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67화 (67/239)

#67화. 보상과 변화의 시간(4)

“그러니까, 하린이는 기획사 아이돌이랑은 급이 달라. 엘진 그룹의 파워에 비하면 지금 내로라하는 기획사들은 다 아기들이야. 노는 물이 다르지.”

수철은 김명석이 하린이를 특별히 부탁한 이유를 알았다. 하린이의 앨범을 잘 만들어서 대기업의 눈에 들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명석의 영향력이 넓어질 것은 분명했다.

김명석은 능력만으로도 웬만한 중소 기획사의 힘을 넘어선다. 그런데도 그가 회사를 만들지 않는 것은 음악판에서 소위 노른자위만 먹겠다는 것이다.

소속 가수 관리니 회사 운영이니 하는 머리 아픈 일은 하지 않고, 잘나가는 가수나 재능 있는 가수의 앨범을 제작하고 곡을 히트시켜서 가장 알짜배기 뮤지션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영리한 사람이다.

김명석이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몸을 숙여 나지막이 얘기를 이었다.

“하린이가 말이야.”

“……?”

“재능이 있어서 스카우트 된 것도 있지만, 소문에 의하면 엄청난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어.”“그게 무슨 말이세요?”“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려지지 않는 재벌가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있어.”

김명석은 엄청난 비밀 정보라도 말하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쉬쉬하고 있는데, 하린이를 보면 그런 게 느껴져. 매일 오는 엄마란 사람도 아무래도 비서 같아.”

“아…….”

수철은 김명석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얘기다. 하린이는 오늘 처음 만난 연습생일 뿐이다.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수철이 네가 하린이의 보컬 선생님이니까 참고하라고 알려 주는 거야.”

“네.”

“암튼 하린이는 그렇고, 내가 오늘 너에게 얘기하려는 핵심은 이거야.”

“…….”

“사실, 내가 만드는 하린이 앨범은 그냥 구색 맞추기야.”

“구색 맞추기요?”

“그래, 가수로 데뷔하는 명함 정도에 불과해. 하린이가 가수로 활동할 근거를 만들어 주는 거지.”“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가수가 되는데 무슨 근거가 필요해요? 명함은 또 무슨 말씀이고요?”

김명석은 목이 타는 듯 물을 한잔 벌컥 들이켰다.

“잘 들어 봐, 엘진 그룹이 영상사업단을 정식으로 출범시키면 본격적으로 하린이를 월드 스타로 키울 생각이야.”

“월드 스타요?”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하고 시작하는 거야. 엘진 그룹이 손을 대는데, 국내에 있는 기획사들이랑 순위 다툼이나 하진 않을 거야. 덩치에 맞지 않잖아.”

“그렇겠죠.”

“그래서 외국을 타겟으로 놓고 처음부터 하린이를 거기에 맞게 키우는 거야. 나이도 적당하고 잠재력도 있으니까. 그러려면 가수라고 인증할 수 있는 앨범이 한 장 있어야지. 앨범이 한 장 있어야 그걸 근거로 홍보하고 보도 자료도 만드니까.”“아,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수철은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주로 공부하는 것은 영어랑 중국어야. 물론 보컬 연습이랑 악기 연습은 당연히 하고 있고. 전문 코치가 붙어서 운동도 시키고, 엄마라고 하는 비서는 거의 24시간 붙어서 하린이의 건강을 챙겨.”

“대단하네요.”

“그렇지. 그리고 음…….”

김명석은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 내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받는 금액이 평소의 두 배가 넘어. 지원도 무제한으로 받고 있고. 쉽게 말하면 ‘음반만 잘 만들어라, 돈과 지원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이런 뜻이지.”“아……. 선생님께는 좋은 거잖아요?”“당연히 좋지. 그래서 내가 다른 기획사들이랑은 급이 다르다고 얘기하는 거야. 다른 기획사들은 그냥 구멍가게야.”

김명석은 대기업이 키우는 가수의 앨범을 만드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럴 만하다.

얘기를 듣다 보니 수철은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월드 스타는 어떻게 만들겠다는 건가요? 그런 큰 회사에서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가 궁금해요.”“방법은 많아. 엘진 그룹의 홍보를 도맡아서 하는 회사가 바로 ‘금별기획’이야. 자회사라고 할 수 있지. 거기서 제작하는 CF에 하린이 노래를 실을 거야. 그리고 드라마를 만드는 ‘나우앤고’ 프로덕션도 ‘금별기획’과 같은 라인이야. 거기서 제작하는 드라마가 큰 역할을 할 거야.”

