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63화 (163/239)

#163화. 6인 6색

“그럼 시작해 볼까요?”

“네.”

수철이 소파에서 일어서자 엔지니어가 따라서 일어났다.

하루는 파티를 열고, 하루는 마커스랑 시간을 보내느라 수철은 이틀 만에 다시 스튜디오로 왔다.

“트랙 정리를 먼저 할게요.”

악기 녹음 때 받아 놓은 트랙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반주 트랙으로 만들어서 보컬들에게 보내 주기 위해서다. 그래야 최종 반주에 맞춰 연습을 할 수 있다.

“제가 사용할 트랙을 먼저 선정할게요. 나머지는 바로 날려 주세요.”

“네.”

수철은 녹음한 소스를 확인하며 반주에 사용할 트랙을 선택했다. 엔지니어는 수철의 요청에 맞춰 악기당 하나의 트랙으로 만들었다.

“네, 이렇게 하면 될 거 같아요.”

악기를 녹음할 때 머릿속에 미리 가이드라인을 잡아 놓았었다.

덕분에 트랙 정리는 빨리 끝났다.

“악기들 볼륨 조절 좀 해 주시겠어요? 보컬들이 노래 연습하기 편하게요.”

“네, 알겠어요.”

엔지니어는 수철의 요청에 맞춰 악기들 간의 밸런스를 조절했다. 헤드폰을 쓰고 소리에 집중하며 보컬들이 편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반주를 만들었다. 수철은 잠시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 정도면 된 거 같아요.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엔지니어가 헤드폰을 내려놓고 수철을 봤다. 아직 믹싱을 하기 전이라 완벽하게 밸런스를 맞출 수는 없지만, 보컬들이 노래할 수 있을 정도는 맞췄다는 뜻이었다. 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모든 악기 다 켜고 한번 들어 볼게요.”

“네.”

엔지니어는 뮤트(mute)되어 있던 악기 트랙을 다 켜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수철이 헤드폰을 썼다. 수철은 악기들의 밸런스에 신경 쓰며 전체적으로 튀거나 묻히는 부분이 없는지 체크했다.

“잘 잡으셨네요.”

수철은 헤드폰을 벗으며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엔지니어는 소리를 잘 잡아 놓았다. 수철은 헤드폰을 내려놓고 엔지니어에게 어깨를 붙였다.

“지난번에 제가 가져온 멜로디 트랙 있죠?”“오보에로 하신 거요?”

“네, 맞아요.”

엔지니어는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서 수철이 말한 트랙을 찾아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반주 트랙에 그걸 얹어서 멜로디 라인이 들어간 것과 없는 것.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주세요.”

“네, 알겠어요.”

엔지니어는 요청에 맞춰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다시 한번 들어 볼까요?”

“네.”

수철은 마지막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6명의 보컬들에게 반주를 보냈다.

* * *

“수철, 이렇게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보컬 녹음을 앞두고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전국 곳곳에서 시드니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철과 다시 만난 것을 기뻐했다.

“와― 수철!”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거처럼 뛰어와서 얼싸안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꽉 껴안아서 수철이 숨이 막힐 정도였다. 지나친 액션에 다소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환영받는 기분이 들어 기뻤다.

“멀리까지 와 주셔서 감사해요.”

수철은 다시 만난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반가움을 표했다. 각각의 개성을 가진 6명의 보컬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모습을 보는 수철은 앞으로 녹음 일정이 기대됐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이게 꿈이 아니라니!”

몇몇 사람은 수철의 앨범에 보컬로 참여하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최고의 음악가들이 세션으로 참여한 앨범이라니. 더더욱 현실 같지가 않다고 했다.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너스레를 떠는 것을 잠시 지켜봤다.

* * *

“방은 1인 1실을 사용하시면 돼요.”

숙소는 앤디가 일하는 호텔로 잡았다. 금별에서 편하게 사용하라는 배려가 있었다.

녹음실로 이동하는 차량도 호텔에서 제공했고, 운전도 앤디가 손수 하겠다고 나섰다.

녹음 시간은 3일로 잡았다. 대부분 녹음 경험이 많지 않기에 넉넉하게 잡은 것이다.

“3일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사용하고요?”

엔지니어가 놀란 눈을 하고 다시 한번 스케줄을 확인했다. 지난번 제시는 반나절 만에 모든 녹음을 끝냈기 때문이다.

“보컬이 여섯 명이니까 하루에 끝내는 건 불가능하고요, 이틀도 어려울 거 같아요. 그래서 넉넉하게 3일을 잡는 거예요.”

수철은 3일의 시간을 잡았지만, 이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보컬 녹음은 예측할 수 없다. 보컬들 한 명 한 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다. 그래서 수철은 이들을 디렉팅하는 게 흥미로우면서도 벌어질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에 우려됐다.

“네, 그럼 일정 조절했습니다.”“감사합니다. 추가된 사용료는 미리 계산할게요.”

덕분에 제작비가 늘어났다.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의 지출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섯 명의 보컬이 이 공간 안에서 녹음한다는 것이 더 익사이팅하게 느껴졌다.

“보컬 트랙을 가져오시는 분은 없으신 거죠?”“네, 여섯 명 모두 여기서 노래하실 거예요.”

사실 수철은 이번 앨범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고 했었다. 반주는 현대적인 깔끔한 사운드로 녹음하고, 노래는 옛날 가수가 부르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다. 보컬 트랙엔 오래된 LP판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담고 싶었다.

옛날 가수가 현대의 사운드에 맞춰서 노래하는.

아니면 현대의 연주자가 옛날 가수를 소환해서 반주하거나.

