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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돌아왔다-81화 (81/239)

#81화. 마지막 레슨(1)

“용수철 선생님이 하린이 레슨을 좀 더 연장해 주셨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맨 처음 하린이의 레슨 기간을 한 달로 정한 건 김명석이었다.

하린이의 녹음 스케줄에 맞춰 그렇게 정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달 경과를 보면서 레슨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하린이가 놀랄 정도의 빠른 성장을 보이자 수철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졌고, 금별기획에서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다.

하린이의 스케줄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전적으로 맡겨 놓고 있던 보컬 레슨까지 관여하기 시작했다.

김명석은 기분이 나빴지만 금별기획이라서 그냥 넘어갔다.

어차피 자신은 시간에 맞춰서 앨범만 잘 만들어 내면 되는 일이다.

하린이는 금별에서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1호 가수고, 미래가 열려 있는 아이다.

괜히 척을 질 이유가 없다.

하린이의 레슨 연장을 묻는 최 팀장에게 김명석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무래도 직접 말씀하시는 게 좋겠어요. 제가 드릴 답변은 아닌 거 같아요.”“그건 알지만, 선생님께서 도움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혹시라도 용수철 선생님이 망설이시면 김명석 선생님께서 결정에 도움을 주셨으면 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최 팀장이 김명석을 찾아온 목적은 이거였다.

하린이를 가르치는 기간을 연장하고 수철과 계속 친분을 만들어 갈 작정이었다.

물론 하린이가 수철을 만나서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게 가장 큰 이유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목적도 숨어 있었다.

하린이의 선생에서 드라마 음악 작곡가로 그리고 금별기획의 천재 프로젝트를 함께할 아티스트.

이렇게 연결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최 팀장의 적극적인 부탁에 김명석은 난감해졌다.

“글쎄요, 수철이가 남의 말을 듣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선생님이 그렇게만 해 주시면 나중에 섭섭지 않게 사례도 하겠습니다.”

“음…….”

“선생님은 용수철 선생님과 특별한 친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최 팀장이 너무 막무가내로 부탁을 하니까 김명석은 정말 수철을 설득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의 금별기획이니 적지 않을 텐데……. 돈보다 일거리를 달라고 할까? 음…….’

김명석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최 팀장은 김명석의 눈치를 살피며 하린이 얘기까지 꺼냈다.

“하린이가 용수철 선생님을 잘 따르고, 무엇보다 레슨받는 게 재밌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속하고 싶다고 하고요.”

김명석도 하린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건 안다.

그래서 수철이 계속 맡아서 더 성장시켜 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면 보컬 트레이너로 수철을 영입한 김명석의 입지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그런데 수철은 오늘을 마지막 레슨으로 생각한다.

지난번에 슬쩍 물어봤을 때도 수철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음, 어쩐다……. 나도 계속 보고 싶긴 한데.’

최 팀장은 수철이 뛰어난 보컬 트레이너라고 칭찬하며 하린이의 레슨을 얘기하지만, 그건 수철이 가진 재능의 일부분일 뿐이다.

김명석은 수철의 작, 편곡 능력을 알고 있다.

소리에 대한 접근법이 범인과는 다르고, 감각적인 면모도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수철은 천재가 맞아.’

그걸 아는 김명석은 수철과 친분을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 가고 싶다.

천재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며 영향을 받고 싶다.

그래서 김명석은 자신에게 들어온 편곡을 수철에게 넘겨주며 친분을 더 쌓으려고 했다.

그런데 수철은 그것도 거절했다.

계획한 일들이 많다는 이유였다.

“이러면 어떨까요?”

“어떻게요?”

“팀장님이 먼저 말씀을 해 보시고, 수철이 망설이는 기미가 보이면 그때 제가 다시 말해 볼게요. 아시겠지만 수철이가 보기보다 굉장히 단호한 성격이거든요.”“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용수철 선생님도 하린이에게 애착이 있다고 믿습니다.”“하하, 네. 그렇겠죠.”

