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마지막 레슨(2)
“저도 궁금해요. 왜 다를까요?”
하린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수철은 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무대를 생각해 봐, 클래식을 하는 성악가가 서 있는 무대와 국악을 하는 소리꾼들이 서 있는 무대를.”
“……?”
하린이는 계속해서 멀뚱거렸다.
선뜻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철이 다시 눈높이를 맞춰 설명했다.
“클래식은 밀폐된 공간에서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무대의 맞은편에 앉아서 듣고 있잖아.”
“네, 맞아요.”
“그런데 국악은 어때?”“국악은 탁 트인 야외에서 노래하는 것 같아요. 옆에서 아저씨가 북을 치면서 장단을 맞추고요.”“그래, 잘 알고 있네. 클래식과 달리 국악은 주로 야외에서 공연하지. 관객들은 마주 앉는 게 아니라 빙 둘러앉아 있고.”
“네, 맞아요.”
이제야 하린이는 머릿속에 클래식 무대와 국악 무대가 자세히 그려졌다.
“이제 두 무대의 차이점을 알겠어?”
“네.”
“일단 두 무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수가 공간 안에 있느냐, 아니면 야외에 있느냐는 거야. 물론 성악가도 야외에서 노래할 때가 있고, 소리꾼들도 건물 안에서 소리를 할 때가 있지만 주로 클래식은 공간 안, 국악은 공간 밖에서 하지.”“네, 그런 거 같아요.”
하린이는 대답하면서도 질문의 의도가 점점 궁금해졌다.
이유를 알 듯 모를 듯했다.
수철의 질문은 어떻게 다르냐가 아니라 왜 다르냐였기 때문이다.
“무대는 그렇고, 관객은 어때?”“클래식은 마주 앉아서 듣고, 국악은 빙 둘러앉아서 들어요.”“그래, 정확해. 그럼 이렇게 서로 다른 무대와 서로 다른 관객들에게 소리를 전달할 때,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
“…….”
“서로 다른 두 무대에서 노래할 때 가수는 어떤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게 좋을까?”
이거였다.
수철이 하린이에게 알려 주려고 하는 것이.
공간 안과 밖.
마주 보고 앉은 관객과 빙 둘러앉은 관객.
이렇게 서로 다른 무대에서 가수는 어떻게 관객에게 소리를 전달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음…….”
수철을 보는 하린이의 초점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서로 다른 두 무대를 떠올렸다.
두 무대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성악은 두 손을 모으고 부르고 국악은 부채를 들고 있는 거? 그런데 이건 발성의 차이가 아니잖아? 그럼 성악은 우렁차고 국악은 날카로운 거?’
뭔가 알 듯하면서도 명확하게 차이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구분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아, 어려워. 영상을 보면 금방 알 거 같은데…….’
하린이가 이러는 건 당연했다. 순간적으로 두 가수의 차이를 구분해 내는 건 하린이에게는 아직 벅찬 일이다.
이건 순발력 테스트도 아니고, 관찰력 테스트도 아니다.
수철은 처음부터 하린이가 어려워할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묻는 이유는 하린이의 머릿속에 정반대의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심어 주려는 뜻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 그 차이점을 알려 주면 그 이미지가 입체감 있게 각인되고 기억되기 때문이다.
“두 명의 가수가 내는 발성이 다르다는 건 알겠지?”“네, 그건 알겠어요.”“그럼 한번 상상해 봐. 네가 성악가라고 가정하고, 갇힌 공간 안에서 맞은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의 소리를 잘 전달하려면 어떻게 하겠어?”
“음…….”
수철은 하린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기다렸다.
하린이의 눈동자가 움직이며 뭔가 정답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수철이 한마디 더 거들었다.
“성악가가 노래하는 모습을 잘 생각해 봐.”
그때 하린이가 입을 열었다.
“공간을 울리는 거요?”“그렇지! 바로 그거야!”
수철이 격하게 동의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성악가들은 풍부한 성량으로 공간을 울려서 소리의 입체감을 만들어. 그러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여기서 핵심은 성악가는 공간을 사용한다는 거지.”“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아까와 달리 하린이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국악은 갇힌 공간이 없어서 소리를 울릴 수 없기 때문에 투박한 건가요?”“비슷해! 접근법은 아주 좋았어, 소리꾼은 성악가와 다르게 울릴 공간이 없어서 직관적으로, 강하고 날카롭게 내는 거야. 그래야 소리가 쭉 뻗어 나가서 멀리까지 전달되니까.”
