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86화 (86/239)

#86화. 프레젠테이션

이 실장의 흥분한 목소리에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진짜요?

“그래! 이번엔 느낌 확실해!”

이 실장이 듣기에도 수철의 편곡은 확실히 달랐다.

느낌이 제대로 살아 있었다.

대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박 대표에게 핀잔을 받는 이 실장이지만 그 정도를 알아볼 감각은 있다.

“이런 횡재를 할 줄이야! 역시 박 대표님을 찾아오길 잘했어! 은인, 은인이야!”

이 실장은 중얼거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 *

음악을 들려준 수철은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이때 나갔던 이 실장이 돌아와 수철을 보며 머리를 꾸벅했다.

“음악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헤헤.”

수철은 별다른 대꾸 없이 멋쩍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던 박 대표가 수철에게 물었다.

“이제 가야 하지?”

“네.”

“바로 가야 해?”

박 대표가 되묻자 수철이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음악은 이걸 가이드로 해서 다시 녹음하면 될 거 같은데.”

“그런데요?”

“아니, 난 네가 이렇게 편곡한 이유가 궁금해서. 악기의 톤을 이렇게 구성한 이유도 궁금하고.”

“아…….”

수철은 박 대표의 말뜻을 알아듣고 시간을 확인했다.

“한 20분 정도는 괜찮은데 설명해 드릴까요?”

“그래 주면 좋지.”

수철이 등을 돌려 다시 작곡 프로그램을 켰다.

“어떤 부분이 궁금하세요?”

마우스로 작곡 프로그램의 트랙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처음 섹션의 16마디가 지나고 그다음 8마디를 왜 그렇게 구성했는지 궁금해. 콘트라베이스가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음을 내는 방법)로 전환되면서 갑자기 팀파니(오케스트라에서 주로 쓰는 타악기. 반구 모양의 통처럼 생김)와 소고(국악에서 쓰는 타악기. 손잡이가 달린 작은 북)가 등장하는 이유 말이야.”

박 대표는 이 부분에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전율을 느꼈다. 그래서 궁금함을 못 참고 수철을 잡은 것이다.

“이 부분이요?”

수철이 마우스로 화면의 트랙을 가리켰다.

“그래.”

박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보통 이 부분에서는 앞의 8마디를 다시 반복하는데, 그건 좀 지겹잖아요. 그래서 전혀 다른 타악기의 톤으로 귀를 씻고, 머리를 한번 환기하려고 한 거예요. 8마디 동안 잠깐 낮잠을 잔 것처럼 말이에요.”

“허.”

잠깐 낮잠이라는 말에 박 대표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표현 또한 너무 적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머리를 한번 환기하고 나서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하면 그다음 보컬의 등장이 멋있게 들리잖아요. 그래서 그전에 시선을 전환시키려고 넣은 거예요.”

박 대표가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전혀 다른 두 악기인 팀파니와 소고를 조화시킬 생각을 했어?”

전혀 연결성이 없는 두 악기가 느닷없이 등장해서 8마디 동안 불협화음이 아닌 조화를 이루고 빠진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진행이다.

이런 것은 어디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박 대표의 진지함에 비해 수철의 대답은 너무 쉬웠다.

“그냥 떠올랐어요.”

“그냥?”

“네.”

잠시 잊고 있었다.

천재는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럼 콘트라베이스가 갑자기 피치카토로 전환된 이유는?”

박 대표의 질문이 이어졌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몸을 기울였다.

“팀파니와 소고가 등장해야 되니까 피치카토로 미리 분위기를 깔아 준 거죠. 그러면 자연스레 팀파니가 등장해서 강박에 힘을 싣고, 소고가 이렇게 약박을 치면서 리듬에 입체감을 더하기 좋잖아요.”

더 이상의 감탄은 무의미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박 대표가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였다.

‘네가 아무리 천재지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냐고. 그냥 떠오른 건 알겠는데, 네 머릿속을 자세히 묘사해 봐.’

이걸 묻고 싶었다.

박 대표가 평소와 다르게 음악에 빠져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실장은 뒤에서 신기한 눈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음악을 듣지도 않고 마우스로 짚으면서 설명을 하지? 용수철도 대단하지만 박 대표도 대단해.’

입을 벌린 채 시선이 왔다 갔다 했다.

“또 궁금한 부분 있으세요?”“후반부에 보컬과 바이올린이 섞이는 부분.”

수철이 묻자 박 대표가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수철이 트랙의 그 부분을 마우스로 짚었다.

“이 부분은 앞에 4마디를 먼저 설명해 드릴게요. 처음 들었던 음악과 비교해서요.”

