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08화 (108/239)

#108화. 해프닝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야외 콘서트는 소아암 환자 돕기 콘서트였다. 그래서 한 대형 병원의 앞마당에서 생방송으로 펼쳐졌다.

자선 콘서트에 참가한 지우는 자기보다 어린 친구들이 환자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핏기 없는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슬펐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지우의 가녀린 목소리는 더 가녀려졌다.

노래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지우는 대기실로 가지 않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허리를 숙이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또래의 소녀에게 다가갔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씌워 줬다. 소녀는 지우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이 모습이 피디의 눈에 딱 띄었다.

“3번 카메라! 저기 좀 잡아 보세요.”

지우와 소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자선 콘서트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대기실로 돌아간 지우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얼굴을 파묻고 훌쩍였다.

이 모습도 역시 카메라에 잡혔다.

출연자의 제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 출연자는 이 실장일 확률이 컸다.

어쨌든 이 장면들이 생방송으로 나가자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이슈가 되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저거 보고 펑펑 울었어요.

―저도요.

―전 바로 성금 후원했어요.

―아직 세상은 아름답군요.

등등의 댓글이 달렸고,

―여린 목소리의 소녀는 감성도 여린 천사였다.

기자들의 기사가 작성되고.

―천재 논란은 언론의 조작된 횡포였다.

이 실장이 적은 듯한 댓글도 보였다.

어쨌든 지우는 이번 방송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여기저기서 지우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어렸을 때 불우했었대요.

―그때의 모습이 겹쳐 보여 그렇게 울었던 거군요.

어떻게 알았는지 지우의 어린 시절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에는 이 실장이 있었다. 하지만 조작된 얘기는 아니었다. 이 실장이 흐름을 타고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맞지만, 지우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실장만 흐름을 탄 건 아니었다.

“지우 사진 컷 만들어서 여기저기에 뿌려 놔! 다음 콘서트까지 분위기 이어지게!”

“네, 피디님.”

“그리고 지우 소속사에 연락해서 언제 또 출연 가능한지 알아봐.”“한창 바쁠 텐데요?”“아무리 바빠도 우리 프로그램은 출연해야지. 안 그래? 우리가 띄워 준 거잖아.”

지우의 장면이 이슈가 된 덕분에 자선 콘서트에는 많은 성금이 모였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면서 프로그램도 자연스레 유명세를 탔다.

작가들은 지우의 사진 컷을 열심히 뿌리면서 이슈가 오래 가도록 부채질했다.

* * *

―대표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소식 잘 듣고 계시죠?

이 실장이 거들먹거리며 전화를 해 왔다. 박 대표는 껄껄 웃으며 분위기를 맞춰 줬다.

“하하! 그래, 잘 듣고 있어. 하늘이 이 실장을 돕나 보네. 축하해.”―기다리십시오, 조만간 은혜 갚으러 달려가겠습니다!

“은혜는 천천히 갚아도 되니까, 고향 가서 어머니 맛있는 거부터 사 드려.”―역시, 대표님은 감동이십니다. 존경합니다!

“하하. 난 이 실장이 존경한다고 말하면 겁부터 나. 건강 잘 챙기고, 계속 좋은 소식 만들어 봐.”

박 대표는 계속해서 이 실장을 응원해 줬다.

다른 사람들이 이 실장의 홍보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도 박 대표는 이 실장의 편을 들었다.

“이 실장이 운이 좋은 겁니까, 아니면 기획력이 좋은 겁니까? 방송 보니까 미심쩍은 부분이 좀 있던데요?”

몇몇 제작자들은 이 실장의 가파른 상승세를 질투했다. 특히 방송에 나온 지우의 눈물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박 대표는 즉각 이 실장의 편을 들었다.

“미심쩍다니요? 괜한 오해예요. 생방송인데 설마 피디랑 작가랑 짜고 연출했겠어요? 이 실장이 그 정도로 파렴치한은 아니잖아요?”“흠, 흠.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냥 합리적인 의심이 좀 들었다는 말이에요.”“합리적인 의심이라니요?”“그렇잖아요? 음악이 좋아서 인기를 끄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방송까지 하루아침에 이렇게 대박이 나냐고요.”

이들은 한때 이 실장과 친하게 어울려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실장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심하고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좋게 생각하세요. 이 실장도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요.”

“…….”

