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Party in Newcastle(1)
―연주 파티예요, 호주 최고의 뮤지션이 다 모이는.
연주 파티?
최고의 뮤지션?
―그 자리에 나랑 같이 참석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연주 파티를 말하는 거예요?”
수철은 이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여는 건데…….
호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모이는 파티라고 했다.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도시에 뮤지션들을 초대해서 그들만의 파티를 연다고 했다. 같이 연주도 하고 친분을 나누는 자리인데, 수철을 꼭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는 뉴캐슬(New Castle)에서 열려요. 시드니에서 가까운 도시예요, 두 시간 정도 걸리니까. 너무 멀면 얘기하기 어려울 텐데, 가까우니까 가자고 하는 거예요.
차로 두 시간이면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호주가 워낙 넓다 보니 두 시간이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로 보였다.
어쨌든 파티에 가서 같이 연주하고, 호주 최고의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으라는 얘기였다.
고마운 얘기지만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수철이 망설이자 이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수철은 앨범에 참여할 연주자를 모으고 있잖아요? 나는 이번 파티가 수철에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음.”
―호주 최고의 연주자들을 한 번에 다 만나 볼 수 있어요. 그들도 수철을 만나고 싶어 하고요.”
“네? 저를요?”
수철은 이언의 느닷없는 얘기에 눈에 힘을 줬다.
―아, 미안해요. 내가 말을 안 했군요? 사실 사람들에게 수철에 대해서 좀 설명을 했어요. 새로운 피아니스트가 참여할 수도 있다는 말에 궁금해해서요.
“저는 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수철은 순간 기분이 나빴다. 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하다니.
수철이 목소리에 힘을 주자 이언은 기가 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파티가 아니라서.”
“음…….”
―걱정 마세요, 다들 입이 무거운 사람들이니까요.
“…….”
수철이 대꾸 없이 가만히 있자, 이언은 황급하게 말을 붙였다.
―우리 만나서 얘기해요, 내가 수철의 동네로 갈게요.
* * *
“미안해요.”
이언은 만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그리고 수철을 설득하기 위해 파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소상히 설명했다. 설명을 마친 후 수철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난 확신해요, 수철이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걸요. 이번 앨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고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연주자들을 모으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기 위해서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언이 마음대로 결정한 것 같아서 처음엔 불편했지만, 이언의 계속되는 사과에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그리고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다. 호주 최고의 연주자라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같이 연주해야 하는 부분이 걸렸다.
피아노를 치긴 하지만 전문적인 연주자가 아니라서 매일 연습을 하지는 않는다.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매일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 본 지가 까마득한 옛날이다. 호주 최고의 뮤지션들과 같이 연주해야 한다는 말에 이 부분이 가장 먼저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다시 손가락 연습을 할 수도 없고.
지난번 이언과의 즉흥 연주처럼 휙 한번 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무게감이 다르다.
“파티가 언제예요?”
“3일 후요.”
“네? 3일 후요?”
연습할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하고, 작업 스케줄까지 차질이 생기게 생겼다.
“어려울까요?”
수철이 황당해하는 모습을 보며 이언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가사 작업을 같이하는 친구가 있어서 시간을 조율해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문제가 좀 있어요.”
“어떤?”
“저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서요. 전문 연주자도 아니고요.”
“뭐라고요?”
이언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하하!”
무슨 소리를 하냐며 크게 웃었다.
“내가 지난번에 들은 건 뭐죠?”
난색을 보였다.
“난 그날 수철의 연주에 진심으로 압도되었어요.”
어이가 없다며 수철을 바라봤다.
“…….”
수철은 할 말이 없었다. 딱히 답할 말도 생각이 안 났다.
이언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수철이 그렇게 얘기하면 나도 기타리스트라고 할 수가 없어요.”
이 한 방이 컸다. 수철은 손을 저었다.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에요. 피아노 연습한 지도 오래됐고, 연주 무대에 서 본 지도 오래돼서 우려한 거예요. 제가 같이 연주하면 실례가 될까 봐요.”
