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예상치 못한 가수(2)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하린이의 이름에 놀라서 입까지 벌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이름에 충격을 받아서 서로 마주 봤다.
흠.
김명석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홍 과장을 봤다.
“왜 갑자기 하린이가 노래를 하는 거로 결정을 한 겁니까?”
김명석의 물음에 홍 과장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
“두 분 선생님께서는 하린이가 주제곡을 부르는 것이 탐탁지 않으신가 봅니다?”
그 질문에 김명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요. 하린이는 지금 제가 프로듀서까지 하고 있는데 싫을 리가요.”
대답하곤 수철을 봤다.
수철도 고개를 저었다.
하린이가 노래하는 것이 싫을 리가 없다. 연습을 시켰고, 곡을 쓰더라도 하린이의 보이스 성향을 잘 알기에 더 수월하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단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저도 하린이가 노래하면 편하죠. 하린이 특성을 잘 아니까, 곡도 맞춰서 쓰면 되고요.”
수철까지 하린이가 좋다고 하자 그제야 홍 과장은 갑자기 가수를 하린이로 바꾼 이유를 말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번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주제곡까지 부르면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배우들보다는 아직 모습이 공개되지 않은 신인 가수나 신비로움을 간직한 가수가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 유리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유가 장황하지만 신비로움을 간직한 신인 가수가 하린이라는 얘기였다. 결국 자기들이 키우는 가수로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남녀 배우 중 한 명이 음치라고 합니다.”
“음치요?”
그 말에 김명석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네, 과거에 타 기획사에서 앨범을 진행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녹음을 포기할 정도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홍 과장의 설명에 김명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치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둘 중에 누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김명석이 알기로는 둘 다 노래를 못 부를 정도의 음치는 아니다.
공연할 것도 아니고 노래만 부르면 엔지니어들이 다 알아서 편집해 주는데 음치라니.
게다가 진짜 음치라면 연출부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연출부에서 먼저 추천하지도 않았을 거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지만 음치든 아니든 간에 김명석이 상관할 부분은 아니다. 더군다나 바뀐 가수가 하린이니까.
더는 물어보기가 껄끄럽다.
묵묵히 둘의 얘기를 듣던 수철이 물었다.
“하린이랑 같이 듀엣을 할 남자 가수는요? 정해진 가수가 있나요?”
홍 과장이 수철과 김명석을 동시에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남자 가수는 두 분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분 다 하린이를 가르쳐 보셨으니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추천만 해 주시면 제가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 말에 김명석이 나서서 대꾸했다.
“주제곡은 여기 용수철 선생이 만드는 거니까 둘이서 대화를 해 보고 후보군을 뽑아서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네, 그렇게 해 주시면 저도 감사하겠습니다.”
홍 과장은 말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아 참, 세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세 번째요?”
“두 분 선생님께서 하린이를 가르치셨으니 한 팀이 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아, 네.”
김명석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 과장은 자신이 대단한 멘트라도 던진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 * *
“그래서 앨범 발매를 늦춘 거였어.”
홍 과장이 나가고 나서야 김명석은 뒤늦게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철이 갸웃하며 물었다.
“원래 계획보다 하린이 1집 발매 시기가 늦춰지고 있어서 의문이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겠어.”
“……?”
수철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명석은 혼잣말하듯이 말을 이었다.
“암, 그렇겠지. 드라마도 띄우고, 하린이도 띄우고. 그래서 뮤직비디오도 계속 미루고 있었던 거야. 드라마를 뮤직비디오로 쓰려고 말이야.”“그 말씀은 오늘 결정한 게 아니란 말씀인가요?”“그럴 거야. 연출팀은 몰랐어도 기획팀에선 일찌감치 구상하고 있었겠지.”
김명석은 미간에 힘을 주며 확신했다.
수철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렇게 서둘러서 회의하고 그런 거죠?”“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수 얘기가 나오니까 서둘러 확정을 지으려고 한 거겠지.”
김명석은 대단한 탐정이라도 된 듯한 표정으로 추리를 했다.
