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66화 (166/239)

#166화. 콴타스 항공

―응, 앨범 Abyss와 Intersection은 미국에서도 반응이 좋으니까.

처음 듣는 얘기였다. 박 대표에게 맡겨 놓고 나서는 신경을 안 썼었다. 박 대표도 수익을 정산해서 보낼 때만 정산 자료를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낼 뿐, 그 외의 부분은 따로 얘기하지는 않았었다. 수철이 그렇게 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발생하는 수익을 보면 그래. 아직 유럽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프가 상승세인 건 맞거든. 거대 시장을 외면할 필요는 없지.

수철은 새삼 박 대표가 회사 대표라는 게 실감 났다. 한국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사업적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쌤, 이번 앨범은 다른 앨범이랑 다른데 괜찮을까요?”

이번 앨범은 다양한 가수가 노래한 옴니버스 형식의 앨범이다. 막연히 흥행을 기대한다는 건 자칫 실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걱정 마, 네가 있잖아.

“네? 저요?”

―사람들은 네 이야기를 듣는 거야. 네가 만든 작품 말이야.

“아…….”

듣기 좋은 말이다. 수철도 사람들이 그렇게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수철의 기대일 뿐, 회사에서도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게 너무 막연한 얘기로 들렸다.

박 대표는 수철의 걱정을 아는지 바로 말을 이었다.

―네가 뭘 우려하는지 알아. 하지만 걱정 마, 회사가 막연하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우리도 그렇고, 유통사에서도 그렇고 옴니버스 앨범의 사례를 분석해서 최적화된 방법을 찾을 거야. 디테일을 다 챙길 거라는 뜻이지. 회사는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니까.

수철은 박 대표가 잠시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전문가 같았다. 말투도 확고했다.

―이미 네가 좋은 성적을 낸 앨범이 있어서 계약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야.

“네. 잘 알겠어요. 쌤, 지금까지 한 거처럼 다 알아서 해 주세요.”―그래, 궁금할까 봐 얘기하는 거야.

“네, 감사해요.”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이 매우 마음에 든다. 이야깃거리도 많고, 뭔가 왁자지껄하면서도 잘 정리가 돼서 듣는 재미가 있어.

“하하, 쌤도 확실히 저랑 같은 종족인가 봐요.”―종족? 그게 무슨 말이야?

“엔지니어는 녹음하면서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괴로워했거든요. 너무 산만하다고요.”―하하, 엔지니어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새로운 반응을 기대해 볼 만할 구석이 많아. 가사는 제각각의 이야기가 있어서 전혀 지루함이 없고, 악기와 보컬의 조합은 이색적이어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해. 네 말대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 들어.

박 대표는 수철이 장점으로 생각했던 것을 다 집어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사람 같던 박 대표가 다시 익숙했던 박 대표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완전 내 취향이야. 고맙다, 수철아. 하하.

“하하, 쌤이 마음에 드신다니까 저도 기뻐요.”

회사 대표와 소속 뮤지션이 자뻑에 취해 있는 것 같아서 좀 이상했지만 어쨌든 둘 다 기분이 좋았다.

몇 번 기분 좋게 웃던 박 대표가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가사는 어떻게 이렇게 쓴 거야? 매번 가사라고는 단어만 쓰던 네가 이런 가사를 쓴 걸 보니 정말 네가 쓴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작사까지 재능이 있을 줄이야.

박 대표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니까.

수철은 박 대표의 물음에 너무 쉽게 대답했다.

“생각을 많이 한 거죠.”―생각?

“네,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 생각만 한 만 번 이상은 한 거 같아요. 흐흐.”

수철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났다. 여행하며 가사를 쓰던 때와 앤디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인데 다시 하라면 엄두가 날 거 같지 않았다.

―전달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 가사를 쓸 때는 말이야.

박 대표도 수철의 말에 즉각 동의했다.

“아, 그리고 산책 많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됐어요.”―하하. 그래 네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옆에서 말 걸어도 모른 채 말이야. 하하.

박 대표는 마치 옆에서 지켜보고 있듯이 얘기했다. 한국에서의 흔한 모습이 호주에서도 이어질 거로 생각했다.

―앨범 얘기는 진행하면서 차차 하고, 우선 급한 거 먼저 얘기할게.

“네.”

―우선, 네가 준 리스트에 있는 계좌로 전부 입금 완료했어.

이번 앨범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돈이 지급됐다는 뜻이었다.

