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83화 (183/239)

#183화. 자랑스런 한국인

―여기 좀 봐 주세요!

포토콜 존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필립 윤과 배우들은 여럿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수철은 혼자서 이 많은 플래시를 다 감당해야 했다.

―이동하실게요!

사진을 찍고 나서는 칸 영화제 공식 프레스센터로 이동했다. 여기까지는 공식 행사이기에 빠질 수가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주인공 개석이 백자를 빚는 장면을 음악으로 표현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셨나요?”“커뮤니케이션이요.”

“이유는요?”

“영화가 그것을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개석과 백자의 소통이요.”“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한국의 전통악기인 퉁소를 사용해 주인공 개석과 백자의 교감을 표현하셨는데, 프랑스의 정서에 어울리는 악기로 바꾼다면 어떤 악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세요?”“플루트와 오보에요. 둘을 섞은 악기가 있다면 그것이 가장 적절할 테고요.”

“이유는요?”

“단순해요, 소리의 울림이 주는 정서가 가장 비슷하니까요.”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고 레베카가 별도로 만든 자리에서 한국 기자들과도 인터뷰했다.

“안녕하세요. MBC의 박인문 기자입니다. 먼저 칸 영화제 사운드트랙상을 수상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수상 소감을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게 돼서 얼떨떨합니다. 제가 이 상을 받게 된 것보다 ‘백자의 눈물’이 칸 영화제에서 큰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이 더 기쁩니다.”“그럼 영화에 관하여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처음 필립 윤 감독을…….”

질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각 방송사와 언론사의 기자들은 돌아가면서 계속 마이크를 잡았다. 필립 윤 감독을 어떻게 만났느냐는 질문부터 작업하는 동안의 에피소드에 관한 질문까지. 그리고 영화음악에 관한 앞으로의 계획 등.

수철은 그동안 피했던 인터뷰를 한꺼번에 다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프랑스 칸에서.

“전 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하신 앨범이 지금 유럽 차트에서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중요한 핵심 질문이 끝나자 조금씩 방향을 틀어서 칸 영화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국 시장을 떠나서 영국에서 앨범을 발표한 이유와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그리고 금별 기획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질문까지 나왔다.

불필요한 질문이 이어지자 레베카는 잠시 수철의 표정을 살피더니 앞으로 나섰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노련한 에이전트답게 바로 끊었다.

“멀리서 이곳까지 오셔서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여러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레베카는 빠르게 인사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국 기자들은 몇 개만 더 질문하겠다며 시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레베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계신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는 요청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는 막을 내렸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몰려든 외신 기자들에게는 짧게 시간을 할애했다. 길어지는 질문에 대해선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냉정하게 끊었다.

레베카는 오늘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철의 얼굴을 살피며 기자들의 질문을 적절하게 조율하고, 끊을 때 확실하게 끊는 모습이 전문가다웠다. 수철은 이런 레베카가 든든했다.

“오늘 오신 방송사와 언론사 기자들만 봐도 한국에서의 분위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겠어요.”

레베카는 수철을 호텔로 귀가시키기 위해 함께 차로 향했다.

“한국에서 저렇게 많은 분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수철은 다소 피로한 얼굴로 레베카의 말에 대꾸했다. 칸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이렇게까지 한국에서 떠들썩한 일인가 새삼 놀랐다.

“전부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아니에요.”

“……?”

“여기 특파원으로 나와 계신 분들도 오셨고, 교포분들을 섭외해서 일일 기자로 요청한 언론사들도 있었어요. 보도도 중요하지만, 수지 타산이 맞아야 하잖아요?”

레베카는 차 문을 열며 언론사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 *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칸 영화제 사운드트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며 관심을 집중시켰던 용수철 작곡가가…….

수철의 수상 소식은 빠르게 속보로 전해졌다. 레베카는 수시로 한국과 통화하며 소식을 전달받았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한국의 분위기를 확인했다. 수철의 휴대폰에도 문자가 쏟아졌다. 진동이 끊이질 않더니 결국엔 배터리가 방전돼 버렸다.

