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32화 (132/239)

#132화. Going Well(2)

“헉! 저게 뭐야!”

하준의 지난 기획사 대표가 놀라서 소리쳤다. 눈은 금세라도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저, 저거, 주, 준, 준이 맞아?”

숨이 멎을 듯한 얼굴로 TV를 가리켰다. 하준이 TV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 이런 일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TV를 손가락질하며 말을 더듬었다.

굳어서 정지되어 있던 얼굴에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금세 잔뜩 붉어졌다.

소리쳤다.

“꺼!”

“네?”

“TV 끄라고!”

핏대를 세웠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뭐라고! 앨범이 더 있다고?”

프로젝트 앨범까지 인기몰이를 시작하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결국 목덜미를 잡고 쓰러졌다.

이 실장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

―대표님, 통쾌한 소식 하나 전해 드릴게요. 하하.

이 실장이 껄껄거리며 전화를 해 왔다.

―지난번 ‘트립플 오’ 대표 기억하시죠? 하준 씨 전 회사요.

“그래, 기억나. 인성이 안 좋다던.”―네. 그 사람, 결국 목덜미 잡고 쓰러졌대요.

“뭐? 하하, 진짜야?”

박 대표는 놀라며 큰 웃음소리를 냈다.

―네, 그렇대요. 쓰러져서 못 일어난 건 아니지만, 열 받아서 죽으려 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아직도 몸살 나서 누워 있대요. 하하!

“하하! 그럴 만하지. 나 같아도 속이 뒤집히겠네. 하하!”

박 대표는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복수를 한 기분이었다.

―그 성격에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 선하지 않나요? 머리를 쥐어뜯을 거 같은데요? 하하!

“하하. 그럴 수도. 어쨌든 준이의 성공을 축하해 주지는 않았겠지.”―에이, 절대 그럴 사람은 아니죠. 어쨌든 통쾌합니다. 그동안 하는 짓 보면 눈꼴이 사나웠거든요. 하하.

“그래. 아픈 사람한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나도 속이 후련하다. 하하.”―네, 마음껏 웃으세요. 통쾌하게요. 하하.

박 대표는 당장 하준을 불러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하준이 고생한 것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 * *

드라마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수철이 만든 주제곡 A, B, C 버전이 순서대로 차트 상위에 올랐다. A가 내려오면 B가 올라가고, B가 내려오면 C가 올라가고.

차트에서 용수철이라는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 스포츠 협회에서는 저작권료를 지불하며 B버전을 공식 홍보 음악으로 선택했다. 동계 올림픽 유치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쓰고 싶다는 얘기까지 꺼내 놨다.

“미다스의 손이네. 손만 대면 다 터지니까 말이야.”

지우의 리메이크 곡에, 드라마 주제곡에, 프로젝트 앨범까지 히트하면서 수철은 다시 엄청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도대체 용수철이 누구야?”

수철을 잘 모르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거기에다가 하린이가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유명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 때문에 관심은 더 커졌다.

“용수철 작곡가와 친하다고요?”“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이세요. 저의 소리를 완성시켜 주셨어요.”“소리의 완성이라니, 표현이 멋있네요. 그러면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셨다는 얘긴가요? 용수철 작곡가에게요?”“네, 지금 앨범을 준비하면서 선생님이 제 소리를 잡아 주셨어요.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신 분이세요.”“와―! 엄청난 찬사군요.”

진행자는 질문지를 넘기며 계속 탄성을 내뱉었다.

“두 분은 참 인연이 많군요? 드라마 주제곡까지 불렀으니까요.”“네, 그때는 듀엣으로 불렀지만 언젠가는 제 앨범에 수철 선생님의 곡을 넣고 싶어요.”

하린이 앨범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자리인데도 진행자는 수철의 얘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저기 카메라 보면서 한마디 하시죠?”“선생님! 미래에 저한테 주실 곡 기대할게요! 그리고 사랑해요!”

하린이는 메인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하린이를 케어하고 있는 금별기획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계획에 없던 돌발 행동이었다.

어쨌든 귀엽고 깜찍한 하린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자 수철에 대한 궁금증은 극에 달했다.

“하린 씨가 우리 좀 도와줄래요?”

