 장르는 요리할 때 쓰는 조미료 같은 거야.”“그래도 보통은 추구하는 장르라는 게 있잖아요. 클래식이나 재즈나 팝이나 하다못해 동네 밴드도 자신만의 장르가 있잖아요.”“하하, 그렇긴 하지.”

음악 감독은 동네 밴드도 장르가 있다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지난번 천재 영상을 보니까 알겠더라고.”

“뭘요?”

“저 녀석은 음악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난 것도,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야. 그건 우리 기준일 뿐이지.”“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쟤는 그냥 당연한 거야.”“당연한 거라고요?”

“그래, 몸 안에 그런 DNA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본능적으로 소리에 반응하고, 만들어 내는 거야. 귀로 듣고 머리로 구상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동물의 본능 같다는 말이야.”

“본능이라…….”

장 피디는 악기를 챙겨 무대를 내려가는 수철을 바라봤다.

“음악에서 먹이사슬이 있다면 저 녀석이 최고 포식자겠네요.”

* * *

VJ들이 찍어온 영상을 본 작가들은 이번 미션에서 베스트와 워스트 영상을 선정했다.

우선 베스트 영상은 기대했던 팀들을 제치고 엉뚱 팀이 사건을 터트렸다. 둘 다 솔로 여가수였다. 게다가 둘 다 뒤에 기획사가 있었다.

서로 잘났다며 무시하다가 싸움이 났고, 나이와 연습생 선후배를 따지면서 싸움은 더 크게 번졌다.

이 영상을 본 메인 작가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너무 과한데요? 편집하더라도 내보낼 건 아닌 거 같은데.”“일단 따로 빼놔. 나중에 시청률 떨어지면 응급용으로 쓰게. 어차피 얘네들 탑 10에 가지도 못하니까 딱 써먹기 좋잖아.”

장 피디는 어떻게든 써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메인 작가는 극구 반대했다.

“이걸 어떻게 써요? 얘네들 멘트 보면 연습생 얘기 나오고, 뒤에 기획사가 있다는 것도 다 알겠는데요? 우리 프로그램만 오해받는 거죠.”

“편집하면 되지.”

“그래도 만만치가 않아요.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상황이라 지금 얘네들 회사끼리 감정싸움 하고 있어요. 잘못하다가 우리한테 불똥 튈 수도 있다고요.”“그러니까 혹시 모를 응급용으로 가지고 있으란 거야. 얘네들 컨트롤하기도 좋잖아? 나중에 필요할 때 몇 개 짤로 돌려도 되고.”

워스트 영상은 참가자가 아닌 트레이너였다. 이번이 오디션 경험이 처음인 신출내기 트레이너였다. 달랑 앨범 한 장 낸 가수지만, 좋은 학교를 나오고 교과서적인 발성 때문에 섭외를 했다. 그런데 너무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포기하지 말고 힘내! 넌 꼭 꿈을 이룰 수 있어! 그러려면 끝까지 가야 해!”

“…….”

카메라를 의식해서인지, 오지랖이 넓은 건지 훈련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하는 솔로 가수를 위로하고 있었다.

“네가 포기하면 지금 이 시간들은 너에겐 아픈 기억으로 남을 거야. 하지만 네가 꿈을 이룬다면 지금의 이 고통은 다 의미 있고 필요했던 과정으로 기억될 거야. 그러니까 힘을 내.”

처음 이 영상을 본 동료 VJ는 경악했다.

“에이 씨, 토 나올 거 같아. 어떻게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저런 소리를 하지? 저 사람, 저거 진짜 진심인 거 아냐?”“……모르겠어요.”

“넌 이걸 어떻게 참고 찍었어?”“저도 미치는 줄 알았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영상을 본 장 피디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건 나한테 갖고 오지 말고 알아서 날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작가를 불러서 지시했다.

“이번 미션 끝나면 내보내고, 앞으로 섭외하지 마.”

“네.”

* * *

고 피디가 작가들에게서 받은 리스트를 들고 컨트롤 룸에 들어왔다.

“탑 10에 올라갈 지원자들의 예상 명단이에요.”

아직 과제가 하나 더 남았지만, 명단은 이미 나와 있었다.

“이제 윤곽이 다 드러났지? 한번 볼까?”

장 피디는 리스트를 받아 들었다.

“박민주, 현진, 그리고 얘네들 3명은 대형 기획사고, 얘들 2명은 회사가 잡혔고…….”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꼼꼼히 체크했다.

“소속사 없는 애들은 와이 트리오 포함해서 3팀이네?”

“네.”

“2명 더 추가할 거라는 얘기는 들었지?”“12명으로 갈 거란 얘기요?”

“그래.”

“편성국에서 오케이한 건가요?”“안 할 이유가 없지. 방송이 늘면 광고도 늘고, 그러면 회사가 돈 버는 일인데.”“그럼 12명 확정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은 누군가요?”“백진석 대표가 여기까지 뭐 하러 왔겠어? 바쁜 양반이 진짜 우리 프로그램을 위해서 순수하게 심사하러 왔다고 생각해?”

“아…….”

고 피디는 모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요?”“마지막에 장민혁한테 회사가 붙었어. 지금 협상 중이긴 한데, 결렬되면 다른 애로 하나 채우면 돼. 만약을 대비해서 누굴 올리면 좋을지 작가들의 의견을 들어 봐.”“네, 알겠습니다. 그럼 합숙도 12명으로 조절해야 하는 거죠?”

“7명만 해.”

“7명이요?”

“그래, 이번 끝나고 녹음하고.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경선해서 5명 털어 낼 거야. 본격적인 경선은 7명이 하는 거지. 비용은 줄이고, 가치는 높이고. 방송 회차를 늘려서 광고 늘리고, 음원 뽑아서 수익 늘리고. 꿩 먹고 알 먹고지.”

“아, 역시!”

고 피디는 장 피디가 스카우트돼서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장민혁 협상 끝나고 심사 위원들과 말 맞추면, 바로 첫 방 편집 마무리 지어.”

“알겠습니다.”

* * *

고 피디가 나가고 얼마 후, 이정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 피디는 이정성을 보자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음…….”

장 피디의 제안을 들은 이정성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장민혁은 내가 선택해라?”

“네, 선배님.”

“어차피 나머지 한명은 백진석 대표가 뽑을 테니까?”

능구렁이 같은 이정성은 판을 다 꿰고 있었다. 백진석 대표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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