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10화 (110/239)

#110화. 멤버의 재구성

다혜는 극악무도한 기획사라며 당장이라도 욕을 퍼부을 자세였다.

흥분하는 다혜를 박 대표가 서둘러 다독였다.

“다혜야, 워, 워. 진정해. 쳐들어가긴 어딜 쳐들어가? 쳐들어가면 너만 잡혀가.”

“제가 왜요?”

다혜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쳐다봤다.

“법이란 게 그래. 다 계약서 쓰고 하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는 거야.”

“으…….”

박 대표의 말에 다혜는 답답하다며 두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잘 알아보지 않고 성급하게 쓴 계약서 한 장 때문에 5년 동안 나 자신을 원망했어요.”

다혜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박 대표는 하준을 안타까운 얼굴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기획사가 의외로 많아. 앨범이 잘못되면 가수 탓을 하는 회사도 많고.”

박 대표는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게 불편한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들은 대중문화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데도 아무도 그들의 인성엔 관심이 없어. 오로지 대박을 쳤냐 안 쳤냐만 중요하지.”

박 대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하준은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해서 모든 걸 걸고 열심히 노래했는데, 회사를 잘못 만나서 힘들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다혜가 박 대표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무래도 저는 쌤과 계약해야겠어요.”“뭐?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다혜의 갑작스런 발언에 박 대표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하지만 다혜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꿋꿋이 말을 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한 거예요. 저랑 평생 노예 계약을 해 주세요.”“뭔 소리야? 누가 노예라는 거야? 너야? 나야?”“쌤, 농담 아니에요.”“나도 농담 아닙니다, 윤 제작자님. 정신 차리세요.”

“쌤!”

“안 돼!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꺼내지 마!”

박 대표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제가 쌤 회사의 1호 제자 겸 소속 작곡가가 되어 드린다는데 싫어요?”

그 말에 수철이 얼굴을 내밀었다.

“뭔 소리야? 1호는 나지. 넌 2호야.”

“뭐? 허!”

다혜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리고 인상을 썼다.

“내가 1호지 어떻게 네가 1호야? 쌤은 내가 먼저 알았는데?”“작업은 나랑 더 많이 했어.”“……너, 기획사 안 간다며?”“쌤은 기획사가 아니지.”

“아니면 뭔데?”

“아지트 같은 거지.”

“아지트?”

다혜가 갸웃하는데 박 대표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얘들아, 내가 싫다는데 너희가 왜 그래?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어.”“저희가 먹고살게 해 드릴게요.”

다혜가 말하며 빵긋 웃었다.

박 대표는 다시 혀를 찼다.

“얘들아, 제발 정체성을 찾아. 지금 너희는 제작자야. 누가 누구에게 소속이 되겠다는 거야?”

인상을 쓰고는 하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준아, 미안. 불러 놓고 우리끼리 떠들어서.”

하준은 빙그레 웃었다.

“아니에요, 저도 대표님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걸요.”“너까지 왜 그래? 이제 기획사라면 신물이 난다며?”“대표님은 괜찮아요.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그 말에 박 대표가 뒤통수를 긁었다.

“오늘 분위기가 왜 이렇지? 내가 인생을 잘 산 건가? 아니면 만만해서 그런가?”

“…….”

수철과 다혜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자 하준이 나서서 대답했다.

“당연히 대표님이 좋은 일을 많이 하셔서 그렇죠. 대표님은 제작자이기 전에 뮤지션이시잖아요.”

그 말에 박 대표가 환하게 웃었다.

“고맙다, 준아. 네가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구나.”

그러면서 다혜와 수철에게 냉랭한 눈빛을 날렸다.

믿을 놈 없다는 뜻이었다.

수철은 묵묵하게 시선을 넘겼고, 다혜는 시선을 피해 손톱을 매만졌다.

* * *

박 대표는 지난 미팅에서, 재능은 있는데 소속사와 마찰이 있어서 그간 힘들었던 가수라며 하준의 음악을 틀어 줬다.

