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46화 (146/239)

#146화. 해피 뉴 이어, 누드 비치

믹싱을 마치고 돌아온 수철은 햄버거를 입에 물고 서둘러 이메일을 보냈다.

제시에게는 두 가지 버전을 보냈다.

보컬 멜로디 라인이 들어간 것과 없는 것.

연습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박 대표에게도 이메일을 보냈다.

음원을 보내면서 그동안 음악에 관해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간략하게 붙였다.

흩어져 있던 소리가 모여든다고 말한 것은 서로 다른 악기를 한곳에 모아서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였다고 짧게 설명했다.

돌아다니며 소리를 체험하고, 흩어져 있는 소리를 모을 계획이었지만 그건 시간적으로 부족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머지 자세한 얘기들은 생략했다. 박 대표가 음악을 들어 보면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말한 게 이런 음악이었어?

박 대표는 음악을 듣고 놀랐는지 밤늦게 전화를 해 왔다.

“들어 보셨어요?”

―그래, 이런 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와, 어떻게 이런 음악을!

박 대표는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면 감탄했다.

수철은 장난스레 물었다.

“쌤은 어떻게 상상하셨는데요?”―제시가 노래하니까 지난번 ABYSS 앨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줄 알았지. 물론 네가 비슷한 곡을 만들 리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겹치는 부분이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건 완전 다른 사람이 만든 거 같아. 제목은 교집합인데, 지난 앨범과 교집합이 전혀 없어.

박 대표가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제가 다를 거라고 했잖아요.”―아무리 다르게 한다고 해도 사람이 가진 특성이라는 게 있는데.

박 대표는 계속 고개를 젓고 있었다.

수철은 빙그레 웃다가 중요한 얘기부터 먼저 했다.

“마스터링은 쌤이 알아서 해 주세요.”

시드니에서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어 버전은 한국에서 하는 게 더 유리하다.

박 대표는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알았어, 우선은 내가 진행하고 만들어서 보낼 테니까 네가 들어 보고 수정하는 거로 하자.

“아니에요, 쌤이 알아서 다 해 주세요.”―내가?

“네.”

―괜찮겠어? 망쳤다고 원망 듣는 거 아냐?

“아니에요. 제가 이메일로 보낸 부분만 참고해서 해 주세요.”―알았어, 그렇게 할게.

박 대표는 알았다고 했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수철의 음악에 누가 될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실력 있는 마스터링 엔지니어를 아니까 그를 믿어 볼 생각이다.

“이제 이 차장님과 첫 번째 약속은 지킨 거죠?”―첫 번째 약속……? 아, 그래! 하하, 지킨 거 맞아.

박 대표는 잠시 멈칫하다 웃으며 대꾸했다.

수철은 제시의 앨범이 꼭 숙제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이 앨범을 마쳐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고, 또 이 차장이 말한 한국어 버전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악기 말이야.

박 대표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음 듣는 악기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쌤, 그 부분은 제가 이메일로 설명해 드릴게요. 쌤이 어떤 부분을 궁금해하는지 알거든요.

―그, 그래.

“죄송해요, 전화로 말씀드리면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요.”―죄송하긴. 그래, 알았어.

전화로 얘기하면 존, 마크, 잭처럼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질 게 뻔했다. 그렇다고 박 대표에게 대충 설명할 수도 없고.

박 대표에겐 죄송하지만, 이메일로 자세히 설명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진석이한테 얘기 듣기로는…….

박 대표는 앞으로 일정이 어떻고, 금별은 시기를 언제 잡을 예정이고, 가수는 어떤 가수를 뽑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등등의 얘기를 전했다. 흥행을 고려해 공개 오디션을 볼 수 있다는 얘기도 전했다.

수철은 박 대표에게 음악 외적인 부분은 알려 주지 않아도 되니까 다 알아서 해 달라고 했다.

―지낼 만해?

“네. 좋아요.”

―언제쯤 놀러 갈까?

“언제든지요.”

―하하, 녀석. 알았어. 또 전화할게.

박 대표는 가볍게 수철의 안부를 물은 후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제시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너무 파격적인데 괜찮으려나?

