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33화 (133/239)

#133화 Going Well(3)

―축하합니다! 드디어 제가 예언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브라이언 김이 흥분해서 전화를 해 왔다.

깜짝 놀랄 일이 생길 거라고 두 달 전에 예언했었는데, 그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통장 확인해 보셨나요?

“아직이요.”

―확인해 보시고 전화 주세요.

“네.”

통장을 확인한 수철은 놀란 눈으로 동그라미를 세어 봤다. 동그라미 개수가 비현실적이었다.

저작권료였다.

“와…….”

수철은 브라이언 김이 말한 깜짝 놀랄 일이라는 게 앨범의 흥행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브라이언의 예언은 좀 더 현실적인 것이었다.

놀랄 만큼의 흥행이 아니라 돈이었다.

“어때요? 놀라셨나요?”

“네.”

브라이언은 주로 한국 아티스트들과 일했기에 차원이 다른 저작권료에 놀랄 걸 알고 있었다.

* * *

수철도 해외의 반응이 어떤지 감지하고 있었다.

멤버들이 계속해서 그곳의 소식을 전해 왔기 때문이다.

―하루에 인터뷰 3곳은 기본이야! 어떤 연예 잡지와 인터뷰를 했는지, 사진을 찍었는지 다 기억을 못 할 정도라고. 하하.

알베르토는 입이 잔뜩 벌어져서 몇 주 사이에 스타라도 된 듯이 떠들었다.

―하하, 멋지지 않아? 이러다 유럽 전체에 우리 사진이 도배될 분위기야.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멤버들은 영국의 유명 재즈 전문 음악 잡지에 사진과 기사가 실렸다고 기뻐했다. 인터뷰는 자주 했지만 잡지 표지에 사진이 실린 건 처음이라며 감격했다. 그런데 이제 하루 3곳은 기본이라니, 그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넌 우리가 지금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를 거야. 넌 어서 여기에 와야 해. 그래야 알 수 있어.

알베르토의 얘기만 들어도 대충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예상이 됐다. 앨범이 인기몰이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며칠 후, 이번엔 샘이 소식을 전해 왔다.

―수철,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어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데?”―놀라지 마, 우리가 베를린 재즈 페스티벌(Berlin Jazz Festival) 메인 무대에 초청받았다고!

베를린 재즈 페스티벌은 유럽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재즈 페스티벌이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유명 뮤지션을 다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게다가 메인 무대라니, 연륜이 깊은 뮤지션이 아닌 젊은 뮤지션이 메인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믿을 수 있겠어? 우리가 이달의 앨범과 주목받는 뮤지션에 선정됐다는 걸? 그것도 재즈가 아니라 팝에서!

앨범 ‘ABYSS’는 장르를 넘어서고 있었다. 정형적인 재즈의 틀을 벗어난 편곡이 먹힌 것이다.

수철, ECM, 멤버들 모두 기대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시는 아직 여기에 있어. 호주에 돌아가지 못하고 말이야. 하하.

덕분에 제시는 계속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공연과 사진 촬영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었는데, 계속 스케줄이 생겨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빅 뉴스는 바로 이거야.

“어떤?”

―놀라지 마, 우리에게 최고의 에이전시가 생길 거야. 으하하!

빅 뉴스였다. 샘이 입이 찢어져라 웃을 만했다. 본격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많을 돈을 벌게 됐다는 뜻이다.

영국은 한국과 시스템이 다르다.

한국은 주로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지만 영국은 에이전시를 통한다.

에이전시는 에이전트들이 모여 있는 회사. 이 에이전트들이 연예인의 업무와 교섭을 대행하는 일을 한다. 이들이 말하는 연예인에는 배우, 음악가, 코미디언, 모델, 예술가 등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얼핏 한국의 매니저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이들은 시험에 통과해서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전문가들.

그래서 연예 활동이 필요한 연예인과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섭외와 계약을 대행하며 방송, 광고, 이벤트 등을 담당하고, 진행해서 그 수익의 일부분을 수수료로 받는다.

