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28화 (128/239)

#128화. Time to Reward(3)

“K와 S라디오는 이번 주만 7회씩 나왔고요, M은 오늘까지 정확히 10번이에요.”

“진짜?”

“네.”

박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이 실장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네. 그 정도면 매일 피디를 잡고 늘어져야 나올까 말까 한 수친데.”“그러니까요. 시청자들이 신청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이만큼이나 틀어 주다니요. 저도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 봤어요. 허.”

이 실장은 실소를 내뱉었다. 박 대표는 눈에 힘을 줬다.

“아니, 이건 뭔가 이상해.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야.”“대표님 생각에도 그렇죠?”“그래. 우연이라도 어느 정도지, 이건 말이 안 돼.”

박 대표가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 실장은 마주 앉아서 빤히 바라봤다.

“친분 있는 피디들한테 한번 물어봤어?”

“네, 물어봤죠.”

“그랬더니?”

“작가가 알아서 선별해서 틀었다고 하더라고요, 하나같이 말이에요.”

박 대표가 턱을 매만졌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한두 번은 모르겠지만 10번까지 그럴 수는 없어. 알아서 선별해서 틀었다니.”

“그러니까요.”

“금별에서 그랬을 리도 없고…….”

하준과 하린을 떨어트리려고 하는데 새삼스레 하준이 단독으로 참여한 프로젝트 앨범을 틀게 할 이유가 없다.

‘그럼 누구지?’

둘은 말을 멈추고 잠시 서로 마주 봤다.

이 실장이 먼저 입을 뗐다.

“혹시 방송국에 우리가 모르는 조력자가 생겼을까요?”“갑자기? 방송 3사 모두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요? 대체 어떻게 알고 음악을 트는 건지…….”

처음 겪는 상황에 갖가지 추리가 떠올랐다.

“혹시 하준 씨 친척 중에 방송사에 임원이 있나요?”“그럴 리가. 그러면 진즉에 도와줬겠지.”

“그렇겠군요.”

이 실장은 답답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박 대표를 봤다.

“아, 참! 더 신기한 건요.”

“……?”

“수철 씨 곡을 제일 많이 틀었더라고요.”

“수철의 곡을?”

“네, 통계를 보니까, 수철 씨 곡 6번, 다혜 씨 곡 2번, 대표님 곡 2번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방송국에 수철 씨 우렁각시라도 있나 했어요.”

“……!”

순간 박 대표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바로 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철아, 통화 가능?”―네, 말씀하세요.

“너, 혹시 우리 앨범 나오기 전에 누구한테 준 적 있어?”―네.

“누구한테?”

―할아버지들이요.

“그때 그 할아버지들?”―네.

“몇 장?”

―3장이요.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바쁠 텐데 어서 작업해.”―……네.

수철은 갸웃했다.

박 대표도 전화를 끊고 갸웃했다.

‘요즘도 그게 가능한가?’

정황상 할아버지들이 뒤에서 무슨 역할을 한 거 같은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거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방송국에서 알아서 틀어 준 건 절대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음악이라 해도 이슈가 되고 여론이 생기기 전까지는 나서서 진행하지 않는다.

이 실장은 의심쩍어 하는 박 대표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들이라니요?”“아니야, 그냥 생각난 게 있어서 물어본 거야.”“뭔가 집히는 게 있으신 거 같은데요?”“아니야, 그런 건.”

박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이 실장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계속 쳐다봤다.

박 대표는 화제를 돌렸다.

“커피 한 잔 할래?”

“네, 주세요.”

아무리 확신이 가도 이 실장에게는 말할 수가 없다. 수철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이 실장은 엉뚱한 기대를 할 수가 있고, 수철은 안 좋아할 게 뻔하다. 왜 그랬냐며 할아버지들에게 따질 수도 있다. 편법을 안 좋아하는 수철이다.

어찌 됐건 초반부터 꾸준히 나오기 시작한 앨범의 수록곡들은 드라마의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가파르게 상승했다.

