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50화 (50/239)

#50화. Radiate(1)

이들이 눈짓하자 엔지니어는 녹음실 한쪽에 있는 공간으로 와이 트리오를 안내했다.

제일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자신을 연예부 기자라고 소개한 젊은 여성이었다.

“이번 오디션에서 단연 화제의 인물인 세 분을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여기자는 마치 방송을 본 것처럼 얘기했다.

“오디션에서 가장 막강한 경쟁자는 누구였나요?”

4“…….”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

기자의 질문에 수철과 멤버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미 작가들에게 입단속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지난번 편집장의 정보 유출 사건 때문에 녹음실로 오기 전에도 작가에게 당부를 받았다.

기자는 와이 트리오의 미온적 태도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없었다. 와이 트리오가 계속 답변을 얼버무리자 기자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요. 이건 꼭 답변 부탁해요.”

“…….”

“탑3에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을 돌아가면서 한 명씩만 얘기해 주세요.”

“모르겠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누가 나왔는지도 몰라요.”

돌아가면서 모른다고 답변했다.

결국 기자는 얼굴이 붉어져서 나갔다.

다음 차례는 매니지먼트 사람들이었다.

“용수철 씨와 먼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들은 수철과 먼저 얘기를 나눴다.

한 명은 팀장이고, 한 명은 프로듀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철은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찾아온 이유를 끝까지 들었다. 오랫동안 기다렸고,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달콤한 얘기가 끝나자 수철은 준비해 둔 답변을 던졌다.

“죄송해요, 이미 결정한 곳이 있어요.”

“벌써요?”

그랬으면 진작 말하지 왜 얘기를 끝까지 들었느냐는 표정이다.

“네.”

“이런, 저희가 한발 늦었군요.”

팀장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프로듀서는 옆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받은 정보랑 다르기 때문이었다.

“혹시 어디 회사인지 물어봐도 될까요?”“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 네…….”

수철의 냉정한 말투에 한발 물러나면서 다시 물었다.

“아직 도장 찍은 건 아니죠?”

“네.”

“혹시 마음 바뀌시면 우리 회사를 일 순위로 생각해 주시겠어요?”“네, 그런데 기다리진 마세요.”

수철은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김명석과 함께 컨트롤 룸에서 다른 멤버들을 기다렸다.

“선생님. 우리 먼저 먹으러 갈까요?”

다혜와 은주의 대화가 길어지자 수철이 김명석에게 물었다. 점심도 못 먹고 계속 기다리고 있는 김명석에게 미안해서였다.

“다혜와 은주는 어떡하고?”“가서 문자 보내면 되죠.”“그럼 요기 앞에 중국집으로 갈까?”

“네, 좋아요.”

* * *

수철은 음식점에 도착하자마자 다혜와 은주에게 문자로 위치를 알렸다.

김명석은 문자를 보내는 수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해하지?”

은주와 다혜가 매니지먼트 사람들과 길게 대화하는 걸 묻는 것이다.

“네, 전 괜찮아요. 친구들이 잘되면 저도 좋죠. 그것보단 선생님께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오래 기다리게 해서요. 프로듀싱까지 해 주시는데.”“아니야, 나야 뭐 익숙한 일인데.”

김명석은 처음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와이 트리오 멤버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단지 녹음실까지 찾아와서 진을 치는 사람들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넌 처음부터 기획사는 관심이 없었잖아.”“네, 그런데 저분들은 왜 와이 트리오 전체를 얘기하지 않고, 한 명씩 제안할까요?”“자기들이 그리는 그림이 있으니까 거기에 끼워 맞추려는 거겠지.”

“끼워 맞춰요?”

“그래, 너희 멤버들을 보면서 밑그림을 다 그리고 왔을 거야.”

“아…….”

수철은 그제야 매니지먼트 사람들의 의도를 이해했다.

“은주는 그렇다고 해도 다혜는 왜일까요?”“작곡가로 키우려는 거지. 아직 어리니까 처음에 좀 투자를 해서 계속 회사에서 일하게 하려는 거야.”“다혜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그건 다혜가 선택할 일이지.”“작곡가는 다혜가 아니라도 많잖아요.”

수철은 다혜를 잡고 길게 얘기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방송의 힘을 업고 가려는 거야. 이번에 방송이 나가면 그 파워가 엄청날 테니까. 다혜는 작곡, 편곡, 연주까지 다 되니까. 여러모로 회사에선 필요한 인재지. 게다가 방송 나가면 다혜의 자작곡도 유명해질 테니까.”“아, 그럼 회사가 있는 게 다혜에게 좋겠네요?”“어떤 회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다혜가 좋은 회사를 만났으면 좋겠어요.”“그래, 그러길 바라야지.”

