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Time to Reward(1)
타이틀 곡은 다혜의 곡으로 선정됐다.
모니터링 결과는 곡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수철은 경험 삼아 하는 음악이어서 타이틀 곡에 어울리지 않다며 거절했고, 박 대표도 보사노바보다는 팝이 타이틀로 좋다며 다혜에게 양보했다.
“두 분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따를게요.”
다혜는 수철과 박 대표의 양보를 냉큼 받아들였다.
“처음보다 음악이 많이 좋아졌어. 타이틀 곡으로 손색이 없다고 봐.”“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요.”
박 대표와 수철과 하준은 모두 다혜의 곡을 인정했다. 그래서 다혜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걸 축하하고 응원해 줬다. 확실하게 힘을 실어 줬다. 그렇다고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었다.
“가사를 수정하고 템포를 조절하니까 음악이 확실히 살아났어.”“네, 게다가 수철이 믹싱을 도와준 게 컸어요. 어떻게 손만 대면 입체감이 살아나네요.”“하하. 그래서 나도 매번 놀라. 어떻게 배울 수 있으면 좀 배우고 싶다.”
“저도요.”
“어쨌든 이제 다혜의 곡이 살아났으니 기대해 볼 만할 거야.”“네, 저도 열심히 부를게요.”
박 대표와 하준의 말대로 다혜의 음악은 시장에 내놓아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만큼 발전했다.
* * *
“다혜 씨 곡으로요?”
내심 수철의 곡이 타이틀이 되기를 기대했던 이 실장은 아쉬운 표정이었다.
“만장일치로 결정한 거야.”“만장일치면, 3명?”
“그렇지.”
“알겠습니다. 모두의 의견이 그렇다면 따라야지요.”
이 실장은 쿨하게 대세를 받아들였다.
“그럼 다혜 씨의 곡에 포커스를 맞추고 홍보 전략을 짜겠습니다. 보도 자료도 우선은 하준 씨와 다혜 씨에게만 초점을 맞추고요.”“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발매는 언제쯤 할 생각이야?”“드라마 시작되고 3주 후로 잡고 있습니다.”
이 실장은 드라마의 통상적인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 3주 후가 적절한 시기라며 발매 날짜를 픽스했다.
“녹음 때 찍은 영상과 하준 씨, 다혜 씨의 인터뷰를 기사화해서 사전 홍보를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야.”
박 대표는 이 실장이 갈수록 든든해졌다. 디테일을 챙기고 꼼꼼하게 일정을 관리하는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표님.”
“응.”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마무리?”
“지우 리메이크 곡에 대한 보상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보상을 마무리하다니? 어떻게?”
박 대표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대표님과 수철 씨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죠. 돈이 됐든 다른 것이 됐든요.”“음, 수철은 그렇다 치고, 난 별로 한 게 없는데…….”“별로 한 게 없다니요?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잖아요. 그 덕분에 제가 자리를 잡았으니까 보상하는 게 당연하죠.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닙니까?”
이 실장은 인간의 도리까지 들먹이고 있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저는 돈이 깔끔하다고 생각하는데, 대표님은 어떠세요?”
뭐라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일은 수철이 다 했고, 박 대표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다고 수철을 소개해 준 소개료를 받을 수도 없고. 정황상 보상을 받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돈을 받는 건 좀 아니었다.
“수철이 보상을 받는 건 맞다고 생각해. 편곡료나 작업비를 받은 것도 아니고, 혼자서 연주까지 다 했으니까. 물론 꽤 많은 상품권을 받기는 했지만.”“에이, 그거론 부족하죠. 그건 제가 고마움에 성의 표시를 한 거고, 이젠 제대로 보상을 드려야죠.”“그래, 그건 이 실장이 알아서 해. 그런데 난 좀 그래.”
“뭐가요?”
“그렇잖아? 뭘 받고 싶어도 내세울 게 없어. 지켜보기만 했으니까.”
이 실장은 바로 반발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대표님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데요?”
“무슨 많은 일?”
박 대표가 얼굴을 붙이며 물어오자 이 실장은 멈칫했다.
급하게 박 대표가 한 일을 떠올렸다.
“수철 씨도 소개해 주시고……. 녹음도 모니터링해 주시고……. 홍보도 도와주시고……. 그러니까 대가를 받으셔도…….”
띄엄띄엄 생각나는 것을 읊조리며 돈을 받아도 된다는 논리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 대표의 말대로 뭔가 애매했다. 돈으로 보상하겠다는 부분에서 막혔다.