예상대로 하준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 관심이 자연스레 프로젝트 앨범에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앨범에 있는 3곡이 모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타이틀 곡이 무의미하네요.”“그래도 다혜의 곡이 제일 높은 거 아냐?”“그렇긴 하지만 3곡이 모두 상위권에 있잖아요. 정말 희귀한 경우에요.”

처음엔 다혜의 곡이 타이틀에 걸맞게 흥행을 시작했고, 곧이어 수철의 곡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박 대표의 곡까지 차트에 올라갔다. 이 실장이 희귀하다고 할 만했다. 세 곡이 모두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어떻게 전혀 다른 음악이 이렇게 순서대로 히트하지?”“그러게 말입니다. 잘될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좋을 줄은 몰랐어요. 대표님 곡까지 히트를 하다니요.”

“…….”

“……암튼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

박 대표는 한참 목덜미를 긁적이다 입을 뗐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이유요?”

“이번 앨범이 이렇게 잘나가는 이유 말이야.”“아무래도 하준 씨가 부른 드라마 주제곡이 대박 난 게 가장 컸죠. 하린이 앨범이 히트 친 것도 큰 도움이 됐고요. 그러고 보니 운이 딱딱 맞아떨어졌네요.”

이 실장은 뭔가 일이 술술 잘 풀렸다는 표정이다.

“운도 운이지만 결국 준이가 부른 주제곡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얘기네?”

“그렇죠.”

“결국 금별기획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얘기고. 그럼 이 모든 게 누구에게서 시작된 거지?”

“누구라니요?”

“수철이 아냐?”

“아! 네, 물론이죠. 수철 씨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없죠. 제가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을 테고요.”

이 실장은 눈에 힘을 주고 강하게 동의했다. 수철이 없었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박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툭 내뱉었다.

“이 실장의 공도 진짜 커. 그건 내가 잘 알아.”

그 말에 이 실장의 입이 배시시 벌어졌다.

“하하! 대표님, 감사합니다. 대놓고 칭찬을 하시니까 좀 쑥스럽네요. 하하.”

겸연쩍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쑥스럽긴, 이제 다시 물어볼게, 내 곡이 뜬 게 그렇게 이해가 안 돼?”“하하……. 대표님, 당연히 이해되죠. 전 개인적으로 대표님 곡을 제일 좋아합니다. 딱 제 취향입니다.”“아, 보사노바가 이 실장 취향이었어?”

“……네.”

“그래? 알았어.”

박 대표는 난감해하는 이 실장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뗐다.

이 실장이 몸을 세웠다.

“대표님도 나이가 드시나 봅니다.”“그건 또 무슨 소리야?”“예전엔 뒤끝 없고 쿨하셨는데 요즘은 별걸 다 마음에 담아 두십니다. 좀 쪼잔해지신 거 같습니다.”

“뭐!”

“아니, 전 걱정돼서.”“흐흐, 이 실장, 요즘은 한번을 안 지네?”

어찌 됐건 박 대표의 말대로 프로젝트 앨범의 흥행엔 이 실장의 공이 컸다. 이 실장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판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 *

“오늘 저녁은 내가 사는 거야.”

박 대표는 이번 음반에 관련된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았다. 프로젝트 앨범의 흥행을 자축하기 위해서다.

모인 사람들은 연신 싱글벙글거렸다. 모두가 다 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다혜는 잔뜩 입이 벌어져서 스테이크를 썰었다.

“이 실장님이 열심히 뛰어다니신 덕분 아닐까?”

기획사 짬밥이 있는 하준은 이 실장을 치켜세웠다.

이 실장도 제작자답게 한마디 했다.

“대표님과 여러분들이 음악을 다 잘 만드신 덕이죠. 하준 씨도 노래를 너무 잘했고요.”

저녁 식사 내내 분위기는 계속 훈훈했다. 서로를 치켜세우며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다혜 너, 가사도 정말 좋았어. 내가 그랬잖아? 너 작사가에 소질이 있다고.”

“오빠가요?”

역시 앨범은 히트 치고 볼 일이었다.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던 박 대표의 시선이 천천히 수철에게로 옮겨 갔다. 수철은 말없이 식사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지 한 번씩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하, 녀석.’

이 모든 것은 수철로부터 시작됐다.

