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See u next time
멤버들이 한국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서로 바쁜 일정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울 투어, 경주 여행 등 중요한 시간은 함께하면서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어느덧 멤버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져스트 재즈클럽. 저녁 7시.
빡빡한 공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출국을 하루 앞두고서야 영준이 형이 부랴부랴 송별 파티를 위한 장소를 잡았다.
뮤지션답게 송별 파티도 재즈클럽이었다.
연주도 하고 맥주도 마실 계획이었다.
수철은 프로젝트 회의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 * *
“어서 와, 수철아.”
“네, 형.”
수철이 도착했을 때 클럽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음악을 틀어 놓고 맥주를 들고 다니며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 이젠 내가 섭섭할 지경이야. 하하.”
영준이 형의 너스레처럼 멤버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특히 제시는 팬미팅을 하는 유명 연예인처럼 사람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공연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에요?”
수철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묻자 영준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중에서도 학교에서 알게 된 학생들이 많아. 초청 공연 하면서 인기가 좋았거든. 여기 절반 이상은 음악학교 학생들이야.”
영준이 형의 말대로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수철의 또래였다.
“학생들에게 나는 선생이지만 제시와 멤버들은 친구잖아. 그러니까 더 편하게 어울리는 거지. 덕분에 나 완전 왕따 됐어. 이것 봐 봐, 구석에서 혼자 맥주나 마시고 있고. 하하.”
영준이 형은 진짜 왕따라도 된 듯 구석에서 혼자 맥주병을 들고 서 있었다.
섭섭할 만했다.
“헤이― 수철!”
“수철, 왔어?”
“왜 이제야 나타났어!”
멤버들의 인기 덕분에 수철도 한참 뒤에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한두 명씩 수철을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한 손에 맥주병을 든 채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수철이 씨익 웃었다.
“너희, 완전 인기 많은데?”“우리보단 제시가 많지.”
알베르토의 말처럼 제시는 엄청난 인기 탓에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영준이 형과 나머지 멤버들이 테이블에 앉아 그동안의 추억을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야 비로소 팔을 벌리며 나타났다.
“와! 수철, 그리웠어!”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얼굴로 다가와 포옹했다.
“제시, 넌 벌써 스타 뮤지션인데?”“난 한국이 너무 좋아. 이미 나에겐 제2의 고향이 됐어.”
맥주를 마신 탓인지 제시의 볼이 발그레했다.
“여기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 그리고 조금 맵긴하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어. 특히 비빔밥은…….”
제시의 한국 찬양은 한동안 이어졌다.
―Cheers!
―건배!
―Girl From Ipanema 좀 틀어 주세요!
클럽 안은 시간이 갈수록 북적였다.
멤버들이 초대한 사람들도 있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멤버들은 일일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츄루루 툭, 툭 츄루루르.
빠암―
두르둥, 두우웅 두둥.
재즈 뮤지션들의 파티가 늘 그러하듯 시간이 되자 잼(jam)이 시작됐다. 첫 곡만 멤버들이 연주하고, 그 후로는 파티에 놀러 온 사람들이 뒤섞여 돌아가며 즉흥적으로 연주에 참여했다.
수철도 멤버들의 요청으로 같이 몇 곡을 해야 했다.
덕분에 파티의 분위기가 뜨거웠다.
“Cheers!”
“건배!”
마지막 날이라 늦은 시간까지 파티가 이어졌다.
샘과 알베르토는 밤새워 마실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잠은 비행기에서 자면 되지.”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그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덕분에 수철도 어쩔 수 없이 새벽까지 어울려 놀았다.
멤버들이 하자는 대로 뜻에 맞췄다.
이제 헤어지면 한동안 못 볼 멤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새워 마실 수는 없었다.
아함.
새벽 세 시가 넘어가자, 영준이 형이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시작했고, 멤버들도 한둘씩 얼굴에 피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였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클럽이 비기 시작하자 멤버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티는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수철은 집에 갈 수 없었다.
“오늘은 절대 못 가!”
아쉬워하는 멤버들에게 이끌려 같이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가서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나서야 뻗었다.