“한번 들어 봐. 곧 만나게 될 하준의 1집 앨범이야. 5년 전 나온 건데, 타이틀 곡이 쓸 만해.”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수철은 박 대표의 추천과 달리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

감정이 지나쳐서 듣기 거북했고, 자기 노래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쌤, 저는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듣기가 좀 불편해요.”“라이브로 들어 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5년 동안 많이 변했거든.”

수철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박 대표는 직접 들어 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했다.

지금은 소리가 많이 안정되고 성숙해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았다. 지나치게 호흡을 내뿜으며 기교를 부려서 그렇지, 소리의 질은 나쁘지 않았다.

겉멋만 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간 활동도 못 하고 연습만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 시간에 깨달음이 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여기 오랜만에 와 보네요.”“그래, 5년 만이지?”

다 함께 하준의 노래를 들으려고 박 대표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럴 생각으로 오늘 하준을 만난 거였다.

“아아― 우우우― 우우예에―!”

하준은 부스에 들어가서 목을 풀더니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Slip inside the eye of your mind―!”

수철은 노래를 들으면서 박 대표의 말이 틀린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노래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오랜 연습 때문인지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가 탄탄하게 잡혀 있었다. 성대를 과도하게 써서 나오는 거친 쇳소리도 없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무대에 굶주려 있었던 탓에 뿜어내는 열기도 대단했다.

“와, 멋있다.”

다혜가 반할 정도였다.

“Don’t look back in anger I heard you say. Its not today―!”

하준은 신인 가수가 오디션을 보는 거처럼 최선을 다해서 노래했다.

모두가 만족했다.

노래가 끝나고 수철은 박 대표에게 노래를 들은 소감을 말했다.

“쌤이 말씀하신 대로 이번 앨범에 같이 참여하면 좋을 거 같아요. 일단 제 생각은 그래요.”“그럼 다혜만 오케이 하면 되겠네. 내 곡에도 준이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다혜는 안 물어봐도 될 거 같은데요?”

수철이 말을 하며 다혜를 가리키자 박 대표도 시선을 돌려 다혜를 봤다.

다혜는 이미 미소를 잔뜩 머금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철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좀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아쉬운 부분?”

“네, 아직도 옛날 습관이 남아 있어서 고음을 낼 때 인위적으로 들려요.”“음, 나는 못 느꼈는데 네겐 그렇게 들렸나 보군.”“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같이 이틀 정도 하드 트레이닝을 해 보면 어떨까요?”

“하드 트레이닝?”

“네,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앨범을 시작하기 전에 한번 잡아 보고 싶어요. 녹음 시작하면 그럴 수 없잖아요?”“그래, 알았어. 내가 준이랑 먼저 얘기해 볼게.”

수철의 말을 들은 박 대표는 하준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만족한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수철의 보컬 트레이닝 능력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같이 연습해 볼 것을 권했다.

“한번 같이해 봐.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야.”

하준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저는 좋아요. 오늘부터라도 당장 시작할게요.”“잘 생각했어. 아주 패기가 넘치네. 하하.”

박 대표가 기분 좋게 웃었다.

“5년을 했는데 이틀을 못 하겠어요? 전 언제나 그런 제안은 환영입니다.”“그래, 그럼 이틀 동안 보컬 트레이닝을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녹음할 곡들을 연습해 보자.”“네, 대표님! 합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준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박 대표는 잘해 보자며 어깨를 두드렸다.

* * *

수철은 모든 작업을 미뤄 놓고 하준과 같이 연습을 시작했다.

“편하게 수철이라고 부르세요. 저도 준이 형이라고 부를게요.”“그래, 잘해 보자. 대표님은 네 말이라면 껌뻑 죽는 거 같던데, 나도 좋게 봐 줘.”“껌뻑 죽기는요. 암튼 이틀 동안 같이 열심히 해 봐요.”