“감사해요, 쌤.”

―기본적으로 평균치보다 더 많이 지급된 거지만 네가 선택한 거니까 묻지는 않을게.

“네, 감사해요.”

수철은 특히 이 부분이 박 대표에게 고마웠다. 회사라면 으레 적절한 금액을 설정하고 그 이상을 넘기지 않는데, 수철이 최고 금액보다 더 많이 주고 싶다고 했을 때 박 대표는 묻지도 않고 수철의 뜻대로 따라 줬다. 그래서 특별히 더 감사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추가로 지급된 거 있으면 말하고, 쫑파티 금액도 회사에서 지원할 거야.

“그걸 왜 쌤이 내요?”―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회사가 해야 할 일을 네가 대신한 거니까. 암튼 네가 말 안 할 거 같아서 이미 다음 달 정산에 적당한 금액을 포함시켰어.

“얼마나요?”

―받아 보면 알아.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네, 감사해요.”

―아, 그리고…….

박 대표는 계속해서 그간 벌어진 소식을 전했다. 앨범 Intersection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는 얘기와 Abyss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 유럽에서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까지.

그리고 한국 소식도 전했다.

―금별에서 제시와 비슷한 목소리의 여가수를 뽑았어.

금별기획에서 ‘Intersection’의 한국어 버전을 부를 여가수를 제시와 비슷한 가수로 뽑았다는 얘기였다.

―당연한 이유지. 유럽에서의 반응을 염두에 둔 거니까.

“네. 예상했었어요.”

수철도 예상했던 바다. Intersection 앨범은 제시의 보이스 컬러를 염두에 두고 만든 앨범이다. 그러니까 한국어 버전을 부를 가수도 제시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수를 뽑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단지 새로운 걸 기대했던 수철은 아쉬움은 있지만.

―영어 버전과 다르게 한국어 버전엔 가사에 제목도 붙였고, 순서도 넣었어.

수철이 만든 앨범과는 차별화를 했다는 말이었다. 한국어 버전인 만큼 금별기획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일이고, 고객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회사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주에 마스터링이 나오니까 바로 보내 줄게.

“네, 보내 주세요. 한국어 버전은 어떨지 정말 기대돼요.”―기대해도 좋을 거야. 난 믹싱한 것만 들어봤는데, 딱 아시아 사람들이 좋아하게끔 만들었어. 금별답더라고.

금별기획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드를 잘 안다는 뜻이었다.

―이 앨범에 거는 기대가 커. 앨범도 잘 만들었지만, 금별이 싣는 힘도 장난 아니거든. 조만간 금별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될 거야. 하하.

박 대표는 마치 미래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분 좋게 웃었다. 박 대표는 금별의 계획에 대해서도 귀띔을 해줬다. 마스터링이 나오자마자 바로 음원 발매를 시작하고, 그다음에 시디를 발매하는 현실적인 방법과 앨범이 나오자마자 아시아를 돌며 방송 인터뷰를 하고, 각 나라에서 공연하는 스케줄을 가질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각 나라에서 파워 있는 커뮤니티를 공략해 인터넷 홍보에도 집중할 거라 했다.

―이런 걸 싹쓸이 홍보라고 하지.

아시아 속속들이 다 홍보한다는 얘기였다. 마치 싹싹 훑듯이.

그게 곧 금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가장 큰 시장인 일본이랑 중국에 힘을 싣겠지만.

―며칠 전에 해리와도 통화했어.

“아, 진짜요?”

해리는 수철이 먼저 만나게 될 줄 알았었다.

―그래, 매번 담당자와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며칠 전에 해리가 직접 전화를 했더라고. 아무래도 Intersection이 반응이 좋으니까 전화를 한 거지. 암튼 그 후로 ECM 아시아 담당자도 사무실에 왔다 갔어.

박 대표의 말투에서 뭔가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쌤, 저 영국에 갔다 와야 할 거 같아요.”―그래, 당연히 가야지. 날짜만 정해서 알려 줘. 여기서 스케줄 조절할 테니까.

박 대표도 더 미루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도 가게 될 거 같아요.”―프랑스? 거긴 왜? 뭐가 있나?

“칸 영화제요.”

―칸? 거기서 연락이 왔어?

박 대표의 눈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감독님이 연락하셨어요.”―아, 그래, 필립 윤 감독이 요즘 영화제에서 수상을 많이 하고 있지?

