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황소고집
“정말 1년간은 지옥을 맛봤습니다.”
이 실장은 칵테일을 마시며 지난 시간을 그렇게 표현했다.
박 대표는 피식 웃었다.
“지옥은 아니더라도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지. 그래도 그 덕택에 이 실장이 여기까지 온 거라고 생각해. 굴곡 없이 순탄했으면 여전히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니며 인맥 쌓기 놀이나 하지 않았을까?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말이야.”
박 대표의 냉혹한 팩트 체크에 이 실장은 칼에 찔린 듯한 시늉을 했다.
“아야, 아픈 데를 사정없이 찌르시네요. 하하.”“내가 그랬나? 하하, 미안. 어쨌든 이제 살아났으니 다행이야. 이 실장은 축 처져 있는 것보다 씩씩한 게 보기 좋아.”“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렇죠. 어쨌든 제가 그동안 대표님께 너무 진상을 부려서 창피합니다.”“다 지나간 건데 뭘. 잊어버려.”“감사해요, 대표님. 이번에 정말 깨달은 게 많습니다.”
이 실장은 몇 달 만에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박 대표는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번엔 신중하게 잘해서 큰 성공으로 연결해 봐. 이 실장은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이잖아.”
“네.”
박 대표는 이번에 이 실장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저 정도 의지력이면 충분히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실장은 박 대표에겐 없는 강점을 갖고 있다.
무작정 들이밀고 비비기.
바로 막무가내 정신이다.
무식하다는 말이 아니다.
저돌적으로 부딪치는 제작자는 어떻게든 성공을 끌어낸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성공한 제작자들도 모두 어떻게든 만들어 내겠다는 강한 의지력을 가졌다.
박 대표는 이번에 이 실장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물론 막다른 길에 몰려서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대단했다.
“과거로 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
박 대표가 빙그레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이 실장은 즉각 반발했다.
“아우, 대표님! 저 그러면 진짜 죽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럴 일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진짜 이 바닥 뜹니다.”
제작도 도박처럼 중독이다. 한번 대박의 맛을 보면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한다. 이 실장처럼 얘기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도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하고 유령처럼 방송가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 실장이 그렇게 되리라는 뜻은 아니지만.
이 실장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세에 들어섰습니다. 방송국 다니며 홍보하는 시기도 지났고요. 지금부터는 오는 전화 잘 받고, 분위기 유지만 잘하면 될 거 같아요.”“그래도 직원들 먹여 살리려면 수익을 극대화해야지. 행사도 많이 하면서 말이야.”“네, 당연히 그래야죠. 다행히 직원들이 자기 밥값은 합니다. 기본적인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서요.”
“잘 뽑았네.”
“이번엔 인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실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리고 명함도 대표 명함으로 바꿨습니다. 하하.”“오! 이 실장, 아니, 이 대표, 축하해.”“하하! 대표님은 그냥 편하게 이 실장이라고 부르십시오. 전 그게 편합니다. 제가 아직 대표님보다는 한 끗 아래잖아요.”
“겨우 한 끗?”
“두 끗?”
“아니야, 같은 대표끼리 뭘? 내가 보기에 지금은 이 실장이 나보다 한 끗 높은 거 같은데?”
“한 끗만요?”
“…….”
“하하! 대표님, 농담입니다.”“아주 많이 컸다, 많이 컸어. 죽는소리할 때는 언제고.”“하하, 대표님. 그건 이제 좀 잊어 주십시오.”“절대 잊을 수가 없지.”
둘은 칵테일을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농담을 나눴다. 이 실장은 예전의 흔적은 사라지고 여유가 넘쳤다. 칵테일 잔을 만지던 박 대표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날 끌고 온 거야?”
그 말에 이 실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바뀌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뗐다.
“이제 슬슬 은혜를 갚을 때가 된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지금 진행하시는 프로젝트 앨범을 제가 맡고 싶습니다.”“……무슨 말이야? 앨범을 맡겠다니?”
박 대표는 느닷없는 이 실장의 말에 미간에 힘을 줬다.
“그 앨범, 저에게 맡겨 주시면 제가 제작비도 대고 홍보도 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박 대표는 실소를 내뱉었다.
