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Party in Newcastle(3)
음악은 마치 꽃이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는 거처럼 움직였다. 각각의 악기로 그렇게 하나의 음악을 활짝 피고 지게 했다. 짧은 시간 동안 한 생명체의 삶을 표현하는 거 같았다.
윌리엄의 트럼본도, 빈센트의 바이올린도, 이언의 기타도 모두 그랬다. 마커스의 콘트라베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수철에겐 이들 중 마커스의 즉흥연주가 인상적이었다. 역시 수철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손끝엔 특별한 마법이 숨겨져 있는 거 같았다. 그루브의 마법이.
그는 한 번씩 날을 세웠던 사람들의 연주를 중화시켰다. 템포를 느리게 바꿔 바쁘게 손을 움직이던 사람들을 한 박자 쉬게 했다. 부드럽게 현을 문지르듯이 튕겨서 분위기를 평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재밌는 리듬을 만들어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다가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본격적으로 그루브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페드로가 물방울이 떨어져 튕기듯이 심벌을 두드렸다. 셔플 리듬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마커스는 거기 위에 올라타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리듬을 나눴다 합쳤다 하며 크게 도약해서 점프를 하기도 하고, 같은 리듬을 반복하며 몇 바퀴씩 빙글 돌기도 했다. 갖가지 리듬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자극하고 음악의 마력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리듬의 마술사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놀다가 마지막엔 드럼과 한 몸이 되어 끝을 냈다.
짝짝짝!
박수가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철의 차례가 되었다.
수철은 즉흥연주의 순서가 되자 멜로디를 읊조리며 가볍게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페드로가 다시 스윙 리듬으로 돌아왔다. 수철은 물 흐르듯이 그 리듬을 타며 멜로디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귀를 세우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수철의 소리를 들었다. 무대 위의 사람도 무대 밖의 사람도 모두 눈을 반짝였고, 머리를 숙인 채 멜로디를 음미했다.
짝짝짝!
첫 곡은 큰 무리 없이 지나갔다. 누구 한 명 튀는 사람도 없었고, 서로를 자극하는 사람도 없었다.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내달리는 걸 좋아하는 이언조차도 나서지 않았다. 수철도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춰 부드럽게 연주를 끝냈다.
첫 곡은 모두에게 몸풀기 정도의 곡이었다.
나서기보다 어울리며 화음을 만들어 내는 데 힘을 실었다. 자기를 소개하는 정도의 연주였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바로 다음 곡이 시작됐다.
다음 곡도 한 방에 맞아떨어졌다. 마치 수십 년간 같이 연주한 사람처럼.
하지만 같이 연주하는 건 처음인 곡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표정엔 변화가 없었고 음악은 금세 물 흐르듯이 같이 흘렀다.
즉흥연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아까보다는 좀 더 도전적으로 변했다. 조금씩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번씩 자극적인 멜로디를 던지며 도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난 수준이었다. 서로를 잘 알기에 빙그레 웃고 말았다.
두 번째 곡은 분위기를 좀 더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스타일이 다른 곡으로 손을 맞춰 보는 데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 몸풀기는 끝났다.
세 번째부터는 곡 선택부터가 달랐다. 서로 돌아가며 자신이 선호하는 곡을 선택하고, 악보를 돌렸다. 각자의 악기가 가장 두드러지는 곡들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앨범에 들어 있는 곡이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자신의 악기가 가진 매력과 연주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현란하게 손을 놀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무대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이 시간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갖은 탄성을 내며 음악에 적극 동참했다.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호흡하며 움직이다가 때로는 저돌적으로 덤벼들기도 했다. 악기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마커스는 콘트라베이스를 내려놓고 6현 일렉베이스를 잡았다. 수철에게 보여 주려고 그런 건지, 슬랩 베이스를 튕기며 젊은 시절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그루브(Groove)다.
그의 연주는 그루브 그 자체였다.
슬랩 베이스의 진수를 보여 주며 그루브의 최고점을 찍었다.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반항할 수가 없었다. 그의 리듬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마커스가 만들어 내는 리듬의 노예가 되어 몸을 들썩였다.
짝짝짝!
마커스의 연주에선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모두의 곡이 끝나고 수철의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수철은 준비된 악보가 없었다. 악보는 금방 그려서 줄 수 있지만, 자작곡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레전드 재즈 피아니스트인 빌 에반스(Bill Evans)의 곡을 선택했다. 모두가 다 아는 ‘Waltz For Debby’를 선택하고 차분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수철은 서정적인 왈츠 멜로디를 들려주다가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열기를 끌어올렸다가 다시 우아한 감성의 멜로디로 분위기를 바꿨다. 그러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한 번 더 분위기를 바꿨다.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연주에 수철을 한 번씩 쳐다봤다. 빌 에반스도 그렇게 분위기를 계속 도약시킨 적은 없었다.