“봐 봐, 이 실장도 딱히 말을 못 하잖아.”
“…….”
“이 실장이 말한 거처럼 다 지켜보고 도와주고 그런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돈을 받아? 소개료를 받을 수도 없고.”
이 실장은 박 대표가 그냥 ‘고마워. 잘 쓸게.’ 쿨하게 받으면 서로서로 좋게 넘어갈 텐데, 꼬치꼬치 따지며 거절하자 입이 댓 발은 튀어나왔다.
존경하는 박 대표의 정확한 성격이 이럴 땐 별로였다. 주긴 줘야 마음이 편하겠는데, 이유를 붙여야 한다는 게 머리 아팠다.
“대표님, 그냥 쿨하게 받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자꾸 그러시면 저 정말 불편합니다.”
박 대표는 턱을 괸 채 이 실장을 바라봤다. 그러다 자세를 바로잡고 몸을 세웠다.
“그럼 이렇게 하자.”
“……?”
“돈을 받기는 좀 그러니까, 적당한 선물이나 하나 해 줘. 그걸로 지금까지의 일을 퉁 치는 거야. 어때? 그러면 둘 다 편할 거 같은데?”
“음…….”
이번엔 이 실장이 볼을 긁으며 박 대표를 바라봤다. 돈으로 주면 편한데, 선물이라고 하니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차를 바꿔 드릴까요?”
“차?”
순간 박 대표의 동공이 확대됐다.
“싫으시면, 다른 거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박 대표는 대답하지 못하고 빤히 바라봤다. 갑자기 주겠다던 돈의 액수가 궁금해졌다.
“돈을 얼마나 줄 생각이었어?”
“천이요.”
“뭐!”
놀라서 다음 말이 생각 안 났다. 떠오르는 대로 물었다.
“그럼 수철은?”
“3천이요.”
“헉!”
동그래진 눈이 더 동그래졌다.
눈이 따가울 때까지 깜빡이지 않고 눈싸움하듯이 이 실장을 쳐다봤다.
‘이 정도로 통이 큰 놈이었나?’
의문이 맴돌았다.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해도 그런 기억이 없다. 잘된 적이 없기에.
‘정말 개과천선이라도 한 건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밥도 못 먹고 다니며 꾀죄죄했던 녀석이?’
짧은 눈싸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지우가 행사를 3번만 뛰어도 그것 이상은 들어온다.
박 대표는 자세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수철을 얼마 주든지 그건 이 실장이 알아서 해. 내가 이 실장이라도 그 정도는 줬을 거야. 그런데 난 너무 많아. 차? 천? 하하, 그러면 내가 불편해서 안 돼.”
그 말에 이 실장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다른 사람은 더 못 받아서 안달인데 대표님은 주는 것도 싫다고 합니까?”“싫다는 게 아니라 지나치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오히려 내가 빚을 지는 느낌이라고.”“대표님이 없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그리고 수철 씨가 절 도와줬겠습니까?”
“그거야…….”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안 받으시면 제가 대표님 볼 때마다 미안해집니다.”
“음.”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받으세요. 대표님이 일등 공신이신데 두둑이 받는 건 당연합니다.”“구경만 했는데 무슨 일등 공신까지.”“받으실 만하니까 드리려는 겁니다.”
박 대표는 난감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안 받으면 이 실장이 불편하고, 받으면 박 대표가 불편하고.
“…….”
“…….”
“알았어, 정 그렇다면 스피커나 하나 바꿔 줘.”
“스피커요?”
“그래, 그게 가장 적당할 거 같아. 서로 안 불편하게 말이야.”“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좋은 거로 바꿔 드릴게요.”“워, 워, 너무 비싼 거로 하지 말고, 내가 적당한 모델을 알려 줄 테니까 그거로 사 줘.”“걱정 마세요. 제가 전문가들이랑 상의해서 괜찮은 거로 가져오겠습니다.”
그 말에 박 대표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내가 전문가야! 어디서 전문가를 찾아?”“낙원상가에 잘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너무 비싼 건 부담된다니까?”“걱정 마십쇼,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허, 참.”
박 대표는 혀를 차면서 몸을 뒤로 뺐다. 다른 건 다 바뀌어도 이 실장의 고집은 바뀔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실장의 이런 모습이 기특했다.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의리를 지키려는 모습이.
“이 정도로 히트 쳤으면 어느 기획사나 특별 보너스를 내밀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이런 어마한 대박을 냈으면 사례를 하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다. 액수가 좀 크다는 게 걸리지만.