김명석은 최 팀장의 막무가내 화법에 멋쩍게 웃었다.

“수락만 하시면 레슨비도 지금보다 두 배로 올릴 생각입니다.”

“네? 두 배요?”

김명석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지금도 업계에서 최고의 금액을 받고 있는데 두 배라니.

이건 생태계 교란 행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리 돈 많은 회사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 지나친데?’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배가 좀 아프기도 했다.

자신도 받은 적이 없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나도 좀 더 챙겨 주겠지?’

막연한 기대도 올라왔다.

이때.

끼이익.

수철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간에 늦어서 다급하게 뛰어온 모습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김명석이 벽에 붙은 시계를 봤다.

“뭘 그렇게 뛰어와? 이제 겨우 5분 지났네.”“죄송해요, 어디 좀 들렀다 오느라 늦었어요.”

이때 안쪽에 앉아 있던 최 팀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용수철 선생님, 안녕하세요!”“어? 팀장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수철도 같이 인사했다.

그러자 최 팀장은 자신의 자리로 오라며 손을 뻗었다.

“선생님. 잠시 이쪽에 오셔서 차 한 잔 하시겠어요?”“아니, 전 괜찮아요.”“한 잔 마시면서 드릴…….”“레슨 끝나고 마실게요. 지금 좀 늦어서요.”

수철은 최 팀장을 말을 끊고 하린이가 기다리는 컨트롤 룸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최 팀장이 다시 다급하게 말을 붙였다.

“선생님, 레슨하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네? 알겠어요, 잠시만요.”

수철은 최 팀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컨트롤 룸에 들어가 하린이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 * *

김명석은 최 팀장과 수철이 편하게 대화하라고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복도 끝 쪽에서 벽에 귀를 붙이고는 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내가 저럴 줄 알았어.’

둘의 대화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자 김명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레슨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예상대로 수철은 단박에 거절했다.

김명석이 기대했던 사례비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시면 안 될까요? 레슨비도 두 배로 올려 드리려고.”

“팀장님.”

수철이 레슨비 얘기를 꺼내는 최 팀장의 말을 끊었다.

거절하는데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최 팀장이 불편했고, 이럴 시간에 하린이 마지막 레슨에 집중하고 싶었다.

최 팀장이 한풀 기가 꺾인 얼굴로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팀장님은 보컬 트레이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느닷없는 수철의 물음에 최 팀장이 빤히 쳐다봤다.

아무 답변도 못 하고 뻘쭘한 표정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수철이 자신에게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제 생각에 보컬 선생님은 모니터링하는 사람입니다.”

“모니터링이요?”

“네, 학생을 유심히 지켜보는 거죠. 소리 내는 테크닉을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소리를 찾아가게 방향을 잡아 주는 거죠. 그래서 좋은 선생은 학생을 깊이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도 실력이 늘게 하려면 테크닉을 가르쳐야…….”

수철은 말을 얼버무리는 최 팀장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선생은 가르쳐 주는 것보다 지켜보는 게 우선이에요. 유심히 지켜봐야만 그 학생이 뭐가 부족한지,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죠. 학생이 선생에게 집중하기 전에 선생이 학생에게 먼저 집중해야 해요.”

“……!”

김명석의 말대로 수철은 명확하고 정확했다.

너무 명확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줘라.’최 팀장에겐 그렇게 들렸다.

그 정도가 최 팀장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였다.

‘휴…….’

멀리서 둘의 대화를 듣던 김명석도 몸을 움찔거렸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컬 트레이너의 정체성을 말했기 때문이다.

‘역시 대단해, 세상에 어떤 스물한 살이 저런 말을 하겠어?’

놀랍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수철은 아무 대꾸 없는 최 팀장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게 모니터링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학생은 선생의 숨소리만 들어도 집중하게 됩니다. 서로 교감하게 되는 거죠.”