수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서정적인 왈츠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감성을 이끌었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멜로디의 감성에 동조하며 얼굴에 느낌을 드러냈다. 수철의 연주에 맞춰 다양한 표정의 변화와 감탄사를 섞었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도 수철의 연주를 느끼고 있었다. 기대했던 수철의 연주가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으며 수철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마커스는 이언과 눈을 맞추며 끄덕였다. 이언의 말대로 놀라운 연주자라는 뜻이었다. 무대 밖의 사람들도 모두 같은 느낌이었다. 찬사를 보내기에 급급할 정도의 훌륭한 연주였다.
짝짝짝!
수철의 연주가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쳤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수철을 향해 엄지를 세웠다. 하지만 수철은 아직 제대로 놀랄 만한 연주를 보여주진 않았다.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지만 그건 가볍게 분위기를 조절한 것뿐이었다.
원 앤, 투 앤, 쓰리!
드디어 마지막 곡이자 문제의 8번째 곡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곡은 모두가 처음 접하는 곡이었다. 오늘 파티를 주선한 연주자가 새로운 곡을 만들어 와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시간이다.
수철은 몰랐지만, 이것이 연주 파티의 관례라고 했다. 항상 마지막 곡은 이런 방식으로 한다고 했다. 긴장감을 잔뜩 고조시키고, 남은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서 연주를 펼치고는 그 음악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술잔을 부딪친다고 했다.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마지막 곡은 뉴캐슬에 살고 있는 빈센트의 곡이었다.
그는 연주 전에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 모두에게 돌렸다. 마치 꼭꼭 숨겨 놨던 미지의 곡을 꺼내듯이, 개봉된 적이 없는 악보를 돌렸다.
수철은 빈센트가 주는 악보를 휙 한번 훑어봤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악보는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의 선율이 메인 멜로디로 잡혀 있었다.
재밌는 건 마지막 곡은 시간의 제한이 없다. 계속 돌아가며 음악을 빌드업해 나간다. 서로의 느낌을 발전해 나간다. 주거니 받거니 교감하며 즉흥적으로 음악의 색깔을 변화시켜 나간다. 계속해서 완성도를 쌓아 나가다가 모두가 합의해야 연주가 끝이 난다. 이것이 마지막 곡의 룰이었다.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나자 각자 느낌을 살려서 즉흥적으로 곡을 해석해 나갔다. 멜로디를 치며 순식간에 곡의 느낌을 파악하고,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해석해서 연주를 만들어 나갔다.
실전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
‘이것이 즉흥연주다.’ 그런 느낌이었다. 연주자들은 처음 접해 본 음악을 자신의 악기로 표현해 나갔다. 그렇게 모두 한 바퀴를 돌았다. 첫 바퀴는 곡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이제 빌드업해서 두 번째 바퀴가 시작됐다.
앞선 수철의 연주에서 사람들은 감탄하고 혀를 내둘렀지만 경악하거나 마법에 홀린 듯한 정도는 아니었다. 수철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절정을 제대로 맛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실력이 제법 뛰어난 피아니스트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곡의 두 번째 바퀴부터는 달랐다. 수철의 연주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땅, 따단! 딴!
수철은 이 곡이 흥미로웠다. 음악에 공백을 만들어 놓은 게 신기했다. 크레파스를 던져 주고 아무나 들어와서 색칠하면, 그다음 사람이 그 칠을 연결해서 모양을 만들고, 다음 사람들이 각자의 크레파스로 형체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았다. 바퀴 수가 쌓여갈수록 음악은 처음 의도와 달리 새로운 곡으로 형체가 잡히면서 구체화되고 있었다.
‘이래서 마지막 곡을 이렇게 한 거군.’
수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웠다. 수철은 새롭게 구체화되는 곡에 입체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좀 더 음악이 생기 있게 꿈틀대도록 만들었다. 살아서 숨 쉬며 활력적으로 활보할 수 있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수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순간 모두의 눈빛이 바뀌었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철은 계속해서 음악에 옷을 입혀 나갔다. 사람들이 연주하면 바로 입체감을 더해서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 음악이 어떤 음악이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게 선명한 색깔을 입혔다.