“그래.”

“음악에 굴곡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음악은 굴곡을 너무 기본 형식으로만 주려고 해서 너무 지루했어요. 원인은 드럼이었죠. 그래서 여기 앞부분의 드럼을 걷어 내는 대신 캐스터네츠로 간단히 신호만 준 거예요. 마치 연극에서 막을 내리고 올리듯이요.”“허…… 그런 이유였군.”

박 대표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이 올라가면 보컬의 순수한 보이스가 다시 등장하고 그러면서 절정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보이스의 입체감을 받쳐 주기 위해서 보컬의 라인과 같이 움직이는 바이올린을 등장시킨 거예요. 소리를 들어 보면 바이올린이 보컬의 옆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서 있는 것이 느껴지잖아요.”

수철은 처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러 소리를 들려줬다.

수철의 말대로 바이올린이 보컬의 옆에 서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컬의 뒤에서 보컬을 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놀라워.’

거침없이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작은 디테일조차 놓치지 않는 수철의 편곡에 박 대표는 새삼 혀를 내둘렀다.

이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을 들으며 감탄하고 있었다.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수철의 설명을 들으니 음악이 더 입체적으로 느꼈다.

그러면서 새삼 박 대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박 대표님도 대단해. 전문가야.’

천재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이해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그런 생각에 박 대표를 힐끗 한번 쳐다봤다.

“여기서 보컬이 멈춰도 바이올린이 멜로디 라인을 계속 이어 가는 건 아실 테고요…….”

계속해서 수철의 설명이 이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보컬이 다시 바이올린 대신 멜로디를 이어 가죠.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이어받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바이올린은 조용히 보컬의 뒤로 사라지고, 보컬의 멜로디라인이 앞으로 나서면서 확장되는 거죠. 이 부분을 이렇게 한 건 절정 부분의 멜로디가 예뻐서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하기 좋게 강조했어요.”

빈틈이 없었다.

그러면서 빈틈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너무 완벽하게 각각의 소리에 이유가 있어서 빈틈이 없지만, 듣는 사람의 귀에는 청중들이 음악에 스며들 공간이 있어서 빈틈이 있었다.

‘역시.’

악기가 많이 들어가서 난해할 것 같은 음악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중간중간 공간을 비워 놔서 한적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이유로 담백함이 느껴졌던 거다.

마지막에 느껴지는 고소함은 사이다 같은 고소함이었다.

악기에 가려져 있던 보컬의 역량이 드러나며 시원한 고소함을 줬다.

고소함은 보컬의 마지막 호흡에 따라붙은 콘트라베이스의 여운이기도 했다.

더 이상의 감탄도 평가도 의미가 없었다.

그냥 짧게 이 말 한마디면 됐다.

“잘 들었어.”

일어나서 기립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참았다.

반면 이 실장은 자꾸 자극을 받다 보니까 얼굴 근육에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

잦은 감탄과 흥분에 심장까지 아팠다.

“아, 그리고 이 부분에서…….”

수철은 작곡 프로그램을 끄려다가 뭔가 생각난 듯 한 가지를 덧붙였다.

“효과음으로 디지털 사운드를 넣은 건 분위기 전환 때문이에요. 아무리 멜로디가 예뻐도 자꾸 반복되면 지겨울 수 있으니까 귀를 한번 씻어 준 거예요.”

두 사람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철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

어찌 됐건 이로써 수철의 편곡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은 모두 끝이 났다.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가 어색한 이 실장이 멘트를 던졌다.

“확실히 음악이 살아 있네요. 음악은 이렇게 팍팍 꽂혀야 제맛이죠.”

제작자다운 멘트였다.

수철은 피식 웃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쌤, 저 이제 가 봐야겠어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준이 만나러 가는 거지?”

“네.”

“그래,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

“네.”

“아 참! CM송 편곡은 어떻게 돼가?”

“다 했어요.”

“허허, 벌써 다 해 버렸구나?”

“네.”

“그래, 어서 가고. 다음 주에 다혜랑 기획안 미팅할 때 보자.”

“네, 알겠어요.”

“잠시만요!”

수철이 꾸벅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이 실장이 소리쳤다.

“……?”

“……?”

수철과 박 대표가 동시에 이 실장을 쳐다봤다.

“대표님, 제가 그냥 이대로 수철 씨를 보내 드려도 되는 건가요?”

수철과 박 대표가 서로 쳐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박 대표가 물었다.

“이대로 안 보내면?”“아니, 너무 감사해서 그러죠.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할지…….”“하하! 이 사람, 나중에 밥 한 끼 사면 되지.”“그 정도로는 안 되죠, 정 바쁘시면 제가 돈이라도…….”

