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31화 (131/239)

#131화. Going Well(1)

다혜는 이번 프로젝트 앨범의 최고 수혜자였다. 타이틀 곡이 인기를 끌면서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하준과 같이 무대에 올라 반주하면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게 됐다.

아울러 자신이 만든 곡이 타이틀로서 역할도 톡톡히 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이전에 만든 곡들까지 관심이 이어졌다. 물론 글발 좋은 작가들이 만들어 낸 보도 자료도 한몫했다.

[세상에 단 한 장뿐인 앨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음악들이 어울리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헤드라인이 이 정도는 나와야죠.”

이 실장은 자신이 개입한 성과물을 뿌듯해했다.

어찌 됐건 다혜의 타이틀 곡이 인기를 끌고, 이 실장의 홍보력이 빛을 발하면서 수철의 곡과 박 대표의 곡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물론 수철은 이미 팬덤이 형성되어 있어서 이번 앨범의 효과가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영향을 끼쳤다.

“하준이 듀엣곡 ‘For Destiny’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을 때 내놓은 앨범이라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죠.”“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곡이 흥행한 이유 전부는 아닙니다. 시발점이 됐을 뿐이죠.”“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네, 이 곡이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호소력 짙은 하준의 목소리와 감성을 두드리는 윤다혜 작곡가의 멜로디 라인, 그리고 대중적인 가사. 이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겁니다.”

팝 칼럼니스트들은 프로젝트 앨범의 흥행 이유를 처음엔 하준의 인기에서 찾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혜의 곡에 점점 포커스를 맞췄다. 하준의 목소리에 익숙해지자 다혜의 곡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대중들은 하준의 애절한 보이스로 부르는 가사가 마음을 울린다는 반응을 내놨다. 결국, 평론가들이나 대중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음악과 보컬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윤다혜 작곡가님. 여기는 엠넷 ‘음악의 심(心)’입니다.”

다혜는 갈수록 바빠졌다. 작곡 요청이 많아진 건 당연했고, 하준의 반주자로 방송에 얼굴을 내밀면서 독자적인 출연 요청도 생겨났다.

“다혜가 다혜 같지가 않네?”“카메라 마사지 받으니까 확실히 예뻐졌네요.”

강의 겸 출장을 다녀오던 박 대표와 이 실장은 휴게소 TV에서 다혜를 발견했다. 팔짱을 낀 채 다혜의 변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혜는 예뻐졌다,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어느 순간 정말로 예뻐지기 시작했다. 외모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헉, 진짜 다혜 맞아?”

오랜만에 본 학교 친구들이 놀랄 정도였다.

“카메라 마사지가 무섭긴 무섭네.”“완전 작정하고 관리하는 거 같지 않아?”“다혜는 작곡가지, 연예인이 아니잖아.”“모르지, 다른 생각이 있을지도.”

다혜는 남몰래 요가를 배우며 체중 조절에도 성공했다. 사람들이 작업실에 모여 피자와 콜라를 먹을 때에도 다혜는 닭가슴살과 샐러드로 관리를 했다.

박 대표는 옛날 다혜가 그립다며 제발 옛날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다혜는 손가락을 저으며 ‘노노’라고 외쳤다.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친하게 지내는 건데.”

한때 다혜와 드라이브하며 딴소리를 지껄였던 남자들은 모두 땅을 치며 후회했다.

“와, 저 연예인 봐! 거기 나왔던 배우야!”

처음 방송국을 갔을 때 로비에서 지나가는 연예인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다혜는 어느 순간 그들과 같은 걸음걸이로 당당하게 걸어 다녔다.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방송국 로비를 가로질렀다. 목은 세우고 허리는 꼿꼿이 편 채로.

“차기 고정으로 윤다혜 씨 섭외해 보는 게 어때?”“작곡가 윤다혜요?”

“그래, 학생이라서 풋풋하고, 솔직한 입담이 은근 매력 있던데?”

라디오 피디는 금주의 핫 뮤직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의 고정으로 다혜를 추천했다. 작곡가 겸 반주자로 출연해 거리낌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다혜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안을 거절할 리 없는 다혜는 곧바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다혜 인생의 봄날이 시작됐다.

“인사해, 김명석 선생님이셔.”

다혜는 수철에게 김명석도 소개받았다. 수철의 추천으로 김명석이 진행하는 싱글 앨범의 세션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유명인이자 작곡계의 대선배를 만난 다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뻐금거렸다.

