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58화 (58/239)

#58화. 축복받은 땅에서(1)

“영준, 금방 다시 만나길 바라.”“그래, 자주 연락할게.”“잘 가, 수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어. 또 만나길 기대해.”“그래, 나도 너희를 다시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길 바라.”

히드로 공항에서 멤버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 * *

영준이 형은 장거리 비행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건조함을 막는다며 스킨로션을 발랐다.

얼굴에 수분을 보충하면서 입을 열었다.

“호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영국은 다 좋은데 날씨가 너무 변덕스러워서 말이야.”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영준이 형은 금세 영국을 잊은 것처럼 얘기했다. 수시로 변하는 영국의 날씨, 특히 런던 날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기체가 안정되자 호주 일정 설명이 시작됐다.

“호주에선 총 4번의 공연을 할 거야. 시드니에서 두 번, 멜버른에서 두 번. 두 번의 클리닉 공연이 있긴 하지만, 그건 드럼, 베이스, 트럼펫만 참여하는 거야. 수철이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네.”

“호주는 큰 나라라서 이동시간이 오래 걸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시드니에서 공연하고 차를 빌려 1번 국도를 타고 3박 4일 정도 여행하면서 멜버른으로 가면 좋아.”“와, 그렇게나 멀어요? 지도에서는 굉장히 가깝던데요.”

수철은 두 도시 사이의 거리가 3박 4일 여행을 할 정도라는 말에 놀랐다.

“우리나라보다

배 이상 클걸?”“헉, 70배나요? 70배면 얼마나 큰 건지 상상이 안 되네요. 호주는 섬이라고 들었는데.”“정말 큰 섬이지. 그리고 호주 아래에는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태즈메이니아라는 섬도 하나 있어.”“네, 사진으로 본 적이 있어요.”“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고속도로로 달리면 반나절 만에 도착해. 하지만 재미는 없어. 그래서 국도로 구경하면서 내려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 정말 많아. 원시적인 호주를 볼 수 있어.”

“아…….”

“나도 딱 한 번밖에 못 해 봤지만 말이야.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

영준이 형은 그때 여행이 만족스러웠다는 표정이다.

“그럼 이번엔 고속도로로 가는 건가요?”“이번엔 시간상 비행기로 이동해야지.”

“그렇군요.”

“다음에라도 올 기회가 생기면 꼭 국도를 따라서 여행해 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네.”

수철은 비행기로 이동한다는 말에 다소 실망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타고 싶던 비행기였는데 이젠 그럴 생각이 없다.

“국내선은 금방 도착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네, 알겠어요.”

“첫 번째 시드니 공연은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있는 베이스먼트(The Basement)라는 클럽이야. 클럽이라고 해서 작은 곳은 아니고, 규모가 커. 관객들 호응도 좋고, 내부 시스템도 좋아. 재즈 클럽이라기보다 엔터테인먼트 클럽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아…….”

“재즈를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음악의 장르를 따지지 않는 곳이야. 인기 뮤지션들이 등장해서 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해. 그래서 뭔가 좀 더 고급스럽다고 할까.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같은 느낌이 있는 곳이야.”“아,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 같아요.”

수철은 라스베이거스 공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대충 상상이 됐다.

“그만큼 반응도 즉각 나오지.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가수들이 쇼 케이스를 하기도 해. 그 동네에선 가장 핫한 플레이스야. 그래서 주로 그루브한 음악을 많이 해.”

“기대되네요.”

“그래, 가 보면 마음에 들 거야. 그리고 두 번째로 공연할 곳은 재즈만 하는 정통 재즈 클럽이야. 런던의 로니 스콧처럼 거기도 오래됐고 유명 뮤지션들이 많이 공연한 곳이지. 이름은 파운드리 616(Foundry 616)이야. 원래 수플러스였는데, 장소를 옮기고 이름도 바뀌었어. 나도 바뀐 곳은 이번에 처음 가 보는 거야.”

“그렇군요.”

“그리고 멜버른에서는 크라운 카지노에서 공연할 거야.”

“카지노요?”

“카지노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영화에서 본 적은 있어요.”“그래, 갬블을 하는 곳인데, 공연도 많이 하는 곳이야. 카지노가 원래 엔터테인먼트를 하는 곳이거든.”

“아…….”

“우린 호텔 라운지나 카지노 엔터테인먼트 플레이스에서 공연하게 될 거야. 나도 이번에 처음 가 보지만 크기가 엄청나다고 들었어.”“어떤 곳인지 궁금하네요.”

카지노에서 공연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겜블과 재즈라니.

