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웰컴 투 코리아(3)
“그래, 다시 한번 해 보자. 원― 투― 원, 투, 쓰리, 포.”
카운트에 맞춰 샘이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른 악기들도 바로 따라붙었다.
츄르르르― 쿵. 딱!
딴따단. 딴!
빠암―!
“Suppose you don’t have ears―!”
‘Film Music Without Film’은 이렇게 세 번 만에 녹음을 마쳤다. 타이틀 곡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서 녹음에 임했다.
나머지 두 곡도 연이어 녹음을 마쳤다.
“데이비드, 기타 솔로 파트는 컨트롤 룸에서 라인으로 받으면 될 거 같아.”
“오케이.”
보컬 위주의 앨범이다 보니까 기타 솔로 파트에도 리듬 기타를 덧입히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 듣는 사람에게 입체감이 더해진다.
기타리스트가 한 번에 리듬과 솔로를 다 칠 수 없다. 그래서 리듬 기타는 부스 안에서 먼저 녹음하고, 솔로 연주 파트는 따로 받았다. 데이비드는 컨트롤 룸에서 라인으로 기타 연주를 녹음했다.
이로써 3시간여 만에 세 곡의 악기 녹음을 모두 마쳤다.
* * *
녹음이 끝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모여 앉았다.
“한국에서 녹음해 보니까 어땠어?”
수철이 한국에서 처음 녹음해 본 소감을 멤버들에게 물었다. 수철의 물음에 어설픈 젓가락질로 고기를 집던 데이비드가 입을 뗐다.
“나는 솔직히 좀 놀랐어. 녹음실 장비도 모두 최상의 것이고, 부스 안의 공간감도 아주 좋았어. 어떤 면에서는 영국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어.”
데이비드가 극찬했다.
알베르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맞아, 나도 같은 느낌을 받았어. 한국 사람들이 음악을 잘하는 이유가 있었어. 녹음 환경이 최고였어. 영준에게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샘도 나서서 한마디 거들었다.
“난 엔지니어의 능수능란함이 인상적이었어. 손이 빠른 거 같았어. 우리의 요구에 금방금방 잘 대처하는 것이 편하고 좋았어.”
멤버들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수철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야.”
데이비드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쳐 주던 영준이 형이 고개를 돌려 수철을 빼꼼히 쳐다봤다.
“나도 한국에서 녹음해 본 소감을 얘기할까? 처음은 아니고 한 백번쯤 되는데. 세션을 다 합하면 말이야.”“하하! 형은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잡은 녹음실이 어땠나 궁금해서 멤버들에게 물어본 거예요.”“그래, 알아. 어쨌든 나도 소감을 한마디 하자면, 녹음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 구조를 잘 만들어서 움직이는 동선도 편했고, 엔지니어분도 참 친절하셨어. 장비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특히 마이크는 최상이었어.”“네, 보컬 녹음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서, 마이크에 신경을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수철의 말에 영준이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런 부분이 보이더라고. 요즘 음악 하는 사람들은 개인 녹음실을 갖추거나 컴퓨터로 녹음을 다 해 버려서 녹음실이 장사가 안 되잖아. 그래서 악기도 다 치우고 마이크만 달랑 놓고, 성우 녹음하거나 게임 음악 편집하는 거고.”“네, 쌤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그래, 선배님도 안타까워하시지. 암튼, 그런데도 여기는 거꾸로 더 투자해서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소리에 대한 장인 정신이라고 할까. 마인드가 존경스러워.”“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철도 영준이 형의 말에 공감했다. 그런 마인드의 엔지니어와 같이 일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내일 제시의 보컬 녹음은 더 기대됐다.
영준이 형은 계속 자기 생각을 말했다.
“장비에 비해 녹음실 사용료도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사운드가 잘빠지잖아.”“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죠.”“그렇지, 녹음실은 뭐니 뭐니 해도 사운드가 잘빠지는 게 중요하지.”
“네.”
“그런데 넌 이런 녹음실을 어떻게 찾아낸 거야? 나도 처음 와 보는 녹음실인데.”“제가 찾은 건 아니고, 쌤이 정보를 주셨어요.”“그렇군.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셔.”
영준이 형은 박 대표의 발이 넓다는 것에 새삼 감탄했다.