“그리고 파도가 밀려오면 얼른 서핑보드에 올라타야죠. 분위기 좋을 때 노 열심히 젓는 건 당연하잖아요. 안 그래요? 이 실장이 옛날부터 그런 재주는 있었잖아요.”

박 대표가 맞는 말만 하자 몇몇 제작자들은 썩은 표정이 됐다.

“아니, 박 대표님은 이 실장이랑 다시 친해진 거예요? 왜 그렇게 편을 드세요? 누가 보면 이 실장 대변인인 줄 알겠어요.”

‘으이구, 콱!’

찌질이들 한 대 쥐어박았으면 좋으련만.

박 대표는 감정을 누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대변인이라뇨? 이 바닥에 적이 어딨고 아군이 어딨습니까? 잘나가면 모두 아군이죠. 하하.”

박 대표의 생뚱맞은 대답에 제작자들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박 대표도 이 실장의 홍보 방식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과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건 이 실장이 결정한 영역이고, 남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도의적으로 용납되지 않거나 법을 어기지 않는다면 참견할 게 아니다.

‘어쨌든 지우의 눈물은 사실이니까.’

박 대표는 이 실장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났으면 딱 좋았는데.

그랬으면 해피엔딩이었는데.

* * *

박 대표를 분노케 하는 일이 발생했다.

“쌤, 이거 보세요!”

인터넷을 하던 다혜가 등을 돌렸다.

컴퓨터 화면에 포털 사이트의 기사가 보였다.

한 음악 잡지의 기사가 상위권에 링크되어 있었다.

[단독, 오디션에서 사라진 시크릿 천재, 지우의 리메이크 앨범으로 돌아오다.]

―요즘 가장 핫한 목소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수 지우의 리메이크 앨범은 오디션을 마지막으로 잠적했던 천재 음악가 용수철이 직접 편곡, 연주, 프로듀싱까지…….

“아니, 이런 미친!”

한눈에 봐도 이 실장이 벌인 짓이었다.

박 대표는 분노해서 구둣발로 바닥을 박차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엄청난 배신감이 몰려왔다.

바로 전화를 집어 들었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통화 중이었다.

멈췄다 다시 해도 계속 통화 중이었다. 박 대표는 점점 더 열이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도와주고, 수철은 자기 일도 아닌데 편곡하고 연주하고 녹음까지 다 해 줬는데 어떻게 이런 짓을! 제정신 맞아?”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박 대표는 흥분을 삭이지 못하고 양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계속 씩씩거렸다.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 수철의 이름까지 팔다니! 그것도 수철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까지 끄집어내서! 이런 썩을 놈이 있나!”

박 대표는 작업실 안을 빙빙 돌며 씩씩거렸다.

다혜는 함부로 말을 붙이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슬그머니 박 대표 앞에 밀어 놓았다.

박 대표는 목이 타는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단번에 들이켰다.

―지이이잉.

드디어 전화가 울렸다. 이 실장이었다.

박 대표는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이 실장! 너 뭐 하는 사람이야!”

놀란 이 실장은 잠시 멈칫하다 대꾸를 했다.

―죄송합니다, 요즘 출연 요청이 많아서 통화를 길게 하다 보니…….

엉뚱한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왜 그런 기사를 내보냈어!”

박 대표가 다시 소리치자 그제야 이 실장은 상황을 깨달았다.

―아, 대표님! 그건 오해십니다.

“오해? 그럼 이 실장이 한 게 아니란 말이야? 이 말, 거짓말이면 각오해야 할 거야!”―아니요, 대표님. 그런 뜻이 아니라.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제 얘기 좀 들어 주세요.

“…….”

박 대표는 대꾸하지 않고 숨만 거칠게 쉬었다. 이 실장은 잠시 뜸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저도 그 기사가 난 것을 오늘 아침에 알았습니다.

“…….”

―네, 맞습니다. 제가 퍼트린 거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음원 나오기 전에 잡지사 편집장에게 보도 자료 주면서 구두로만 말한 거였습니다. 인지도도 없는 삼류 주간지여서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

박 대표가 말이 없자, 이 실장은 계속해서 사과했다.

―제 생각이 얄팍했습니다. 음악 좀 띄워 보려고 수철 씨 이름을 팔았으니까요. 그때는 하나라도 아쉬워서 그렇게 한 건데,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돌았었습니다. 궁지에 몰리다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박 대표가 화를 다스리며 물었다.

“이슈 만들려고 한 건 아니라는 말이네?”―절대 아닙니다. 맹세코 그런 적 없습니다. 지금도 분위기가 좋은데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제가 그랬다면 정말 개자식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

―…….

