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Radiate(2)
은주는 노래가 아니라, 단어를 내뱉고 있었다.
입에서 흘러나온 건 멜로디가 아니라 읊조림이었다.
가사가 아니라 그냥 방언이 터진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 같았다.
“흔들려. 꺾였어. 저잣거리. 기생. 어허―!”
은주는 선율이 없는 단어들을 투박하게 내뱉었다.
몇 개의 단어가 끝나면 다시 손을 하늘로 뻗었다 내렸다.
사람들에겐 음악도 노래도 이상하게 들렸다.
“쟤네 뭐 하는 거야? 음악 맞아?”“보컬은 뭐 하는 거야? 전위 예술 하는 건가?”
기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떨어지려고 작정을 했네, 했어.”“여기가 자기네들 콘서트장인 줄 아나? 건방지게.”“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이제 막가자는 거야?”
하지만 이런 소리는 무대에 닿지 못했다.
꽹과리로 시작한 격렬한 음악이 잠시 잠잠해졌다. 다혜의 스산한 신디사이저 소리도 줄어들었다. 은주도 몸동작을 멈추고 입을 닫았다. 무대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모든 소리가 멈추자, 나지막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끄국, 끄국, 끄국.’
심장박동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크쿡, 크쿡, 크쿡.’
심장박동 소리가 무대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 위에 하나둘 다시 음악이 쌓이기 시작했다.
음악은 마치 듣는 이로 하여금 엄마 뱃속에서 맨 처음 뛰었던 심장박동의 전율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점점 커지며 어둠 속을 뚫고 나갔다.
심사 위원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원래 수철은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영화음악 같은 곡을 준비했었다. 가사를 붙이고 합주를 하며 은주도 노래를 익혔다.
“곡 너무 좋아! 부를 때마다 힐링이 돼.”“수철이는 작곡가가 딱인 거 같아.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데 재능을 써야 해.”
멤버들 모두 수철의 곡에 만족했다. 오디션에서의 평가를 기대했다. 심사 위원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을 만한 곡이었다.
“안 좋아하면 이상한 거지.”
그런데 본선을 며칠 앞두고 수철이 돌연 곡을 바꾸겠다고 했다.
“곡을 바꿀 생각이야.”
“아니, 왜?”
멤버들은 당황했다.
음악을 들어 보고는 더 놀랐다.
“꽃길을 놔두고 왜 가시밭길을 가려고 해?”
이해가 안 됐다.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철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먼저 하고 싶어. 그리고 여기는 꽃길이 아니야, 여기가 가시밭길이야.”
수철은 남들이 좋아할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먼저 하고 싶었다. 수철은 예선을 거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업실을 만들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시작한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답답해졌다. 이곳이 불편하고 맞지 않았다. 낯선 곳에 혼자 서 있는 이방인 같았다.
“우우우― 어허~!”
꽤괘꽤괘괭!
멤버들은 처음 들어 보는 스산하고 낯선 소리에 당황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어? 곡이 아니라 네 의도가 궁금해.”
왜 좋은 곡을 놔두고 억지로 탈락하려고 애쓰냐는 말이었다.
멤버들은 수철이 들려주는 음악에 당황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 * *
수철은 17살까지 악몽을 자주 꿨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답답함에 가슴을 쥐어 잡은 채 눈을 뜨곤 했다. 17년 동안 그런 악몽은 자주 반복됐다.
꿈속에서 들리는 꽹과리, 가야금, 태평소 소리. 그리고 언뜻언뜻 보이는 광대 패의 춤사위. 그들의 노랫소리.
갑자기 나타나 눈앞을 지나가는 날카로운 칼. 누군가의 눈물.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는 자신의 모습. 아무리 질러도 나오지 않는 비명. 솟구쳐 오르는 답답함.
수철은 이것을 해소하고 싶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음악을 통해서 하고 싶었다.
오디션장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어릴 적 악몽 속의 답답함과 겹쳐졌다.
수철은 그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작곡을 해서 몇 시간 만에 뚝딱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수철의 얘기를 들은 다혜와 은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혜와 은주에게는 어느 정도 설명해야 했다. 같은 팀이기 때문이다.
“알았어,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 봐. 우리가 너의 무대에 조연이 되어 줄게.”
멤버들은 수철의 새로운 음악에 동참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말에 순수하게 동의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그런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수철은 오랫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어린 시절의 악몽을 멤버들과 같이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더 입체감 있는 편곡이 탄생했다.
* * *
‘크쿡, 크쿡, 크쿡.’
심장 소리 위에 쌓이던 음악은 형체를 드러내더니 트립합(Trip Hop)으로 바뀌었다. 심장 소리는 리듬으로 바뀌어 아래서 꿈틀거렸다.
음악은 몇백 년을 뛰어넘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서 다시 시작되었다.
주제가 있었다. 거기에 맞춰 색깔이 바뀌며 전개됐다. 흡사 비발디의 사계 같았다. 음악은 다르지만 전개가 그랬다. 클래식의 악장 형태처럼 빠르기도 계속 변화했다.
일렉트릭한 힙합 리듬에 맞춰 세 명이 몸을 움직이자, 무대 밖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어느덧 수철의 음악에 동요하고 있었다.
타령조이던 은주의 보이스는 랩을 하듯 스웩을 넣으며 새로운 단어를 내뱉었다.
“날개. 날자. 날고. 날겠어.”
연결된 단어를 빠르게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 현란한 꽹과리가 등장했다.
꽤괘. 괘괘괭! 꽹꽤괘괭!
이번에 다혜는 건반으로 태평소를 연주했다.
뿌우우― 뿌으우우웅―!
은주는 속삭이듯 읊조렸다.
