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77화 (77/239)

#77화. 웰컴 투 코리아(2)

영준이 형은 모두에게 시선을 맞추며 대답했다.

“그래, 멤버들 모두의 모습이 들어간 자켓을 만들거나, 아니면 보컬 음악인 만큼 제시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예술 사진을 만들건가 봐.”“음…… 그건 이율배반이야. 제시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연주자들의 모습을 뺀다는 게 말이 돼?”“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런데 생각해 봐, 이 앨범은 처음 수철에게 온 제안이야. 수철의 곡이 마음에 들어서 제작 의사를 밝혀서 일이 진행된 거잖아? 그만큼 연주자를 위한 앨범이 아니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그래도 이건 좀…….”

영준이 형의 설명에도 데이비드는 여전히 실망스러운 얼굴이다.

영준이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 번째 안도 있어.”

“세 번째 안?”

“사람들 모습은 빼고, 음악 색깔과 가사 내용에 맞춰 추상적인 이미지를 넣을 생각도 있나 봐. 녹음이 끝나고 음원과 가사를 보내면 거기서 들어 보고 미술 작가에게 의뢰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음. 그것도 좋은 방법 같군.”“그래서 이 세 가지를 놓고 선택하겠다는 거야. 멤버들 전체 사진, 아니면 제시 혼자 들어가는 사진, 아니면 추상적인 이미지.”“알았어, 이제 이해가 돼. 괜히 배신감 가질 필요는 없겠어.”“맞아, 그럴 필요는 없어. 어쨌든 여기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해.”

“한국에서?”

데이비드의 물음에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영준이 형에게 쏠렸다.

“그래, 여기 스튜디오에서 멤버들 모두 들어간 사진을 몇 장 찍고, 제시의 단독 사진도 몇 장 찍어서 보내 달래. 그러면 자기들이 모니터링하고, 결정 나면 다시 영국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겠다고 하더라고.”“그러면 영준 너랑 수철, 제시가 영국으로 와야 한다는 얘기네?”“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영국까지 간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거든. 그래서 내 생각엔 제시 혼자 예술 사진을 찍거나, 아니면 추상적인 이미지로 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영준 형의 말에 모두 제시를 쳐다봤다.

“난 상관없어. 영국에 간다면 친구들 만나서 놀다가 오면 되니까. 한두 번 가는 곳도 아닌데 뭘.”

제시는 상관없다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알베르토가 영준이 형을 보며 입을 열었다.

“멤버들 모두 영국에서 찍었으면 좋겠다. 다시 영국에 모여서 공연도 하고 말이야. 그렇지 않아?”

그 말에 영준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난 추상적인 이미지로 가면 좋겠어. 당분간은 장거리 비행은 하고 싶지 않거든.”“하하! 그 마음 이해해. 우리가 결정할 것은 아니니까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그래.”

* * *

다음 날 오후, 멤버들이 모두 녹음실에 모였다.

“이건 악보고, 이건 가사야.”

수철은 새롭게 편곡한 악보와 제시가 쓴 가사를 멤버들에게 나눠 줬다.

앨범은 공연과 달라서 악기 연주가 길면 듣는 사람이 지루할 수 있다. 특히 재즈를 잘 알지 못하면 그러기 십상이다. 그래서 수철은 길이를 간소화해서 다시 편곡했다. 제시의 보컬에 맞춰 멜로디 라인도 조금 손을 봤다.

“너희는 모두 이 곡을 연주한 경험이 있으니까 곡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거야. 제시도 노래를 불러 본 적은 없지만 음악은 잘 알 테고.”

“그래.”

제시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곡의 변화가 좀 있어. 보컬이 들어가고, 공연이 아니라 앨범이니까 거기에 맞춘 거야.”

“오케이.”

“우선, ‘Film Music Without Film’부터 얘기할게. 아무래도 이 곡이 타이틀 곡이 될 거 같아서 말이야.”

“정해진 거야?”

