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80화 (80/239)

#80화, 3인 3색

“그러니까, 쌤이랑 수철이랑 저랑 셋이서 프로젝트 앨범을 하자는 얘기인 거죠?”

박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던 다혜가 되물었다.

“그래, 단순히 작곡자로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제작자로 참여하는 거야.”“뭐가 다른 거예요?”“만약에 각자 앨범을 낸다고 하면 3장을 내야 하잖아?”

“네.”

“그 3장을 1장에 담는다고 생각하면 돼. 작업실을 3명이 나눠서 쓴다고 생각하면 비슷한 거지.”

“아.”

대답은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다.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없으니까 개념이 없는 건 당연하다.

“그건 알겠는데 제작자로 참여하면 마인드가 달라지나요?”“마인드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다르지. 진행도 혼자서 다 해야 해. 가수 뽑고, 녹음비 내고, 홍보 계획 세우고, 자켓 만들고, 유통사 잡고, 앨범 발매하고, 관계자 만나고, 쇼케이스 열고. 등등.”

박 대표의 말이 쌓여 갈수록 다혜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헐, 그런 건 쌤이 다 해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내가 왜?”

“내가 왜라니요? 수철이랑 저는 그건 거 할 줄 모르잖아요.”“처음부터 말했잖아. 이번 프로젝트는 제작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거라고.”“그러니까 쌤이 도와주셔야죠. 처음부터 걸으라고 아기 등 떠미는 엄마가 어딨어요?”“당연히 도와주지. 설마 내가 너희들 그냥 등 떠밀까. 하지만 난 방향을 잡아 주고 조력자 역할만 할 뿐이지 걸음마는 너희 스스로 해야 해.”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정확한 말이어서 빈틈이 없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대답하면서 내심 박 대표가 조력자 역할을 많이 해 주길 기대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이런 발상을 하셨어요?”“내가 한 게 아니라 수철이가 한 거야.”

“수철이가요?”

“그래, 제작 전 과정을 경험해 보고 싶은 거지. 그래서 구체화시키다 보니까 너를 참여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온 거고.”“수철이는 음악 재능도 뛰어난 애가 제작까지 관심을 두나니 욕심도 많네요.”“욕심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 같은 거지.”

박 대표는 수철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물론 다혜도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수철이 너무 앞서가니까 괜히 핀잔처럼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절 참여시키는 건 누가 얘기한 거예요?”“우리 둘 중에 하나겠지.”

“누굴까?”

다혜는 혼자 말을 하며 장난스러운 눈으로 박 대표를 바라봤다.

이번엔 박 대표가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생각 없으면 인제 그만 가자.”

박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액션을 하자 다혜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전 무조건 하죠.”

“진짜?”

“네, 당연히 해야죠. 쌤에게 배율 좋은 기회인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잘 생각했어.”

박 대표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다혜를 마주 봤다.

“구체적인 계획은 수철이와 다 같이 모였을 때 얘기할 테니까 우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앨범은 언제 나오는 거예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앨범이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다니, 역시 초짜답다.

“앨범은 언제 나올지 계획 없어. 다음 달에 나올 수도 아니면 내년에 나올 수도 있어.”

“……?”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짬을 내서 틈틈이 진행할 거야. 앨범을 내는 것보다 제작 과정을 익히는 게 목적이니까.”“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그렇다고 일은 안 하고 마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건 아니야. 순서는 정해 놓지만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 그냥 넋 놓고 놀자는 말은 아니니까.”“네, 그럼 곡은 몇 곡 만들어야 해요?”“너 한 곡 쓰고, 나 한 곡, 수철이 한 곡. 그렇게 한 곡씩 참여하는 거야. 싱글 앨범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각자의 곡은 각자 맡아서 프로듀싱하는 거고.”“전 프로듀싱은 잘 모르는데…….”“걱정 마, 내가 도와줄 거니까.”

다혜는 하겠다고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다 같이 모이면 우선 제작 기획안부터 만들 거야.”

“기획안이요?”

“그래, 제작을 위한 가이드라고 생각하면 돼. 전체 과정을 들여다보고, 우리 상황에 맞춰서 짜는 거야.”