클럽 안은 악기 소리를 빼고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눈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연주자들은 혹시라도 이 리듬을 깨뜨리는 건 아닐까 잔뜩 긴장해 악기를 노려봤다. 몇몇은 눈빛을 세우며 수철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초집중하고 있었다. 무대 아래서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손을 꽉 쥔 채 수철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몸을 움찔움찔했다.
‘이거였군.’
흔들림 없이 여유롭게 연주하던 윌리엄의 표정도 바뀌었다. 가장 나이 많고 연륜 많은 그의 입이 점점 벌어지더니 다시 다물지 못했다. 침이 마르는지 중간중간 물로 입술을 적셨다. 트럼펫에 입을 대고 최대한 호흡을 불어 넣어 최고의 소리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마커스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바뀔 거 같지 않은 그의 표정도 바뀌어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엄지 한번 치켜세우고 마는 그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놀라워, 정말 놀라워!’
아예 몸을 틀어서 수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수철을 따라가려고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 * *
“우린 분위기를 바꿔서 보사노바로 시작해 볼까요?”
메인 무대가 끝나자 구경하던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제 자유롭게 누구나 올라와서 연주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연주 파티의 묘미다.
“이번 곡은…….”
무대에 오른 사람들도 돌아가며 음악을 선택하고, 즉흥연주의 묘미를 뽐냈다.
마크도 무대에 올라 있었다. 잠시 긴장한 듯하더니 이내 팀에 스며들어 같이 연주를 즐겼다.
* * *
연주를 끝내고 내려온 연주자들은 잠시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선은 무대에 두고 있지만, 에너지를 다 써 버려서 배터리가 방전된 모습이었다.
같이 연주한 마지막 한 곡, 20여 분의 연주에서 호주 최고의 연주자들은 탈진했다. 얼굴도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20분 전을 복기하고 있었다.
수철은 모든 걸 빨아들였다. 처음 7곡은 맞춰 주고 존중해 주는 방식이었다면 마지막 곡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 버렸다. 갈수록 더했다. 모두 수철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수철의 연주에 정신없이 끌려다녔다. 놀랄 틈도 없었다. 채찍질에 펄쩍 뛰는 말처럼 뛰었다. 창피하고 부끄럽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거부하기 힘든 흐름에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까지 빠르게 심장이 뛴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두가 그랬다.
마지막 10분은 어떻게 연주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났다.
왜 그렇게 흘러간 거지?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 찼다. 듬성듬성 몇 개의 멜로디만 떠올랐다. 수철이 영혼까지 다 가져가 버린 느낌이었다.
‘훗.’
수철은 마지막 연주에서 쾌감을 느꼈다. 이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연주자들과는 달랐다. 듣던 대로 최고의 연주자들이었다.
그래서 미안한 얘기지만 수철은 이들의 한계를 보고 싶었다. 그들의 내면에 잠든 멜로디를 끌어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조금씩 앞서 나가며 조심히 이끌었다.
그렇게 연주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끌려가면서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그러니 배터리가 방전될 수밖에.
수철은 조심스레 이끌었지만, 윌리엄과 마커스는 의도를 눈치챘다. 엄청난 내공을 가졌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둘은 중간중간 수철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도 정신없이 수철의 연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수철의 시험에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군.’
마커스는 연주의 복기를 끝내고 피식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리번거렸다.
* * *
‘아직도 많이 남았네?’
수철은 접시를 들고 뷔페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아직 많이 남아 있는 훈제 연어를 보니 미소가 생겼다.
“수철―!”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불렀다. 마커스였다.
수철은 훈제 연어를 접시에 담다가 돌아봤다.
“네, 마커스.”
수철은 대답하며 자신이 담아 놓은 접시를 내밀었다.
“연어 좀 드시겠어요? 맛이 일품이에요.”
마커스는 빙그레 웃고는 옆의 접시를 집어 들었다.
“난 연어보다 홍합구이를 먹을게요. 버터 발라서 그런지 맛이 좋더라고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보였다.
“저쪽으로 가서 먹을까요?”
접시에 잔뜩 홍합구이를 담은 마커스는 수철을 빈 테이블로 이끌었다.
마커스는 홍합 알맹이를 몇 개 입에 집어넣고 우물우물 삼키고는 입을 뗐다.
“한 20년쯤 된 거 같아요.”
“네?”
수철은 뜻 모를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의아한 눈으로 마커스를 바라봤다.
“이렇게 진땀을 흘린 거 말이에요. 마일스와의 연주 이후로는 처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