파격적인 걸 좋아하는 제시도 너무 파격적이라고 했다. 음악을 들을 사람을 걱정했다.

―좋긴 한데…….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야.

이 말은 제시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했던 말이다. 그래서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농담도 던졌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그랬다.

“넌 어떤데? 노래하기 불편해?”―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그 반대야. 들을수록 좋아져.

“그런데 뭘 걱정해?”―난 괜찮지만 오디언스(Audience) 말이야. 두 번 들으려 할까?

이 부분은 수철이 음악을 만들 때부터 고민했던 부분이다. 음악적인 표현의 영역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영역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춰야 했다.

대중들이 듣기 편하게, 접근하기 쉽게 하려면 몇 가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음악의 색깔이 흐릿해졌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수철은 표현과 이해의 경계선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것이 지금의 결과물이다.

최대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췄다고 해도 대중에겐 음악이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수철도 제시의 말처럼 오디언스들이 두 번은 듣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 번만 더 들으면 좋아질 테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거처럼.

수철은 제시의 분위기를 바꾸려 농담을 던졌다.

“자신감을 가져. 네가 음악을 잘 소화하면 사람들이 열광할 거야.”

수철은 은근슬쩍 가수가 잘하면 된다고 떠넘겼다. 장난이었지만 말뜻을 알아챈 제시가 웃으며 발끈했다.

―하하, 수철. 너 정말 이럴 거야? 나한테 그렇게 부담을 주고 싶어?

그 말에 수철도 같이 웃었다.

“하하, 쏘리.”

제시는 전화를 끊기 전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처음엔 낯설어도 느낌을 잡느라 계속 들었었는데, 지금은 하루라도 안 들으면 너무 허전해. 계속 생각나고. 완전 중독됐어.

읊조리듯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ABYSS 공연 중에도 그 느낌이 툭툭 튀어나와서 멤버들이 한 번씩 힐끗 쳐다본다니까? 하하!

“에구.”

수철은 웃지 못했다.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알기 때문이다.

수철은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하다 박 대표에게 한 번 더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까지 음악을 모니터링한 사람들의 반응과 멤버들의 반응을 알렸다. 한국에서 진행할 때 참고하라는 의미였다.

박 대표에게 바로 문자가 왔다.

―나도 처음엔 그랬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워. 블랙홀에 빠져드는 느낌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아니, 터질 거야.

흥행은 수철이 고민하는 부분이 아니다.

―전 괜찮은데 이 차장님이 어떨지 몰라서요. 앨범에 두 번 듣는 게 좋다고 적어 놓을 수도 없고.

―하하! 그것도 재미난 생각이다. 내가 이 차장에게 그렇게 하라고 할게.

―…….

―뭘 걱정해?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여!

박 대표는 든든한 동지다.

* * *

수철은 녹음을 마치고 제시가 올 때까지 남은 며칠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제시와 계속 소통하며 바로 녹음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를 마쳤고, 남는 시간에 또 다른 음악을 구상했다.

그렇다고 작업만 한 건 아니다.

차를 렌트해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경치가 예술이라는 1번 국도를 따라서 달리다가 숲이 우거진 곳에 숨어있는 호수도 발견했다. 동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호수였다. 뭔가 신비로운 물고기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수철은 그곳에 의자를 펼쳐 놓고 독서를 하는 여유도 즐겼다. 1박 2일 동안 자연에 푹 파묻혀서 운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는 영화를 관람했다. 나와서는 타운홀 앞에서 열일하는 산타할아버지를 팝콘을 먹으며 구경했다.

호주는 화창한 여름이지만, 습도가 낮아서 더위는 큰 문제가 안 됐다. 그늘 안에만 들어가면 시원했다. 하지만 산타할아버지는 힘들어 보였다. 그늘이 없었다.

해피 뉴 이어!!

드디어 새해가 시작됐다.

하버 브리지를 배경으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듣던 것보다 훨씬 장관이었다.

멋있었다.

수철은 말로만 듣던 하버 브리지에 모인 군중을 구경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시드니의 사람들이 전부 모인 듯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였다.

