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64화 (164/239)

#164화. CHEERS!

“와―!”

보컬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시드니 최고의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선 이들의 모습은 마치 도시 구경을 온 시골 사람들 같았다. 벽과 천장을 두리번거리며 독특한 구조에 신기해했고, 처음 보는 장비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철은 피식 웃음이 났다. 지난번 연주자들이 왔을 때와는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다.

“커피 한 잔 하고 시작할까요?”

수철은 사람들을 녹음실 한편에 마련된 응접실로 안내했다. 이들은 녹음실 견학을 온 학생들처럼 모두 한곳에 쪼르륵 모여 앉았다. 오늘은 두세 명이 녹음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녹음실과 녹음 방법이 궁금해 모두 함께 왔다.

‘뭐지?’

갑자기 각양각색의 스타일을 가진 여섯 명이 등장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자 녹음실이 부산해졌다. 스탭들이 오가며 힐끗 쳐다봤다.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그래도 수철은 눈치가 보이고 미안했다. 인원수도 많지만, 사람들이 제각각 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락커들은 특유의 허스키하고 굵은 목소리 톤 때문에 시선을 끌었다. 어깨와 팔뚝에 가득한 문신과 목에 걸린 각종 액세서리, 그리고 눈, 코, 입에 박힌 피어싱은 모른 척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차분한 녹음실 분위기와는 상반됐다.

좋은 점도 있었다. 같이 모여 있다 보니 오늘 노래할 보컬들의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웃음을 보이며 농담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하지만 이때뿐이었다. 부스에 들어갈 시간이 가까워지자 다시 표정이 딱딱해졌다.

“세팅 다 됐습니다.”“알겠습니다, 10분 후에 시작할게요.”

수철은 스탭과 얘기를 나누고 오늘 녹음에 참여할 보컬들을 따로 불렀다.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세요. 편하게 노래하시면 돼요.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이들이 긴장하면 기대한 소리를 뽑아낼 수 없다.

“데모 녹음한다고 생각하세요.”

편하게 생각하고 녹음에 임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안 할 수가 없어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심장이 계속 뛰어요. 많은 사람이 제 노래를 듣게 될 테니까요. 오늘 한 번의 녹음으로 말이에요.”

평가받는 자리여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수철은 피식 웃었다.

“걱정 마세요, 녹음이 잘 안 되면 앨범 안 낼 테니까요.”

“네?”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긴장해서 쩔쩔매는 보컬의 목소리를 듣고 싶겠어요? 저부터가 안 들을 거 같은데요?”

수철이 되묻자 모두 멈칫했다. 수철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부담 없이 부르시라는 얘기에요. 노래가 잘 안 되면 발매를 안 하면 그만이니까요.”“……설마 진심으로 그러는 건 아니죠?”

수철은 한 번 더 피식 웃었다.

“진심 맞아요. 앨범이야 또 만들면 되죠. 대신 가수는 긴장 안 하는 가수로 뽑겠지만요.”

“……!”

수철의 말에 모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리를 흔들고는 볼을 두드렸다. 정신 차리고 집중하자는 행위였다.

수철은 이들을 달래 주고 위로해 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표정을 엄격하게 바꾸고 강력하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강공이 먹혔다.

이들은 팔굽혀펴기를 하고, 아! 아! 아! 소리를 내며 각자의 방식으로 빠르게 긴장을 털어 냈다.

* * *

“마이크 체킹 좀 할게요. 소리 좀 내 보세요.”

“아, 아― 아!”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엔지니어가 오케이 사인을 주자 드디어 녹음이 시작됐다.

헤드폰으로 반주가 흘러나오자 보컬이 입을 벌리며 노래를 시작했다.

수철은 이번 녹음에서 특별하게 디렉팅을 많이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처음 느꼈던 그들의 순수한 색깔을 끄집어내는 데만 집중할 생각이다. 처음 들었던 이들의 목소리, 그때의 느낌. 그것이 이번 녹음의 가이드 라인이다.

“지금 들어온 노래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엔지니어는 한번 녹음을 마칠 때마다 갸웃하며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거는요? 날리고 다시 받을까요?”“아니에요, 잘 들어왔어요. 킵하고 다음으로 넘어갈게요.”

“…….”

수철은 갸웃하는 엔지니어에게 어깨를 붙였다.

“음정이 나가거나 박자를 못 맞추는 거 아니면 그냥 다 받으시면 돼요. 문제가 있으면 제가 컷 할게요.”

“……네.”

엔지니어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렇게 녹음해도 되나 하는 표정이었다. 소리가 지나치게 거칠다는 뜻이었다. 수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랜 시간 자기 색깔대로 노래해 온 사람들이에요. 지금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고, 부자연스러워질 뿐이에요. 그리고 저는 저런 자유로운 발성에 끌려서 저분들을 이번 앨범에 초대한 거고요.”

“그렇군요.”

엔지니어는 굳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녹음을 시작하기 전에 수철은 이런 상황을 미리 얘기했었다. 소리가 거칠고 개성이 강해서 난감할 수 있다고.

‘그래도 이건…….’

엔지니어는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개성을 지나쳐서 야생의 소리처럼 들렸다. 어떻게 믹싱을 할지 막막했다.

이를 눈치챈 수철이 다시 어깨를 붙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의도한 거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믹싱도 많은 걸 요구하지 않을 거고요. 제가 디렉터잖아요?”

수철이 다 가이드하고, 책임지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소리를 받는 데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다듬어지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은 소리. 무대와 거리에서 노래하며 스스로 체득한 자신만의 소리.’

엔지니어는 우려하지만, 수철은 지금 들어오는 소리에 만족하고 있다. 수철이 바라던 소리다.

“원석을 가공하지 않은 채로 쓰겠다는 뜻이죠?”