“광대. 얼씨구. 탈춤. 천지개벽.”
그리고 음악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수철이 건반으로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덩기덕! 덩더러러. 궁기덕! 궁덕!
거기에 맞춰 다혜는 가야금을 시작했다.
띠잉. 뚜웅. 띠딩.
은주의 소리는 판소리로 바뀌었다.
“어허― 사람들, 내 말 좀 들어 보소―!”
“흠…….”
“……?”
“……!”
낯선 시선으로 무대를 보던 눈빛들은 점점 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와이 트리오의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다양한 생각이 교차했다.
몇몇은 충격을 받았고, 몇몇은 막강한 경쟁자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몇몇은 애써 음악을 이해하려고 했고, 몇몇은 대중을 의식하지 않은 음악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런 건방진……!”
나이 든 음악가들은 무례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도 수철을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음…….”
수철에게 관심이 있었던 몇몇 사람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수철의 자작곡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에는 수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읽어 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음악 감독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난번 제안에서 수철이 냉혹하게 거절했지만 그는 찌질한 사람이 아니었다. 끝까지 수철이 만들어 내는 음악을 주시했다.
‘인생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
그는 머릿속에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수철이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명석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눈을 감고 귀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오롯이 수철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 * *
음악은 다시 현대로 돌아왔다.
끝날 것 같은 음악은 수철이 타악기를 두드리자, 다시 절정으로 치솟았다. 다혜는 수철의 소리에 응답하듯, 음계를 깨트린 피아노 연주로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은주가 내뱉는 단어도 바뀌었다.
“용서. 자유. 날개. 펴다.”
음악은 어느덧 10분을 넘기고 있었다.
제작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이러면 완전 나가리…….”
심사 위원들은 소리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제작진은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음악이 엔딩을 향해서 갈 무렵, 느닷없이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느새 겨울이라도 된 듯,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얼음이 녹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따라왔다.
와이 트리오는 십몇 분간의 음악을 빠르게 정리하고 있었다.
까마귀 소리는 다시 지저귀는 귀여운 새소리로 바뀌었고, 시원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봄이 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가 다시 지저귀었다.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아이 울음소리를 감쌌다.
음악은 15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은주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단어는 ‘Radiate’였다.
이렇게 길었던 음악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음악이 끝났는데도 주위는 적막했다.
무대도, 무대 맞은편도 모두 적막에 휩싸였다.
오디션장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미간을 좁히고 인상을 쓰며 음악을 들었던 심사 위원도 마치 사우나라도 다녀온 듯 개운한 모습이었다.
해소는 수철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박수 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수철의 음악 여행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속이 편해졌어.”
“나도. 피로가 확 가셨어.”
수군대는 소리만 들렸다.
심사 위원들은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여기에 앉아 있는 밥값은 해야 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심사 위원들은 자신만의 상상력을 동원해 갖가지 평가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안 들어도 될 만한 얘기들이었다.
* * *
“올리긴 뭘 올려! 안 올라가겠다고 깽판 친 건데!”
컨트롤 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이거, 이 정도면 방송 사고예요! 싫다는 애들을 껴안을 필요는 없어요.”“이 정도 분량을 어떻게 편집하죠?”“앞으로 나갈 방송들이 더 문제예요, 용수철 전신 노출을 많이 잡았는데…….”
제작진은 걱정거리를 쏟아 냈다.
오늘 무대의 전체를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와이 트리오를 탈락시키더라도 영상으로 시청자를 이해시켜야 한다. 머리 아픈 상황이 발생했다.
심사 위원들의 생각도 엇갈렸다.
“시청자들이 납득할 거 같지가 않아요. 음악도 받아들이기 어렵고요. 아무래도 와이 트리오는 여기까지인 거 같습니다.”“음악이 너무 긴 게 문제긴 한데, 훌륭한 작품이었어요. 제 견해는 그래요.”
결과는 심사 위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만, 장 피디는 자기 생각을 피력했다.
“탈락하겠다고 작정한 거 같은데 올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결과는 예상대로 탈락이었다.
심사 위원들의 결정이었다.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고, 모욕감을 느꼈고, 쾌감을 느꼈고, 누군가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봤다. 무대가 끝난 후, 그곳의 풍경은 그랬다.
한참 후에야 누군가 다시 물었다.
“내뿜는다는 게 뭘 의미한 걸까요?’“광기를 말하는 거겠지.”
* * *
탈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수철은 실망보다는 성공했다는 표정이었다.
‘미션 클리어.’
본선 1차 무대에서 ‘No Woman No Cry’를 부르고, 우리도 곧 떨어질 거라는 수철의 말은 오늘을 두고 한 말이었다.
다혜와 은주도 그걸 알고 있어서 빙그레 웃기만 한 것이었다.
와이 트리오는 소리에 집중했고, 모두 수철의 스토리에 동화됐다. 남아 있는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광대 패처럼 무대 위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아직도 흥이 남아 가슴을 들썩였다. 세 명의 얼굴은 환했다.
수철은 얼굴에서 빛이 날 정도였다. 모든 걸 털어 버렸다.
하지만 이 무대를 끝으로 와이 트리오의 상승 곡선은 꺾여 버렸다.
위대한 탈락을 했다.
이렇게 와이 트리오의 오디션 모험은 끝이 났다.
탈락 소식을 듣자마자 멤버들은 망설임 없이 짐을 싸서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 * *
“이거 어떻게 할까요?”“뭘 어떡해? 시청자들 이해할 수 있게 연결 고리만 만들어서 최대한 짧게 편집해 봐.”
“네.”
“결국 이렇게 사고를 치네, 괘씸한 놈들.”
장 피디가 이를 악물며 흥분할 때, 와이 트리오는 시원하게 생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