“드라마요?”

“그래, 거기서 만드는 드라마가 수출을 많이 하는데, 그 주제곡을 하린이가 부르게 될 거야.”“그렇군요. 그런데 주제곡을 부른다고 월드 스타가 되나요?”

수철은 드라마 주제곡을 불러서 월드 스타가 됐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가수는 생명력이 짧은 거로 알고 있는데, 김명석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가능하지. 미국에선 보통 영화가 히트 치고 영화주제곡이 뜨는데, 우리나라는 그 역할을 드라마가 하고 있어. 드라마가 뜨면 주제곡이 알려지고, 그러면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도 관심이 쏠리는 거지.”

“그래도…….”

“생각해 봐, 어떤 나라는 시청률이 50%를 넘어간대. 그러면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은 인구의 50%가 하린이의 노래를 듣고 있는 거야. 그것보다 더 큰 홍보가 어딨겠어?”“음…… 그건 그렇겠네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매주 1번씩 50화 분량이면, 일 년 동안 인구의 절반이 하린이의 노래를 듣게 된다. 유명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월드 스타까지는…….

“하린이 아직 나이가 어리잖아. 그래서 우선은 전 세계에 하린이의 존재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그다음에 점차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거야. 그들의 목표는 그냥 월드 스타가 아니라, 월드 스타 중에서도 최고의 월드 스타를 만들겠다는 거야.”“아, 그렇군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멀리 보고 오래 투자하겠다는 얘기였다. 대기업다운 생각이다.

“그렇게 띄운 다음에 역량을 넓혀 가며 활동을 시킬 구상인 거야. 한국에서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외국에서도 앨범을 발매하면서 말이야.”

“아…….”

“이 사람들의 최대 강점은 자신들이 만든 영상을 전 세계로 뿌릴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이용하는 거지. 거기에 하린이를 소재로 컨텐츠를 만들어서 붙일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네, 어떤 그림인지 대충 이해가 돼요.”“오케이, 그럼 내가 널 여기까지 끌고 온 본론을 얘기해 줄게.”

“본론이요?”

무슨 본론을 또 얘기하겠다는 건지.

수철의 뚱한 표정과 상관없이 김명석은 자세를 고쳐 앉더니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린이 보컬 트레이닝을 네가 맡게 됐다는 걸 알고 나서, 거기서 너에 대해 좀 알아봤나 봐.”

“저에 대해서요?”

“신상털이 하고 그런 건 아니야. 나한테 선생이 누구냐고 물어서 말했더니 오디션을 좀 봤나 봐.”

“아…….”

“그러더니 대뜸 자신들이 제작할 드라마 주제곡 작곡을 너에게 맡기면 어떻겠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난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아……. 감사해요.”“사실을 말한 거지. 암튼 그래서 내가 수철이 너, 정말 음악 잘한다고 얘기했어.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칭찬을 덧붙였지.”

김명석은 자신이 수철을 칭찬했다는 말을 강조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내가 하게 될 줄 알았거든, 드라마 주제곡 말이야.”

김명석은 살짝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하린이의 앨범을 제작하는 만큼 자신이 드라마 주제곡을 맡게 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아, 괜히 저 때문에…….”“너 때문은 아니야. 보컬 트레이닝 부탁은 내가 한 거고, 관심을 보인 것은 저쪽이 먼저니까. 암튼 내가 적극 추천했다는 건 잊지 마.”

“네.”

“그래서 말인데, 네가 괜찮다면 그 사람을 다음 주에 내 작업실에서 한번 만나 보는 게 어떨까? 사실 오늘 오려고 했지만 내가 너의 스타일을 좀 알잖아. 그래서 너한테 먼저 허락을 받겠다고 했어. 괜히 욕먹기 싫어서 말이야.”“아, 네. 저는 괜찮아요. 작업이 밀려 있긴 하지만 못 할 건 없어요. 그런데 제가 드라마 주제곡은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그건 걱정 마, 내가 레퍼런스를 줄게.”

“네, 감사해요.”

“구성은 간단해, 타이틀로 쓸 주제곡 A, B 버전으로 하나씩 만들고, 배경으로 쓸 음악을 편집해 주면 돼. 배경음악은 주제곡의 테마를 살려야 하고.”“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누구야? 용수철이잖아! 네가 만든 곡은 분명 히트를 할 거야. 그러면 금방 나를 넘어서겠지.”