제시는 탁자 위에 팔을 올려놓고, 수철과 영준이 형의 한국어 발음을 신기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영준이 형의 긴 얘기가 끝나자 수철은 제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시, 너는 어땠어?”
“뭐가?”
“한국 녹음실을 경험해 본 소감 말이야.”“난 아직 보컬 녹음을 안 해서 정확한 평가는 어렵지만, 녹음실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어. 특히 조명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줬어. 부스와 컨트롤 룸, 복도의 조명까지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한 느낌이었어.”“느낌이 좋았다는 얘기네.”“맞아, 그리고 벽 컬러 톤도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어. 복도에 있던 고양이도 귀여웠고. 내일 보컬 녹음이 끝나면 고양이랑 놀 생각이야.”
제시는 멤버들과 다른 시각의 평가를 했다. 어쨌든 제시도 녹음실이 꽤 마음에 드는 표정이었다.
말없이 대화를 듣고 있던 데이비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수철, 네가 최고의 프로듀서라고 생각해. 빨리 캐치하고, 빨리 솔루션을 제시했으니까. 위대한 마에스트로 같았어.”“하하. 너무 지나친 칭찬인데?”“네가 겸손한 거지.”
이때 샘이 끼어들었다.
“수철은 그러고도 남지. 얘는 음악은 뭐……. 말할 게 없잖아. 덤비면 우리만 손해지, 뭐.”
“하하, 뭐?”
수철이 어이없는 얼굴로 웃자, 이번엔 옆에 앉은 알베르토가 어깨를 기대어 왔다.
“이봐, 수철.”
“응?”
“다른 뮤지션이 부족하더라도 한 번씩 져 주는 미덕을 배워.”“무슨 소리야? 부족하다니? 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네가 너무 완벽해서 하는 말이야. 난 가끔 네가 음악을 얘기할 때 무섭거든. 나도 어디 가서 음악으로 꿀린 적이 없는데, 너랑 같이할 때는 정말 추워. 그래서 앞으로는 코트를 준비할 생각이야. 하하.”“알았어, 나도 조심할 테니까, 너도 그런 농담 좀 조심해 줘. 나도 추워지니까.”
“…….”
알베트로는 대꾸 없이 씨익 웃더니 주먹을 내밀었다.
수철도 씨익 웃고는 보를 내밀었다.
* * *
“안녕, 수철.”
“어서와, 제시.”
다음 날 오전, 보컬 녹음을 위해 수철과 제시가 다시 만났다.
수철은 전날 영준이 형을 통해 녹음 순서를 제시에게 알려 줬다. 그리고 둘만의 녹음을 위해 오늘은 영어 연습도 좀 하고 나왔다. 하지만 소통은 여전히 힘들었다.
번역기를 돌리고, 영준이 형과 전화 통화를 하고 했지만, 번거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정확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포기했다.
급한 마음에 단어와 바디랭귀지를 섞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로소 소통이 이뤄졌다.
급하면 어떻게든 된다. 눈짓과 몸짓만으로도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다행히 엔지니어가 유학파라서 녹음에 큰 지장은 없었다.
“밥을 먹고 시작하자.”
“오케이.”
녹음을 시작하기 전, 먼저 식사를 했다. 수철은 노래하기 전에 배가 든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시는 오히려 배가 부르면 소리가 안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시에게 전복죽을 추천해 두 그릇이나 먹였다. 그나마 전복죽을 제시가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노래는 체력이다. 힘이 달리면 노래를 할 수 없다. 게다가 오늘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두 번은 없다. 오늘 부른 노래가 앨범에 실린다. 프로듀서가 예민해지는 건 당연하다.
녹음실에 들어와 가볍게 차를 마신 제시가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어제는 가이드지만, 오늘은 본 게임이다. 앨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보컬 녹음이다.
수철은 프로듀서답게 제시를 주시하며 수시로 체크했다.
“컨디션은 어때?”
“난 계속 좋아지고 있어. 넌?”
수철은 보컬을 신경 쓰는데, 제시는 오히려 프로듀서의 컨디션을 물었다.
‘난 잘 부를 거니까 네가 녹음을 잘 이끌어야 해.’ 그렇게 들렸다.
수철이 가벼운 미소로 제시와 눈을 마주쳤다.