“아, 그렇겠네요!”
하린이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딱 쳤다.
수철은 계속 설명을 덧붙였다.
“야외에서 성악가처럼 풍성하게 소리를 내면 소리는 멀리 가지 못하고 금방 퍼져 버려. 강하고 날카롭다고 해서 소리가 안 퍼지는 건 아니지만 전달력은 큰 차이가 나. 그런 이유로 클래식과 달리 국악 관객들은 빙 둘러앉는 거야. 울릴 공간이 없으니까 퍼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려고 가까이 빙 둘러앉게 되는 거지.”“처음 알았어요. 다 이유가 있었네요?”“그래, 사람이 환경에 맞춰 진화해 왔듯이 소리를 내는 발성법도 환경에 맞춰서 이렇게 진화해 온 거야.”
“아…….”
하린이는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듯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무대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니까 발성법에 따라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그래도 소리가 전달되는 방식을 알고 노래하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어. 이런 미세한 차이를 챙기는 가수가 위대한 성악가, 명창이라고 칭송받는 거야. 잘하는 가수와 최고 가수의 차이는 이런 디테일에 있거든.”
그 말에 하린이의 시선이 수철의 눈에 고정되었다.
“꼭 기억할게요.”
“그래, 어떤 상황에서 어떤 소리를 내면 더 잘 전달되는가를 이해하면 자신의 소리를 찾는 데도 도움이 돼.”
수철이 이렇게 신중한 얼굴로 세심하게 얘기하는 것은 마지막 레슨이니만큼 하린이에게 약한 부분을 한 번 더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린이, 너는 소리를 내는 근육이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야. 성장 중이라는 뜻이야. 특히 발음하는 근육은 더 그래. 그래서 그동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게 할 수가 없었어.”
“아. 어쩐지…….”
그동안 발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강한 연습법을 쓰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대신 오늘은 원리와 방법을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했다가 스스로 발전시켜 봐.”
“네.”
수철은 옆에 있던 볼펜을 집어 입에 물었다.
그동안 아쉬웠던 발음 부분을 하린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 주기 위해서다.
“이렇게 볼펜을 물고 발음 연습을 하는 게 좀 유치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어.”
수철이 볼펜을 입에 물고 얘기하자, 그 모습이 재밌는지 하린이는 얼굴에 잔뜩 웃음을 머금었다.
“이런 연습을 할 때는 왜 이렇게 연습하고, 이런 연습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아는 게 중요해.”
“네.”
수철이 다시 입에서 볼펜을 뗐다.
“우리가 보통 발음할 때 입술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주로 입안에 혀를 움직여서 발음하게 돼. 서로 의사소통만 하면 되니까 과하게 입술 주위의 근육을 힘들여서 쓰지 않는 거지. 무의식적으로 말이야. 일종의 가성비를 높이는 본능이라고 할까? 에너지를 많이 안 쓰려고 하는 거야. 대화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을수록 더 그렇게 돼.”
하린이는 수철의 말을 들으면서 옆의 친구와 대화하듯 읊조려봤다.
“아, 그러네요.”
수철의 말대로 가까이에 사람이 있으면 발음의 선명도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입안에서 혀만 움직여서 소곤댄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대화하다 보면 발음이 부정확한 상태로 굳어져 버려. 그래서 발음은 노래 연습할 때가 아니라 평소에 대화하면서 잡아야 한다고 하는 거야. 발음은 습관이거든.”
“아.”
발음은 습관이라는 말이 무척 와 닿았다.
그리고 대화할 때 발음에 신경 써야 한다고 수철이 그동안 강조했던 이유가 명확히 이해됐다.
“대화는 소통만 하면 되니까 편하게 발음해도 되지만 노래는 달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정확히 전달해야 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다시 노래할 수는 없으니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한 번에 잘 전달해야 해.”“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하린이의 또렷한 표정에 수철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음악을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건 온전히 가수의 몫이야. 작사가도 작곡가도 결국은 가수의 역량에 따라 평가를 받잖아.”“네, 김명석 선생님도 같은 말을 하셨어요.”
