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02화 (102/239)

#102화. 상승가도

흐흐.

뜻 모를 탄성이 이 실장의 입을 타고 흘러내렸다.

외국에서 상까지 받은 최고 전문가의 칭찬에 흥분이 솟았다.

한껏 부풀어 올라서 어쩔 줄 몰랐다.

‘맞아, 그랬었지.’

박 대표는 스튜디오 사장이 평소와 다르게 칭찬을 늘어놓자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전율.

그 전율을 사장도 느낀 것이다.

박 대표의 얼굴이 잠시 상기되었다.

스튜디오는 사장의 칭찬 몇 마디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수철만 이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묵묵한 얼굴로 처음 보는 스튜디오의 장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낙원상가에서도 보지 못했던 건데.’

메인 모니터 옆으로 스피커들이 아래위로 쌓여 있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처음 보는 스피커들이었다.

생긴 모습도 범상치 않은 게 위압감을 줄 정도였다.

가격은 추측하기도 힘들었다.

최고의 마스터링 스튜디오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어디에 쓰는 걸까.’

수철은 사장에게 장비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마스터링을 하러 온 자리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마스터링 스튜디오는 시간이 돈이다.

시간이 아니라 곡당으로 계산해서 돈을 받지만, 그래도 일반 녹음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 박 대표가 사장을 보며 손으로 수철을 가리켰다.

“편곡은 이 친구가 다 한 겁니다.”

그 말에 사장은 등을 돌렸다.

안경을 고쳐 쓰더니 수철을 유심히 봤다.

그리고 금세 환하게 웃었다.

“젊은 분이 엄청난 능력자시군요. 어쩐지 처음 뵐 때부터 외모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이거 반갑습니다. 자주 만나게 됐으면 좋겠어요.”

사장이 느닷없이 손을 내밀었다.

수철은 당황해서 박 대표를 잠시 쳐다보다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가볍게 맞잡았다.

뻘쭘한 상황이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칭찬을 늘어놓던 사장은 장비 세팅이 끝나자 손을 비비며 박 대표를 봤다.

오늘 마스터링은 박 대표가 주도한다.

보통은 믹싱을 진행한 엔지니어가 참석해서 주도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수철과 박 대표.

전문가가 둘씩이나 있다.

“혹시 원하시는 레퍼런스 음원이 있나요?”

사장이 의자를 끌어 모니터 앞에 앉으며 물었다.

박 대표가 등 뒤에 서서 대답했다.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소 하시던 대로 기본을 잡으시고, 들어 보면서 수정 사항을 요청할게요.”“네, 그렇게 하시죠.”

사장은 대답하고는 폴더를 열어 음원을 꺼냈다.

“어제 믹싱한 음원을 받고 제가 미리 좀 만들어 봤어요. 이거 먼저 들어 보시죠.”

사장은 이미 3가지 버전으로 가마스터링한 음원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괜히 전문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매장에 진열된 상품을 고르듯이 준비된 음원을 듣고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선택된 음원은 약간의 교정을 거쳐 마무리된다.

그렇게 음악이 완성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두둥. 구궁, 쿠웅.

사장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멈춰 있던 스피커들이 동시에 움직이며 일제히 소리를 뿜어냈다.

처음 듣는 웅장한 소리였다.

바로 눈앞에서 연주하는 듯한 그 웅장함에 수철도 흠칫 놀랐다.

‘마스터링 스튜디오가 이런 곳이었구나.’

예상은 했지만, 차원이 다른 소리에 새삼 놀랐다.

음악의 최종 완성, 소리의 예술은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바로 이 스튜디오가 음악의 종착역인 셈이다.

처음 작곡가가 오선지에 악보를 그릴 때부터 시작해서 노래, 연주, 녹음, 믹싱 등의 긴 여정을 거쳐 드디어 이곳에서 창작은 막을 내린다.

“음.”

수철의 눈은 이내 초롱초롱해졌다.

3가지 버전의 장단점을 분석하기 위해 귀를 집중했다.

“이번이 마지막 버전입니다.”

사장이 3번째 버전을 플레이했다.

그러자 박 대표도 다시 신경을 곤두세우며 음악을 들었다.

자신의 앨범도 아닌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자 박 대표가 수철을 봤다.

“세 번째 빼고, 첫 번째 두 번째 중에 선택하면 될 거 같은데?”

그 말에 수철도 동의했다.

“네, 제 생각도 그래요.”

박 대표가 다시 등을 돌리며 사장에게 말했다.