방송이 끝나고 작가는 수철의 출연을 도와 달라며 하린이에게까지 부탁했다. 하지만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못 만나고 있어요.”

그건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수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증폭됐다.

지난 오디션 영상을 등장시키고, 에피소드까지 소환해 왔다.

“와― 다시 봐도 쩌네. 이렇게 하고 사라졌다고?”“응, 멋있게 탈락한 거지.”“완전 아웃사이더네.”“잘생긴 아웃사이더지.”

작가와 기자들도 넋 넣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뭐라도 좀 만들어 봐. 섭외는 천천히 하더라도 이슈는 내보내야 할 거 아냐.”

수철이 출연 요청과 인터뷰를 거절하자 작가와 기자들은 문구를 짜내기 시작했다. 비정한 승부 시스템을 차 버리고 나온 조각 미남, 살아 있는 다비드상 등 별별 말을 만들어 냈다. 쓸 수 있는 자료가 그것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베일에 가린 천재 작곡가니, 시대를 뛰어넘는 뮤지션이니 하는 말은 지겨웠다.

[용수철. OO 프로그램 라이브 방송에 전격 출연 결정!]

그런 것보다는 이런 문구를 원했다.

“용수철을 출연시켜 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쇄도합니다.”

이쯤 되니 방송사에서도 전화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철이 나와 주기만 기다릴 순 없었다. 적극적으로 수철을 섭외하려고 나섰다.

“수철 씨 섭외 요청이 빗발칩니다. 이젠 하준 씨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나도 연락받았어.”

“방송 3사가 제대로 몸이 달아오른 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경쟁하는 거 보면요.”“궁금해서 그런 거지. 이곳저곳에서 언급되는데 나타나지 않으니까.”

방송사에선 갖가지 채널을 동원해 연락을 해 왔다. 박 대표의 말대로 그동안 쌓여 있던 궁금증이 폭발했다.

누가 먼저 출연시키느냐 경쟁했다.

하지만 수철은 이들의 조급함과 상관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든든한 소속사가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와 이 실장이 나서 적극적으로 커트했다.

“작곡가가 방송 출연을 원치 않습니다.”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방송 출연은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말 그대로였다.

아무리 군침 도는 제안을 해 와도 늘 그렇듯 수철은 관심이 없었다. 박 대표도 처음엔 수철에게 의사를 물어보다가 나중엔 알아서 거절했다. 물어봤자 답은 뻔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거절할수록 방송사 사람들의 불만은 커졌다.

“아니,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계속 인기에 부채질하고 있는데, 한 번쯤은 얼굴을 내밀어야 하잖아요. 가수도 아니고 무슨 작곡가가 이렇게까지 신비주의를.”

한 케이블 TV 음악 프로그램 피디는 방송국 복도에서 불만을 터트렸다.

“우리가 부채질하는 건 아니지, 시청자들이 난리를 치니까 어쩔 수 없이 맞장구치는 거뿐이지.”

“그게 그거죠.”

“내가 듣기론 신비주의는 아니고, 낯을 많이 가린다는 것 같아.”

“……낯을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작가가 그러더라고.”

선배 피디는 몸을 틀어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오기만 하면 진짜 대박인데. 장난 아닌 외모에 시크한 눈빛, 낯까지 가린다니. 얼마나 매력적이겠어? 휴―!”“본 거처럼 얘기하시네요?”“너, 방송 못 봤어?”

창밖을 보던 선배 피디가 고개를 돌렸다. 후배는 동그란 눈을 마주쳤다.

“무슨 방송이요?”

“그때 탑 12에서 상식에 벗어난 음악을 하고 사라졌던.”“……아! 그 사람이 용수철이에요? 천재라는 말이 돌았던?”“그래, 그 사람이 용수철이야.”

피디는 그 말을 듣자 수철을 섭외하고픈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머릿속으로 온갖 인맥을 떠올렸다. 하지만 수철을 섭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천재의 재조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전문가들을 불러 모았다.

“천재 음악가라고 하면 보통 모차르트니 베토벤이니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에도 천재 음악가들이 많습니다.”“저도 김 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가 서양 음악사를 많이 배우다 보니 외국의 음악가들이 확대 포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요.”“맞습니다, 우선 신라 시대만 보더라도…….”

전문가들은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며 역사 속 음악가들을 훑어 내렸다.