“…….”
이언은 대답 대신 수철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을 더 듣고 싶냐는 표정이었다. 수철도 잠시 이언과 마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가는 방향으로 시간을 맞춰 볼게요. 급작스러운 일이라 당황스럽긴 하지만요.”
결국 수철은 연주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언은 그제야 미소를 머금었다.
“좋은 선택 했어요. 어떤 시간이 될지 벌써 기대되네요.”
흐뭇한 얼굴로 수철을 바라봤다. 수철은 이언이 잠깐 밉상으로 보였다. 아주 잠깐.
“본다이 비치는 여전하네요.”
마음이 편안해진 이언은 그제야 바닷가를 휙 한번 둘러봤다.
“예전엔 참 자주 왔었는데.”
옛날 생각이 나는지 바닷가 한편에 있는 수영장을 바라봤다.
잠시 추억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서 테이블 위에 놓인 생과일주스를 쭉 빨아 마셨다.
시끌벅적.
이언의 등 뒤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해변가 도로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이언이 타고 온 차를 둘러싸서 구경하고 있었다.
* * *
3일 후.
부웅―!
이언과 마크는 오픈 스포츠카를 타고 함께 도로를 달렸다. 파티에 참석하러 뉴캐슬로 가는 길이다. 수철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수철은 혼자서 가겠다며 거절했다.
이언이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 갑자기 너스레를 떨었다.
“나 이번 일로 세션 잘릴 뻔했다니까?”
“하하, 진짜?”
마크가 이언의 말에 크게 웃었다.
이언이 말을 이었다.
“난 퉁 치려고 했었지.”
“퉁 쳐?”
“수철이 앨범에 날 세션으로 초대한 것과 내가 오늘 파티에 수철을 연주자로 초대한 것을 말이야.”“그게 어떻게 퉁 칠 수 있는 일이야? 서로 다른 건데?”“난 그렇게 생각했었지. 서로 비기는 거라고.”
이언은 말이 된다며 얘기하지만, 마크는 이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논리가 이해 안 됐다.
“그래서 수철이 뭐라고 했는데?”“그건 그거고, 세션비는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안 받으면 이번 앨범에 참여시킬 수 없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어. 너무 단호해서 좀 무섭더라고. 하하.”
이언은 마크를 보며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마크는 이언의 얘기를 듣다가 수철이 한 말이 떠올랐다.
수철은 이번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하는 모든 연주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거라고 했다.
실력을 존중한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이번 앨범의 세션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장르가 다양해서 요구 사항이 많아질 거라고 했다. 세션비를 두둑하게 책정한 이유였다.
마크는 이언이 개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마땅해하는 수철의 얼굴이 떠올랐다. 씁쓸한 미소로 물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뭐라고 하긴? 놀라서 ‘네, 네. 알았어요. 받을게요.’ 이렇게 했지. 하하.”
이언을 그때를 생각하며 껄껄 웃었다. 마크는 웃는 이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세션비는 받아야지. 일은 일인데.”“너도 수철과 같은 말을 하네?”
이언은 마크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난 작품을 같이하는 거지, 일한다고는 생각 안 해. 내가 수철의 작품이 마음에 드니까 기꺼이 참여하는 거고. 일이라고 하면 왠지 격이 떨어지는 기분이야.”
나름 이언의 철학이었다. 부유하니까 가능한 얘기였다. 마크는 같이 도로를 달리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졌다.
“수철은 뭐래?”
“뭘?”
“방금 한 얘기 말이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말 못 했지, 그 말까지 했다가는 진짜 잘릴 거 같더라고. 하하!”
“하하.”
이언은 그때의 상황이 재밌었다고 웃었고, 마크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언은 무슨 재밌는 생각을 하는지 운전하는 내내 혼자서 히죽거렸다.
뉴캐슬에 들어서고 파티하는 곳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수철이 나한테 했던 거처럼 그러면 안 되는데.”
“그게 무슨?”
“지난번처럼 연주하면 몇 명 쓰러질 수도 있어.”
“쓰러져?”
