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Party in Newcastle(4)
그렇게 긴장한 건 마일스 데이비스와 연주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에 땀방울을 닦는 시늉을 했다.
수철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지는 그를 보며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당황스러웠다.
“제가 너무 지나쳤나 봐요.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철은 마커스에게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수철의 표정과 다르게 마커스는 눈이 점점 커지더니 껄껄 웃었다.
“하하!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고요? 그럼 더 할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요? 지금보다 더? 하하, 수철은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사람인가요?”
마커스는 웃음을 섞어서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날 속일 수는 없어요.”
“……?”
“난 수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요. 수철과 연주하는 내내 마일스와 연주할 때가 계속 떠올랐어요. 수철은 그런 사람이에요. 마일스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마커스는 확신에 찬 눈으로 수철을 봤다. 수철도 잠시 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일스 같다는 말은 극찬이다. 하지만 그 말에 반응할 여유는 없었다.
수철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마커스의 시선 때문에.
“…….”
“…….”
잠깐 둘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수철이 먼저 눈에 힘을 풀고 몸을 세웠다.
“저는 연주가 즐거웠는데, 마커스는 생각이 많으셨나 봐요.”
“……!”
평소의 수철 같지 않은 당돌한 말이었다. 하지만 수철은 마커스와는 왠지 어설픈 겸손 같은 건 떨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포장한다고 해서 모를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해야 마커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느낌이 그랬다.
반면 마커스는 수철의 말에 한 방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특유의 미소를 보였다.
“하하! 수철, 아니에요. 나도 즐거웠어요. 너무 즐거워서 그렇게 얘기한 거예요. 이해하죠?”
마커스는 주먹을 쥐어 내밀었다.
“네, 알아요.”
수철도 주먹을 쥐어 부딪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수철도 마커스의 연주에 대해 느낀 점을 꺼냈다. 마커스가 수철에 관해 얘기했으니 그렇게 하는 게 예의였다.
“마커스의 베이스 연주는 정말 최고였어요. 같이 연주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마일스 아저씨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 거 같았어요. 감사해요.”
수철은 같이 연주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로 마음을 표했다. 진심이었다. 잠시나마 마일스와 같이 있는 듯한 기분도 느꼈었다. 마일스가 무대에 있었으면 어떤 말을 했을까 하는 상상도 했었다.
마커스는 대답 대신 한쪽 팔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칭찬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었다. 수철도 얼른 허리를 숙였다. 같이 경의를 표했다.
마커스가 다시 허리를 펴고 입을 열었다.
“난 빌의 피아노를 참 좋아해요. 그가 만들어 내는 선율은 언제나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죠. 아무도 그를 부정할 순 없어요.”
머릿속에 빌 에반스가 떠오르는지 잠시 눈빛이 깊어졌다.
“더는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랜만에 그런 피아니스트를 만나서 기뻤어요. 감회도 새롭고요.”
수철이 마일스를 거론하며 마커스를 칭찬하자 마커스도 빌 에반스의 얘기를 꺼내며 수철의 칭찬에 화답했다.
수철은 오늘 연주 중에 빌 에반스의 색채를 많이 실었다. 마커스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같이 연주한 경험이 있기에 그랬다.
빌 에반스와 마일스 데이비스는 매우 친했다. 같이 팀을 하기도 했지만, 서로 깊이 존경하는 사이였다. 마커스는 마일스와 나이 차가 많지만 빌과 마일스는 비슷한 또래였다.
“아까 마지막 곡에서 마커스의 연주를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수철은 빌 에반스의 얘기를 듣다 보니 마지막 곡의 연주가 생각났다.
마커스는 수철이 무슨 말을 할지 귀를 기울였다. 내심 수철의 평가가 궁금했다.
“세 번째 즉흥연주에서 앞의 8마디를 펑크(funk)로 바꾸어 갈 때, 현을 누르며 끌어내는 강한 소리가 가장 흑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장 박동을 바꿀 정도로요.”
“……!”
그 말에 마커스는 화들짝 놀랐다. 경직된 얼굴로 수철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
수철은 마커스의 표정에 놀라서 같이 바라봤다.
