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66화 (66/239)

#66화. 변화와 보상의 시간(3)

수철은 계속해서 하린이의 노래를 한 곡 더 들었다.

이번엔 또 다른 색깔이 느껴졌다.

유심히 하린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김명석이 다시 어깨를 붙여 왔다.

“하린이가 아직 16살인데, 26살의 소리가 나는 거 같지 않아?”“네, 그 부분이 큰 장점이에요. 표현의 폭이 넓어지니까요. 사람들에게 어필하기도 좋고요.”“긍정적으로 본다는 거네?”“네,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소리가 안정이 되어 있어서 연습하기도 편하겠어요.”

수철은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부스 안에 있는 하린이에게 말했다

“이번엔 다른 곡으로 한 곡 더 불러 볼까?”

“어떤 노래요?”

“아는 남자 노래 있으면 한번 불러 봐. 키를 올리지 말고 남자 키로.”

“남자 키로요?”

하린이가 부스 안에서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옆에 있던 김명석도 수철의 말에 갸웃했다.

“힘들더라도 최대한 남자 키로 맞춰서 불러 봐. 낮은음도 그냥 끊지 말고, 낮출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낮춰 불러 봐. 음 놓치지 말고.”

“네, 해 볼게요.”

“반주 없어도 되지?”

“네.”

하린이는 곡명과 남자 가수의 이름을 말한 후, 피아노 건반을 하나 띵 눌러서 첫 음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수철은 하린이가 내는 소리에 다시 집중했다.

의사가 진단을 내리듯이, 하린이의 소리에 청진기를 대고 귀를 기울였다.

하린이는 음이 낮아서 부르기 힘든데도, 최대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불렀다.

수철은 하린이의 노래를 모니터링하면서 계속 적당한 연습법을 구상했다.

노래가 끝나자 수철이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잘 들었어. 아직 나오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줘.”

“네.”

고개를 돌려 김명석을 봤다.

“제가 시간을 얼마나 쓸 수 있어요?”“한 달 후에 보컬 녹음을 할 생각이야.”

수철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그럼 5일에 한 번씩 6번을 해 볼게요.”“6번이면 부족하지 않겠어?”“하린이가 하기 나름이에요. 연습은 하린이 혼자서 할 거고, 전 체크만 할 거예요.”

“체크만?”

“네, 우선 오늘 모니터한 것에 맞춰서 제가 생각하는 연습법을 알려 줄 거예요. 그리고 5일마다 체크하면서 교정하면 될 거 같아요.”“그래, 알았어. 시간이 더 필요하면 얘기해. 보컬이 잡혀야 녹음도 하는 거니까.”“한 달에 맞춰 볼게요. 더 빠를 수도 있고요.”

“더 빠를 수도?”

김명석은 한 달을 얘기했지만 하린이가 노래하는 상황을 봐서 시간을 좀 더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프로듀서이기에 시간을 빡빡하게 잡은 것뿐이다.

그리고 하린이가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하지만 서투른 부분이 있다. 김명석은 그걸 잘 알고 있다. 수철의 실력을 믿고 기대하고 있지만 아무리 수철이라도 한계가 있다.

한 달에 6번의 트레이닝으로 하린이의 단점이 극복될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다는 말에 김명석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서두르는 건 아니에요.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아직 나쁜 습관이 들지 않았고, 근육이 굳어지지 않아서 연습하기 딱 좋은 상황이에요.”

수철이 확신하며 말하자, 김명석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뭐. 그래, 알았어. 난 너만 믿을게.”“네, 걱정 마세요. 제가 생각한 부분은 다 잡을게요. 그리고 혹시 하린이가 부를 노래는 다 만드셨나요?”“타이틀 곡은 악기 녹음까지 마친 상태야. 나머지 두 곡은 작업 중이고.”“그러면 타이틀 곡을 하린이가 불러 본 적이 있나요?”“아직 들려준 적도 없어. 믹싱까지 마치고 들려주려고 했지.”“그렇군요. 가사는요?”“가사도 아직 안 나왔어.”

수철은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지 다시 물었다.

“말씀하신 그 음악을 지금 하린이 헤드폰에 틀어 줄 수 있나요?”

“지금?”

“네.”

“틀 순 있지만, 아직 많이 거친데? 밸런스도 아직 안 잡았어.”“괜찮아요, 틀어 주세요.”

“그래, 잠시만.”

김명석은 컴퓨터를 켜서 녹음한 소스를 찾기 시작했다.

수철은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하린아, 지금 새로운 음악을 들려줄 거야.”