“그리고 두 번째 공연은 카페에서 하게 될 거야. 카지노 옆에 야라 강이라는 강이 있는데, 그 주변이 아름다워서 카페가 많아. 멜버른에 오면 한 번씩 공연하는 곳이야. 페이는 적지만 야외 공연이라 재밌는 분위기야. 편하게 하면 돼.”

“네, 알겠어요.”

“그리고 이번 호주 공연을 같이할 멤버는 제시, 존, 마크, 잭이야. 제시는 보컬, 존은 드럼, 마크는 베이스, 잭은 기타야.”

“네.”

“참고로 호주 발음은 아주 터프해. 영국 발음이 터프하다고 하지만, 호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영어는 어쨌든 영국 언어잖아.”“저는 더 어렵겠네요.”“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겠지. 걱정하지는 말고, 내가 통역할 테니까.”

“네.”

영준이 형은 기내식을 먹으며 위스키를 주문해서 마셨다. 한 잔 마시고 푹 자겠다는 생각이었다. 수철은 위스키 대신 와인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둘은 금방 곯아떨어졌다.

술 탓인지 영국에서의 일정이 피곤했던 건지 정신없이 잠을 잤다. 한참을 자고 눈을 떴을 땐 1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반 온 거다. 아직 11시간을 더 가야 했다.

“지겹지?”

“네, 다음에 런던에서 호주로 갈 일이 있다면 크루즈 여행을 해 봐야겠어요.”“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장거리 비행기 여행은 정말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크루즈 여행을 해 본 친구한테 물었더니, 배에서 와인을 한잔하며 바라보는 일몰은 예술이라고 하더군.”“와. 정말 해 봐야겠어요.”“그런데 몇 가지 얘기를 듣고는 결국 포기했어. 반전이 있더라고.”

“어떤 반전이요?”

“처음엔 재밌고 신기한데 금방 질린다고 하더라고. 매일 같은 사람을 보는 것도 지겹고, 바다도 어느 순간엔 지겹데. 육지가 그립다고 하더라고. 중간중간 육지에 들르기는 하지만 장거리 배 여행은 권하고 싶지 않데.”“어떤 거든 일장일단이 있네요.”

“그래.”

“그럼 다음엔 이러는 게 어떨까요?”

“어떻게?”

“중간 나라에서 공연을 한번 하고 이동하는 거죠. 그러면 절반씩 끊어서 비행기를 타면 되잖아요.”“아하,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런데 영국과 호주 중간이면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그쪽 아닌가? 공연하긴 좀 위험할 거 같은데. 사람들이 재즈를 좋아할 거 같지도 않고.”“아……. 결국 비행기군요. 여기를 못 벗어나겠네요.”“그래, 웃기고 슬픈 현실이지. 그래서 일등석을 타고 싶지만, 재즈 뮤지션 중에 일등석을 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공연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니까.”

“네, 그렇죠.”

재즈 뮤지션들이 대단한 실력을 갖춘 만큼, 대중가수들처럼 인기를 누렸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중의 시선은 자극적인 것에만 쏠려 있다.

“육지로 이동할 수 있으면 차 여행을 하면서 버스킹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피하려고 하니까 자꾸 버킷리스트가 생기네요. 헤헤.”“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사람들이 세계 일주를 하듯이 뮤지션들은 세계 버스킹 일주를 하는 거지. 상상만으로도 엔도르핀이 솟네, 하하.”

영준이 형은 재밌다며 껄껄 웃었다. 웃다가 생각난 게 있는지 물었다.

“수철아, 너 한국 돌아가면 시간이 어떻게 돼?”“저 할 일이 쌓였어요. 작, 편곡도 해야 하고, 아는 분 앨범에 보컬 트레이닝도 해야 해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버스킹 얘기하다가 생각난 건데, 제주도와 남해 축제에 출연 요청을 받았거든. 같이 못 하겠지?”“네, 죄송해요. 미룰 수 없는 일이라서요.”“괜찮아, 할 사람들은 많아. 같이 가면 어떨까 해서 물어본 거야.”

“네…….”

수철은 아쉬워하는 영준이 형을 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밀린 작업 마무리하고, 빨리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빨리하고 싶은 거? 어떤 걸 하고 싶은데?”“우선 작업실부터 만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 보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

“네, 가사부터 작, 편곡. 보컬 트레이닝. 녹음. 프로듀싱. 앨범 제작까지 다 해 보고 싶어요.”

수철의 계획을 들은 영준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건 음악가들의 꿈이기도 하지.”“네, 그래서 프로듀싱과 앨범 부분은 쌤한테 배워 보려고요.”“선배님한테? 프로듀싱은 네가 해도 되지 않아? 너도 잘하잖아.”“프로듀싱은 소리만 잘 잡아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경험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요. 엔지니어와 소통도 잘해야 하고요”“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선배님이 그쪽으로 잘하셔. 오래 하시기도 했고.”“네, 그래서 배워 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어요.”“기회를 노려? 하하. 그럴 필요까지 없을걸? 선배님은 너한테 다 가르쳐 주실 거야. 내가 알기로는 그래.”