“허허. 이 실장, 무슨 착각을 한 모양인데, 이 앨범은 그런 앨범이 아니야. 홍보에 몰빵 해서 띄우는 앨범이 아니라고.”“그러시지 말고 기회를 주십시오. 지난 실수도 만회하고, 은혜도 갚고 싶습니다.”
이 실장은 계속 고집을 피웠다. 박 대표는 난감했다.
“아니, 실수는 사과했으면 됐고, 은혜는 물질적인 거나 뭐 그런 비슷한 거로 갚으면 되지. 왜 대뜸 제작을 하겠다는 거야?”“저도 대표님 팀에 합류하고 싶습니다.”“내 팀? 무슨 소리야? 우린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앨범 한 장 하는 거라고.”
그 말에 이 실장은 비웃듯이 대꾸했다.
“세상에 그냥 하는 앨범이 어딨습니까?”
“여기 있잖아.”
“에이,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앨범을 냈으면 홍보하고 띄워야죠. 전문 가수까지 붙었는데요.”“뭐, 그 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시작한 거야.”
박 대표는 이 실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이 실장이 자세를 바꿨다.
“대표님, 솔직히 제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습니까? 음악은 깡통이고, 방송국 쫓아다니는 것밖에 모르잖습니까?”
“…….”
“그러시지 말고 저한테 한번 맡겨 주십시오. 열심히 키워 보겠습니다.”
“키우다니, 누굴?”
“앨범이랑 가수, 모두요.”
“허, 참.”
박 대표가 헛웃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건 정말 자유롭게 하는 앨범이야. 준이도 객원 보컬처럼 편하게 참여하는 거고. 누굴 키우는 앨범이 아니라니까?”“대표님, 왜 자꾸 절 밀어내려고 하십니까? 저도 잘하고 싶습니다. 대표님이 일하시는 방법도 배우고 싶고요.”“허, 참,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래? 진짜 그런 앨범이 아니라니까?”“아닌 앨범이 어딨습니다? 냈으면 히트시켜야죠. 그건 소비자들을 모독하는 겁니다.”“무슨 모독까지…….”“암튼 제게 맡겨…….”“정신 차려, 이 실장.”
박 대표가 결국 이 실장의 말꼬리를 자르며 인상을 썼다.
“할 거면 내가 하지, 왜 이 실장에게 맡겨?”
“…….”
박 대표는 눈에 힘을 주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바쁜 상황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금 하는 거에나 집중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그래?”
“…….”
이 실장의 풀이 죽었다.
박 대표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까, 내 말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지금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야.”
“…….”
이 실장이 계속 대꾸가 없자 박 대표는 목소리 톤을 바꿨다.
“은혜를 갚겠다는 건 정말 고마워. 그런데, 그건 천천히 갚아도 돼. 이 실장에게 은혜 갚으라고 소리칠 사람 아무도 없어. 그리고 잘 생각해 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좀 잘나간다고 풀어지면 되겠어?”
“알겠습니다.”
이 실장은 박 대표의 충고를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표도 다시 이 실장을 토닥였다.
“그래, 그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그러자 이 실장이 다시 고개를 들어 박 대표와 눈을 맞췄다.
“근데 대표님, 저 경거망동하는 거 아닙니다. 많이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허!”
이 실장은 박 대표의 충고를 수긍한 것이 아니었다. 박 대표는 어이없는 얼굴로 탄성을 내뱉었다. 이 실장이 말을 이었다.
“대표님 말씀대로 당연히 지금 일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제가 풀어질 일은 없습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요?”
“…….”
“프로젝트 앨범이 당장 나오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지우도 6개월 정도 활동하고 슬슬 다음 앨범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방송에 계속 얼굴은 내밀겠지만요.”
박 대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논리도 팩트도 안 통한다.
이 실장은 그냥 황소고집이다.
팔짱을 끼고 빤히 바라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 참, 고집은.”
박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이 실장의 뜻이 정 그렇다면 내가 애들이랑 상의는 해 볼게. 나 혼자 결정할 수는 없으니까.”“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는 일러.”
감사는 이르다는 데도 이 실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 대표도 피식 웃었다.