호기심에 잠시 지켜본 시청자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고 채널을 돌렸다.

수철의 인기에 편승하고 싶었던 피디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형편없는 시청률 때문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천재의 실물이 보고 싶은 거지, 전문가들의 토론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조차 수철의 인기에 슬쩍 발을 담갔다.

“그렇게 하면 제품이 더 팔리나요?”“뭐라도 하고 싶었나 보지.”

광고사에서는 대놓고 SC11이 수철이라는 말을 흘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제 곧 출시될 신형 제품과 수철의 이미지가 딱 맞아떨어진다고 하더군. 신비롭다나 뭐라나.”“그래도 이건 계약 위반 아닌가요?”“그런 조항까지는 넣지 않았겠지. 자신들이 불리할 걸 왜 넣겠어?”“이래서 수철 씨는 정말 회사가 필요한 거네요.”“지나간 건 어쩔 수 없고. 이제부터 신중하게 하면 되지.”

수철의 유명세가 끊기지 않자 H 자동차 그룹과 보험사는 광고사에 수철의 음악을 다음 모델 때 한 번 더 쓰자고 요청했다. 마케팅팀에서 수철의 음악이 매출에 꾸준한 영향을 준다는 분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광고사에서 바로 전화를 해 왔다. 수철에게 의향을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철은 즉답을 미뤘다.

“회사랑 상의해 봐야 해요.”

“회사요?”

“네.”

“그동안 소속사가 생겼어요?”

“네.”

수철은 벌어지는 모든 일을 박 대표에게 얘기했다.

박 대표는 연락처를 받아서 직접 나섰다. 하지만 광고 음악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계약 전에 벌어진 일이다.

“이건 네가 직접 얘기해야 해. 내가 관여할 수가 없어.”“네. 그럼 어떻게 할까요?”“기존의 것을 기간 연장하는 건 당연히 해야지.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알겠어요. 그렇게 얘기할게요.”

하지만 광고사의 요청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자동차와 보험사 두 곳 모두 새로운 상품의 광고에 수철의 음악을 넣고 싶어 했다.

여기서부터는 박 대표가 나섰다.

“네가 음악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데 어떻게 진행할까?”“그건 그만하고 싶어요.”

“그래?”

당연히 할 거라 생각했던 박 대표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수철의 대답은 같았다.

“네. 그만할래요”

“알았어, 그렇게 얘기할게.”

그 소식을 들은 광고사에선 당황하고 황당해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최고의 대우를 해 준다는데 거절하다니?”

모든 작곡가가 하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 대기업의 광고 음악이다.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앨범처럼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니까.

엄청난 돈을 챙길 기회를 걷어차는 게 이례적이어서, 아니, 처음 있는 일이라서 광고사 담당자는 어이가 없었다.

* * *

그렇지 않아도 두꺼웠던 수철의 통장은 더 빵빵해졌다.

주제곡 작, 편곡료로 금별기획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드라마 흥행으로 특별 보너스까지 받았다. 게다가 금별에서는 하나하나 다 보상을 하고 싶었는지 악기 녹음에 대한 세션비와 가수 연습비까지 추가해서 지불했다.

“저작권료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통장 슬쩍 한번 보고 싶어요. 하하.”“무슨 그런 말을…… 그런데 나도 이번엔 궁금하긴 해. 하하.”“대표님이 슬쩍 한번 물어보실래요?”

“됐어.”

최근 몇 달 동안 수철의 음악은 모두 상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그중에서 지우의 리메이크 곡과 드라마 주제곡은 몇 주간 1위를 차지했다. 엄청난 저작권료가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드라마 OST 앨범과 프로젝트 앨범까지.

소위 말하는 저작권료 대박이 났다. 심지어 과거의 오디션 곡까지 차트에 오르더니 역주행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고,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지우의 곡은 다시 상승하기까지 했다.

“이제 작, 편곡 알바할 필요는 없겠네.”

“네.”

알바가 문제가 아니라 수철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

단 몇 개월 만에 광고 음악 작곡, 주제곡 작, 편곡, 이 실장의 보상, 금별의 특별 보너스, 거기에다 엄청난 저작권료까지.

수철의 통장은 빵빵하다 못해 터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짜 통장이 터질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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