“아직은 아니야, 타이틀은 음반사에서 정할 거야. 거기서 모니터링하고 투표해서 결정한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쪽에서 이 곡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그렇군, 흥행을 위해선 음반사의 판단을 따르는 게 맞는 거 같아. 잘못돼도 거기서 책임을 질 테니까.”“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철이 가사가 적힌 종이를 들어서 흔들었다.

“자, 다들 내가 준 가사 먼저 한번 읽어 봐. 가사는 제시가 쓴 거야.”

샘, 데이비드, 알베르토는 제시를 힐끔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 나눠 준 가사를 읽기 시작했다.

“음…….”

가사를 읽어 내려가는 멤버들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몇몇은 미간이 좁혀졌다. 가사를 다 읽고 나서는 놀랍다는 얼굴로 제시를 바라봤다.

“와! 제시, 놀라워. 너의 가사는 너무 감동적이야. 그리고 너의 예술적 감성은 정말 멋있어.”“그래, 제시, 너의 색깔이 가사에 그대로 묻어 있어. 매력적이야.”

멤버들은 모두 제시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땡큐.”

제시는 짧게 감사를 표했다.

수철은 다시 곡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영준이 형은 수철의 말을 계속 통역했다.

“우선 처음은 제시가 끝까지 부르고, 그다음 반복 때 트럼펫이 한번 쭉 부를 거야. 그리고 세 번째 반복 땐 악보에 표시한 대로 샘, 데이비드, 알베르토, 너희가 섹션을 번갈아 가며 즉흥 연주를 하면 돼.”

“오케이.”

“아무래도 공연이 아니라 앨범이다 보니까 너희 파트를 이렇게 줄일 수밖에 없었어. 이해하지?”“수철 너, 우리를 너무 초보로 보는 거 아냐? 보컬 위주의 앨범인데 그건 당연한 거지. 만약에 농담이었다면 그런 농담은 사양할게.”

알베르토가 장난스레 툭 내뱉었다.

“하하, 미안. 그런 뜻이 아니었어. 만약 내가 너희를 낮춰서 생각했다면 이렇게 한 번 맞춰 보고 녹음하는 모험은 하지 않겠지.”“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어.”“너희가 최고의 뮤지션이라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너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고.”

“오케이.”

알베르토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럼 계속 얘기할게. 너희가 즉흥 연주를 주고받으며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지막 네 번째는 보컬과 트럼펫이 주고받으며 절정을 만들 거야. 그리고 마지막 섹션만 한 번 더 반복해서 극적인 사운드를 만들고 엔딩 하는 거야. 마지막 섹션의 가사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으니까 참고하고.”

“오케이.”

“제시의 마지막 호흡이 끝나면 기다렸다가 다 같이 등장해서 ‘빠바바밤― 빠바바밤. 챙!’ 이렇게 끝나는 거지.”“굿! 구성이 마음에 들어. 입체감도 좋아. 이거 정말 기대되는걸? 음반이 나오면 대박 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좋지.”

데이비드도 칭찬하고 나섰다.

3

“너의 구성은 군더더기가 없어. 아마 한 번만 들어도 너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것 같아.”“나의 손아귀? 하하, 재밌는 표현이네. 연습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얘기해, 수정할게.”“알았어, 그런데 지금도 충분히 퍼펙트해.”

데이비드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다른 두 곡도 설명할게. ‘Two People In London’은……. 그리고 ‘Sleepless In Island’는…….”

수철은 다른 두 곡에 대한 편곡도 설명했다. 멤버들은 진지한 얼굴로 수철의 설명에 맞춰 악보를 체크했다.

편곡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수철은 다시 멤버들을 쳐다봤다.

“샘, 데이비드, 알베르토, 그리고 영준이 형은 잠시만 쉬세요. 나랑 제시가 먼저 노래를 한 번 맞춰 볼게요. 아직 제시가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어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오케이.”

“그리고서 바로 전체 연습하고 녹음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 알았어.”

전체 연습에 앞서 제시는 수철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쭉 불렀다.

“Suppose you don’t have ears―!”

제시는 이미 연습을 많이 한 듯, 수정된 멜로디라인도 문제없이 소화했다.

수철은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음악에 보이스가 잘 붙는지와 제시의 컨디션만 확인했다.

