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09화 (109/239)

#109화. Good Luck ‘백자의 눈물’

수철이 화제가 되며 인터넷이 떠들썩할 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영화감독 필립 윤과 음악 감독이었다.

“들을수록 참 신기해요.”

영상과 음악이 잘 맞는지 모니터링하며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던 음악 감독이 등을 돌렸다.

그 말에 필립 윤이 쳐다봤다.

“뭐가?”

“이 정도의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음악이 영상을 잡아먹을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게 없어요.”

그 말에 필립 윤이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 부분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고마워. 아직 나이도 어린데 그런 절제력까지 있다니 말이야. 보면 볼수록 배울 점이 많은 예술가야.”

필립 윤의 말처럼 수철 정도의 음악가면 영상보다 음악이 두드러질 텐데, 튀지 않고 영화를 잘 받치고 있다. 말 그대로 음악이 영화에 녹아 있다.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사려 깊게 잡았는지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사운드트랙이 전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거슬리는 게 전혀 없어요. 감독님도 잘 아시지만 이런 음악가와 작업을 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잖아요?”

음악을 잘 만드는 사람은 영화보다 음악이 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화는 잘 받치지만, 음악이 약하다는 얘기였다.

그 말에 필립 윤은 턱을 만지며 천천히 대꾸했다.

“수철은 그런 걸 충분히 담을 그릇이 되는 거 같아.”

말하는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깨달은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음악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종본이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돼요. 이 정도면 칸에서 음악상도 노려볼 수 있지 않겠어요?”

“가능한 얘기지.”

평소 같으면 그러길 바란다며 막연하게 대꾸했을 필립 윤도 이번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영화의 후반 작업이 마무리되며 최종 점검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음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끼익.

수철이 막바지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수철 씨, 어서 와요.”

수철을 발견한 필립 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젠 친해져서 선생님 대신 수철 씨라고 부른다.

“네, 감독님. 일찍 와 계셨네요? 음악 감독님도요.”“우리야 막바지니까 집중해서 잘 마무리하려고 일찍 왔지만, 수철 씨는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저도 몇 가지 수정할 게 있어서요.”

셋은 잠시 테이블에 앉아 앞으로 일정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얼마 후 수철은 음악 감독과 같이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다.

* * *

음악 감독은 필립 윤과 같은 교포 2세다.

음대를 나와서 연주 활동을 하다가 영화에 빠져서 지금은 음악 감독을 하며 필립 윤에게 영화를 배우고 있다. 음악영화를 만드는 게 꿈인 사람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려지지만, 그래도 영상에 맞춰서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이번에도 악기 음색, 전개, 소리 하나하나에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수철이 만들어 온 최종 수정본을 영상에 붙여 보던 음악 감독이 물었다.

“처음 시작되는 부분은…….”

수철은 영상을 보며 수정한 부분에 대해서 음악 감독에게 설명했다. 영상이 마지막 편집을 거치면서 변화가 생겨서 수철도 거기에 맞춰서 음악을 수정했다.

퉁소의 등장.

오케스트라의 등장.

“그리고 이 부분은…….”

그전에도 그랬지만, 절정 부분에서의 음악이 더 강렬해졌다. 마치 누가 더 웅장한가를 겨누기라도 하듯이 북들이 자신의 함성을 올려 댔다.

그러다 다시 도자기공의 세심한 손끝을 표현하듯 소리가 서로 교차하며 현악기가 가늘게 울려 나왔다.

설명을 듣는 음악 감독의 표정은 수시로 변했다. 변화된 소리마다 붙여진 타당한 이유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매번 자신을 소름 돋게 하는 수철이 이젠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에도 악기의 섬세함은 마치 새들의 날갯짓에서 나오는 작은 떨림까지 표현한 거 같았다.

음악 전체를 끌고 가는 퉁소는 플루트나 오보에 같은 서양악기보다 탄탄하게 영상을 받쳐 줬다.

“매번 느끼지만 퉁소 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에요. 왜 난 그동안 이 악기를 모르고 있었을까요?”

음악 감독의 말에는 놀라움과 자책이 섞여 있었다.

수철은 퉁소 하나로 백자를 만드는 도자기공이 좋은 흙을 찾아 팔도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멜로디라인이 마치 주인공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수철이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들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음악 감독이 바로 말을 이었다.

“다행 정도가 아니에요. 좋은 흙을 발견하고, 백자를 만들고, 염료를 바르고, 가마에 굽는 긴 과정. 이 부분의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정말 장엄하기까지 해요. 음악만 들어도 영상이 그려지잖아요.”

음악 감독 말대로 수철은 그 과정에 힘을 실었다.

필립 윤이 그 장면에 힘을 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철이 보기에도 백자를 만드는 그 과정은 정말 장엄했다.

도자기공은 분명 깊이 있는 예술가였다.

“주제곡만 따로 들어 볼게요.”

음악 감독은 영상을 멈추고 수철이 최종 마무리한 주제곡을 틀었다.

“필립 감독님이 말하려는 스토리가 음악 하나에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네요. 시놉시스처럼 말이에요.”

수정안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바뀐 편집에도 수철은 필립 윤이 말하려는 맥락을 정확히 짚어 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음악 감독은 문득 수철의 작업 방식이 궁금해졌다. 수철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다.

예술가로서 호기심이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작업은 어떻게 하는지 여쭤봐도 돼요? 선생님의 작곡 방식이 궁금하네요.”

다소 건방져 보였지만 둘의 관계에서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만큼 친해졌으니까.

그런데 그의 조심스러움에 비해 수철의 답은 너무 간단했다.

“그냥 만드는 건데요?”

솔직한 대답이다. 그냥 만드는 거다. 수철에게 작곡법 같은 것은 없다.