“…….”

“말했다시피 앨범 발매보다 제작의 전체 과정을 너희에게 알려 주는 게 목적인 프로젝트니까.”“저보다는 수철이겠죠.”“아니야, 너도 알아야 할 부분이야. 남이 주문하는 곡만 쓰는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색깔 있는 작품을 만들어서 발표하려면 말이야. 그래서 너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네.”

박 대표는 경험 많은 제작자의 연륜답게 다혜의 눈높이에 맞춰 핵심을 짚어 줬다.

처음 박 대표가 프로젝트 접근법을 고민하다 다혜를 선택한 의도이기도 했다.

다혜도 공감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표는 시선을 다혜에게 고정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제작은 처음에 밑그림을 잘 그리는 게 중요해. 그래서 기획 단계가 가장 중요한 거야.”

“네.”

“먼저 기획안을 잘 만들어 놓고, 앨범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확인하고 수정해 나갈 거야.”

“네.”

“기획안이 일종의 표지판이라고 생각하면 돼. 제작이라는 게 하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고,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어서 방향을 잃을 때가 많거든. 그래서 기획안을 보면서 처음 의도를 계속 확인하고 리마인드하는 거야. 기획안대로 하지 않아서 앨범을 다 만들어 놓고도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거든.”“아, 그러면 기획안은 신중하게 만들어야겠네요?”

“물론이지.”

박 대표는 당연하다며 눈에 힘을 주어 대답했고, 다혜는 벌써부터 박 대표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제야 배울 것이 많다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쌤, 말씀 꼭 기억할게요.”“가끔 제작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제작 판에 뛰어들어서 급한 마음에 제작 기획안 대충 만들어 놓고 덤벼드는 경우가 있는데, 앨범 다 만들어 놓고 처음 의도와 달라져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아.”

“아…….”

“뒤늦게 후회해도 시간과 돈과 정성을 다 날린 상태가 되는 거지. 처음 제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겪는 실수야. 난 그걸 알려 주려는 거야. 네가 음악을 계속하다 보면 앞으로 부딪칠 일들이니까.”

“감사해요.”

다혜는 박 대표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박 대표가 사례를 들어 주면서 설명을 해 주니까 귀에 쏙쏙 들어왔다.

오랜만에 박 대표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히 가수 앨범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셋 모두가 작곡자 겸 프로듀서 겸 제작자가 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야.”

사실 지금 이 말이 수철의 요청에 대한 박 대표의 답이었다.

박 대표에게 제작을 배우겠다는 수철의 요청에 맞춰 박 대표가 생각해낸 최초의 접근법이었다.

처음엔 둘이었는데 다혜를 참여시켜서 한 명 더 늘어난 거뿐이다.

다혜는 얘기를 들을수록 궁금증이 늘어났다.

“아까 말씀하신 비용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똑같이 3분의 1씩 내는 거야. 진행비, 연습비, 녹음비, 믹싱비, 마스터링비, 자켓비, 앨범 프레싱 비, 그리고 홍보비까지 제작비 전체를 3으로 나눈다고 생각하면 쉬울 거야.”

다혜는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박 대표의 설명을 듣는 순간 돈 들어갈 때가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박 대표가 돌을 하나 더 얹었다.

“각자의 곡에 맞는 가수도 각자 한 명씩 뽑는 거고.”“가수는 한 명이 해도 되지 않나요?”

다혜가 좀 편하게 가면 안 되냐는 애절한 시선을 날렸다.

“말했잖아, 각자 제작자로서 자기 앨범을 만든다고 생각하라고.”“네, 세 명이면 앨범의 통일성이 사라질 거 같긴 하지만……. 알겠어요.”

다혜는 반발은 못 하고 꿍얼거리듯 대꾸했다.

“제작의 방법은 알려 주겠지만, 내가 다 해 주지는 않을 거야.”“……네, 그런데 대충 돈이 얼마나 들까요?”

다혜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기획안 짜면서 적절한 예산을 잡아 봐야지. 우선 진행과 연습, 녹음에 들어갈 비용을 먼저 잡다 보면 대충 윤곽이 나올 거야.”