“어떻게 그런!”
마커스는 수철을 빤히 보다가 팔을 한번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마일스가 나에게 똑같이 했던 말이에요, 심장 박동을 바꿀 정도로 현을 두드리는 탄성이 높아서 가장 흑인적인 소리로 들린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같은 말을…….”
마커스는 다시 한번 수철의 말을 되뇌었다. 믿기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철은 마일스가 자신과 같은 말을 했었다는 게 신기했다. 생각해 보니 그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 거 같았다.
“마커스,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돼요?”
수철은 기회를 엿보다 하루 종일 궁금했던 말을 꺼냈다.
“뭔데요?”
“마일스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마커스가 기억하는 마일스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요. 잊지 못할 추억 같은 게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그 말에 마커스는 빙그레 웃었다. 당연히 그걸 물어볼 걸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천천히 입을 뗐다.
“내가 인사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마일스 데이비스는 어떤 사람이었어요?’라는 질문이에요. 하하!”
그 말에 수철은 괜히 멋쩍어졌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당연한 거니까요. 나라도 그렇게 물었을 거예요.”
마커스는 다시 아저씨 같은 미소를 보였다.
마커스는 방송에 출연할 때도,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도 항상 마일스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자신의 얘기를 했다고 했다.
“마일스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 한마디에 모든 답이 담겨 있었다. 수철은 마커스의 성품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마일스가 아꼈을 것이다.
“마일스와 난 서른 살이 넘게 차이가 나요. 내가 26살이었을 때 마일스는 60살이 다 되었죠. 하지만 음악은 그 반대였어요. 마일스는 항상 열정이 넘쳤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들어 냈죠. 젊은 내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마일스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혀를 찼다.
“식상한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늘 새로운 시도를 했죠. 갖가지 장르와 소통하다가 나중엔 힙합까지 끌어들이더라고요.”
마커스는 아직도 믿기 힘든 얘기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정확히는 1981년이었어요. 내가 23살이 되던 해에 마일스의 앨범 녹음에 참여했죠. 투어 활동도 같이했고요. 그때는 마일스를 아버지처럼 따랐었죠.”
마커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일스를 추억했다.
“그 후로 5년 동안 같이 공연하고 영화음악도 함께하고 그랬어요. 아까 잊지 못할 추억이 있냐고 물었죠? 당연히 있죠. 너무 많아서 뭘 얘기해야 수철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영화음악 Siesta예요. 거기서 마일스와 난 환상적인 연주를 함께했었죠. 그땐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어요.”
마커스는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어 들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난 아직도 그때가 많이 그리워요. 마일스가 많이 보고 싶고요. 아버지보다 더 존경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잠시 마일스를 추억하다가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얼굴을 내밀어 수철과 눈을 마주쳤다.
“난 수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네? 그게 무슨?”
“우린 마일스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요. 수철과 함께 연주하면서 그 생각이 더 명확해졌죠.”
“……!”
그는 마치 지금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마일스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Always look ahead, but never look back.
마일스 데이비스가 한 말이었다.
앞만 보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마커스가 추억하는 마일스는 딱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수철에게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 * *
“제 앨범에 참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철은 이번에 같이 연주한 모두를 앨범 ‘SUNSET’의 세션으로 초대했다. 드럼은 이미 루카스가 있지만 락을 제외한 다른 몇 곡은 페드로가 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죠. 꼭 참여할게요.”
“저도요.”
수철에게서 앨범에 관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몇 명은 일찌감치 영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직도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수철은 사람들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하자 미소가 번졌다. 설명이 필요 없는 연주자들이다. 음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가 없다. 앨범에서 어떤 사운드가 펼쳐질지 벌써 기대됐다.
수철은 마커스가 걱정됐다. 너무 멀리 살기 때문이다. 비행기로만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다.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시드니에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그는 쿨하게 상관없다고 했다. 시드니에 친구들이 많아서 이번 기회에 그들과 어울리면 된다고 했다.
“수철의 앨범인데 당연히 참여해야죠.”
감동적인 말도 덧붙였다.
