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44화 (144/239)

#144화. 홍익인간

제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곡에 제목을 붙이지 않겠다니.

낯설게 들릴 만했다.

수철은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흐름에 순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곡의 순서나 우열, 순위는 착각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었다.

수철의 생각에 원인은 불안이었다. 순서를 붙여야 편안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모두가 그걸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

수철도 작업하면서 나열되는 이야기에 무의식적으로 순서를 붙였었다. 그 결과 흐름이 복잡해졌다. 앨범에 담긴 곡들이 서로 연결되기를 원했었는데 제목을 붙임으로써 복잡해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음악에 붙였던 가제를 뺐다. 그제야 편해졌다. 단절되어 있던 이야기의 흐름이 이제는 자유롭게 연결되는 것 같았다.

음악들을 어떻게 나열해도 다 연결됐다.

“제목을 붙이면 생각에 규정을 짓는 거 같아.”“규정?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제목을 붙이면 사람들이 제목에 맞춰서 생각하게 되잖아? 1번 곡을 들은 다음에는 2번 곡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지.”

“그러면 다른 생각을 할 기회를 놓치는 거 같아. 그건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마이너스고.”

“음?”

“그 또한 억압이니까, 모든 걸 풀어 놓는 게 어떨까? 제목은 듣는 사람이 알아서 정하도록.”

제시는 잠시 생각하더니 좋다고 했다.

“수철, 넌 역시 나랑 잘 맞아. 이것도 우리의 교집합이야. 난 완전 찬성!”

형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제시는 격하게 찬성했다.

“사고의 자연 발생을 돕겠다는 생각. 수철, 넌 역시 아티스트야.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뭐라고 부를지 난 벌써 궁금해졌어.”

그 후, 제시가 보내온 가사의 제목은 모두 ‘0’이다. 생각에 제목과 순서가 없듯이 이번 앨범에 실리는 음악도 그렇다. 형식은 없고, 흐름만 있을 뿐이다.

앨범에도 ‘0’이라는 숫자만 다섯 개 적힐 것이다. 순서 없이, 중구난방으로.

제목도 순서도 듣는 사람의 몫이다.

* * *

가사가 나오자 수철은 파이널 버전을 만들어 나갔다. 악기 녹음을 하기 전에 친구들에게 들려줘야 한다. 그래야 바로 녹음으로 이어갈 수 있다.

하아아암.

으으윽.

수철은 작업하다 충돌이 생기거나 하품이 나오면 기지개를 켜며 창가에 서서 본다이 비치를 바라봤다.

밤이 오면 바다로 나가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었고, 모래사장에 앉아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봤다.

걸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수철의 생각은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더 나은 터치.

수철이 고뇌하는 건 항상 이 부분이다.

소리를 통해 더 나은 터치.

그것에 대한 확신.

판단이 서면 음악은 쉽게 만들 수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하지만 사고의 영역은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나 기발한 편곡으로 대중을 감탄케 하는 건, 양에 차지 않는다.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더 큰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 가진 음악의 재주를 뛰어넘고 싶다.

수철은 처음 호주에 왔을 때부터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이유가 있었다.

가장 원초적인 자연이 있는 곳에서 가장 원초적인 소리를 그려 내고 싶었다.

사람들은 잊고 있지만 누구나 몸 안에 원초적인 소리가 내재되어 있다. 들리지 않지만, 모두가 가진 각각의 고유한 소리.

나무의 나이테처럼 사람들의 몸 안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유전자에 각인된 역사다. 원시부터 차곡차곡 쌓인 역사가 소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는 그 소리로 소통한다. 사람들은 그걸 느낌이라고 부른다. 서로의 원초적인 소리가 소통하는 것을.

수철은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싶었다.

소리의 기원을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 왜 이렇게 변해 왔는지, 왜 이렇게 변했어야 했는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야 소리로 꼬인 매듭을 풀 수 있다.

사람들은 수철이 만든 음악에 환호하지만, 수철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딘가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수철은 이제 음악에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싶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그 음악 안에 소리의 근원을 넣고 싶다.

소리의 화려함 속에 본질을 담고 싶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모든 음악엔 그것이 담길 것이다.

알맹이가.

원초적인 소리의 소통이.

더 나은 터치가.

* * *

“이건 무슨 악기야? 처음 들어 보는 소린데?”