“네…….”

“홍보비는 천차만별이니까, 각자 상황에 맞춰서 생각해 봐야지. 중요한 것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노출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돼. 여기서 노하우가 생기는 거니까.”

“네, 알겠어요”

박 대표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다혜와 눈을 맞췄다.

“다혜야, 돈 걱정 너무 하지 마. 내가 적당한 선에서 조절할 테니까.”

“……네.”

“앨범을 기획할 때 정해진 예산이라는 건 없어. 대충 머릿속으로 잡아만 놓고 시작하는 거야. 얼마가 들어가겠다가 아니라, 얼마에 맞춰서 끝내겠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접근법이야.”

“……네.”

“얼굴 펴, 설마 내가 너희에게 은행에서 대출받아 오라고 하겠니? 최소의 비용으로 진행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제작비를 말하는 건 제작자 마인드를 알려 주려는 의미니까.”

“네,알겠어요.”

그제야 다혜의 얼굴이 좀 밝아졌다.

박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뭘요?”

“너희가 나보다 재정 상태가 좋다는 거. 하하!”

박 대표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수철과 다혜는 음원 판매와 저작권료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물론 따져 보면 박 대표의 자산이 더 많겠지만, 재정 상태로 보면 수철과 다혜가 더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게다가 수철은 음악 편곡과 시엠송 작곡, 레슨 등으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자세한 건 진행하면서 차츰차츰 알려 줄게. 지금은 내가 설명해도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들 거야. 그래서 직접 부딪쳐 봐야 해. 부딪치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빨라.”“네, 열심히 배울게요.”“그래, 시간도 넉넉하니까 부담 느낄 필요 없어.”

“네.”

“어쨌든 한번 시작하면 되돌리는 거 없는 거야.”“네, 열심히 해 볼게요.”

“그래, 파이팅!”

“네. 파이팅.”

박 대표가 주먹을 내밀자 다혜도 주먹을 쥐어 부딪쳤다.

“그런데 제가 수철에게 걸림돌이 되진 않겠죠?”“무슨 소리야? 네가 왜 걸림돌이 돼?”“쌤이 수철에게 신경 많이 쓰는 거 알아요. 그리고 수철이 점점 더 유명해질 거란 것도 알고요.”

“그런데?”

“그래서 왠지 조심스러워요. 수철에게 도움이 되고 싶지, 걸림돌이 될 생각은 없거든요. 재능 차이가 너무 나기는 하지만요.”“괜한 걱정이야. 수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은 각자의 개성이 있는 거야. 특히 작곡의 영역은 더 그렇고.”

“…….”

“넌 너만의 색깔이 분명한 녀석이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해?”“……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쌤.”

다혜는 박 대표의 말에 감동받았다.

박 대표도 수철에 대한 다혜의 진심을 느꼈다.

그건 박 대표도 다혜와 같은 마음이다.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녀석, 은근 멋있네. 다 컸어, 어른이야.”“쌤! 제 나이가 몇 살인데요?”

“몇 살인데?”

* * *

수철이 하린이 레슨을 하러 김명석의 작업실로 가고 있을 때 작업실에서는 최 팀장과 김명석이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트레이너 선생님은 없었어요. 하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기도 하고요.”

김명석은 하린이가 수철을 제일 좋아한다는 말이 살짝 섭섭했다.

하린이 앨범에 들어갈 곡을 쓰고, 프로듀싱을 하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철은 자신도 좋아하기에 최 팀장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맞습니다, 용수철은 보컬의 능력에 맞게 소리를 정확하고 명확하게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저도 볼 때마다 놀라고 있어요.”“네, 제가 보기에도 용수철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조련사 같아요. 하린이의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니까요. 회사에서도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제가 추천을 잘 드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김명석은 수철을 칭찬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선생님 덕분입니다. 저희도 김명석 선생님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하하. 이거 뻘쭘하군요. 제 자랑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김명석은 생각보다 과한 칭찬에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닙니다! 자랑하셔야죠, 당연히 그래도 됩니다.”“하하, 이거 참 민망하네요.”“그래서 말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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