하린이는 아무리 곡을 잘 써도 가수가 잘 전달하지 못하면 작곡가는 망하는 거라고 너스레를 떨던 김명석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김명석 선생님도 그 부분을 아주 잘 알고 계시지.”
수철은 계속해서 레슨을 이어 나갔다.
하린이가 직접 볼펜을 물고 소리를 내게 했다.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입술 주위 근육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린이는 볼펜을 물고 발음하며 현장 실습을 나온 학생처럼 손가락으로 입술 주위를 꾹꾹 눌러 봤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계속되는 레슨에서 하린이는 수철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다.
수철도 하린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췄다.
마지막 레슨에서 제자에게 최대한 많이 알려 주고 싶은 수철의 마음이 드러났다.
음악 선배로서의 바람과 선생으로서 전하는 당부의 말이 담겨 있었다.
레슨은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개념이 잡히지?”“네, 볼펜을 빼고 발음하니까 발음이 선명해져요. 정말 입 주위 근육이 활성화되었어요.”
하린이는 아직도 신기한 듯 입 주위를 꾹꾹 눌렀다.
“대화할 때 꾸준히 신경 쓰지 않으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 버려. 습관이란 게 참 무섭거든.”
“네, 명심할게요.”
“그래.”
수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소리라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해. 우물우물 발음하면 상대가 날 무시하는 것 같고, 선명하게 또박또박 발음하면 상대가 날 존중하는 느낌이 들거든. 관객은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잖아? 너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니까.”“옛썰! 명심하겠습니다!”
하린이가 손가락 두 개를 이마에 붙이며 힘있게 대답했다.
“하하!”
수철은 그 모습이 귀여워 웃었다.
“선생님은 명언 제조기세요. 한 마디 한 마디가 뼈에 박혀요.”
“좋은 뜻이지?”
“네, 완전요!”
“그래, 수고했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드디어 길고 길었던 마지막 레슨이 끝이 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러면 다음이 또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진 않고.”
그 말에 하린이의 표정이 급변했다.
“흑흑. 너무 슬퍼요. 선생님.”
잔뜩 슬픈 얼굴로 수철을 바라봤다.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자세다.
“슬퍼하지 마, 또 만나게 될 테니까.”
“진짜요?”
하린이의 표정이 금새 또 바뀌었다.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진짜지. 내가 거짓말하겠어?”
“언제요?”
“그건 모르지.”
“에이…….”
하린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화가 난 듯 팔짱을 꼈다.
수철이 피식 웃었다.
“왜, 또 만나기 싫어?”“그럴 리가요. 그냥 지금이 너무 슬퍼서 그래요.”
그러면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아, 기약 없는 이별이여― 님 그리워 부르는 노래여―!”
“요즘 시집 읽어?”
“학교에서 배워요.”
하린이는 가방을 메고 일어서더니 두 손을 모아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사랑하는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그래, 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어.”
수철은 하린이가 기특했다.
어른들이 자주 쓰는 기특이라는 단어가 이런 상황에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하린이가 고개를 쓰윽 들더니 다시 표정을 바꿨다.
“선생님, 저 계속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최 팀장인 줄 알았다.
“안 돼.”
“어떻게 단칼에 거절을……. 제가 피곤한 학생이었나 봐요. 흑흑.”“아니란 거 알잖아.”
“헤헤.”
“유종의 미를 거둬야 다음에 또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네, 받아들일게요. 그런데 소원이 있어요.”
“소원?”
“저, 나중에 곡 써 주시면 안 돼요?”
“곡?”
“네, 선생님이 만든 노래 불러 보고 싶어요.”
“안 될 건 없지.”
“진짜요? 약속했어요?”
손가락을 내밀었다.
“너의 곡을 만드는 건 나에게도 의미가 있지. 네 보이스 역량을 잘 아니까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와! 신난다!”
하린이가 소리 지르며 폴짝폴짝 점프를 했다.
메고 있던 가방이 이리저리 들썩거렸다.
* * *
수철은 박 대표와 다혜가 만나서 3인 3색 앨범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가 궁금했다.
‘다혜가 한다고 했을 것 같긴 한데, 그게 아니라도 쌤이 하게끔 만든다고 했으니까.’
예상은 되지만 그래도 확실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다혜보다는 쌤에게 직접 듣는 게 낫겠지.’
수철은 궁금함에 전화기를 들었다.
버튼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올리다가 멈췄다.
‘잠깐, 이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