박 대표도 신문에 실린 기사를 봤다. 백자의 눈물이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벌써 칸까지 갔구나? 그렇지, 이때쯤이면 칸 영화제 시즌이 맞지.

“네, 다다음 주부터래요. 그래서 칸에 왔으면 하시더라고요. 제가 만든 음악이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고요.”―오호! 엄청난 빅 뉴스네? 이제 영화음악상 후보까지 올랐다는 거야?

“네, 그런데 공식적인 상은 아니래요.”―그래, 그럴 거야. 음악상 없는 영화제가 많으니까. 영화제라는 것이 작품, 감독, 배우 우선으로 돌아가니까 몇 개의 큰 영화제를 빼고는 음악상을 챙기기가 어렵지. 물론 칸이 작다는 뜻은 아니고.

“아, 그렇군요.”

―그래도 음악상은 항상 이슈가 돼. 그곳을 거친 영화음악 작곡가는 하나같이 다 영향력 있는 음악가가 됐지. 거기서 수상한 이후로 말이야.

박 대표는 필립 감독만큼이나 칸 영화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어떻게 알다니? 당연히 영화음악을 했으니까 알지.

“아, 맞다.”

그제야 박 대표가 초창기 유학에서 돌아와서 영화음악을 했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단편작이었지만 박 대표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친구들 만나러 가는 김에 칸에도 가겠다는 얘기야?

“네, 그렇게 하려고요. 감독님도 뵙고 싶고요.”―음…….

박 대표는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영국은 사람들이 널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 네가 자유롭게 다녀도 상관이 없지만 칸은 달라, 거기서 수상을 한다면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게 될 거야. 인터뷰 요청도 쇄도할 거고.

“하면 되죠.”

―뭐?

박 대표가 놀란 소리를 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물었다.

―……진심이야?

전화기 너머로 박 대표가 다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물어 놓고 긴장하고 있었다, 수철이 어떤 답변을 할지.

* * *

―무슨 일 있으세요?

“어딜 좀 갔다 와야 해서요.”―어딜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할게요.”

수철은 이번 앨범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아직 영화제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영국에서의 일정이 있다. 친구들과 만나야 하고, ECM을 방문해서 해리도 만나야 한다. 게다가 박 대표가 잡은 일정도 있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체류할 시간이 길어질 거 같다. 그래서 수철은 서둘러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우선 가사를 번역해 준 앤디를 만났다. 앤디는 이번 앨범의 일등 공신이다.

“많이 드세요.”

앤디가 좋아하는 갈비를 사고.

“와! 이거 진짜 주는 거예요?”

닌텐도 게임기를 선물했다.

앤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철과 선물을 번갈아 봤다.

“정말 고마워요, 수철 씨!”

앤디는 좋아서 수철을 껴안으려다가 멈췄다.

으아아!

그러고는 두팔을 벌리며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수철은 앤디가 가장 갖고 싶어 했던 것을 선물했다.

* * *

“갔다가 언제 오려고?”“아직은 잘 모르겠어.”“제시도 만나는 거야?”

“그래야지.”

수철은 계속해서 마크와 존과 잭을 만났다. 이들도 이번 앨범의 큰 공로자들이다. 마크는 이언을 연결해 줬고, 존은 루카스를 소개했다. 그리고 잭은 무언의 지지를 보내 줬다. 앨범의 공로자를 떠나서 유럽에 가기 전에 만나야 할 친구들이었다.

“앨범 잘 끝낸 거 축하해.”

“그래, 고마워.”

“건배!”

“건배!”

수철은 앨범의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며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이랑 술을 마셨다. 공연도 보고, 어깨동무하고 길을 걷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우정을 나눴다.

“잘 갔다 오고, 제시에게 안부 전해 줘.”“그래, 갔다 와서 연락할게.”“설마 여기로 안 오고 한국으로 가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 * *

“수철 씨, 잘 다녀와요.”

공항은 앤디가 태워다 줬다.

“올 때도 전화해요, 마중 나올 테니까요.”“네, 감사해요. 집과 재규어 잘 부탁해요.”“걱정 말아요, 제가 잘 쓰고 있을게요.”

앤디는 수철이 맡긴 집 열쇠와 차 키를 꺼내서 흔들었다.

* * *

[여러분의 여행길을 콴타스항공과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 비행기는 런던까지 가는 콴타스 항공 1231편으로…….]

드디어 런던으로 가는 장거리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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