갈등도 적고 투명하다.

“와―! 에이전시라니, 축하해!”

수철은 탄성을 지르며 에이전시가 생긴다는 것을 축하했다. 기뻐할 만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수철, 축하는 네가 받아야지. 이게 모두 다 네 덕분인데.

“아니야, 너희가 모두 열심히 한 덕분이지. 다른 멤버들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해 줘.”―그래, 우리 서로 축하하자. 너도 어서 서둘러! 여기에 모여서 파티를 열어야지. 이 기쁜 소식을 우린 함께 나눠야 해.

“알았어, 머지않아 보게 될 거야.”

멤버들은 여기저기서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시는 더 주목을 받고 있었다. 21세기 빌리 홀리데이라는 극찬을 받았고, 신이 내린 매혹적인 보이스의 소유자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관심이 집중됐다.

제시를 작사가로 인터뷰하는 매체도 많았다.

작곡자가 나타나지 않자 작사가에 관심이 쏠렸다. 그 이면에는 제시를 통해 수철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노림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시 특유의 느리고 독특한 말 스타일은 그들의 호기심만 더 자아냈다.

“세상에서 유일한 아티스트예요.”“아, 역시 그렇군요. 더 하실 말씀은?”“음…….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제시는 기자들의 궁금증은 신경 쓰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먼 하늘의 구름을 보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제시의 나라인 호주에서도 앨범 ‘ABYSS’는 엄청난 반응을 끌어냈다. 호주는 뮤지션을 존중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음반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그만큼 뮤지션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다.

그곳의 재즈 장르에서도 수철의 3곡이 동시에 10위 안에 올랐다. 빌 에반스의 앨범 이후로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빌 에반스는 재즈 피아니스트계의 쇼팽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다.

그의 앨범 ‘New Jazz Conceptions’에 수록된 3곡이 나란히 10위 안에 든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수철의 앨범 ‘ABYSS’가 처음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철, 너 믿을 수 있겠어? 우리가 탑 3에 올랐다고!

그 후로도 멤버들은 계속 신이 나서 소식을 전해 왔다.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시만이 차분했다.

―언제 올 거야?

“Soon.”

―How Soon?

“Very Soon. 하지만 런던 말고.”―그럼 어디?

“시드니.”

―오케이.

* * *

“와! 믿을 수가 없다, 1위라니!”

드디어 1위를 찍었다.

영준이 형이 목소리 톤을 잔뜩 높이며 팔을 벌렸다.

수철의 곡이 영국에서 1위를 했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밤늦게 작업실로 달려왔다.

“내가 한국 사람이 만든 음악이 1위 하는 걸 보게 될 줄은!”

감격스러워했다.

“축하한다, 수철아.”“축하는 같이 받아야죠. 형도 축하드려요.”“그래, 고마워. 그래도 이 앨범의 주인공은 너잖아. 네가 작곡자고 감독인데 네가 더 축하받아야지!”

“네, 감사해요.”

수철이 덤덤하게 대꾸하자 영준이 형은 웃음을 보였다.

“하하! 수철아, 넌 아직 실감을 못 하는 거 같은데, 이제 네 인생이 확 달라질 거야.”“달라져요? 어떻게요?”“이건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몰라. 네가 만든 음악이 널 그렇게 끌고 갈 거야. 내 눈엔 그게 보여.”

“…….”

역술가 같은 말에 수철은 눈만 끔뻑거렸다.

“앞으로 돈 걱정 안 하고 편하게 음악만 하며 살 수 있어.”

“아, 네…….”

“넌 지금 너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거야.”

영준이 형은 계속 애매모호한 말을 덧붙였다. 음악이 1위를 함으로써 인생이 달라질 거란 뜻이었다.

“나도 빨리 가야 하는데.”

영준이 형은 당장 영국으로 가서 활동해야 하는데 강의 때문에 가지 못한다고 속을 태웠다. 우선은 다른 트럼펫 연주자가 대신 세션을 하고 있지만, 영준이 형은 그가 붙박이가 될까 봐 불안해했다. 그래서 방학하자마자 영국으로 날아갈 거라고 했다.