새롭게 편곡한 음악을 들은 마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들어 보는 낯선 악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수철은 이번 앨범에서 악기조차 상식을 벗어났다.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다. 새로운 색깔의 소리로 하모니를 만들어 음악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연출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교집합이야.”

“교집합?”

“응.”

“무엇에 대한 교집합?”

“색깔.”

“어떤 색깔?”

“사람들이 가진 자기만의 색깔.”

“…….”

“예를 들면 너와 내가 가진 색깔에도 교집합이 있다는 거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마크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교집합은 연주 스타일이 잘 맞는다는 건가? 그래서 친구가 된 건가?”

마크가 나름 교집합에 대한 추측을 내놨다.

“그래, 그런 거지.”

수철은 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자신과 제시의 교집합을 앨범에 담았다고 말하기는 이상했다.

“사람들 사이의 교집합을 표현하려다 보니까 새로운 악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만들어 본 거야.”

이 악기를 만든 것은 재미난 생각에서 출발했다.

가장 오래된 악기들을 조합해서 가장 새로운 악기를 탄생시키고 싶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악기는 타악기다. 그래서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원시 부족은 나무나 돌을 두드려서 소리를 냈다. 나무가 없으면 입을 두드리기도 했다. 어쨌건 모두 두드렸다. 타악기란 뜻이다.

수철은 그런 원시적인 소리를 재현하고 싶었다. 그 소리를 재현해서 음악의 분위기에 입체감을 더하고 싶었다.

사람들 DNA 어딘가에 녹아 있는 조상의 소리를 끄집어내서 마음 어딘가를 툭 치고 지나가게 하고 싶었다.

누구든 이 악기 소리를 들으면, 분명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수만 년 전 창을 쥐고 초원을 누비며 긴장된 눈으로 사냥감을 기다렸던 조상들.

그들이 보았던 것이 떠오를 수도 있다.

‘순간 ‘탁’ 하고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말이야.’

수철은 이런 재미난 상상을 했다. 하지만 상상으로만 멈출 수철이 아니다.

타악기들을 모아서 멜로디가 있는 새로운 악기를 탄생시켰다.

타악기지만 음정이 있는 악기들이 있다. 실로폰이나 팀파니 같은 악기들이 그렇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각각의 부족이 두드리던 봉고 같은 타악기들도 각각 고유의 음정이 있다.

수철은 이들 타악기를 묶어서 하나의 악기를 만들었다.

피아노의 도미솔을 누르면 화음이 나듯이 타악기들을 조합해서 그런 화음을 만들었다. 낮은음의 타악기, 높은음의 타악기.

대충 수철의 설명을 들은 잭이 눈에 힘을 줬다.

“그래서 교집합이라고 한 거야? 소리의 교집합?”“그렇다고 할 수 있지. 결국 소리로 표현하는 거니까.”

그 얘기를 들은 마크와 존은 생각에 잠겼다. 서로 마주 보며 중얼거렸다.

“가장 오래된 서양 악기가 뭐지? 타악기 빼고.”“가장 오래된 동양 악기는? 한국 악기는 가장 오래된 게 뭐야?”

자신들도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싶은지, 수철의 말을 듣고 나서는 궁금증이 폭발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끔뻑이다가 다시 수철에게 눈을 돌렸다.

“나도 거기까지는 잘 몰라.”

수철은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마크가 몸을 내밀었다.

“오케이, 지금까지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교집합을 표현하려고 악기도 교집합을 만들어서 음악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돼.”

그 말에 수철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는 흥분한 톤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어떻게 이런 색깔의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만들 생각을 한 거야? 소리가 너무 유니크(Unique)하잖아?”

마크는 이 악기가 탄생한 배경이 궁금했다. 수철이 어떻게 딱 이런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 의도가 궁금했다. 하지만 수철은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이 악기를 만들 생각을 한 건 아냐. 처음엔 서양의 모태 악기와 동양의 모태 악기를 섞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결국은 타악기더라고. 인간은 태초에 무조건 두드렸잖아?”

“그렇지.”

드러머인 존이 제일 먼저 끄덕였다.

“그래서 각 부족의 타악기들을 눈여겨보게 됐는데, 그들 타악기에도 현악기처럼 음정이 있는 악기가 꽤 있더라고.”

“…….”

대꾸는 없었지만 모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철의 말에 동의했다. 수철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음정이 있더라도 나열된 선율로 만들 수는 없었어. 음정을 짜 맞추어 봐도 연결이 안 돼서, 음계를 만들 수는 없더라고. 그래서 소리를 묶어서 하나의 밀집 화음으로 만든 거야. 그래 봤자 달랑 3개지만. 하하.”