“세 번째는 빼 주시고요. 첫 번째 두 번째 다시 한번 들어 볼게요.”“네, 틀어 드릴게요.”

탈락한 한 곡을 빼내고 남은 두 곡을 선택해서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두툼한 다이얼을 매만져 볼륨을 조절했다.

소리를 마지막으로 다듬는 작업, 마스터링.

스튜디오는 노이즈 제로 상태를 만들기 위해 공중에 떠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 스튜디오 안에 다시 웅장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첫 번째가 좀 낫지?”

“네.”

음악을 선택하기 힘들어서 몇 번을 더 들어 보고 나서야 첫 번째 버전을 선택했다.

“이상하게 올 때마다 항상 첫 번째 버전을 선택하게 된단 말이야.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박 대표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 말에 사장이 씨익 웃었다.

왠지 거기에는 사장만의 숨은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첫 번째 버전 다시 들어 볼게요.”

이번에 사장은 음악을 틀면서 처음 보는 기계의 다이얼을 매만졌다.

그러자 소리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와.

소리가 순식간에 안과 밖을 넘나들었다.

방 안에서 듣던 소리가 갑자기 창문 밖으로 튀어나가더니 금세 다시 돌아와서 귀 옆에 착 달라붙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마스터링이 이런 거였구나.’

경이로움에 수철의 눈이 빛났다.

소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머리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무릎 아래로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흥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장이 매만지던 다이얼을 멈췄다.

“처음부터 다시 들어 볼게요.”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투둥, 따당. 쿵. 칙!

사장이 다이얼로 펼친 마술 덕에 몇 분 만에 소리는 딴딴해졌다.

각각의 소리가 확고하게 정체성을 찾은 모습이었다.

엄청나게 환호했던 믹싱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떠세요?”

사장이 등을 돌리며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만 다시 조절해서 모니터링해 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박 대표는 수철과 상의하며 몇 가지를 주문하고 다시 듣고를 반복했다.

“전체 리버브를 좀 더 넣어 보시겠어요?”

“네.”

“컴프레서(Compressor, 작은 소리는 크게, 큰 소리는 눌러서 줄이며 레벨을 일정하게 만들어 주는 장비)를 좀 더 걸어 주시겠어요?”

“네.”

사장은 박 대표의 주문대로 빠르게 다이얼을 만지며 소리를 변환시켰고, 박 대표는 계속 음악을 모니터링하면서 수철과 상의했다.

몇 번을 더 주문하다가 큰 변화가 없자 그제야 박 대표는 멈췄다.

“어때?”

“좋아요.”

수철은 박 대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소리가 변환하는 게 신기해서 더 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정도면 예상했던 거보다 훌륭했다.

“1곡이니까 금방 끝날 거야. 다른 곡과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없으니까.”

박 대표가 마스터링을 시작하기 전 했던 말대로 마스터링은 1시간 만에 모두 끝이 났다.

잔뜩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시시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과는 컸다.

수철은 소리가 변환되는 과정을 들으며 마스터링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작업하면서 마스터링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땠어?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처음 접한 경험이?”

스튜디오를 나서며 박 대표가 물었다.

수철이 밝게 웃었다.

“너무 좋았어요. 장비들 보니까 군침이 돌았어요. 특히 스피커요. 헤헤.”“하하. 그 마음 알지. 하지만 너무 관심 두지 마, 잘못하면 집 말아먹을 수도 있어.”

“왜요?”

“그 스피커는 웬만한 승용차보다도 비싸거든. 하하.”

박 대표는 수철이 스피커에 관심을 가지는 게 재밌는지 껄껄 웃었다.

“영국에서 마스터링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어요. 영국에서는 중저음대 음역을 강조했는데, 오늘 마스터링은 중고음대를 풍성하게 잡더라고요.”

수철이 마스터링을 처음 경험한 소감을 말하자 박 대표가 빙그레 웃으며 끄덕였다.

“영국과 여기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 문화도 다르고 환경도 인종도 다르니까.”“네, 그렇긴 하죠.”

“나도 예전에는 영국 사운드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어느덧 여기에 익숙해진 거 같아. 오늘 마스터링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한국에서는 인기가 있거든.”

박 대표는 말을 하면서 이 실장을 봤다.

이 실장의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데 이 실장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

박 대표가 옆구리를 툭 치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외국 진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국 진출?”

“아까 사장님이 외국 팝 시장에서도 먹힐 거라고 했잖아요.”

“……!”

이 실장이 딴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박 대표가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 실장, 우선 한국 시장 먼저 집중하고 그건 나중에 생각해.”“네, 압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미리 준비는 해 둬야죠.”