* * *
“캬― 시원하다!”
알베르토가 뜨거운 해장국을 먹으며 시원하다는 말을 했다.
수철은 숟가락을 든 채 영준이 형을 쳐다봤다.
“한국 사람 흉내 내는 거야. 무슨 뜻인지는 몰라.”
영준이 형이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
후루룩. 쩝쩝.
멤버들은 어제 과음을 한 탓에 허겁지겁 해장국을 먹었다.
어느새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이미 한국식 해장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영국에 돌아가면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울 거야.”“맞아, 특히 이 콩나물 해장국은 정말 어메이징해. 두통을 없애 주거든.”“왜 영국엔 이런 수프가 없는지 모르겠어. 영국 음식은 정말 쉿(shit)이야.”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한마디씩 했다. 제시만이 콩나물 해장국을 자기만의 템포로 묵묵히 먹고 있었다.
* * *
“잘 가.”
“잘 있어.”
“즐거웠어.”
“그리울 거야.”
“다시 만나게 될 거야.”“이번엔 너희가 영국으로 와. 앨범 나오면 공연해야지!”
공항에서 긴 인사가 이어졌다.
아쉬움이 남아서 멤버들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공연이 좋았고, 짧은 시간에 한국과 정이 들었다는 얘기다.
“우린 곧 만나겠지?”
제시가 포옹하며 물었다.
“그래, 새로운 앨범을 시작해야 하니까.”“언제쯤 다시 보게 될까?”“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제시와 수철은 마치 헤어지는 연인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다.
“인제 진짜 간다!”
“그래, 잘 가!”
멤버들은 한 번씩 더 뜨거운 포옹을 한 후에야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한 달간의 긴 연주 여행을 마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두 사라지자 영준이 형이 등을 돌렸다.
“우린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질까?”
“네.”
영준이 형이 앞장서 공항 한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수철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와서 마주 앉자 영준이 형이 물었다.
“저작권 등록은 했어?”“서류는 다 보냈어요. 지금 등록 중인 걸로 알아요.”“한국과는 다르게 좀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네.”
“브라이언 김은 어때? 일 잘하지 않아?”“네, 친절하게 안내해 주셔서 편했어요. 좋은 분 소개해 줘서 고마워요. 형.”“고맙긴, 그분이 교포 2세라서 한국 아티스트랑 일하는 걸 좋아해. 한국 사람들은 정직하고 예술적이어서 좋다고 하더라고.”“그분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시나 봐요.”“그렇지, 외국에서 태어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게 있지.”
영준이 형은 얘기하다 말고 시선을 먼 곳에 뒀다.
한동안 같이 붙어 있던 멤버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니까 섭섭한 모양이었다.
“허전하세요?”
수철의 물음에 영준이 형이 미소를 지었다.
“매일 붙어 있다가 한꺼번에 우르르 사라지니까 좀 그렇긴 해. 내가 벌써 나이를 먹는 건가?”“나이를 먹긴요, 자주 보지 못한 저도 허전한데요.”
영준이 형을 위로하려고 한 말이지만 수철의 마음도 그랬다.
막상 떠나고 나니까 좀 더 시간을 같이 보낼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금쯤 ECM(영국 음반사)에서 한참 홍보 전략을 세우고 있을 거야.”
영준이 형이 앨범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금방 출시할 것처럼 서두르더니 다음 달에나 출시할 생각인가 봐. 이럴 줄 알았으면 녹음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는데.”
발매가 늦어지는 걸 못마땅해했다.
“저도 들었어요. 그런데 왜 늦어지는 걸까요?”“다른 앨범들이랑 겹치지 않게 시기를 조절하는 거겠지. 앨범을 한두 장 출시하는 회사가 아니니까.”
“그렇군요.”
“내가 듣기로는 관계자들 반응이 좋은가 봐. 기대를 많이 하는 눈치야.”“잘됐으면 좋겠어요. 형도 멤버들도 수고를 많이 했잖아요.”“수고는 네가 많았지. 내 생각엔 좋은 성과를 거둘 거 같아. 앨범은 초반 조짐이 중요한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 조짐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거든.”