수철이 자세한 내막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김명석의 말은 금별기획에서 드라마와 하린이의 1집 앨범을 동시에 띄울 계획이라는 말이었다.
“어쩐지 뮤직비디오 얘기만 나오면 답을 회피하더라니.”
김명석은 갑자기 지난 상황이 퍼즐로 착착 맞춰지는지 턱을 매만지며 끄덕였다.
수철은 김명석의 말이 의아했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뭐가?”
“드라마를 하린이의 뮤직비디오로 쓰는 거요. 왠지 뭔가 잘못된 거 같아서요.”“자기네가 키우는 가수에 자기네가 만든 드라마를 붙인다는데 문제가 될 건 없지. 단지 이번 일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여론이 좀 안 좋아지겠지. 하지만 만약 그렇더라고 해도 외국에선 문제가 될 게 없잖아.”
“……!”
그제야 수철은 김명석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하린이를 월드 스타로 만드는 데 드라마가 큰 역할을 할거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게 모두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차근차근 계획대로 그림을 만들어 가는 거지.”
상황 정리를 다 한 김명석이 어깨를 붙여 왔다.
“이유가 어떻든 우린 하린이가 노래하면 편하잖아?”
“네, 그렇죠.”
음악을 완성하려면 노래 부를 사람의 보이스 컬러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제 빨리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럼 하린이에게 국내 최고 가수를 붙여 볼까?”
김명석은 의자를 끌어와 테이블에 앉았다.
하린이와 같이 듀엣을 할 남자 가수 리스트를 뽑아 보려는 생각에서다.
“아무래도 좀 허스키한 보이스가 하린이랑 잘 어울리겠지?”
김명석이 테이블에 앉아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때 수철의 머릿속을 빠르게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님!”
“어, 왜?”
수철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부르자 김명석이 놀라서 쳐다봤다.
“남자 가수는 제가 선택하면 안 될까요?”“왜? 누구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네, 한 명 있어요. 하린이랑도 잘 맞을 것 같아요.”“네가 좋다면 나는 찬성이지. 근데 누구야?”“선생님은 잘 모르실 거예요. 혹시 하준이라고 들어 보셨어요?”“하준? 성이 하 씨고, 이름이 준이야?”
“네.”
“음, 하준이라…….”
김명석은 모르는 눈치다.
“기획사가 있어?”
“지금은 없어요.”
김명석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네가 좋다면 난 싫을 이유가 없어. 게다가 주제곡도 네가 만드는 거잖아.”
“네, 감사해요.”
“그런데 내가 먼저 한번 봐야 하지 않을까? 누군데 네가 이렇게 추천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내가 음악 감독이잖아.”“네, 당연히 보셔야죠. 이번 주 내로 제가 같이 올게요.”“그래, 기왕이면 여기 말고 내 작업실에서 보자. 너도 놀러 온 지 한참 됐잖아. 오랜만에 저녁도 같이하면 좋을 거 같아. 돈가스로 말이야.”
그 말에 수철은 흔쾌히 끄덕였다.
“네, 좋아요. 그리고 하준 형이랑 하린이랑 같이 한번 연습해 보고, 만약에 맘에 안 드시면 그때 다른 가수를 붙이시면 될 거 같아요.”“그래, 알았어. 그런데 그럴 일이 있을까? 네가 선택했는데?”
* * *
김명석의 말대로 수철의 의견을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하린이와 같이 듀엣 할 남자 가수 후보는 뽑으셨나요?”
홍 과장이 김명석에게 물어왔다.
“후보군을 뽑기 전에 용수철 선생이 추천하는 가수가 있어서 먼저 한번 만나 보려고 합니다.”“아,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혹시 가수 이름이?”“아직은 유명하지 않은 신인 가수입니다. 하지만 용수철 선생은 하린이와 보이스가 잘 어울릴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 다 트레이닝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홍 과장은 수철이 추천하는 가수가 하린이의 파트너가 될 것을 직감했다.
둘 다 레슨을 했다면 수철의 추천이 빗나갈 리가 없다.
게다가 수철에 대한 금별기획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용수철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확실하겠네요.”
홍 과장이 흐뭇한 미소로 김명석과 눈을 맞췄다.