수철은 마커스가 시드니로 오면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마커스는 좋다고 기뻐했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호주의 멋진 동물들에 관해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휴대폰에 있는 동물들의 사진을 보여 주며, 좋아하게 될 거니 기대하라고 했다.
수철은 마커스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모두 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친구가 많아서 숙박은 걱정 안 해도 되고, 어차피 갈 계획이었기에 항공료도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수철은 그럴 수 없다며 몇 번 더 얘기했지만 마커스는 극구 거절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세션비만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수철은 아무래도 세션비를 좀 더 높여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커스뿐만이 아니라 이언을 제외하고는 다들 멀리 살기 때문이다.
박 대표와 상의해서 이미 세션비를 정했지만, 수철은 사비로 더 얹어서 지급할 생각을 했다.
* * *
“벌써 가려고요?”
수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만큼 뉴캐슬에 하루 더 머물 거라고 했다. 이언과 마크도 일찌감치 그럴 작정을 하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수철은 그럴 수 없었다. 앤디와 약속이 있다. 마무리할 가사가 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철.”
사람들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수철을 바라봤다. 이제 막 친구가 되었는데 벌써 떠난다니, 아쉬웠다.
몇몇은 달랑 와서 연주만 하고 가냐는 표정이었다. 우릴 놀라게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였냐는 얼굴이었다.
“시간 내기가 어렵겠어요?”
윌리엄과 마커스는 다시 한번 물었다. 하지만 수철은 그럴 수 없었다.
“죄송해요. 대신 시드니에서 제가 모두 대접할게요. 녹음 끝나고 나서요. 오늘은 정말 죄송해요.”
수철은 3주 후에 녹음하고 나서 좋은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못내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수철과 이별했다.
수철은 아쉬워하는 사람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돌아섰다.
“나랑 내일 아침에 같이 출발하면 좋겠는데.”“그래요, 수철. 호텔은 내가 금방 잡을게요.”
마크와 이언이 배웅하겠다며 밖에까지 따라 나왔다. 둘은 먼저 떠나는 수철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수철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마크, 이언, 좋은 시간 보내고 와요. 난 앤디와 약속을 더 미룰 수가 없어요.”
수철은 돌아서 차로 향했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 * *
“칵테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어서 주문해요. 내가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어 줄게요. 이래 봬도 내가 학창 시절에 바에서 알바한 경험이 꽤 있어요. 한때는 잘나가는 바텐더였다고요. 하하.”
“하하.”
윌리엄이 칵테일을 만드는 쉐이커에 얼음을 담고 흔들었다. 사람들은 재밌다며 웃었다.
“저는 마가리타 한 잔 주문할게요.”“저는 테킬라 썬라이즈요.”
사람들이 테킬라 베이스의 칵테일을 주문하자, 윌리엄은 쉐이커의 뚜껑을 열어 테킬라를 부었다. 그리고 라임주스와 레몬주스를 같이 들이부었다. 뚜껑을 닫고 쉑쉑 소리를 내며 흔들었다. 그 모습이 제법 바텐더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술을 놓고 큰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친분을 다졌다. 그러다 수철과 같이 연주한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곡을 만들어 온 빈센트였다.
“이렇게까지 깊은 연주를 하게 될지는 몰랐어요. 아까는 입이 다 타들어 가는 거 같더라고요.”
빈센트는 평소 느껴보지 못한 연주의 향연에 입이 타들어 가고 침이 다 말랐다며 손으로 자신의 마른 입술을 찍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이 놀자고 속삭여 놓고, 막상 놀기 시작하니까 정신없이 끌고 가더라고요. 드럼 치면서 이렇게 바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
페드로는 이제서야 재밌었다며 웃었다. 자신이 드러머인데도 수철에게 끌려가다가 마지막엔 그냥 맡겨 놔 버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턱을 괴고 사람들의 얘기를 듣던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 베네치아 갔던 거 기억해요?”
윌리엄이 느닷없이 이탈리아 공연 갔다가 베네치아 구경 갔던 얘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윌리엄이 무슨 말을 할까 멀뚱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