수철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었다.

“네, 그렇게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걱정하지 마. 그렇게 될 거야. 어쨌든 작, 편곡과 프로듀싱을 혼자 다 하겠다는 얘긴데……. 연주도 혼자 다 할 테고. 트럼펫은 날 불러 줄 건가?”“네, 형이 일 순위예요.”“일 순위? 하하. 이거 영광인데?”

“헤헤.”

“그런데 수철이 넌 네 앨범을 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래서 작곡에 집중하려고 했던 거고.”“네, 제 앨범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작곡하고 프로듀싱을 해 보려고요.”“그래서 경험을 쌓겠다?”“네, 그런 것도 있고, 어울리는 소리를 찾아 주고 싶어서요.”

“어울리는 소리?”

영준이 형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수철을 봤다.

“네, 사람들이 남의 노래를 하는 것이 자꾸 보여서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리를 찾아 주고 싶어요.”“남의 노래를 하는 것이 자꾸 보여?”

이해가 안 되는지 눈을 끔뻑였다.

“네, 축제 공연 때도 그랬고, 오디션 프로그램 때도 그랬어요. 자기만의 소리가 있는데, 그걸 팽개치고 자꾸 남의 소리만 따라 하더라고요. 그게 눈에 보여서 힘들었어요.”“음, 자기만의 소리라……. 눈에 보여서 힘들었다…….”

영준이 형은 수철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니까 어찌 보면 자기만의 소리가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인다는 거야? 그 사람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말이야?”“소리를 낼 때 보면 알아요. 사람들이 몸이 악기라고 말하지만, 악기에 소리를 불어넣는 것은 영혼이잖아요? 그래서 표정을 보거나 얘기를 나눠 보면 그 사람의 소리, 색깔을 알 수 있어요. 거기에다가 소리를 내는 구조를 보면 그 사람의 색깔을 알 수 있어요.”

“음.”

“트럼펫으로 따지면 트럼펫은 사람의 발성 기관이고, 입으로 후 부는 공기가 스피릿이 되는 거죠. 그 스피릿이 그 사람의 색깔이고요. 몸은 비슷해도 스피릿이 다르면 색깔이 완전히 다른데, 사람들은 비슷한 몸이면 비슷한 소리를 낸다고 착각하잖아요.”

“……!”

영준이 형은 갑자기 추운지 몸을 움찔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서 직접 프로듀싱까지 하겠다? 그들에게 자신의 소리를 찾아 주고 싶어서? 그래서 선배님께 앨범과 프로듀싱에 관한 것을 배우려고 하는 거고?”“네,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 귀에 너무 거슬려서요. 그래서 답답함을 풀어 버리고 싶어요. 내 생각이 맞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음, 그래, 이해는 돼. 그런데 지금 네가 한 얘기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너무 높은 얘기야. 너 아니면 못 하는 얘기지. 사람들이 공감할지도 미지수야.”“네, 그래도 해 보려고요. 재밌잖아요.”“재밌어? 하하. 암튼 나는 기대된다. 네가 보컬에 맞는 소리를 찾아서 곡을 만들고, 앨범을 하고. 결과물이 나오면 나한테도 한번 보여 줘.”

“네, 그럴게요.”

영준이 형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네가 사람들에게 맞는 소리를 찾아 주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살짝 소름 돋았었어. 나는 내가 좋은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생각했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소리를 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거든. 역발상이라고 해야 하나? 난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어느새 잘한다는 얘기를 듣다 보니까, 안주했다는 생각도 들고.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하고 말이야.”“올챙이가 아닌데…….”“개구리 정도 되겠지. 네 얘기를 듣다 보니까 각성이 된다. 좋은 얘기였어. 나도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소리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네…….”

“사람들의 소리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준다……. 아주 좋은 말이야.”

영준이 형은 수철의 말을 계속 곱씹었다.

―승객 여러분, 편안한 여행이 되셨습니까. 현재 이 항공기는 오스트레일리아 상공을…….

드디어 비행기가 호주 상공에 도착했다. 드디어 해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긴 여행이었다.

비행기는 거의 하루를 날아서 축복받은 땅, 호주 시드니 공항에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비행기만 탔는데도 녹초가 될 것 같았다.

수철은 그립던 땅이 나타나자 입이 벌어졌다. 22시간의 비행은 또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 * *

호주는 이른 아침이었다.

이번엔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다. 달려와 껴안는 사람이 있었다.

“하이! 영준~ 네가 많이 그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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