“네.”

“먼저 끝까지 쭉 한번 들려줄 테니까 잘 들어 봐.”

“네.”

“그리고 두 번째 들려줄 때는 따라 불러 봐. 가사는 그냥 네가 생각나는 대로 막 불러도 돼. 그냥 소리만 내면 되니까.”

“네, 해 볼게요.”

“그래, 그리고 아직 믹싱이 안 돼서 음악이 거치니까 참고하고.”

“네.”

수철이 따라 부르라고 하자 김명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음정을 익히고 연습하면서 부르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철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하린이의 음 기억력을 테스트하려는 것이다. 음 기억력은 작곡자뿐만이 아니라 음악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재능이다.

음악의 맨 마지막 단계는 보컬이다. 보컬이 마지막으로 관객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컬에게 음 기억력은 무대에 설 때 자신감과 연결된다. 수철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린이가 이 곡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내려는 것이다.

소리에 대한 첫 반응, 곡에 대한 첫 인상, 그건 숨길 수 없다.

수철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낼 생각이다. 그러면 연습이 한결 수월해진다.

“음악 틀어 줄게.”

“네.”

김명석이 음악을 틀자 하린이가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철은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다시 한번 틀어 줄게.”

“네.”

이번엔 하린이가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우후, 우우― 예이예―!”

하린이는 한 번 들은 음악에 리듬을 타며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엔 호흡을 길게 끌며 페이드 아웃(fade out)까지 했다.

노래가 끝나자 수철이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하린아, 이제 나와도 돼. 수고했어.”“네, 수고하셨습니다.”

하린이가 부스 안에서 고개를 꾸벅하고 다시 컨트롤 룸으로 돌아왔다.

“이쪽에 와서 앉아 볼래?”

“네.”

하린이가 다가와서 수철과 마주 앉았다.

수철은 연습법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복식호흡, 성대 관리, 스트레칭. 이런 부분은 나보다는 대장 선생님이 많이 아실 거야. 그러니까 그 부분은 대장 선생님께 계속 배워.”

“네.”

수철이 김명석을 쳐다보자 김명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이 다시 하린이를 봤다.

“난 모니터링한 결과에 맞춰 연습법만 얘기할게.”

“알겠습니다.”

하린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철은 하린이의 부족한 점을 잡아 줄 연습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경음 알지? 된소리 말이야.”

“네, 알아요.”

“네가 경음 발음이 좀 약해. 그중에서도 특히 쌍기역, 쌍디귿, 쌍시옷이 약한 거 같아. 원래 발음이 약한 부분도 있고, 노래할 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부분도 있는 거 같아.”“아……. 전 잘 몰랐어요. 지적받은 적이 없어서요.”“그래, 그랬을 거 같아. 그런데 이 부분은 노래하면서 잡는 게 아니고, 평소 말하면서 잡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말할 때 신경 쓰면서 발음을 해야 하는 거야.”

“네, 알겠어요.”

“그럼 이것에 대한 연습법을 알려 줄게.”

“네.”

“모음 있지?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 말이야.”

“네.”

“거기에 내가 약하다고 말한 소리를 붙여서 정확히 발음을 해보는 거야. 까, 꺄, 꺼, 껴, 꾸, 뀨. 그리고 쌍디귿은 따, 땨, 떠, 뗘, 이렇게.”

“네, 헤헤.”

하린이는 수철의 생뚱맞은 발음에 웃음이 났다.

“웃지 말고 집중해서 들어야지,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네.”

옆에서 김명석이 한마디 하자 웃음을 멈췄다.

수철이 계속 말을 이었다.

“발음 연습을 할 때는 거울을 보면서 해봐. 입 모양을 보면서 또박또박 발음하는 거야.”

“네.”

“그렇게 30분씩 하루에 두 번만 하면 근육이 잡힐 거야. 발음도 정확해질 거고. 일주일만 해도 좋아지는 걸 느끼게 될 거야.”“네, 열심히 해 볼게요.”

하린이가 강한 의지를 보이자 수철이 빙그레 웃었다.

“경음이 왜 중요한지 알아?”

“네, 알아요.”

“뭔데?”

“가사 전달력이요.”

“오, 잘 아네?”

“네, 대장 선생님께 배웠어요.”

하린이가 두 손으로 김명석을 가리켰다. 김명석은 흐뭇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수철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어.”

“뭔데요?”

“정확한 가사 전달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경음이 잘 잡히면 노래할 때 소리가 코끝에 딱 붙게 돼.”“소리가 코끝에 붙어요?”