“놀라서 말이야. 나이 많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거든. 그들은 심장이 위험하지 않을까? 하하.”
“뭐? 하하.”
이언이 재밌다며 크게 웃자 마크도 황당한 얼굴로 따라 웃었다.
이언이 갑자기 웃음을 뚝 멈췄다.
“진심이야.”
“…….”
“그 사람들은 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모르잖아? 하하.”
이언은 다시 깔깔 웃었다.
자신이 그런 상황을 겪었다는 걸 재밌어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기대된다고 했다.
마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봤다.
* * *
수철은 이언이 자신의 차로 같이 가자는 걸 극구 거절했다. 잠깐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여행을 하고 싶어서다. 며칠 작업에 집중했더니 머리를 환기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재규어를 끌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지도를 펴 보니 뉴캐슬은 시드니와 같은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있었다. 길을 확인한 후 해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갔다. 그렇게 2시간을 좀 넘게 달리니 뉴캐슬이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수철은 도로 표지판을 확인하며 이언이 알려 준 곳으로 찾아갔다.
‘여기군.’
도착한 곳은 고풍스러운 호텔 지하에 있는 재즈 클럽이었다. 외관이 고풍스러운 게 오래된 클럽의 느낌이 났다.
끼익.
독특한 나무 문양이 새겨진 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스탭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입구에서 간단히 신분 확인을 했다. 오늘 파티는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하는 자리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넓었다. 가벼운 조명들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고, 파티여서 그런지 평소의 공연장과는 세팅이 매우 달랐다. 무대 정면으로 호텔식 뷔페가 마련되어 있었고, 한쪽엔 샴페인과 와인을 비롯한 각종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관객 없이 연주자들끼리 친분을 나누는 자리라서 조명도 특별하지 않고, 자리 세팅도 자유로웠다.
“헤이!”
수철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크가 수철을 발견하고는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수철도 같이 손을 흔들고는 곁으로 다가갔다.
“잘 찾아왔네?”
마크가 먼저 어깨를 툭 치며 빙긋 웃었다.
“오는 길이 복잡하지 않던데?”
수철은 대답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언이 보이지 않았다.
“이언은 저쪽에서 얘기하고 있어.”
마크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이언이 한쪽 구석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네?”“초대받은 사람만 오는 거니까. 그래도 한 30명쯤은 되는 거 같은데?”
마크는 주위를 둘러보며 대충 인원수를 세어 봤다. 마크는 오늘 이언의 초청으로 온 것이다. 수철은 연주자로서 초대된 거고.
물론 오늘은 관객도 연주자도 모두 뮤지션이다. 메인 공연을 하고 나면 누구나 무대에 올라가 같이 연주를 즐길 수 있다. 그것이 오늘 파티의 매력이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모두 호주의 쟁쟁한 연주자들이야.”
마크는 모인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이들 중 몇 명과는 같이 무대에 서 본 경험도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뮤지션들끼리 회포도 풀고,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거니까 연주도 하면서 마음껏 시간을 즐기자는 거지. 의미가 있어.”
마크는 오늘 자리에 초대받은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때 멀리서 이언이 손을 드는 게 보였다.
“수철!”
한참 사람들과 섞여서 인사를 나누던 이언이 수철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파티에 온 것을 환영해요!”
마치 자신이 파티의 호스트라도 되는 거처럼 환하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수철은 포옹하기는 그래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수철은 악수하고 나서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이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수철에게 쏠려 있었다. 수철이 이언과 함께 서 있자 슬금슬금 한두 명씩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언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베일에 싸인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는군요.”
수철이 처음 인사를 나눈 사람은 잘나가는 대학의 교수였다. 그는 처음 만난 수철을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영화에서나 보던 영국의 귀족
같은 이미지였다. 그는 자신과 같이 온 교수들도 수철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수철, 이분은…….”
운명의 연주자를 만나게 된 건 두 번째로 인사를 나눈 사람이었다. 수철은 이언에게서 그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입이 쩍 벌어졌다.
“네? 진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