수철은 김명석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선생님이 조언해 주시면 안 돼요? 아까 보니까 선생님 표정이 좋지 않던데요.”“그러고 싶어도 이쪽에서 그러는 건 금기야.”

“금기요?”

“그래, 남의 회사를 함부로 말할 수 없어. 더군다나 나도 이쪽에서는 위치가 있어서 더 말조심해야 해. 이쪽 업계가 생각보다 엄청 좁거든. 함부로 말을 했다간 큰 싸움이 날 수도 있어. 실제로 그런 사례도 몇 번 있었고.”

“아.”

수철은 김명석이 말하는 이쪽 업계가 위험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거절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은주와 다혜는 오래 걸리는 거 같은데 우리 먼저 주문할까?”“네, 먹고 싶은 거 시켜도 돼요?”“그래, 뭐 시키려고?”

“탕수육이요.”

“탕수육은 당연히 시켜야지.”

김명석은 종업원을 불러서 음식을 주문했다.

몇 분 후, 음식이 나와서 먹으려는데 때마침 다혜와 은주가 식당에 들어왔다.

“끝났어?”

“응.”

“잘됐어?”

“별거 없었어. 일단 얘기만 듣고 왔어. 그런데 수철이 너, 계약하기로 한 기획사가 있어?”

아까 그 사람들에게 한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 그거 아니야.”

“뭐가 아니야?”

“그런 거 없다고. 그냥 거절하기 귀찮아서 한 말이야.”

“어쩐지.”

다혜는 수철이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은주는 옆에서 계속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얘기가 잘된 모양이었다.

“은주, 너는 괜찮았나 봐?”“좀 더 생각해 보려고.”

부정하지는 않았다. 은주의 눈빛은 다혜와 달랐다. 기획사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와! 탕수육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데.”

다혜의 시선이 탕수육에 꽂혔다.

젓가락을 들고 김명석을 봤다.

김명석이 먼저 탕수육을 한 점 집기를 기다렸다.

“하하! 알았어, 어서 먹자!”

그걸 눈치챈 김명석이 먼저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집었다.

* * *

점심을 먹고 다시 녹음실로 돌아온 멤버들은 빠르게 녹음을 진행했다.

“모니터링 한번 해 보고 다시 갈게요.”

“네.”

“난 좋은데 너희는 어때?”“저희도 좋아요.

“그럼 다음 곡으로 넘어갈게.”

멤버들은 선수들처럼 한 방에 녹음을 마쳤다.

“은주 씨는 맘에 안 들어?”“네, 한 번만 더 불러 볼게요.”“기사님! 보컬만 한 번씩 더 받아 볼게요.”

“네.”

노래가 좀 아쉬운 은주는 다시 부스로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은주의 노래가 끝나고 모든 녹음이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멤버들은 녹음을 모두 마치고 환한 얼굴로 컨트롤 룸에 들어와서 김명석과 엔지니어에게 인사했다.

“너희 먼저 가. 난 남아서 편집하고 믹싱 마무리 지어야지.”“헐, 나중에 하시면 안 돼요? 피곤하실 텐데요.”“나도 그러고 싶지만, 제작진이 서두르는데 맞춰 줘야지.”

“밤새시려고요?”

“그래야지.”

와이 트리오 멤버들은 김명석만 남겨 놓고 다시 리조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 *

김명석의 말대로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작가와 VJ가 달려왔다.

“수철아, 인터뷰 좀 하자.”

음악 빼고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프로그램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사인을 받은 이유가 다 있었다.

“누나,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어떻게 아셨어요?”“정산팀 스태프에게 들었지.”“그분은 또 어떻게 아셨고요?”“녹음실 갔다 왔으니까 알았지. 녹음실 사용료는 줘야 할 거 아냐?”

“아…….”

수철은 어쩔 수 없이 인터뷰에 응했다.

드럼은 언제부터 쳤고, 좋아하는 드러머는 누구고 등등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답해야 했다.

“수철아. 인터뷰할 때는 표정 좀 밝게 해 줘.”

“네.”

“오케이, 인터뷰는 이쯤하고 내려가서 드럼 치는 거 좀 찍자.”

“네?”

“뭘 놀라? 드럼 치는 씬을 찍어야 인터뷰랑 맞춰서 편집하지. 아래에 다 세팅해 놨으니까. 어서 내려가자.”“……누나, 나 손목이 안 좋아요. 안 치던 드럼을 쳤더니 그런 거 같아요.”“어디 봐 봐, 안 좋으면 누나가 물파스 발라 줄게.”

“네?”

“아니면 누나랑 병원 갈까?”

작가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느냐는 얼굴이다. 수철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손목이 뻐근한 건 사실이었다.