“학생들 기말고사 끝나면 그날 밤 바로 비행기를 탈 거야. 어때?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전 나중에요. 그전에 할 일이 좀 있어서요.”

* * *

“브라보!”

ECM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고 축배를 들었다.

“드디어 터졌어!”

“탑을 찍었습니다!”

영국에 이어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1위를 했다. 곧 1위를 앞둔 나라들도 많았다.

가파를 상승세를 보이던 앨범 ‘ABYSS’의 곡들이 4주 만에 탑5에 올라가더니 5주 만에 영국에서 1위를 찍고, 6주 만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1등을 찍었다. 샴페인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각 나라의 1등 곡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건 ‘ABYSS’의 곡들끼리 1등을 두고 경쟁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CONGRATULATION!”

샴페인 병의 병뚜껑이 천장으로 높이 치솟았다. 사람들은 샴페인의 거품을 서로의 머리에 뿌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대박은 자주 터트렸지만, 각각의 나라에서 서로 다른 곡들이 1등을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리를 비롯한 팀원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하와이가 보이지 않아?”“저는 눈앞에 발리가 왔다 갔다 합니다.”

벌써 포상 휴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장르를 한정시킬 필요가 없겠지?”“네, 지금 분위기면 다른 장르에도 충분히 어필이 가능해 보입니다.”“그래, 제한을 두지 말고 영역을 계속 확대해 봐.”

축배를 들만한 소식이 터질수록 이들은 앨범 ‘ABYSS’에 더 힘을 실었다.

그런데 유럽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조용했다. 해리가 너무 조용해서 놀랍다고 할 정도였다.

“판매고는?”

“영국에 비해 0.01%도 안 됩니다.”“놀랍군, 작곡가도 한국 사람이고, 트럼펫 연주자도 한국 사람인데 말이야.”

이들이 보기엔 기이할 정도로 신기한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장르의 한계였다. 한국에서 재즈 분위기의 앨범은 호응을 받기 어려웠다.

“불모지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해리도 장르의 한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그래도 유럽에서의 반응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서 흥행에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다만 아쉬울 뿐이었다.

한국에서 판매고는 형편없었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엄청나게 이슈가 됐다. 재즈와 퓨전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을 할 정도였다. 단지 그런 앨범을 소개할 방송 채널이 없다는 게 분노스러웠다.

“트럼펫 부는 모습으로 한 장 더 찍을게요.”

덕분에 영준이 형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다. 수철이 들어오는 요청을 족족

다 거절하자 영준이 형에게 시선을 돌린 것이다.

“제가 처음 용수철 군의 음악을 접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때가 아마 런던의 비 내리는 어느 날 밤이었을 거에요. 갑자기 창문이 덜컥거리며 커튼이 흔들리더군요.”

“……?”

수철의 곡에 대한 첫인상을 묻는 기자에게 영준이 형은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을 묘사했다. 기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준이 형이 씨익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바람마저 대단한 음악을 영접하려고 모여든 거죠.”

“아, 하하.”

기자는 영준이 형의 황당한 표현에 고개를 저었다.

영준이 형은 고급진 언변과 음악의 철학을 끄집어내며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특유의 패션 감각과 헤어스타일도 뽐냈다.

트럼펫이 조명에 반짝였다.

영준이 형의 인터뷰는 모든 연예 잡지에 도배됐다.

―언제 이런 앨범을 냈어?

―어떻게 우리에게 말도 안 하고!

―배신이야!

할아버지 3인방은 뒤늦게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해 왔다.

―앨범 듣고 놀랐어. 한국에선 왜 홍보 안 해? 도와줄까?”

“아니요.”

―이 곡들 연주해 달라고 하면 안 되겠지?

“네.”

―그럼 저녁이라도 사. 대박 났다면서?

“나중에요.”

* * *

수철은 박 대표에게 통장을 보여 줬다.

“와― 대충 따져도 스무 배가 넘네? 하하!”

박 대표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작권료의 차이가 크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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