“이 실장이 진짜 하고 싶다면 그전에 알아야 할 게 있어.”“뭐든지 말씀해 주세요.”“아무도 계약서 안 쓸 거야. 소속도 안 되고.”
“알고 있습니다.”
이 실장이 강하게 끄덕였다.
박 대표가 설명을 붙였다.
“준이는 기획사에서 오랫동안 고생해서 한동안은 소속으로 안 들어갈 거야. 다혜는 작곡가의 길을 갈 거니까 소속이 어울리지 않고. 그리고 수철은 소속 같은 거 싫어해. 게다가 외국으로 갈 확률이 높아.”“수철 씨가 외국으로요?”“정해진 건 아니지만 지금 흐름이 그래. 영국에서 발매한 앨범도 분위기가 좋다는 소식이 들리고, 다른 앨범을 하러 외국에 나갈 생각도 하는 거 같아.”“아, 역시. 천재는 글로벌하게 노는군요?”
그 말에 박 대표가 눈을 흘겼다.
“또 수철에게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네, 입조심하겠습니다.”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딸랑 앨범 한 장에만 이 실장이 그렇게 할 수 있겠어? 투자하고, 홍보하고?”
“네, 하겠습니다.”
이 실장이 확고하게 대답하자 박 대표는 잠시 이 실장을 바라봤다.
“그럼 이렇게 해.”
“어떻게요?”
“홍보하면서 하준이 행사까지 이 실장이 맡아. 수익도 다 가져가고.”
“다요?”
“그래.”
“에이, 그럴 순 없죠.”
이 실장이 몸을 세우며 고개를 저었다.
박 대표가 말을 덧붙였다.
“대신 녹음비랑 홍보비 다 대면 되잖아?”“그래도 그렇죠. 그럼 대표님이랑 수철 씨, 다혜 씨는 어떡하고요?”“앨범이 잘되면 우린 저작권료가 있으니까 됐고, 준이나 잘 챙겨 줘.”“아니, 그래도 그건 말이 안 되죠. 시간과 노력을 들이셨는데요.”“미안하면 나중에 행사할 때 다혜를 세션으로 쓰도록 해. 일거리도 연결해 주고.”“네, 그건 그렇게 할게요.”
이 실장은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을 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
“9 : 1.”
“9 : 1?”
“물론 제가 9입니다.”“우리 다 통틀어서 1을 주겠다는 거야?”“가수는 노래하니까 먼저 30%를 떼어 주고, 남은 70%에서 10%를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박 대표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행사를 뛰는 것도 아닌데, 굳이 우리까지 뭐 하러 챙겨?”“작사, 작곡, 편곡비 대신 드린다고 생각하십시오.”“그래도 그건 너무 과해. 선심 쓰겠다는 거 아냐?”“선심은요, 드릴 만하니까 드리는 거죠.”
이 실장은 눈을 마주치며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박 대표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행사비 떼서 작곡자들에게 준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작곡자 이전에 제작자시잖아요? 지금까지 다 진행하셨고, 녹음만 하면 되니까 받는 건 당연한 거죠.”
“음.”
박 대표는 이 실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았어. 이 실장의 뜻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이 부분은 조금 고민해 보자.”“네, 그리고 참고로 음원 수익은 회사가 관리하다가 수익이 커지면 그때는 가수와 작곡자 순으로 지급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결국, 박 대표는 이 실장의 고집을 받아들였다.
이 실장은 기분이 좋아져서 칵테일을 더 주문했다.
박 대표는 칵테일 잔을 부딪치며 물었다.
“그동안 궁금했었는데, 지우는 가수로만 나갈 생각이야? 배우나 다른 쪽은 관심이 없어?”“저도 다른 쪽을 좀 하길 바라는데, 지우는 음악만 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그쪽은 신경 안 쓰고 있어요. CF나 들어오면 하려고요.”
“그렇군.”
“이제 몇 달 후에 슬슬 2집 준비를 할 건데, 그때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박 대표가 눈에 힘을 줬다.
“말씀 좀 드리다니? 뭘?”
“아니, 그냥…….”
이 실장은 말을 얼버무렸다.
순간, 박 대표의 눈이 커졌다.