그렇게 동떨어진 시간을 한데 어우러지게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감상하는 느낌이 들게 하면 그만큼 음악을 듣고 연상하는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그래서 6명의 보컬이 각자의 방식으로 녹음해서 보내오면, 수철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연출하며 믹싱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수철의 예상을 깨고 6명 모두가 시드니로 와 버렸다. 시도도 하기 전에 수철의 생각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난감한 상황이다.

엔지니어는 수철과 달리 표정이 밝아졌다.

“오히려 반대로 하는 게 좋지 않나요? 연주는 올드하더라도 보컬은 현대적으로요. 과거의 영광을 좇는 것보단 새로운 전설을 만드는 게 멋지잖아요?”

엔지니어는 수철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했었다. 예상할 수 없는 보컬들의 녹음 트랙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물론 엔지니어가 반박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의 의견일 뿐, 선택은 수철이 하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보컬이 과거에서 소환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더 입체적일 거 같아요.”

“…….”

엔지니어는 수철의 단호함에 아무 대꾸를 못 했었다.

그랬던 그가 6명 보컬 모두 시드니로 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뻐할 수밖에.

‘예스!’

엔지니어는 이제 큰 시름을 덜었다.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철이 아니다. 여기서 녹음한다고 해도 각자의 개성을 끄집어내며 최대한 올드한 사운드를 잡아 볼 계획을 세웠다.

“마이크는 이 마이크로 세팅해 주세요.”

수철이 출력해 온 사진을 내밀었다.

“……50년대 카본마이크요?”

엔지니어의 눈이 동그래졌다. 옛날 흑백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마이크였다. 안경을 고쳐 쓰더니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했다. 수철과 사진을 번갈아 봤다.

“이 정도면 전화기 소리가 날 텐데요?”“네, 바라던 바예요.”“어……. 일단 찾아는 볼게요.”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는 엔지니어와 달리 수철은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 * *

호텔에 도착해서 여정을 푼 보컬들은 쉬지도 않고 미리 잡아 놓은 각각의 연습실로 향했다.

“잠깐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이들은 수철이 연습실에 방문해서 자신의 노래를 모니터링해 주길 기대했다.

“음…….”

수철은 잠시 망설였다. 어차피 녹음실에서 할 예정이었다. 녹음실에서 모니터링을 하는 게 연습실에서 하는 거보다 당연히 더 정확하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더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게 보컬들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수철은 이들이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망설였다.

이유는 불안함 때문이다.

녹음을 잘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그보다는 녹음이 주는 무게감이 크다. 그 무게감에 대한 긴장을 풀고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오직 연습뿐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연습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틀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연습은 가볍게 발성을 푸는 정도로만 하고, 휴식하며 에너지를 비축하는 게 좋다. 그런데 이들은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연습에 몰두했다.

끼이익. 쿵!

수철이 연습실에 들어서자 두꺼운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보컬들은 수철이 보내 준 반주를 틀어 놓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수철이 들어서자 순간 경직됐다. 마치 선생님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연습 잘돼요?”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이들은 생각대로 노래가 잘되지 않는지 대답 대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수철은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필요한 건 모니터링이 아니라 긴장된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걸.

* * *

“편하게 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드세요. 참고로 오늘은 A코스가 좋대요. 지배인의 팁이에요.”

수철은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저녁 식사에 모두를 초대했다. 원래 저녁은 호텔에서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 줄 겸 수철이 따로 자리를 만든 것이다.

“녹음은 처음이라서요.”“전 앨범을 낸 경험은 있지만 그래도 긴장되네요.”“저도 그래요. 최고 세션맨들의 연주에, 최고의 녹음실에서 노래할 생각을 하니 긴장을 떨쳐 낼 수가 없어요.”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와인을 한잔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내를 털어놨다. 모두 각각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수철은 이런 상황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는 모두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이들이 녹음을 앞두고 긴장하다니, 수철은 녹음보다 우선 이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게 관건이었다. 녹음이 순탄하게 끝나려면.

“내일은 연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너지를 아꼈다가 녹음실에서 써야죠.”

그 말에 모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긴장하면 몸이 굳으니까 스트레칭하며 이완하시길 권해요. 발성은 평소 루틴대로 가볍게만 하시고요. 남은 시간은 산책하거나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겠어요.”

수철은 앨범의 디렉터답게 무게감을 실어서 말을 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사람들은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수철의 말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아까 연습실에서 잠시 노래를 들어 봤을 때…….”

연습실에 들러서 사람들의 노래를 모니터링했을 때 수철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철이 처음 예상했던 거보다 보이스 컬러나 테크닉이 조금씩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호흡도 더 탄탄해지고, 소리도 안정되어서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크게 발전됐다고 느끼겠지만 수철에겐 그렇지 않았다.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수철이 기대한 건 발전하기 전의, 이들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소리였다. 그래서 수철은 지나친 연습 덕분에 변질된 이들의 소리가 크게 우려됐다.

녹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저는 처음 여러분을 봤을 때를 잊지 못해요. 여러분의 개성 강한 보이스에 완전히 빠져들었었거든요.”

“…….”

수철은 자신의 얘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의 그 매력적인 보이스를 앨범에 담고 싶었어요. 작업하면서 그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가진 개성 넘치는 매력을 다 살릴 수 있을까 하고요.”

“…….”

수철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마지막 말을 이었다.

“저는 여러분이 제가 처음 느꼈던 그 개성과 매력을 녹음실에서도 보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평소의 자유분방한 보이스를 말이에요.”

그 말에 사람들은 눈을 반짝였다. 강한 의지가 눈에서 빛났다. 몇몇은 입술을 꽉 물고 주먹을 꽉 쥐며 비장한 모습을 보였다. 수철의 뜻을 꼭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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