“네, 아직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 선생님께서 잘 진행하시고,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저도 만나 봐야 하니까요.”
수철과 김명석이 좋다고 해도 어쨌든 최종 결정은 금별기획의 몫이다. 음악 감독은 중간에서 다리 역할만 할 뿐, 가수의 계약도, 홍보 관련 문제도 금별기획이 결정한다.
“제가 만나서 테스트해 보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네, 그럼 저는 그렇게 알고 보고하겠습니다.”
김명석이 동의하자 홍 과장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홍 과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철의 생각이 반갑고 고마웠기 때문이다.
너무 잘나가는 가수는 자칫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하린이의 존재감을 묻을 수도 있다.
그런 리스크가 있기에 항상 가수 선정을 놓고 골머리를 썩인다. 그런데 수철이 그걸 말끔히 제거해 줬다.
‘용수철은 미워할 수가 없어.’
홍 과장의 입에 미소가 번질 수밖에.
게다가 신인 가수면 섭외 비용도 적게 든다.
물론 최고의 가수라 해도 부담스럽지 않지만 여러모로 신인 가수가 좋다.
계약 조건도 회사에 유리하게 할 수 있어서 주제곡이 히트 치면 더 큰 수익을 챙길 수 있고, 그러면 진행팀은 특별 보너스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인 가수가 유명 가수보다 유리한 이유는 바로 하린이 때문이다.
유명 가수보다 신인 가수를 선택하게 되면 하린이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수 있다.
홍 과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 * *
“그래? 그거 아주 굿 뉴스네?”
수철은 하준에게 말하기에 앞서 박 대표에게 먼저 얘기했다.
프로젝트 앨범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준이한테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어.”
예상대로 박 대표는 듣자마자 기뻐했다.
“그럼 쌤은 찬성하시는 거예요?”“난 무조건이지. 두 손 들어 환영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 되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면서 노파심에 물었다.
“하자고 했다가 안 한다고 번복하는 건 아니겠지?”“네,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제가 말씀드렸더니 김명석 선생님도 담당자님도 모두 좋아하셨거든요. 하린이랑 같이 연습해 보고 마음에 안 드시면 바꾸시라고 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엔 두 명이 잘 어울리거든요.”
그 말에 박 대표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네가 둘 다 연습을 시켰으니 더 잘 알겠지. 게다가 금별에서는 네가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찬성할 테고. 하하. 수철아, 잘했어. 기특해.”
박 대표는 칭찬하며 수철의 어깨를 매만졌다.
수철은 잠시 미소를 짓다가 표정을 바꿨다.
“그런데 쌤, 우리 앨범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뭔 걱정이야? 우리 앨범은 아직 시간이 충분하잖아. 조절하면서 병행하면 되지.”
박 대표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라는 뉘앙스였다.
“다혜도 찬성할까요?”“그렇겠지. 준이한테 좋은 일인데 반대할 리가 없잖아?”
그 말에 수철이 끄덕이며 되물었다.
“다혜는 제가 물어보는 게 낫겠죠?”“그래, 아무래도 나보다 네가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말하면 강요가 될 수도 있으니까.”
“네, 알았어요.”
* * *
하준에게 말하기 전에 아무래도 다혜의 의사를 먼저 묻는 게 순서인 거 같았다.
수철은 작업실이 아니라 밖에서 다혜를 만났다.
편하게 얘기할 생각에서였다.
“웬일이야? 네가 점심을 다 산다고 하고.”
다혜가 배시시 웃으며 다가왔다.
수철이 피식 웃었다.
“웬일이라니? 지난번에도 내가 샀잖아.”“아니, 내 말은 오랜만에 산다, 뭐 그런 말이지.”
“지난주인데?”
“흠흠! 뭐, 암튼. 그런데 무슨 일이야? 둘이서 밥 먹자는 말을 다 하고.”“할 얘기가 있어서.”
“무슨 얘기?”
다혜가 궁금한 얼굴로 눈을 맞췄다. 수철은 대답하지 않고 다혜의 등을 떠밀었다.
“일단 들어가자. 밥부터 먹고 얘기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