김명석은 마치 수철의 미래를 보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헐. 선생님, 비약이 너무 심하세요. 전 아직 그런 곡이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께 비하면 아직 병아리예요.”“녀석, 겸손하긴. 이 바닥에서 내 짬밥이 30년이야. 내가 보는 눈이 정확하지.”“……좋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내 느낌엔 너랑 하린이 사이에서 무슨 일이 하나 크게 터질 거 같아.”

김명석은 수철을 빤히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수철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와 하린이 사이에서 일이 터지다니요?”“놀라긴, 대박이 날 거 같다는 말이야. 그냥 대박이 아니고, 초대박 말이야. 암튼 내 느낌이 그래, 둘 다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으니까.”

“아, 네…….”

“암튼 내가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거 절대 잊으면 안 돼!”

김명석은 자신의 공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네, 그럴게요. 감사해요.”“나중에 좋은 일 생기면 나랑 공유해야 해. 내가 너한테 한 것처럼 말이야.”

앞으로 수철에게 작업 물량이 쏟아지면 같이하자는 말이다.

김명석은 하린이의 앨범 제작 의뢰가 들어왔을 때부터 단단히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엘진 그룹이다. 한국의 기획사를 다 합쳐 놓아도 엘진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수철은 김명석의 말에 답했다.

“네, 그럴게요.”

김명석이 수철을 카페에까지 끌고 온 이유, 지금까지 장황하게 하린이가 노래를 하게 된 역사적 배경까지 설명한 이유.

그건 엘진 그룹의 영상사업단에서 수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 * *

“수철아, 녹음을 서둘러야 해.”“네, 바로 할게요.”

“그리고 수철아…….”

방송이 가까워지자 작가가 수철의 자작곡 녹음을 서둘렀다.

사람들은 수철이 녹음을 할지 우려했지만, 수철은 녹음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작곡자라면 자신의 결과물을 음원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 하나의 작품이 모두 마무리가 된다.

작가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곡을 조금도 줄일 생각이 없어?”

또 피디의 푸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누나. ‘Radiate’는 한 마디 한 마디 소리에 다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줄일 수는 없어요. 그러면 곡의 의도가 바뀌어 버리거든요.”“……알았어, 그렇게 얘기할게.”

“죄송해요.”

“어쩔 수 없지, 뭐. 작곡자의 뜻이 그런데.”

당연한 얘기다. 곡을 줄일 수는 없다. 그건 너무 음악을 모르는 얘기다. 더군다나 음악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그런 요구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작가는 몇 차례의 대화 끝에 수철의 뜻을 받아들였다.

수철이 물었다.

“녹음은 지난번 그 녹음실로 가야 해요?”“그렇진 않아, 너희가 편한 데가 있으면 말해. 내가 잡아 줄게.”“네, 알았어요. 그리고 하나 더 부탁이 있어요.”

“부탁?”

“네, 이번 곡은 제 자작곡이니까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하려고요.”“그럼 김명석 선생님은 안 오셔도 되겠네?”“네, 제가 김명석 선생님께도 먼저 말씀드렸어요. 선생님도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했어요.”“알았어.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할게.”

“네, 감사해요.”

수철은 박 대표의 추천을 받아서 가까운 곳에 녹음실을 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녹음을 시작했다.

“오늘은 ‘Radiate’ 한 곡만 녹음하는 거니까, 한 파트씩 나눠서 하자.”

“그래.”

“우선 내가 먼저 들어가서 타악기를 다 깔게. 그다음엔 다혜, 네가 건반으로 화성과 선율을 깔아 줘.”

“알았어.”

“우리가 다 하고 나면, 은주, 네가 소리를 녹음하는 거로.”

“그래, 알았어.”

“시간은 많으니까 충분히 쓰면 돼.”

수철은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자작곡의 녹음을 모두 마쳤다.

방송이 나가기 전에 음원 등록을 해야 하지만, 때를 맞추지는 못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시작됐다.

어쨌든 이로써 오디션과의 공식적인 인연은 모두 끝이 났다. 방송국 사람들과 부딪칠 일은 없다. 수익에 대한 정산만 받으면 된다.

* * *

“용수철. 축하한다. 드디어 네 작업실이 생겼구나!”

수철은 박 대표의 도움으로 작업실 세팅을 모두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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