영준이 형은 외국에서 앨범을 몇 장 낸 사람답게 긍정적인 예상을 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음반사에서 원하는 자료는 다 보냈어?”“브라이언 김 형님께 보냈어요. 음반사 일도 그분이 맡아 주기로 하셨거든요.”“그래. 그러는 게 편할 거야. 그리고 타이틀 곡 선정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회사에 맡기는 거야?”“네, 저한테 물어보시길래 회사에서 선택해 달라고 했어요. 그게 좋을 거 같아서요.”“잘했어.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감각이 정확하겠지. 지금쯤 열심히 회의하고 일정 잡고 있겠네. 자켓 작업하고 발매처 잡고 홍보 작업도 들어가야 할 테니까.”
영준이 형은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꿰고 있듯이 말했다. 그리고 성공을 예상하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까지 ECM이 소비자에게 쌓아온 신뢰가 있으니까 이번 앨범도 기대할 만할 거야. 그리고 내가 듣기론 거기서 먼저 제안한 앨범치고 실패한 앨범은 없다고 들었어.”
“그렇군요.”
“음악을 선별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ECM의 영업 능력이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해. 월등한 확률로 성공시키고 있으니까.”“대단하다는 얘기는 들었어요.”“여기선 유명하지 않지만, 유럽에선 ECM이 탑이야.”
수철이 ECM에 대해 박 대표에게 물었을 때, 박 대표도 영준이 형과 같은 얘기를 했었다.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탑이라고.
“거기가 적당히 하는 곳은 아니니까 능력을 믿어 보자고. 생각보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 같아. 내 예감이 그래.”
영준이 형은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앨범의 밝은 미래를 기대했다.
* * *
ECM(Editions of Contemporary Music) 런던 지사.
북런던에 위치한 이곳의 미팅 룸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앨범 제목이 어비스(abyss, 심연)라고?”
회의를 이끌고 있는 마케팅 이사 해리였다.
“네, 작곡자 용수철이 붙인 이름입니다.”
해리의 물음에 젊은 팀장이 나서서 대답했다.
해리가 다시 물었다.
“어떤 의미지?”
“작곡가가 보컬리스트인 제시 해밀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받은 느낌이라고 합니다.”“받은 느낌? 제시 해밀턴의 소리에 어비스 같은 깊이가 있다는 말인가?”“맞습니다, 음원을 처음 들었을 때 저희는 모두 제목에 공감했습니다. 소리가 몸속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해리가 비스듬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자신이 들었을 때는 놓쳤던 부분이다.
팀장과 시선을 맞추며 되물었다.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느낌? 그 정도야?”
“네.”
팀장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해리는 두 손을 모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매력적인 얘기군. 그래서 기획팀에서 앨범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거고.”“작곡자는 음원 소비자들이 심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길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오호, 그 말도 멋있군. ‘심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작곡자다운 멘트야.”
해리는 그 말에 꽂혀서 몇 번을 되뇌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좋은 말이야. 홍보 문구로 사용해도 되겠어.”“참고하겠습니다.”
“가사는 제시 해밀턴이 쓴 거로 알고 있는데 맞나?”
“그렇습니다.”
“가사에 대한 평이 좋던데?”“네, 개성이 강해서 차별화 전략을 쓰기에 좋은 가사입니다. 음악이랑도 매우 잘 어울립니다.”“듣기 좋군. 좋은 얘기야.”
“네.”
해리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짓자 팀장도 덩달아 미소를 보였다.
“타이틀 곡 선정을 우리에게 맡겼다고?”“네, 회사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불필요한 충돌은 없겠군.”
“그렇습니다.”
해리는 잠시 수염을 쓰다듬다가 팀장을 봤다.
“그럼 타이틀 곡은 모니터링 결과에 맞춰 선정하면 되겠군. 결과는 나왔나?”“1차는 분석을 마쳤고, 2차는 지금 분석 중입니다. 그런데 1차에서 나온 100명 모니터 집단의 결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어떤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