수철은 말했던 것처럼 하준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했다.

노래하고 녹음하고를 반복하면서 하준에게 자신의 소리를 계속 모니터링시켰다.

하준이 먼저 자신의 단점을 깨닫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될 문제였다. 오랫동안 연습해 온 끈기가 있어서 문제점만 인식하면 고치기는 쉬울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녹음하고 듣고를 반복하면서 거슬리는 부분을 잡아 나갔다.

“다른 건 다 잊어버리고, 형의 진짜 소리를 찾는다고만 생각해 보세요.”

수철은 계속해서 바꿀 수 없는 부분은 빨리 넘어가고,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소리를 내도록 하준을 도왔다.

그 결과 하준은 하나씩 레벨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하준에겐 자신의 소리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수철이 보기엔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았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 두려움이 불안함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수철은 다른 가수와 비교하며 하준의 자존감을 높여 나갔다.

“어때요, 형의 소리가 훨씬 더 좋지 않아요?”

보이스 컬러가 비슷한 가수의 노래를 틀어 주며 하준만의 장점을 칭찬하고, 하준에게 자신의 소리에 대한 확신을 계속 심어 줬다.

그래서 하준 자신도 모르는 잠재된 불안감을 수철은 제거해 나갔다.

“꽉 끼는 청바지를 입다가 시원한 반바지를 입은 거 같아.”

이틀 만에 하준이 환하게 웃었다.

노래하기가 편해졌다는 뜻이었다.

수철은 이제 녹음할 준비가 됐다는 걸 느꼈다.

* * *

“이틀 만에 얼마나 바뀌었는지 한번 볼까?”

박 대표가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하지만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반면 다혜는 기대 반 의심 반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아무리 수철이라도 이틀 만에 무슨 변화가 있겠어요?”

다혜는 딱 그런 표정이었다.

하준이 부스 안에 들어가 헤드폰을 썼다. 그리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지난번과 같은 노래였다.

“Slip inside the eye of your mind―!”

여기까지는 지난번과 큰 변화가 없었다. 박 대표와 다혜의 표정도 무덤덤했다.

하지만 후렴구에 접어들면서 둘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And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we’re walking on by―!”

조금씩 입이 벌어지더니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나자 박 대표는 수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헤이, 용 선생! 수고했어, 앨범이 재밌어지겠어.”

박 대표의 말은 앨범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을 거 같다는 뜻이었다.

다혜도 웃으며 툭 쳤다.

“오, 수철이 너 또 한 건 했네?”

하준이 밖으로 나오자 박 대표와 다혜는 노래를 들은 소감을 말했다.

“지난번보다 깨끗해지고 간결해진 느낌이야. 뭔가 굴곡이 제거된 거 같다고 할까? 노래가 상쾌하게 들렸어.”

박 대표가 기분 좋은 얼굴로 노래를 들은 평을 했다.

박 대표의 말은 수철과 하준이 기대했던 말이었다.

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혜도 마찬가지였다.

극찬했다.

“저도 지난번보다 듣기가 편했어요. 마치 자기 노래를 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오아시스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만큼 감동이었어요.”

다혜는 하준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 * *

“드라마 타이틀 곡은 보통 음악 감독이 작곡을 맡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말씀인데, 이번 기회에 선생님께서 음악 감독까지 맡으시면 어떨까요?”

한 달 전, 금별 기획은 수철에게 드라마 주제곡 작곡을 맡기면서, 음악 감독을 한번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 왔었다.

“연출팀과의 소통이나 행정적인 부분은 저희가 서포팅하겠습니다.”

수철이 음악 감독으로서 부족한 부분은 자신들이 채우겠다는 뜻이었다.

금별 기획의 입장에서 이런 제안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음악 감독은 실력뿐만이 아니라 경험이 많이 필요한 위치다.

특히나 드라마는 더 그렇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자연스레 수철과 엘진의 영상사업단을 묶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수철은 단박에 거절했다.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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