“……그렇군요.”

최 팀장이 무겁게 입을 떼서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레슨을 시작할 이유도 없는 거죠.”

“그 말뜻은?”

“하린이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린이는 아주 훌륭한 학생입니다. 감각도 좋고, 집중력도 뛰어난 완벽한 학생이에요. 이번 하린이의 빠른 성장도 제가 잘한 것보다 하린이가 원래 그런 재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저는 조율만 했을 뿐이에요.”

이 말을 들으니까 최 팀장은 수철이 더 욕심났다.

완벽한 선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철이 너무 단호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동안 경력만 보고 선생을 선택했었는데, 이제 좋은 선생 보는 눈이 좀 생길 거 같군요.”“참고만 하세요. 이건 그냥 제 생각이니까요.”“사람들은 하린이의 성장에 놀라워합니다. 더불어 용수철 선생님의 레슨 방식에 대해서 감탄하고요. 알고 계신 가요?”“저보다 하린이의 재능에 더 감탄하셔야죠. 전 그냥 조력자 역할만 했으니까요.”“끝까지 겸손하시네요.”“겸손이 아니라 사실인데…….”

수철이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최 팀장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어쨌든 지금까지 하린이의 보컬 방향이 잘 잡혔다는 말씀이신 거죠?”“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갈수록 하린이의 보컬은 더 빛이 날 거라 생각해요.”“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기대되네요. 아니, 기대가 아니라 솔직히 말만 들어도 흥분됩니다.”“네, 기대할 만하실 거예요.”“선생님과 대화할수록 오늘이 마지막 레슨이라는 게 너무 아쉽네요.”

수철을 바라보는 최 팀장의 눈에는 좋은 선생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욕구불만이 섞여 있었다.

수철은 흔들리지 않고 마침표를 찍었다.

“제가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딱 여기까지만 하겠다고요. 그리고 오랜 시간 붙어 있다고 해서 계속 발전하는 것도 아니에요.”“그래도 계속하면 아무래도 더…….”

“팀장님.”

“네?”

수철은 인제 그만 얘기하고 싶었다.

“나중에 하린이에게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제가 먼저 말씀드릴게요.”

‘캬아―!’

복도 끝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김명석의 얼굴에서 사이다가 터졌다.

‘역시 용수철! 명확해, 저런 게 진짜 선생이지! ‘학생의 AS는 내가 결정한다!’ 멋있다, 멋있어!’

그러면서 물욕에 넘어갔던 자신을 잠시 반성했다.

김명석은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세우며 수철을 향해 소리 없이 박수를 쳤다.

“그럼 전 이만…….”

수철은 어물쩍거리는 최 팀장을 뒤로하고, 하린이가 기다리는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다.

* * *

“노래부터 들어 볼까?”

“네.”

수철의 마지막 레슨이 시작됐다.

하린이는 부스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수철은 그동안 하린이가 불렀던 연습곡을 모두 체크했다.

하린이도 그동안 발전된 모습을 모두 보여 주려는 듯 진지하게 자신의 소리를 냈다.

마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수철이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배려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린 선생과 학생은 그렇게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넌 정말 훌륭한 학생이야. 나뿐만이 아니라 널 가르친 모든 선생님이 널 자랑스러워할 거야.”

수철은 노래를 마치고 컨트롤 룸으로 돌아와 마주 앉은 하린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눈빛을 반짝였다.

웃는 얼굴엔 깊은 미소가 파였다.

하린이도 수철의 칭찬에 입이 벌어져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감사해요. 헤헤, 모두 선생님 덕분이에요.”

불과 한 달의 짧은 시간이지만 하린이는 노래뿐만이 아니라 인성도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후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수철이 하린이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국악과 클래식의 발성이 왜 다른지 알아?”

하린이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수철이 이런 질문을 던진 건, 마지막 레슨에서 하나라도 더 알려 주고 떠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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