“그럼 좀 쉬었다 이따가 칠게요.”“이건 꼭 해야 하는 거야.”

“네, 알았어요.”

* * *

“오늘 와이 트리오의 경연곡은 자작곡인가?”“네, 용수철의 자작곡이에요.”“어떤 스타일이야?”

장 피디가 피곤한 얼굴로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정보를 안 줘요.”“사운드 체크하는 거 안 봤어?”“봤는데, 말 그대로 사운드 체크만 했어요.”

“인터뷰는?”

“인터뷰 때도 들어 보면 안다는 말만 반복하더라고요. 그래서 무대 끝나고 다시 인터뷰할 생각이에요.”“그래, 그렇게 하고, 이제 곧 방송이니까 문제 안 생기게 디테일 잘 챙겨.”

“네.”

장 피디는 첫 방송이 가까워지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 * *

“오늘 경선 끝나면 일주일 휴식이니까 첫 방송은 집에서 보면 되겠네.”“첫 방송이 언젠데요?”“내일모레. 기대해 봐, 놀랍고 재밌을 거야.”

편집이 잘됐다는 얘기다. 작가는 수철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수철은 그런 작가를 멀뚱히 쳐다봤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그때부터 실감이 날 거야. 너희가 뭘 하고 있는지가 말이야. 호호.”

작가는 첫 방송이 기대되는지 들떠 있었다.

다혜가 뭔가 생각난 게 있는 듯 물었다.

“언니, 엉뚱한 거 좀 물어봐도 돼요?”

“엉뚱한 거? 뭐?”

“음원 수익이요.”

“음원 수익?”

“네, 어제 우리 음원 녹음했잖아요? 계약서에 사인도 했고요.”

“그런데?”

“방송 시작되면 반응이 클 거라고 들었는데, 수익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요.”

작가가 빙그레 웃었다.

“돈을 얼마나 벌지 궁금하다는 거지?”

“네.”

“글쎄, 내 파트가 아니라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엄청 많은 건 사실이야.”“얼마나 많을까요?”

다혜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끝까지 물었다.

“시청률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작년 타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추어 보면 1억 정도 됐던 거 같아.”

“헉, 1억이요?”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철의 머릿속엔 작업실이 몇 개 지나갔다.

“물론 그걸 다 갖는 건 아니고. 방송국이랑 반반 나눠야지. 저작권료도 지불해야 하고, 세금도 떼야 하고. 그래도 너희 한 명당 천만 원씩은 받지 않을까?”

“와, 천만 원!”

“아마 편곡자는 더 받을걸?”

그 말에 수철의 입이 씨익 벌어졌다.

그러자 바로 다혜의 태클이 들어왔다.

“팀은 공동 편곡으로 잡는다고 들었어요. 계약서에도 그렇게 적었고요.”“아, 그러면 똑같이 나누겠네.

수철이 웃음을 거뒀다.

“너희 4곡 녹음했잖아. 그러니까 곱하기 4 해 봐.”

모두의 입이 다시 씨익 벌어졌다.

“다혜가 제일 많겠네, 다혜는 자작곡까지 있으니까.”

다혜가 마지막 승자였다. 다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질문을 던진 보람이 있었다.

“다혜, 부자 되겠네, 음원 수익뿐만이 아니라 저작권 수입도 두둑이 챙길 테니까.”“언니, 고마워요. 나중에 선물 하나 할게요. 헤.”

작가는 빙그레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말하면.”

“……?”

“작년 타 방송사 시청률보다 우리가 좀 더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정확한 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우리가 이번에 홍보비를 엄청 썼거든.”

작가에 대한 그간의 미움이 모두 사라졌다. 다혜는 사랑한다는 말을 던질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가려던 작가는 돌아서서 한 가지를 더 체크했다.

“체육관 앞으로 오면 버스가 대기하고 있을 거야. 그걸 타고 합숙 장소로 오면 돼. 한 달간 합숙이니까 옷과 각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와.”

작가는 와이 트리오가 당연히 탑 7에 진출할 것처럼 말했다.

“……네.”

와이 트리오 멤버들은 대답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는 이때까지도 그 미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 * *

“곡 제목이 뭔가요?”

“Radiate요.”

“Radiate? 무슨 뜻인가요?”“내뿜는다는 말이에요.”

노을이 지고 와이 트리오의 무대가 시작됐다.

“……?”

음악이 시작되자, 심사 위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혜의 신디사이저 소리가 스산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수철의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꽤괘! 괘괘괭! 꽹꽤괘괭!

심사 위원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얼마 후, 은주가 팔을 들어 올리며 접었다 폈다 하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지?’

심사 위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무렵 은주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건 노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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