이 실장은 수철을 보며 금방 지갑에서 현금이라도 꺼낼 자세를 취했다.

“허! 이 사람, 누가 제작자 아니랄까 봐…….”

박 대표가 핀잔을 주며 어깨를 툭 쳤다.

“아니, 그래도 대표님, 이대로 헤어지면…….”

“됐어, 그만해.”

박 대표는 수철을 잡고 늘어지려는 이 실장을 등 뒤로 잡아끌었다.

“수철아, 어서 가 봐. 다음 주에 보자.”“네, 다음 주에 뵐게요.”

수철은 박 대표와 이 실장에게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하고 작업실 밖으로 사라졌다.

* * *

이 실장의 눈에 수철은 구세주로 보였다.

몇 달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아무도 척 하고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수철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단 2시간 만에 음악을 탈바꿈시켜 버렸다.

그러니 수철을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박 대표만 아니었다면 다음 약속을 잡고 어떻게든 인맥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 마셔.”

박 대표가 김이 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내밀었다.

이 실장은 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대표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전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이 실장이 볼을 문지르며 쳐다보자 박 대표는 대꾸 없이 피식 웃기만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해 놓고 그냥 가 버려도 됩니까?”

“뭘 더 바라?”

“그래도 뭔가 확실히 매듭을 지어 주고 가셔야지.”“무슨 매듭? 앨범이라도 다 만들어 달라는 거야?”

박 대표의 말에 살짝 짜증이 실렸다.

이 실장의 심정을 알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요, 대표님.”

이 실장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박 대표가 차분하게 쳐다봤다.

“수철이 작업한 거 가져가서 세션들에게 들려주고, 그대로 녹음하면 되잖아. 그리고 필요하면 나중에 수철이 녹음실 가서 중요한 트랙들을 쏴 주면 되지.”

“그래 줄까요?”

“걱정 마, 그 정도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감사합니다, 대표님.”

커피잔을 든 채로 머리를 꾸벅했다.

오랫동안 궁지에 몰려 있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뭔가 이상한 이 실장이다.

“음악이나 다시 한번 들어 보자.”

“네.”

박 대표는 음악을 듣기 좋게 장비를 세팅하고 스피커의 볼륨을 높였다.

음악을 틀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웅, 우웅―

탁탁. 타다닥.

음악이 나오자 둘의 표정은 다시 바뀌었다.

박 대표는 ‘같은 소스를 사용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소리가 다를까’ 경이롭다는 표정이었고.

이 실장은 ‘이건 분명 대박이야.’ 음악을 듣자마자 좋다고 환호할 대중들을 상상하는 황홀한 표정이었다.

“캬, 죽인다.”

음악은 두 번을 더 듣고서야 멈췄다.

이 실장은 환호성을 질렀다.

박 대표도 상기되어 있었다.

“녹음 진행할 때 참고할 거 몇 가지 체크해 줄게.”

박 대표는 A4 용지와 펜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 실장과 마주 앉았다.

“대표님, 천재의 능력은 어느 정도예요?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듣고 그러나요?”

이 실장이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허…….”

어이없는 질문에 박 대표가 할 말을 잃었다.

“나도 몰라, 능력이 어느 정돈지. 그리고 천재 소리 그만해, 수철도 싫어하고 나도 싫어해.”

박 대표가 지친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이 실장은 계속 말을 붙였다.

“그런데 대표님, 금별기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말이 들리던데 혹시 아세요?”“에휴……. 그래, 나도 알아.”

박 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혹시 거기서?”

“컨택이 왔냐고?”

“네.”

이 실장이 궁금함에 눈을 반짝였다.

“왔다, 왔어. 어쩔래?”“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박 대표가 미간을 좁혔다.

“이 실장!”

“네.”

“지금 앨범이 급한 거 아니야?”

“급하죠.”

“그럼 여기에만 집중하자. 부탁이다.”

“네.”

이 실장이 뻘쭘한 얼굴로 A4 용지를 바라봤다.

* * *

수철이 나타나자 영준이 형과 제시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수철, 안녕하쎄요.”

수철이 다가가자 제시가 먼저 한국어로 띄엄띄엄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도 저마다 한국어로 한마디씩 인사를 했다.

“수철, 어서오쎄요.”“수철, 반가우쎄요.”“수철, 잘생겨써요.”

또박또박 한국어를 말하는 멤버들이 귀여웠다.

수철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Hi Guys, Good to See You Again!”

그러자 멤버들이 그간에 배운 한국말을 쏟아냈다.

“마씨써요.”

“얼마에효?”

“소주 한 병 더 주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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