“나도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그래, 난 준비가 됐어.”“오케이. 시작하자.”
수철의 말에 제시가 부스 안에 들어가서 헤드폰을 썼다. 그리고 살짝 긴장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섰다.
제시의 긴장감은 실제 긴장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야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제시는 자신의 소리를 컨트롤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독창적인 소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철은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는 제시를 보며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준비되면 사인을 줘. 그러면 반주를 틀어 줄게.”
“오케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제시가 고개를 들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제시가 큐사인을 주자, 수철은 엔지니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엔지니어가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반주가 헤드폰으로 흘러나가자 제시가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Suppose you don’t have ears―!”
제시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서 소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게 끌어 올린 소리는 제시의 목과 머리와 입과 눈을 거치면서, 제시만의 고유한 색채로 바뀌어 부스 안에 울려 퍼졌다.
엔지니어의 입이 벌어지는 모습이 부스의 유리창에 비쳤다.
“It’s Like a Film Music Without Film―!”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제시의 집중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폭발했다. 덕분에 제시는 쉬지 않고 계속 노래했다.
“암……. 뭔가 좀 부족해. 다시 불러 볼게.”“그래, 힘 빼고 편하게 불러 봐.”
“오케이.”
수철은 제시의 보이스에 만족했다. 하지만 제시는 더 좋은 소리를 뽑아내려고 몇 번을 반복해서 노래했다. 엔지니어가 지칠 정도였다.
결국, 제시의 체력이 바닥나고서야 녹음은 끝났다.
부스에서 나온 제시가 물었다.
“수철, 네 생각은 어때? 내 보이스 말이야.”“난 만족해. 소리가 잘 들어 왔어.”“내일 믹싱 할 소스는 충분한 거 같아?”“응, 네가 부른 보이스 트랙 중에 좋은 것만 골라서 세 개의 트랙으로 만들어 놨어.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내일 편집할 거야.”“오케이. 너만 믿을 게. 나도 내일 믹싱에 참여하고 싶은데, 영준이 너무 많은 공연을 잡았어.”
제시는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자신의 소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내일 믹싱하고 저녁에 들려줄게. 그때 들어 보고 아쉬운 점이 있으면 얘기해. 그럼 하루 정도는 더 시간을 만들어 볼 수 있어.”“그래, 고마워. 하지만 네가 그냥 마무리해도 돼. 널 믿으니까.”“오케이. 그렇게 할게.”“그리고 음정은 손을 안 댔으면 좋겠어. 지난번 녹음에서 음정에 손을 댔더니 내 소리 같지 않아서 이상했어.”“그건 걱정 마. 나도 인위적인 소리는 싫어하니까. 그리고 내가 오늘 보이스를 받으면서 체크했는데, 음정에 손댈 정도의 문제는 없었어. 귀에 거슬리는 음(音)은 없었다는 얘기야.”“그렇다면 다행이야. 수철. 너는 좋은 프로듀서야.”
음정만큼 중요한 건, 보컬의 전달력이다. 그래서 보컬은 필(Feel)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귀에 거슬릴 정도로 음이 엇나간 게 아니면 수철은 손을 댈 생각이 없다.
* * *
수철은 다음 날 엔지니어와 둘이 앉아서 믹싱 작업을 시작했다.
“악기 트랙에서 드럼을 먼저 볼게요.”
“네.”
악기 트랙을 열어 편집할 부분을 먼저 체크했다. 드럼과 베이스를 체크한 후, 악기 간의 발란스를 맞춰 다시 사운드를 조율했다.
악기 편집을 마치고, 그 위에 제시의 보이스를 올렸다. 제시가 녹음한 세 개의 트랙을 교차해서 좋은 부분을 골랐다. 하지만 세 트랙의 보이스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잘 부른 한 트랙을 선택해서 믹싱을 진행했다.
좋은 연주자와 좋은 보컬 덕분에 최종 믹싱의 결과물이 성공적으로 나왔다. 입체감이 살아 있고, 모든 악기와 보이스가 꿈틀거리며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수철은 믹싱을 마무리 짓고 영국 음반사 담당자에게 음원을 보냈다. 보내기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수철의 앨범 프로듀싱은 모두 끝이 났다.
* * *
“수철아,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요?”
박 대표는 고민 끝에 수철이 제안한 앨범의 접근법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