음악 감독은 잠시 멈칫하다가 대꾸했다.

“아, 그렇군요. 그냥 만드는 거군요.”

뭔가 대단한 비법을 기대했는데 수철이 너무 쉽게 답변하자, 아쉬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의 머릿속엔 소리에 대한 라이브러리가 있고, 거기서 캐릭터와 이야기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는다. 그리고 찾은 소리를 조합해서 입체적으로 음악화한다.

수철의 작업 방식은 음악을 만든다는 표현보다 소리로 스토리를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음악은 곧 소리의 조화니까, 어울리는 소리를 연결해 놓으면 스스로 하모니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음악 감독이 궁금해하는 수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 * *

“잘돼 가요?”

일을 보고 돌아온 필립 윤이 컨트롤 룸에 합류했다.

자신이 부탁한 새로운 사운드트랙을 들어 보기 위해서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 쓸 배경음악이다.

수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엔지니어에게로 다가갔다.

“제가 메일로 보냈으니까 확인하시고 붙여 주세요.”

엔지니어가 메일을 열어 파일을 꺼내자 수철이 등을 돌려 필립 윤을 봤다.

“들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전 잠시 화장실 좀.”

수철이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가자 엔지니어는 파일을 가져다 싱크를 맞춰 영상에 붙이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음…….”

사람들은 영상을 보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곧 만족스러운 얼굴로 끄덕였다.

수철이 엔딩 음악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2%가 부족한 거 같았다.

“음.”

이때 음악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이 부분에서 수철 씨가 깜빡한 거 같아요. 소리가 비어 있잖아요.”

음악 감독이 음악을 되돌려 원인을 찾아냈다.

그 말에 필립 윤과 엔지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철답지 않게 오류가 발생한 것이었다.

잠시 후, 수철이 돌아오자 음악 감독이 씨익 웃으며 말을 붙였다.

“수철 씨, 한 번 더 오셔야겠는데요?”

수철의 틈새를 발견한 것이 흡족하기라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수철이 모니터를 봤다.

“아, 그거요?”

수철은 정지된 영상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부분이 뭔가 아쉽죠? 저 부분은 서양 사람들 귀에 익숙하게 퉁소보다 오보에로 바꾸는 게 어떨까 해서 비워 뒀어요. 여기서 들어 보고 바꾸려고요.”

그 말에 필립 윤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음악 감독은 계속해서 의문을 표했다.

“같은 관악기라고 해도 퉁소에서 갑자기 오보에로 바뀌면 낯설지 않을까요?”

수철은 바로 대답했다.

“그건 걱정 마세요. 그 사이에 디지털 사운드로 매듭을 만들어서 넣을 거예요. 그래야 오보에의 선율이 살거든요.”

수철이 막힘없이 대답하자 음악 감독은 애써 시크하게 대꾸했다.

“어쨌든 한 번은 더 오셔야겠네요. 마무리하려면 말이에요.”

수철은 그 말도 거부했다.

“아니에요, 제가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

수철은 엔지니어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신디사이저를 가져와 컨트롤 룸에 세팅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바로 디지털 사운드를 만들어 즉석에서 영상에 소리를 입혔다.

디지털 매듭을 만들어 붙이자마자, 곧바로 오보에로 톤을 바꿔서 연주했다.

오보에도 연주할 줄 아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것은 이젠 궁금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숨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연주는 싱크를 맞출 필요도 없이 딱딱 맞아떨어졌고, 엔지니어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순식간에 작업을 마친 수철이 뒤를 돌아봤다.

“어때요? 이제 맘에 드세요?”

“퍼펙트예요.”

필립 윤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음악 감독은 꿈나라에서 헤매는 듯 해롱해롱한 얼굴로 끄덕였다.

이로써 ’백자의 눈물’과 함께한 영화음악 작업은 모두 마무리됐다.

이제 칸에서의 반응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 *

이 실장은 지방 행사와 방송을 끝내고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밤늦게 수철을 찾아왔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좋지 않았다.

“수철 씨, 정말 미안해요. 제가 은혜도 모르고 너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어요.”

수철은 나이 많은 이 실장이 머리까지 숙이며 사과하자 오히려 난감했다. 어색함을 벗어나기 위해 빨리 용서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괜찮아요, 벌써 다 잊었어요.”

그 말에 어두웠던 이 실장의 얼굴이 펴졌다.

“정말요? 진짜 그냥 봐주는 거예요?”

수철이 쉽게 용서해 주자 이 실장이 좋아서 되물었다.

“대신 또 그러시면 안 돼요.”“그럼요! 절대 그럴 일 없어요!”

주먹을 불끈 쥐며 호언장담을 했다.

“휴― 죽다가 살았네.”

금세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쉬세요. 저는 박 대표님 좀 보고 갈게요.”

박 대표에게도 용서를 빌겠다며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박 대표가 데려온 가수는 사연이 있었다.

하준이라는 가수는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 기획사에서 팽을 당한 사연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박 대표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하게 듣다가 하준이 눈물까지 보이자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하준은 수철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형이었다.

기획사에 들어가기 전 박 대표에게 레슨을 받은 적이 있어서 둘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고 했다.

“1집을 내고 활동하다가 소속사에서 부당한 일을 시키길래 거절했었어요. 그래서 5년 동안 계약에 묶인 채 방치되어 있었어요.”

말을 하는 하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혜가 그 부당한 일이 뭐냐고 물었지만, 하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만 했다.

“계약에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앨범도 공연도 못 하고 소중한 시간만 낭비했어요. 계약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끝을 흐렸다.

수철은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다혜는 주먹까지 쥐며 흥분했다.

“휴, 기획사 안 들어가길 잘했네. 잠깐, 마이클이랑 은주도 이런 꼴 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가 쳐들어가서 구해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철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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