무슨 군인처럼 허리를 잔뜩 숙이며 두 손을 내밀었다.

“정말 뵙고 싶었어요. 초대해주셔서 영광이에요.”“하하. 반가워요. 수철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친한 친구라고요.”“네! 완전 절친이에요!”

다혜는 느닷없이 수철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했다. 수철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오호, 느낌이 딱 내 스타일이네.”

김명석은 다혜를 마음에 들어 했다. 시원시원한 성격이 좋다고 했다.

“수철이랑 친구면 나랑도 친구지. 그러니까 편하게 다혜라고 부를게.”“네, 선배님! 아니, 오빠라고 부를까요?”“하하! 오빠는 무슨. 우선은 선배님이라고 하고,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뭐. 그때 봐서.”

“네, 선배님!”

음악 한 곡이 크게 히트함으로 다혜의 인생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 * *

“와― 쌤! 고마워요!”

다혜는 수철과 달랐다. 박 대표가 계약 얘기를 꺼내자 좋아서 폴짝 뛰었다.

박 대표도 다혜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잘해 보자고 내민 손을 잡으며 금세 또 장난을 걸어 왔다.

“쌤, 잘 생각하셨어요. 축하드려요!”“네가 날 축하한다고?”

박 대표가 황당한 눈으로 바라봤다.

“네! 좋은 선택을 하셨어요,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을 하신 거예요.”“갑자기 실수했다는 기분이 드네?”“기분은 중요하지 않아요, 선택했다는 게 중요한 거죠.”“5분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을 한 거 같아.”

박 대표가 고개를 젓자, 다혜는 얼굴을 붙이며 자신을 믿으라는 몸짓을 했다.

“쌤, 걱정 마세요. 제가 돈 많이 벌게 해 드릴게요!”

“어떻게?”

“어떻게라뇨?”

“네가 어떻게 돈을 많이 벌게 해 줄 건데?”“제가 잘나가면 되죠! 요즘 분위기 좋으니까 두고 보세요, 돈방석에 올라앉을 수도 있어요.”“하하, 이런 기본 개념도 없는 녀석들하고 내가 참, 무슨 소꿉장난을 하는 건지.”

박 대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왜 그러세요? 돈 벌게 해 드린다는데요?”“참, 삶이 슬프다.”

박 대표가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오늘같이 좋은 날에? 축배를 들어야죠!”“흠, 다혜야. 넌 작곡가잖아? 네가 아무리 잘나가도 내가 돈 벌 일이 없어.”

“왜요?”

“생각해 봐, 내가 무슨 명목으로 돈을 벌어? 너한테서 저작권료를 떼어 올 것도 아닌데?”

“…….”

“괜히 구두계약을 하는 게 아니야. 계약할 게 없어. 세션 소개해 주고 소개료를 뗄 거야, 아니면 작곡 연결해 주고 작곡료를 뗄 거야?”

“…….”

다혜는 눈만 끔뻑였다.

“그렇다고 네가 노래를 부를 것도 아니고, 행사를 뛸 것도 아니잖아?”“……그러면 왜 계약을 해요?”“내 말이. 수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사실 계약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야. 어디 노예 작곡가로 들어가지 않는 한.”“그래도 제가 CF 찍으면 쌤도 몇 퍼센트 먹는 거 아니에요?”“먹다니? 녀석이 참, 말을…….”

“죄송요.”

박 대표의 핀잔에 다혜는 괜히 손톱을 만졌다.

박 대표가 갑자기 눈에 힘을 줬다.

“잠깐!”

“……?”

“그런데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CF라니?”“……왜요? 찍을 수도 있잖아요.”“네가 방송 몇 번 나가더니 배에 헛바람이 찼나 보네?”“헛바람이 차다니요? 쌤, 무슨 말씀을 그렇게.”

다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쏘리. 어쨌든 너무 허황된 꿈은 꾸지 마. 넌 결국 작곡가일 뿐이야.”“왜요? 작곡가 중에 MC도 하고 CF도 찍는 사람들 있잖아요?”“오호라, 그래서 네가 요즘 방송을 열심히 하고 관리도 열심히 하는 거구나?”“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라면서요?”

다혜는 질 생각이 없었다. 박 대표가 얼굴을 붙였다.

“진심이야?”

“반반이요.”