수철의 말에 우려를 조금 덜어 낸 엔지니어가 물었다. 수철은 끄덕였다.

“네, 맞아요. 딱 그 이유예요.”

엔지니어가 보기엔 수철이 개성 강한 사람들을 적당히 선별해서 모은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신중하게 선택한 사람들이다. 엔지니어 말대로 가공되지 않은 원석들이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면 속에는 반짝이는 매력이 숨어 있다. 수철은 처음부터 그들만의 고유한 매력을 알고 있었다.

수철의 말을 들은 엔지니어는 노트에 뭔가를 끄적였다. 보컬 녹음의 방향을 재수정했다.

* * *

“드디어 마지막 곡이군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틀의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3일 차 마지막 곡의 녹음이 시작됐다. 잔뜩 구겨져 있던 엔지니어의 미간이 펴지기 시작했다.

개성이 강한 여섯 명의 소리를 받느라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차마 수철에게 불평은 못 하고, 이런 녹음은 처음이라며 쓴웃음을 보였었다. 수철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이해한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한 번만 더 불러 볼게요. 열심히, 잘 부르겠다는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느낌에 의지해서 따라가 보세요.”

“네.”

녹음은 어느덧 마지막 곡의 마지막 트랙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긴장과 기쁨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부스 안에서 노래하는 보컬의 모습을 지켜봤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짝짝짝!

마지막 곡을 마치고 보컬이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서로를 향해서도 손뼉을 쳤다.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와 서로를 축하하는 기쁨의 박수였다.

시간은 예상대로 3일이 꼬박 걸렸다. 뒤늦게 소리가 잡히는 사람이 많아서 시간을 많이 썼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녹음이 잘 끝났다.

역시 이들도 무대를 주름잡는 보컬이 맞았다. 단지 녹음 경험이 많지 않아 어색하고 두려워한 것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잘 극복해 냈다.

이들은 수철이 자신들을 왜 선택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할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수철이 처음 마주했던 그 소리를 내는 데 집중했다.

특히나 미아는 ‘레인’을 매우 잘 소화해 냈다. 제시가 부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노래를 부르고 나오는 미아를 수철은 껴안을 뻔했다.

앨렌의 퍼스 날라리도 수철을 만족시켰다. 노래하는 내내 감정의 사이클을 잘 유지했다. 누군가를 유혹하는 눈빛과 손짓으로 자신의 감성을 끌어 올렸다. 덕분에 엔지니어는 그녀의 눈빛과 손짓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목을 긁으며 시선을 돌렸다.

밤사이 친 거미줄의 맥스도 압권이었다. 주먹을 쥐고 특유의 샤우팅을 내질러서 저러다 거미줄에서 거미가 튕겨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수철은 흡족했다. 녹음하는 내내 수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수철이 기대했던 바로 그 소리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엔지니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수철이 만족할수록 더 그랬다. 마이크 선을 타고 들어오는 노래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체 곡들의 밸런스를 잡아서 믹싱을 할지 막막해했다.

‘알아서 잘하겠지.’

수철은 엔지니어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경험 많은 최고의 엔지니어니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앨범은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했다. 방향을 정해 놓고 사람들을 이끌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더 여유로웠다. 수철은 이 분위기를 마지막까지 유지할 생각이다. 유일하게 엔지니어는 머리가 아프겠지만.

짝짝짝!

서로를 축하하며 치던 박수가 어느새 수철을 향해 있었다. 사람들은 수철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수철은 마치 패션쇼를 마치고 런웨이에 서서 환호를 받는 디자이너가 된 기분이었다. 모델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서 박수를 치는 모습이었다.

수철은 고개를 숙여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멀리까지 와서 성의를 다해 노래해 주고, 엄청난 경험을 선사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어디서도 겪어 보지 못할 최고의 경험을 수철에게 선사했다.

수철은 스튜디오를 나서기 전, 사람들이 북적였던 부스 안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지난 3일간 6명의 보컬이 부스를 오가는 모습은 어수선함을 넘어 차라리 장관이었다. 서로 다른 가지각색의 모습, 진풍경.

짧은 순간, 6명이 노래하던 모습이 겹쳐지며 머리를 스쳤다.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두꺼운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로써 6인 6색의 보컬 녹음은 모두 끝이 났다. 앨범 Sunset의 녹음도 모두 끝났다.

스튜디오 밖에서는 앨범 Sunset의 엔딩을 축하하는 맨리 비치의 Sunset이 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 * *

“CHEERS!”

“CHEERS!”

술잔을 높이 들었다. 사람들은 마치 방금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처럼 들떠 있었다. 모자를 벗어서 하늘로 던지듯이 냅킨을 집어서 하늘로 날렸다.

우후―!

몇몇 사람은 극도의 긴장감에서 해방되자 소리를 질렀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방방 뛰기까지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들은 마치 힘든 일을 같이 겪은 동지들처럼 어깨동무하며 술을 들이켰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즉석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선셋 마이트(Sunset Mate)로 정 했다.

수철은 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와일드했었는데.’

거침없이 소리 지르며 포효하던 이들이 어느새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녹음이 만들어 낸 가장 큰 성과였다. 긴장과 연습 탓이리라.

수철은 이제야 긴 호주 여행을 마무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앨범 선셋엔 그때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눈앞에서 떠들며 맥주잔을 부딪치는 이들이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건배 한 번 더 할까요?”

수철이 먼저 잔을 높게 들었다.

“CHEERS!”

모두가 수철을 따라서 잔을 높게 들었다.

* * *

―지지이잉.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떴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 사이로 아직 채 뜨지 못한 눈동자가 보였다.

수철은 눈을 비비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휴대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수철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뗐다.

―수철 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수철의 잠긴 목소리와 다르게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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