“텐! 나인! 에잇!”

10초를 남겨 놓고 그 많은 사람이 동시에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시가 되자 모두 해피 뉴 이어를 외쳤다.

여기저기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하버 브리지에서 보는 불꽃이 터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불꽃놀이라기보다 불꽃 잔치였다. 사방에서 솟아오른 현란한 불꽃들이 시드니 하늘을 뒤덮으며 한동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해를 축하했다.

수철이 검은 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옆에 있던 여자가 수철을 껴안으며 해피 뉴 이어를 외쳤다. 수철은 잠시 멈칫하다가 같이 해피 뉴 이어라고 해 줬다.

여기서는 다 그렇게 하는 거 같았다.

친구들은 마지막 날 모두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공연 후엔 파티가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파티에 와서 같이 놀자고 수철을 초대했다. 하지만 수철은 거절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 * *

“안녕, 수철. 보고 싶었어.”

드디어 제시가 나타났다.

그녀가 호주로 돌아왔다.

스튜디오 입구에서 팔을 활짝 벌리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수철은 호주 상륙 한 달 만에 제시를 만났다.

“이제야 주인공이 등장했네?”

어서 포옹하자고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제시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인사해, 수철. 내 친구야.”

포옹하고 나자 제시가 뒤에 서 있는 한 여자를 가리켰다. 제시는 친구라고 했지만 매니저였다.

그새 제시에게 매니저가 생겨 있었다. 단발머리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그녀는 제시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자유로운 걸음의 제시, 단정한 걸음걸이의 그녀.

제시가 모델이라면 그녀는 디자이너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계속 제시를 향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철은 멀찍이 떨어져서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다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앉자 제시는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얘기를 꺼내 놨다.

“처음엔 ‘이게 뭐지? 용수철이 또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한 거지?’ 그랬었거든. 자칫 욕도 튀어나올 뻔했고. 하하.”

“하하!”

제시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크게 웃었다.

수철도 그 말뜻을 알기에 따라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 완전 중독됐어. Intersection의 폐인이 된 거 같아. 어쩌면 우리의 교집합은 이미 사라져 버린 걸지도 몰라. 넌 너무 말짱하잖아?”

제시는 자신과 수철의 모습이 다르다며 비교했다.

제시다운 표현이었다.

“이 음악은 나에게 새로운 교집합을 요구하고 있어.”

“……?”

“지금 내 표정을 봐, 알코올이 필요한 거 같지 않아? 난 알코올과의 교집합이 필요하다고!”

“하하!”

수철은 한번 크게 웃고는 바로 표정을 바꿨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체크부터 해 보자.”

“흥.”

제시답지 않게 콧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수철은 잠시 엔지니어와 대화를 나눴다.

제시가 얼마나 노래를 익혔는지 체크해 볼 생각에 제시에게 적합한 마이크를 요청했다.

엔지니어가 마이크를 가지러 간 사이 제시가 주위의 시선을 살피더니 어깨를 붙이며 속삭였다.

“수철, 너 그거 알아?”

“뭘?”

수철은 악기 트랙이 띄워져 있는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나, 이 음악 들으면서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뛰어다녔다니까? 원시인처럼 말이야.”

“뭐?”

수철이 황당한 얼굴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제시는 말이 아직 안 끝났다며 수철을 잡아끌었다.

“이 음악이 그래, 듣고 있으면 아무것도 걸치기 싫어진다니까?”

말을 하고는 몸을 숙여 수철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속삭였다.

“너, 혹시 이거 의도한 거야?”

“뭐?”

수철은 한 번 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는 장난을 안 받아 줄 생각이다.

그러자 제시는 킥킥대며 스튜디오 창밖을 가리켰다.

“너, 저기 맨리 비치가 어떤 비치인지 알아?”

“……?”

다시 입술을 모아서 속삭였다.

“누드 비치야―”

그 말에 수철은 제시를 빤히 바라봤다. 제시도 같이 빤히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우리, 녹음 끝나고 저기 가서 수영할까?”

쿨럭.

수철은 갑자기 사레에 걸렸다.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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