“It’s Like a Film Music Without Film―!”

제시의 노래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앨범이 나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됐다.

제시의 연습이 끝나고 곧바로 팀 연습이 시작됐다. 멤버들이 악기에 손을 대자 제시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Suppose you don’t have ears―!”

멤버들은 수철이 의도한 대로 연주했다. 다 같이 연주하니까, 제시의 보이스는 더 빛을 발했다.

“역시 너희는 대단해, 내 의도를 한 번에 다 파악했어.”

수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씩만 더 해 보자. 그리고 바로 녹음하면 될 거 같아.”

“오케이.”

“그럼 다시 가 볼까? 원― 투― 원, 투, 쓰리, 포.”

수철의 카운트에 맞춰 세 곡을 한 번씩 더 연주했다. 그리고 연습을 마무리 지었다.

* * *

연습이 끝나고 짧게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를 가진 후, 컨트롤 룸으로 이동했다.

부스에 녹음하러 들어가기 전에 수철은 엔지니어에게 진행을 설명했다.

“우선 모두 들어가서 한 번에 쭉 연주를 다 해 볼 거예요. 보컬도 같이 들어가서 가이드를 부를 거고요.”

“네.”

“저도 들어가서 피아노를 쳐야 하니까 엔지니어님께서 소스를 잘 받아 주세요.”“네, 걱정하지 마세요.”“한 곡 녹음하고, 모니터링 한 번 하고. 이런 식으로 세 곡을 쭉 이어서 할게요.”

“네.”

“저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녹음하더라도, 소스는 날리지 말고 보관해 주세요.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니까요.”“네, 날리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면 다 보관할게요.”“그럼. 수고해 주세요. 저는 녹음 다 끝나고 나서 다시 전체 모니터링을 할게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내일은 오전부터 보컬 녹음을 할 거고, 모레는 저랑 엔지니어님이랑 믹싱을 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 * *

멤버들이 모두 부스 안에 들어가서 각자의 악기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샘과 수철은 세팅되어 있는 드럼과 피아노 앞에 앉았다. 제시는 마이크 앞에 섰다.

드디어 수철의 자작곡으로 이뤄진 첫 앨범의 녹음이 시작됐다.

스르르. 츄츄― 츄츄―두둥. 두두두.

빠암―!

모두 자신의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지하게 녹음에 임했다. 전문가들답게 연습 때보다 사운드가 더 조여졌다.

첫 곡을 마치고 수철이 엔지니어에게 말했다.

“한번 들어 볼게요.”

“네.”

엔지니어는 대답하고 녹음 받은 소스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어때?”

음악을 다 듣고 나서 수철은 멤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샘이 손을 들었다.

“다시 한번 해 볼까? 한번 더 하면 좀 더 다이내믹하게 나올 것 같은데.”“그래, 나도 그러는 게 좋겠어. 그럼 다시 한번 가 보자.”

수철의 말에 모두 다시 악기에 손을 올렸다.

수철이 엔지니어에게 말했다.

“한 번 더 가 볼게요. 방금 건 킵(Keep)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멤버들은 다시 한번 연주했다. 방금 전보다 더 집중했다.

하지만 샘은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음…….”

수철은 잠시 망설이다가 샘의 얼굴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

수철은 샘이 다이내믹을 만들려다 역효과가 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드럼이 좀 더 밝았으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때?”“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다이내믹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어두워진 느낌이야.”“내가 듣기엔 그게 문제였던 거 같아.”

“그게 무슨?”

샘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이내믹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많이 치다 보니까 오히려 더 어두워진 것 같아. 지금보다 좀 적게 치면 더 밝고 경쾌해질 거 같아. 무겁지 않고 가볍게 말이야.”“음…… 그럴 수 있겠어. 다시 해 볼게.”

샘은 수철의 의견에 바로 수긍했다. 수철은 이번엔 콘트라베이스를 잡고 서 있는 알베르토를 봤다.

“알베르토. 너도 드럼에 맞춰 베이스를 좀 적게 쳐 주면 좋을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오케이! 그렇게 해 볼게.”

알베르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이 다시 카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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