“이 실장.”

“네.”

“외국 나갈 비행깃값도 없잖아?”

“지금은 그렇죠.”

“그럼 비행깃값이라도 벌고 나서 생각하자. 한국에서 대박 나면 사람들이 해외 시장에 내보내자고 여기저기서 제안하잖아? 잘 알면서 그래?”“그 정도 대박 쳐 본 적이 없어서…….”“암튼 외국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한국 시장 먼저 신경 쓰자. 오케이?”

“네.”

이 실장은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머릿속엔 온통.

해외 팝 시장.

미국.

빌보드 차트.

초대박.

이런 단어들만 맴돌았다.

어쨌든 오늘로써 음악에 대한 모든 과정은 끝이 났다.

앨범 제작 과정에서 음악 파트는 끝나고 홍보 파트로 공이 넘어갔다.

이제 이 실장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홍보하는 것에 리메이크 앨범의 승패가 달렸다.

이 부분은 수철이 도울 수가 없다.

박 대표는 도울 수 있지만 그래도 그건 오롯이 이 실장의 영역이다.

본격적으로 나서서 능력을 발휘할 때다.

“대표님, 수철 씨, 여기까지 내 일처럼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마지막 헤어지는 자리에서 이 실장은 마음을 담아 감사함을 표했다.

“그래, 이 실장도 마음 졸이느라 고생했어. 음악이 잘 나왔으니까 이제 열심히 뛰어다녀 봐. 홍보는 이 실장 전문 분야잖아.”

박 대표는 힘내라고 이 실장의 등을 토닥여 줬다.

수철도 파이팅을 외쳐 줬다.

* * *

“가수는 어떻게 뽑을까?”

수철과 박 대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프로젝트 앨범을 진행했다.

서로의 자작곡을 얘기하며 음악에 맞는 가수를 어떻게 선정할지 고민했다.

수철이 이렇게 박 대표, 다혜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이 실장은 바쁘게 뛰어다녔다.

“안녕하십니까! 나 피디님! 그동안 너무 그리웠습니다!”

아직 음원이 출시되지 않았지만, 미리 방송 심의를 받고, 홍보 시디를 만들어 여기저기 뿌렸다.

방송국을 돌며 안면이 있는 피디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홍보가 가능한 모든 곳에 얼굴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표님, 오늘입니다.

드디어 음원이 플랫폼에 노출됐다.

이 실장이 말했던 대로 같은 날 동시에 모든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홍보는 부채질입니다. 일단 불이 붙으면 활활 타도록 열심히 부채질해야죠.”

자신이 주장했던 홍보 철학처럼 돌아다니며 열심히 부채질했다.

그 결과, 빠르게 순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합니다.”

이 실장은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지우를 방송 3사는 아니지만, 청취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 출연시켰다.

그리고 연이어 불교, 천주교 방송에도 출연시켰다.

종교는 이 실장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힘닿는 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그리고 그 결과, 여기저기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방송 3사에서 출연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MBC 라이징 스타, 김서옥 작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 실장은 벅찬 감정에 두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 모든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전화를 끊으면서도 감격에 겨워 허리를 꾸벅꾸벅 굽혔다.

“대기실에 두 시간 일찍 도착해 있겠습니다.”―호호, 그러실 필요까진 없으세요. 30분 전에만 오시면 돼요. 대기실은 그전에 다른 분이 쓰셔야 하니까요.

이 실장은 방송국 돌아가는 생리를 손바닥 보듯 뻔히 잘 알면서도 마치 신인 매니저처럼 행동했다.

“이제 됐어!”

전화를 끊고 이 실장은 소리를 질렀다.

이 모든 게 이 실장이 죽기 살기 각오로 매달린 덕택이었다.

“한번 도와주십시오!”“아 진짜 왜 그러세요? 순서가 있는 건데 왜 맨날 찾아와서 이럽니까?”

피디들은 제작자가 직접 찾아와서 매달리는 게 짠하기도 했고, 쫓아다니며 죽는소리를 하는 게 귀찮고, 지겹기도 했다.

그래서 털어 낼 생각으로 한번 틀어 줬다.

그런데.

……어랏?

음악 반응이 너무 좋다.

청취자들이 한둘 신청하기 시작하더니 금세 음악 신청이 폭주했다.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이 실장님.

이제 거꾸로 피디와 작가가 이 실장을 찾아 전화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누구 말대로 음악은 히트만 치면 장땡이다.

리메이크 앨범은 방송과 공연 스케줄이 줄줄이 잡히면서 빠르게 상승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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