박 대표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어떻게 수습할 거야?”―일단 기사부터 내리게 해야죠. 저도 오전에 보자마자 놀라서 얼른 기사 내리라고 전화했는데 담당자가 없다는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피하는 거겠지.”

―……그런 거 같습니다.

“기사는 그렇다 치고, 수철은 어떡할 거야? 수철에게 사람들 전화가 빗발칠 텐데.”―제가 막아 보겠습니다.

“어떻게?”

―한국에 없고, 외국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허!”

이 실장의 빈약한 답변에 박 대표가 실소를 내뱉었다.

“그런다고 막아지겠어?”―……제가 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 막아 보겠습니다.

한창 기분에 들떠 호기롭던 이 실장의 풀이 팍 죽었다.

사실 박 대표는 이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봐 왔다.

비열하지만 이 정도의 이슈 만들기는 차고 넘친다. 이 바닥에서는 당연시 받아들일 정도다.

하지만 박 대표가 지금 분노하는 것은 그런 이슈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은혜를 베푼 사람의 뒤통수를 쳤다는 배신감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다 그런다 해도 이 실장만큼은 그러면 안 된다.

수철은 자기 일처럼 이 실장을 도왔다. 이 실장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꼴이 되었다.

박 대표도 수철을 볼 면목이 없다. 이 모든 게 박 대표가 이 실장을 도와주면서 생긴 일이다.

‘아무리 눈이 멀어도 그렇지!’

박 대표는 이 실장의 그때 상황을 알지만, 쉽게 화가 가시지 않았다.

잠시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야?”

―공개방송이 있어서 제주도에 와 있습니다.

“서울엔 언제 오고?”―이거 끝나면 바로 부산으로 가야 해서 다음 주쯤에 올라갑니다.

“…….”

―…….

“수철에겐 일단 내가 설명할 테니까 서울 오는 대로 와서 직접 사과해.”―네, 대표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수고해.”

박 대표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이 실장이 다시 한번 사과를 표했다.

―민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믿고 도와주셨는데, 제가 정말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 말에 박 대표가 다시 언짢은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죄송합니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든지. 괜한 일을 벌여서 도와준 사람 배신감 들게. 최선을 다해 도와준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말이 돼?”

박 대표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았어. 두 번 다시 이런 일 안 생기게 주의해.”―네, 대표님. 올라가는 대로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박 대표는 더는 피해가 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 * *

“쌤, 저 왔어요.”

미팅 시간이 되자 수철이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상황을 모르는 수철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수철을 보자 박 대표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벌게졌다.

“쌤? 왜 그러세요?”

박 대표의 표정이 갑자기 급변하자 수철이 다가오며 얼굴을 살폈다.

박 대표는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도 어쨌든 설명은 해야 했다.

“수철아, 그게 말이야…….”

박 대표는 조심스레 잡지에 실린 기사 얘기와 이 실장에게 들은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네? 진짜요?”

예상대로 이야기를 듣는 수철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순간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

수철의 반응이 미미하자 박 대표가 수철의 표정을 살폈다.

“왜 가만히 있어?”

“뭐가요?”

“이런 일 싫어하잖아. 그냥 넘어가는 거야?”

그 말에 수철이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그 물음에 박 대표는 멈칫했다.

“배신감 안 들어?”

“들어요, 아주 많이.”

“그럼 화를 내.”

“누구한테요?”

“…….”

박 대표의 말문이 막히자, 눈치만 보고 있던 다혜가 그 틈을 타서 아이스 커피를 가져와 이번엔 수철 앞에 내밀었다.

수철은 고맙다며 인사하고 빨대로 한 모금 쭉 빨아 마셨다.

박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달달한 디저트까지 다 쏜다.”

박 대표는 미안한 마음에 모두를 끌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 * *

“지우 나오네?”

아이러니하게도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의 TV 화면에 지우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지우는 어느새 가요 프로그램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모두 조금 전의 해프닝은 잊어버리고 해맑은 눈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지우가 고음을 지르는 부분에선 같이 인상을 썼고, 지우가 수줍은 멘트를 할 때는 미소를 머금었다.

“지우가 갈수록 예뻐지는 거 같아.”

박 대표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러자 수철도 대꾸했다.

“실력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지우 멋있다.”

다혜도 흐뭇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모두 지우의 삼촌, 언니, 오빠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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