“제가 그 사람들보다 보상을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는 없죠. 죽어 가는 저를 대표님과 수철 씨가 살렸으니까요.”“죽어 가다니, 표현이 좀 과해.”
“…….”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냐. 난 크게 한 일이 없지만, 수철은 정말 어마한 일을 해냈어. 그래서 보상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 이 실장이 시원하게 쏘겠다는 것도 고맙고.”“하하, 드디어 말이 통하네요.”
이 실장이 그제야 얼굴을 환하게 폈다.
“사실 이 정도도 부족하죠. 제가 누구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요.”
박 대표는 이 실장의 변한 모습을 잠시 미소로 바라봤다.
다시 입을 뗐다.
“여담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성공 보너스로 그 정도의 돈을 받는 사람은 없을걸?”“편곡료 더하기 흥행에 대한 보상이죠. 작곡자들도 히트하면 보너스를 받잖아요.”“기껏해야 오백만 원이지. 아무리 대박 나도 천만 원은 안 넘어가.”“그래도 저는 이 금액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기분으로 지르는 게 아닙니다. 많이 생각해 보고 정한 금액입니다.”
박 대표는 어쩌다 보니 수철에게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냐고 따지는 모양새가 됐다.
박 대표는 이 실장이 대충 한 달에 어느 정도를 버는지 예상할 수 있다. 가수가 달랑 지우 한 명이기에.
그래서 따져 보면 이 실장이 이만큼의 돈을 내놓겠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수철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흔한 경우는 아니다. 대부분은 이 정도의 흥행을 했다고 해도 떡하니 이렇게 많은 보상금을 내놓지는 않는다. 해외여행 티켓이나 비싼 장비 하나 선물하면서 퉁 치고 만다. 대충 2, 3백만 원 선에.
박 대표가 보기에 이 실장은 이번에 힘든 일을 겪으면서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큰 성장을 한 것 같다. 제대로 비즈니스를 할 준비가 된 거 같다.
“분위기를 보니까 이제 확실히 안정세에 들어섰나 보네?”“네, 빚도 다 갚았고 직원들 보너스도 넉넉히 챙겨 줬어요. 지우는 부모님께 집도 사 드렸고요.”“오호, 대박의 맛이 달콤하겠군.”“네, 정말 달콤합니다. 하루하루가 살맛 나요. 하하. 대표님도 어서 한번 맛보셔야죠?”
“이런!”
잘 나가다가 박 대표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대박의 맛.
박 대표도 느껴 보고 싶은 맛이다.
이 실장은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안정세 정도가 아니라 인생이 흑자로 돌아섰어요. 하하.”
크게 웃는 이 실장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쳐졌다. 박 대표는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실장이 뭐라고 짓궂게 해도 밉지가 않았다.
흐뭇하게 바라봤다.
“아, 참! 대표님.”
“왜?”
“혹시 수철 씨 계좌번호 아세요?”“계좌번호? 내가 알 리가 없지. 근데 왜?”“지난번에 슬쩍 물어봤더니 안 알려 주더라고요. 현금을 찾아서 줄 수도 없고. 좀 애매하네요.”
“그건 좀 그렇네.”
박 대표가 턱을 매만졌다.
“대표님이 좀 도와주세요.”
“어떻게?”
“이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니까 받으라고요. 아무래도 대표님을 돕는다고 생각해서 안 받으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음.”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다시 계좌번호를 받아 볼게요.”
박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좀 껄끄럽긴 하지만 내가 한번 말해 볼게.”“감사합니다. 그리고 대표님.”
“또 뭐?”
“수철 씨는 이번 곡으로 저작권료를 얼마나 받았을까요?”“글쎄? 워낙 돈에 관심이 없는 녀석이라서 통장 확인도 안 했을걸?”
* * *
드라마가 시작됐다.
드라마는 시작 전부터 잘 만든 홍보 영상과 의도된 가십거리로 입소문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홍보는 드라마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와, 진짜 금별기획 대단하다, 대단해. 진짜 미친 영업력이네.”
사람들은 새삼 금별기획의 영업력에 혀를 내둘렀다.
대한민국 모든 연예 잡지의 표지를 점령했고, 인터넷 뉴스에는 배우들의 기사로 도배됐다. 심지어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수철이 만든 주제곡 일부분이 겨울 스포츠 용품의 CM송으로 등장했다. 마치 드라마가 대박 날 것을 예상한 것처럼. 게다가 주인공들은 올겨울 CF모델로 낙점까지 받은 상태였다.
“이게 이렇게 뜰 정도였나?”
이런 분위기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