주제곡을 쓴 것도, 하준을 추천한 것도, 프로젝트 앨범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 실장이 앨범을 맡겠다고 한 것도 모두 수철이 지우의 곡을 터뜨린 것에서 시작했다. 게다가 금별기획과 하린이까지.

오늘 이 기쁨의 중심엔 수철이 있다.

‘녀석, 참.’

오늘 같은 자리에 뭐라 칭찬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지만 어색해하며 말을 돌릴 게 뻔하다.

‘행운이지, 행운이야.’

조금은 애잔한 눈으로 수철을 바라보던 박 대표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에 수철이 등장해 준 게 행운이라는.

무료하던 삶이 다이내믹해졌다.

수철을 바라보는 박 대표의 눈빛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수철아, 너도 짠 한번 해!”

“알았어. 짠!”

수철은 오늘 파티의 구경꾼처럼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익숙해져서 수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언젠가 수철이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는 정말 클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박 대표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날이 곧 오겠지.’

박 대표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수철과 눈이 마주쳤다. 박 대표는 씨익 웃었다. 수철도 따라서 씨익 웃었다.

수철은 박 대표와 생각이 조금 달랐다.

박 대표는 수철이 사람들을 모두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만, 수철은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보호받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도를 갖고 다가오는데, 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래서 친해진 거지만.

박 대표는 사람들이 익숙해져서 수철의 중요성을 간과한다고 생각하지만, 수철은 오히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편하다. 아무 거리낌 없는 친구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며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철을 어떤 대상으로만 대한다. 신기한 존재, 돈벌이, 독점, 아니면 질투.

“내가 태워다 줄게요.”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 실장은 극구 수철을 태워다 주겠다며 따라붙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새였다.

수철은 계속 거절하기도 뭐해서 이 실장의 차에 올랐다.

“출발할까요?”

“네.”

처음 분위기와 달리 이 실장은 한동안 말없이 운전대만 잡고 있었다. 왠지 경직된 듯한 모습이었다.

“예전 생각하면 정말 창피해요.”

이 실장은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그 말에 수철은 빙그레 웃었다.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대박에 눈이 멀어서 완전 미쳤죠. 그때 생각하면 수철 씨에게 너무 미안해서 잠도 안 올 정도예요.”

수철은 피식 웃었다.

“어쨌든 잘되셨잖아요?”

이 실장이 고개를 휙 돌렸다.

“수철 씨는 내가 밉지 않아요?”“한때는요.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누구나 한 번씩은 실수하잖아요? 사람이니까요.”

그 말에 이 실장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요, 수철 씨. 그렇게 말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 실장은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제 편하게 잠 좀 자겠네요. 하하.”

그제야 이 실장의 인상이 편해졌다.

수철은 이번 프로젝트 앨범을 하면서 박 대표가 말한 이 실장의 천성이라는 것을 봤다.

이 실장은 수철에게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애를 썼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소연까지 했다.

그리고 조용히 보내 온 3천만 원.

돈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박 대표는 그런 말을 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선뜻 내놓는 제작자는 없어.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지. 오히려 ‘내 덕분에 네가 작곡자로 유명해진 거 아니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올 때도 있어.”

“그렇군요.”

“그래. 그런데 이 실장은 그렇지 않잖아?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싶어 하잖아.”“그래도 이건 너무 큰돈이에요.”“그게 이 실장의 방식이야. 그런 식으로라도 너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액수가 많더라도 그 돈을 받는 게 좋을 거 같아.”

박 대표는 그게 이 실장의 천성이라고 했다.

수철도 그 말엔 공감했다. 이미 이 실장의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잘못을 숨기지 않고, 깨달으면 적극적으로 사과한다는 것.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

가끔 거칠어도 거짓은 없었다. 박 대표가 그동안 왜 이 실장을 감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이 실장 마음의 부담을 덜어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기서 세워 주세요. 그리고 실장님.”

“네.”

“인제 그만 미안해하셔도 돼요. 저 때문에 잠 못 주무시고 그러시지 않으셔도 돼요.”“……네, 고마워요.”

이 실장은 수철을 내려 주고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물끄러미 수철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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