처음 들어 보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일주일만 경음 연습하고 노래를 부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야. 발음이 정확해져서 소리가 코끝에 딱 붙는다는 느낌을 말이야.”

“네…….”

하린이는 대답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다.

“이 부분은 다음 연습 때 한 번 더 알려 줄게.”

“네.”

“그리고 아직 소리 내는 근육이 어른들처럼 강하지 않아서 음정이 꽉 조이지 않아. 이것에 대한 연습법도 알려 줄게.”

“네.”

“이건 쉬워.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서 정확한 음정을 내는 거야. 솔에서 두 옥타브 위의 솔까지 한 음 한 음을 누르면서.”

“네.”

“소리를 낼 때는 최대한 길게 소리를 내. 한 호흡을 한 음에 다 쓴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어요.”

수철이 눈을 맞추며 얘기하자 하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리를 낼 때, 아까 약하다고 얘기한 경음을 붙여서 소리를 내면 더 도움이 될 거야. 까― 꺄― 이렇게 길게.”

“네, 알겠어요.”

“한 글자, 한 음, 한 호흡. 기억하고.”

“네.”

수철은 말을 멈추고 김명석을 봤다.

“선생님, 하린이 연습곡은 어떤 곡으로 하세요?”“아까 들었던 휘트니 휴스턴도 하고,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곡을 주로 하지.”“그럼 이번에 새로운 곡을 하나 더 붙여주세요. 테너(Tenor) 곡으로요.”

“테너?”

수철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김명석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남자 음역대 중에 가장 높은 음역대라고 해도 하린이에게 테너 곡을 연습시키라니. 게다가 하린이는 아직 어린 소녀다.

“아니, 왜 갑자기 테너 곡을?”“아까 하린이 노래를 듣다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남자 노래를 시켜 본 거예요. 그래서 다시 들어 보니까, 역시나 낮은 음역에서 호흡 쓰는 법이 미숙하더라고요. 뿌리가 탄탄하지 않다는 말이죠.”“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테너 곡을 연습해 보면 지금 떠 있는 소리를 안정시켜 줄 거예요. 소리를 밀고 가는 힘도 키워 줄 거고, 단전에 힘도 키워 줄 거예요.”

“그래.”

김명석은 수철의 설명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하린이가 아직 어린데 테너의 소리를 따라 하다가 발성법이 바뀌지 않을까? 지금의 장점이 사라질까 봐 좀 걱정되는데. 내가 뭘 우려하는지 알지?”“네 알아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까지 길게 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체크하면서 조절할 거에요.”“그래 알았어. 그럼 어떤 곡으로 시킬까?”“선생님이 적당한 곡으로 정해 주세요. 템포가 느린 곡으로 선택해 주시면 돼요.”

“그래, 알았어.”

수철은 다시 하린이를 봤다.

“하린아.”

“네.”

“너의 소리에 장점이 많고, 또 네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기라서, 며칠만 연습해도 좋은 변화가 생길 거야. 그러니까 너 자신을 믿고 집중해봐.”“네. 열심히 해볼게요.”“그럼 5일 후에 다시 소리를 체크 해보자.”

“네.”

수철이 얘기를 마치자, 김명석이 입을 열었다.

“하린아, 오늘 어머니 오시니?”“네, 이따 오실 거예요.”“그럼. 내려가서 연습하다가 어머니 오시면 같이 점심 먹도록 해.”

“네.”

하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그래, 잘 가. 5일 후에 봐.”

하린이가 나가고 나자 김명석은 수철의 연습법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약사 같았어.”

“약사요?”

“약국에서 증상을 보고 약을 지어 주는 약사 말이야.”

“칭찬하신 거죠?”

“최고의 칭찬이지.”

“그럼 저도 칭찬 한마디 할게요.”

“뭔데?”

“하린이가 음 기억력이 좋더라고요. 선생님 타이틀 곡이 잘 맞을 거 같아요.”

“진짜?”

“네.”

* * *

“여기 주문할게요.”

점심을 먹고 나자, 김명석은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수철을 카페로 이끌었다.

커피를 주문한 후 김명석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린이는 그냥 신인 가수가 아니야.”“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신인 가수가 아니라니요?”“너, 엘진 그룹 알지?”

“대기업이요?”

“그래, 거기서 영상사업단을 준비 중인데, 하린이가 거기의 1호 가수야.”

“1호 가수요?”

김명석이 뒤로 미뤘던 얘기가 이거였다. 굳이 카페까지 와서 얘기하겠다고 했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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