“음악과 연예인 중에 선택하라면?”

“음악이요.”

“아직 중증은 아니네.”

박 대표가 다시 몸을 세웠다.

“중증이라뇨?”

다혜는 얼굴을 붉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놀랍다.”

“전대미문……!”

“넌 아무래도 나보다 이 실장 회사로 가야 할 거 같은데? 서로를 위해서 말이야.”

박 대표가 턱을 매만지며 바라봤다.

“안 돼요! 전 이미 쌤을 선택했어요!”“내 회산데 선택은 내가 해야지.”“준이 오빠가 그렇게 노래했잖아요.”

“……?”

“For Destiny! 운명을 받아들이라고요.”

“…….”

박 대표가 미간을 좁혔다.

“너, 지난번에 녹음실에서도 그러더니 또 그러냐?”“녹음실에선 예민해서 그랬죠.”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는 거죠.”“현실 직시면 난 너랑 계약하면 안 돼.”

“…….”

“…….”

“알았어요, 피자 살게요.”

“왜 갑자기?”

“좋아하시잖아요. 저랑 계약하시면 매주 한 판씩 사 드릴게요.”“음……. 매주 피자 한 판에 한 달에 한 번 여기 청소. 오케이?”“쌤! 저 TV에 나오는 사람이에요.”

“싫음 말고.”

“알았어요.”

“콜?”

“콜!”

둘은 계약에 합의하고 손을 맞잡았다.

“근데 구두계약은 계약금 없는 거죠?”

“너도 그 소리야?”

“학교에서 그래서요. 계약금 안 주면 신고하라고요.”

“…….”

“……신고 안 할게요.”

* * *

전략적 동반 관계.

박 대표가 이 실장에게 제안한 방법은 이거였다.

하준의 계약과 관련하여 특별히 이번에만 전략적으로 동반 관계를 이루자는 거였다.

박 대표는 하준과 정식 계약을 앞두고 이 실장과 먼저 MOU를 체결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서로 양해 각서를 만든 것이다. 핵심 요점만 정리해서 A4 용지에 큼지막한 글씨로 출력했다. 그리고 각각의 회사와 대표 이름 옆에 시원하게 사인을 했다.

“자, 한 장씩 나눠 갖자고. 악수도 한번 하고.”“네, 대표님. 잘해 봐요.”

박 대표와 이 실장은 간이로 작성한 계약서를 서로 한 장씩 나눠 가졌다. 그리고 악수하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둘은 큰 협상에 성공한 모습이었다.

“하하! 대표님, 살다 살다 이런 날이 다 오네요. 제가 대표님과 동반 관계를 다 맺고요.”“해 보고 괜찮으면 다음에 또 하지 뭐.”

“그건 좀…….”

이로써 박 대표와 이 실장은 하준을 놓고 전략적 동반 관계가 체결됐다.

하준의 소속은 박 대표 회사인 ‘디데이 뮤직.’ 가수와 관련하여 벌어지는 법적인 문제와 세금 문제는 박 대표가 맡는다.

반면에 이 실장은 디데이 뮤직의 아티스트인 하준을 렌탈해서 수익을 창출한다. 기한은 무기한. 매달 일정액의 수수료만 내기로 하고, 계약을 완성했다.

사실 계약서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MOU의 말뜻처럼 사전 업무 협약 차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실장은 한시름 돌렸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확답을 받고 싶었다. 주위에서 하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 실장은 이제 마음 놓고 하준을 서포트할 수 있게 됐다. 무겁고 답답했던 마음이 해소됐다. 게다가 정식으로 박 대표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협업이 형성돼서 이 실장은 음악과 관련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마케팅과 행사만 신경 쓰면 된다. 그건 이 실장이 가장 자신 있는 파트다.

* * *

“자, 둘이 악수하고.”

순위 다툼이 치열했던 문제가 해결됐다. 수철과 다혜가 공동 1호 뮤지션이 되기로 합의했다.

“잠깐만! 손 풀지 말고 그대로 있어 봐.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 놔야 해.”

박 대표는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분쟁을 막기 위해 둘이 악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대표님, 저는요?”

하준이 자신도 신경 써 달라는 몸짓을 했다.

“넌 상관없잖아, 3호니까. 나중에 단체 사진이나 한 장 찍지 뭐.”

“……네.”

하준은 자연스레 3호 뮤지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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