“이 실장, 설마?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앨범을 하겠다고 한 거야? 이거 하면서 지우 다음 앨범도 부탁하려고?”“아, 아닙니다, 대표님. 그럴 리가요? 저 그 정도로 머리 좋지 않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실장이 당황해서 정색을 했다.
“음…….”
박 대표가 의심이 눈초리로 빤히 바라봤다.
이 실장이 다시 몸을 세웠다.
“알았습니다. 지우 2집은 제가 혼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염치가 있지, 제가 또 부탁드리겠습니까?”
“…….”
“대신!”
“……?”
“이번 프로젝트 앨범 대박 내면 지우 앨범 쫌만 도와주십시오.”“으이구,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박 대표가 인상을 구겼다. 그러자 이 실장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런 거 아닙니다. 제가 물어보면 조언만 좀 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그리고 맹세코 이번 프로젝트 앨범은 제가 순수하게 하고 싶어서 말씀드린 겁니다.”
“…….”
둘은 마지막 잔을 마시며 잠시 지난 얘기를 나눴다.
박 대표는 이 실장에게 자신의 제작 경험에 대해 들려줬다.
시선을 멀리 둔 채 박 대표의 얘기를 듣던 이 실장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뗐다.
“대표님. 저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무슨 생각?”
“인생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요.”
이 실장의 뜬금없는 말에 박 대표가 고개를 휙 돌렸다.
“왜 갑자기?”
“그렇더라고요. 빚도 갚고 정신도 차리고 보니까 그동안 제가 망할 길로 가고 있었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 실장은 많이 깨달은 모습이었다.
“보세요. 그렇게 의리 따지며 어울려 다니던 사람들 지금 주위에 한 명도 없잖아요. 이번에 대표님 아니었으면 전 아마 끝났을 거예요.”
“그렇게까지야.”
“아닙니다. 분명 그랬을 거예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
“저 이번에 진짜 깨달은 게 많습니다. 제작에 대해서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도요.”
박 대표는 이 실장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대표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인생 사는 법에 대해서요. 제가 괘씸했을 텐데 도와주신 것 정말 감사드려요.”“지나간 건 다 잊어버려. 나도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없으니까.”“지금도 이해가 안 돼요.”
“뭐가?”
“저 같았으면 괘씸한 놈이 찾아와서 죽는소리하면 꼴 좋다고 놀렸을 거 같은데. 대표님은 하소연까지 다 들어 주셨잖아요.”“나도 불편하긴 했지.”“정말 창피합니다.”
“하하. 갑자기 철들었네?”
박 대표가 웃자 이 실장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수철 씨에겐 정말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서 눈도 못 마주치겠어요.”“그래. 그 부분은…….”
박 대표도 이 부분은 딱히 편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분명 잘못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까지 수철에게 미안해서 한동안 어쩔 줄 몰랐었다.
“대표님 아니었으면 전 수철 씨에게 진작 잘렸겠죠. 아니, 처음부터 근처에 가지도 못했겠죠.”
“그건 뭐…….”
“대표님 주위 사람들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프로젝트 앨범으로 은혜를 갚는…….”
이 실장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짓궂은 얼굴로 휙 쳐다봤다.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대박이 날 게 보이니까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뭐? 속셈이 있었건 거야?”“네, 헤헤. 미숙한 제가 봐도 대박 날 게 보이는데 어떻게 참습니까?”“하하,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장담해?”“제가 대표님은 익히 잘 알고 있고, 이번에 수철 씨도 경험했잖습니까. 대표님은 그동안 너무 정직하게만 해서 대박을 못 친 건데 저 같은 놈이 붙으면 흥행하는 건 당연하고, 수철 씨는 뭐 말할 것도 없잖아요. 아마 수철 씨는 홍보 안 하고 어디 꼭꼭 숨겨 놔도 사람들이 찾아낼걸요?”
* * *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러 걸어가던 이 실장이 어깨를 붙여 왔다.
“아 참, 아까 하준이라는 가수는 기획사가 어디였습니까?”
이 실장의 질문에 박 대표는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마주쳤다.
“맞다, 이 실장도 거기 잘 알잖아. 트립플 오.”“트립플 오? OOO요?”
이 실장이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