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90화 (90/239)

#90화. 천재의 작곡법(2)

‘도자기공은 백자를 빚는 게 아니야.’

도자기공은 백자에 호흡을 불어넣고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장 깊은 호흡을 불어넣고 있었다.

숨이 멈춰 있는 백자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수철의 눈에 그것이 보였다.

도자기공은 백자를 깎아 내면서 오히려 백자를 품고 있었다.

‘흠…….’

순간 울컥했다.

도자기공의 눈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봤기 때문이다.

수철은 의자에서 일어나 잠시 작업실 안을 서성였다.

* * *

필립 윤이 작품에서 말하려는 주제를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되짚었다.

‘백자의 눈물’은 도자기공에 관한 얘기.

조선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 변해 가는 도자기공의 작품 세계.

그것을 필립 윤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음.”

도자기 공의 이름은 ‘개석’이었다.

8월 8일에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남의 집 머슴으로 떠돌다 우연히 산속에서 도자기공과 만난다.

도자기 만들 흙을 찾아 산속을 돌아다니던 도자기공이 발을 헛디뎌 발목을 다치자 개석이 도자기공을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주고, 감자를 얻어먹는다.

머물 곳이 없었던 개석은 도자기공을 도와주면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고, 자연스레 도자기공의 제자가 된다.

그리고 그의 밑에서 엄한 가르침을 받으며 청년기를 맞는다.

시대는 급변하여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고, 개석의 스승은 일본 순사가 도자기를 빼돌리는 것을 막으려다 숨을 거둔다.

개석은 그날 밤 순사의 집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스승이 빼앗긴 도자기를 되찾아서 도망친다.

산속으로 들어간 개석은 작은 움막에 작업실을 만들고, 도자기 굽는 가마까지 만든다.

‘혼을 담아서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한다.’

스승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백자 만드는 데 집중한다.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서 광복되고 개석은 산에서 내려와서 스승의 작업실을 복구해 작업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다시 전쟁이 터지고 작업실은 포탄을 맞아서 부서진다.

개석은 이번엔 도망치지 않는다.

지붕이 날아간 그곳에서 개석은 묵묵히 물레를 밟는다.

그의 나이 61세.

개석은 이제 더는 세상의 시간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

남은 삶은 오롯이 백자에 쏟아붓고 싶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개석의 불타는 예술혼을 막을 수 없다.

순간 개석의 눈에 광기가 켜졌다.

개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멈췄고, 작업장은 무한 확대됐다.

드넓은 우주 공간에 개석과 백자 단둘이 존재했다.

총소리도 포탄도.

모두 사라졌다.

개석과 백자, 둘만이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음…….”

수철은 처음 필립 윤이 보여 줬던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다시 훑어봤다.

‘……뭐가 변했지?’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전개 부분이 좀 더 드라마틱해졌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신경 쓴 것 같았다.

그리고 후반부의 묘사에 입체감을 높여서 몰입도를 끌어 올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부분에서 개석을 통해 백자를, 백자를 통해 개석을 바라보는 시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음, 이 부분은 적어 둬야겠다.’

수철은 달라진 부분을 체크했다.

수철이 이렇게 신경 쓰는 것은 이 부분을 모두 음악으로 표현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필립 윤이 변화를 줬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얘기고, 그건 곧 이야기의 중요한 뼈대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제 부분은…….’

수철은 이야기의 주제 부분을 다시 한번 짚어 봤다.

‘궁극적으로 백자의 눈물은 스승의 눈물이자 개석의 눈물이었고, 조선의 눈물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눈물이었고, 같은 핏줄끼리 총을 겨눈 동족상잔의 눈물이었다.

아픈 역사를 모두 지켜본 건 개석이 아니라 백자였다.

그래서 필립 윤은 제목을 백자의 눈물이라고 붙인 것이다.

백자를 통해 우리 민족이 겪었을 아픔을 필립 윤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필립 윤 감독도 이방인이 아닐까?’

수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이민자의 후손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마음과 도자기공이 혼을 담아서 백자를 만들며 우리의 뿌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철은 필립 윤이 처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쉽게 풀어내는 게 숙제입니다.”

영상을 보면 그것이 보인다.

필립 윤이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최대한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전개가 드라마틱해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젠 내가 힘을 보태야지.’

수철은 음악이 귀를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관객에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다 본 관객이 ‘음악이 있었어?’ 할 정도로 음악이 사라져서 들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음악으로 이야기의 감동을 증폭시켜야지. 그렇다면 악기 톤은 어쿠스틱이 좋겠어. 그리고 귀를 자극하는 타악기의 크래시(crash)는 최대한 낮추는 게 좋겠어.’

필립 윤은 개석의 20대부터 60대까지의 작품을 보여 주면서 백자가 변화하는 모습과 개석이 변화하는 모습을 연결했다.

백자의 변화를 통해서 개석의 내면을 표현했다.

시놉시스 하단에 필립 윤이 작게 메모해 놓은 게 있었다.

‘슬픈 역사에 가려진 백자의 눈물. 결국 백자의 눈물은 개석의 눈물이다.’

이 한 줄에서 필립 윤이 백자와 도자기공을 동일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철은 작품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백자와 도자기공에 관한 자료들을 읽었다.

백자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와 6.25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며 도자기공이 겪었을 고초를 상상해 봤다.

이로써 음악 만들 준비는 다 끝났다.

수철은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기 위해 공원으로 나갔다.

* * *

건널목을 건너 공원으로 향하던 수철은 그동안 필립 윤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만들었던 예전 작품들도 함께 떠올렸다.

창작자와 작품 사이에는 항상 오차가 존재한다.