“하하.”

수철이 웃자 친구들로 따라 웃었다.

“무슨 과학자처럼 말하네?”

“그런가?”

마크는 수철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과학자 같다고 했다.

이때 기타를 치는 잭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뭐야?”

“무슨 생각?”

“이런 악기를 만들려고 한 생각.”“아까 말했잖아, 장난으로 시작한 거라고.”“장난으로 이렇게까지 만드는 사람이 어딨어?”

수철과 다르게 잭은 진지했다. 처음 이 악기를 들었을 때부터 잭은 수철을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수철은 잠시 잭을 바라보다가 눈높이를 맞췄다.

“연주자들 유명해지면 퓨전 앨범 한 장씩 하잖아? 크로스오버라고 하지?”

“응.”

잭은 수철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궁금해서 눈을 반짝였다.

“주로 동서양 악기의 소리를 섞어서 연주하고, 곡을 재해석해서 앨범을 발표하고 그러잖아?”“같은 악기 구성이 주는 식상한 틀을 깨고 싶은 거지.”“그래, 바로 그거야. 다시 말하면 소리의 폭을 넓히는 거잖아? 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섞이지 못했던 악기들을 한곳에 모아서 새롭게 연주해 보는 거지. 그렇게 되면 기존의 음악도 전혀 다르게 들리고, 또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

잭뿐만이 아니라 마크와 존도 수철의 얘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수철의 입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

“크로스오버라고 하면서 서로의 악기로 소통한다고 하는데, 정말 소통은 하는 걸까?”

“그게 무슨?”

잭이 미간에 힘을 주며 갸웃했다.

“지난 앨범들을 잘 생각해 봐.”

“……?”

“소리를 잘 들여다보면, 그냥 악기만 바꿔서 연주한 거 같지 않아? 소통이 아니라 악기만 바꾼 거 같지 않냐고. 우리도 지난번 연주 때 그러지 않았어?”

“……!”

모두 잠시 경직된 채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서 난 그럴 바엔 아예 처음부터 동서양의 악기가 섞어서 하나의 악기를 만드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면 크로스오버를 했니 안 했니 하는 얘기는 안 나올 거 아냐? 악기 자체가 크로스오버니까. 하하.”“하하. 그래, 그 말이 맞네!”“게다가 가장 오래된 동서양의 타악기를 한곳에 몰아넣은 거잖아, 재밌지 않아? 하하.”

“하하.”

수철은 재밌다며 껄껄댔다. 마크와 존도 수철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잭은 여전히 웃지 못했다. 수철이 잭에게 다시 시선을 맞췄다.

“잭, 뭐가 그리 심각해? 어차피 이 악기는 연주가 불가능해. 들어서 알겠지만, 배경으로 깔아서 분위기만 만든 거야.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시작한 거고. 설마 너한테 이 악기를 연주하라고 그럴까 봐 긴장하는 거야?”“하하! 수철, 넌 참…….”

그제야 잭도 긴장을 풀고 피식 웃었다. 수철이 만든 악기는 가상공간에 있는 것이기에 키보드로만 소리를 낼 수 있다.

“넌 정말 놀랍고 신기한 녀석이야.”

잭이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수철이 긴 서사의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너희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 마크 말대로 악기가 너무 유니크하니까 사람들이 이 악기에 귀가 쏠릴 거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연주로 이 음악을 중화시킬 건지 우려하는 거잖아.”

“그래.”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와 존과 달리 잭은 리듬보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 지금은 너희에게 들려주려고 이렇게 만든 거고. 믹싱하면서 밸런스를 잡을 거야.”

그제야 모두의 얼굴이 펴졌다. 존이 눈을 끔뻑이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 악기의 이름은 붙였어?”“맞아, 이 악기의 저작권은 네 거잖아?”“상표등록도 해야겠는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수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갖고 고개를 숙여 사전을 뒤적였다.

표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사전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말로 힘을 줘서 말했다.

“너희 ‘홍익인간’이라고 들어 봤어?”

당연히 들어 봤을 리가 없다.

“호깅니가?”

“홍― 익― 인― 간!”“호― 깅― 니― 가!”“됐고, 암튼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야.”

“……?”

“아무나 이 악기를 써도 된다는 말을 하는 거야.”

“……!”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라는 말까지 설명하는 건 포기했다. 그랬다간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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