그래서 예술가 중에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도 엉뚱한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철학도 없으면서 운이 좋았다’며 바로 깎아내린다.

머리에 든 것도 없는데 알량한 재주로 운 좋게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헐뜯는다.

특히 평론가들은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는 식으로 독설을 내뿜으며 예술성까지 폄훼한다.

수철이 좋아하는 예술가 중에도 이런 수모를 당한 사람이 몇몇 있다.

그런데 이건 예술가의 잘못이 아니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도 설명을 잘 못하는 건, 작품을 만들 때 쏟아진 잠재적 에너지를 설명할 길이 없어서이다.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게 아니다.

그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지, 타인들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듣기 좋게 말을 꾸미지 못한다.

모든 에너지는 이미 작품에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예술가를 헐뜯는 사람들도 그런 창작을 해 보면 안다.

한두 마디면 모를까, 5분이 넘어가는데 계속 운이 좋을 수는 없다. 음악으로 따지면 그렇다.

결국 창작자와 작품 간의 오차는 자신이 창작하고도 자신의 에너지를 잘 설명하지 못해서 벌어진 해프닝일 뿐이다.

‘필립 감독님은…….’

수철은 필립 윤의 작품에서 그런 오차를 보려고 했다.

필립 윤이 말한 작품과 수철이 본 작품의 틈새를 발견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음악으로 메꾸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을 대단한 아티스트라 칭송하는 필립 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작품의 의도, 그리고 감독도 설명하지 못하는 숨겨진 의도.

수철은 그것까지 보고 싶었다.

‘말보단 결과물이 중요해.’

아무리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이 촬영을 지휘해서 작품을 끌고 가지만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작품은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스스로 생명을 갖고 숨을 쉰다.

마지 백자가 그러하듯이.

작품의 진짜 숨결은 설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 안에 있다.

수철은 그걸 알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철은 설명보다는 작품을 듣고 창작자를 판단한다.

그것만큼 정확하게 창작자의 깊이를 읽어 낼 방법은 없다.

* * *

공원에 도착한 수철은 공원을 빙빙 돌며 작곡을 시작했다.

‘개석이 흙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과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백자를 굽는 과정은 마이너 펜타토닉(Minor Pentatonic, 5음 음계. 1, b3, 4, 5, b7으로 구성된 스케일)이 좋겠어.’

수철은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도자기공이 백자를 만드는 과정엔 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을 선택했다.

펜타토닉 음계를 반복하며 빠르게 음을 높여 가면 감독이 의도한 초반 빠른 전개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제 강점기가 되고, 스승님이 죽고, 불을 지르는 이 장면은 메이저 스케일(Major Scale, 장음계)로 가는 게 좋겠어. 장면들이 슬프고 우울하니까 소리의 색깔을 반대로 가는 게 입체감이 더 살겠지. 그리고 시간이 다시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은…….’

수철은 계속 공원을 돌며 머릿속에서 이야기와 소리를 연결했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소리를 소환해 퍼즐 맞추기를 하고, 영화의 장면을 중얼거리며 이야기에 맞게 소리를 연결했다.

색채를 맞추기 위해 악기들을 떠올려 연주도 해 봤다.

전부 수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인트로는 이렇게 가고, 8마디째 멜로디는 이렇게. 그리고 앞에 두 마디는 국악 타악기로. 그리고 이 부분은 스코틀랜드 백파이프가 좋겠어.’

수철의 머릿속에 강렬하면서도 장엄한 소리가 울렸다.

빠르게 작 편곡이 이뤄졌다.

마치 컴퓨터에서 조합하듯 머릿속에서 섞어 보고, 조율하며 이야기에 맞는 옷을 입혔다.

악보를 그릴 필요도, 따로 소리를 저장할 필요도 없다.

악보는 연주자를 위한 것이고, 소리는 머릿속에 저장하면 된다.

정확히는 소리로 저장되는 게 아니라 소리의 이미지로 저장되었다.

‘아무래도 두 번째 섹션은 뿔피리 소리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 악기는 그렇게 하고…… 그러면 템포에 변화를 주는 게 좋겠지? 그러려면 중간에 팀파니를 끌어와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다음 섹션은…….’

시간이 갈수록 수철의 머릿속에 총보(Full Score, 한눈에 전체 파트를 볼 수 있게 적은 악보)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의 핵심 장면들을 다시 체크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부분은 하모닉 마이너로 바꿔서 16분 음표로 두 마디를 채우고 음표마다 엑센트의 변화를 주는 게 좋겠어.’

수철은 머릿속 피아노의 건반을 눌러 봤다.

연주하며 적당한 빠르기를 찾았다.

‘템포는 120, 그리고…….’

수철은 영화의 핵심 장면 중의 하나인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이 피난 가고, 개석의 작업실이 부서지는 장면에선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장면이 폭력적이고 잔인해서 소리는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 이 부분은 메이저의 느낌을 주면서 3박자 왈츠 리듬을 넣는 게 좋겠어.’

잔인한 장면에 희극적인 느낌을 줘서 잔인함을 반감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영상이 충분히 충격적이고 어두워서 소리의 색깔은 밝게 줬다.

영상과 소리를 분리했다.

가슴 아픈 영상과 밝고 화사한 소리가 대조되자 역설적이게도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강조되어 보였다.

‘음, 이제 좀 쓸 만하네. 감독님이 좋아하겠어.’

그렇게 하니 새로운 입체감이 생겼다.

필립 윤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1차 작곡이 끝났다.

영화 편집이 마무리되면 거기에 맞춰 음악도 편집하고 수정하면 된다.

뼈대만 있으면 그건 쉬운 일이다.

“저 녀석,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그러게.”

수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공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은 수철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공원을 계속 빙빙 돌며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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