“저녁 만찬까지는 몇 시간 남았으니까 그동안 호텔에서 휴식을 좀 취하세요.”

“네, 감사해요.”

“가는 동안 한국 분위기를 좀 말씀드릴게요.”

“네.”

“K 방송사에선 그동안 수철 씨가 노출된 자료를 최대한 끌어모아서 수철 씨가 어떤 음악가이고, 칸에서 음악상을 수상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특별 방송을 만들어서 내보내려고 준비했었나 봐요. 오늘 수상 소식에 맞춰서 바로 방송할 생각으로요.”

“…….”

수철은 고개를 저었다. 남의 삶을 파헤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다. 그동안 얘기를 많이 들어서 방송사의 생리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레베카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료가 너무 없어서 프로그램을 짜느라 애를 먹었나 봐요. 박 대표님께도 자료 요청이 왔었는데,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대요. 호호.”

비협조적이었다는 얘기였다. 수철이 기대고 있던 몸을 세웠다.

“그럼 못 했겠네요?”“아니요, 하긴 했대요. 분량을 대폭 줄여서요.”

“…….”

“가수들이 수철 씨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많이 내보냈고, 수철 씨의 모습은 예전에 오디션 장면을 많이 끌어다 썼대요. 덕분에 스테파노가 리메이크하기도 전에 한국에서 ‘Radiate’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대요. 재밌는 현상이에요. 호호.”

레베카는 웃다 말고 수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왜요?”

“의외여서요.”

“뭐가요?”

“수철 씨가 오디션에 나갔다는 게요. 대중적인 스타를 만드는 자리에 수철 씨가 있었다는 게 잘 연결이 안 돼요.”

“…….”

“경쟁이나 스타 만들기 코드 같은 건 수철 씨의 방향이 아니지 않나요?”“그때는 이유가 있었어요.”

“……이유요?”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돈이 좀 필요했어요.”“돈이요? 호호. 가장 확실한 이유네요. 호호.”

“…….”

레베카는 수철을 보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수철이 돈이 필요해서 오디션에 나갔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수철은 뻘쭘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S 방송사에선…….”

레베카는 계속해서 다른 방송사의 분위기도 전했다. 연예가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먼저 수철의 수상 소식을 전했고, 몇몇 프로그램에선 연예부 기자들이 출연해서 평론가들과 수철의 음악 세계에 관해서 논했다고 했다.

“제가 듣기론 J 방송사가 예술 프로그램을 가장 잘 다룬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요. 맞나요?”“글쎄요, 저는 잘…….”

자신의 물음에 수철이 고개를 젓자 레베카는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뒤적였다.

“비공식적인 상이기는 하지만 동양인이 수상한 건 최초라며 목청을 높였다는 기사도 있고요, 영화 평론가와 음악 평론가들이 출연해서 수철 씨 작품을 칭찬했다는 기사가 많네요.”

기사를 훑어보던 레베카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이 기사 헤드라인이 재밌네요.”

“……?”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쾌거’래요. 수철 씨가 상 받은 게요. 그리고…….”

레베카는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필립 감독님과 수철 씨가 순식간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등극했대요. 호호.”

레베카는 웃으며 수철이 볼 수 있게 노트북을 돌렸다. 화면에는 나이 든 평론가가 과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보였다. 그 화면 상단에는 굵은 글씨로 레베카가 말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수철이 절레절레 젓자 레베카는 장난스레 얼굴을 붙였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신 수철 씨.”

“…….”

“놀랍지 않아요? 이게 다 다섯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 * *

“왜 졸졸 따라다니세요?”

“좋아서.”

“…….”

“…….”

“칸에 한국인 마켓 있는지 찾아보셨어요?”“한국인 마켓은 왜?”“막걸리 팔 수도 있잖아요.”

“없어.”

“벌써 찾아본 거예요?”“교포분에게 물어봤어. 막걸리 구할 수 있냐고.”

“그랬더니요?”

“없대, 그냥 와인 먹으래.”

“…….”

만찬회장에서 수철의 인기는 단연 높았다.

“축하합니다, 용수철 작곡가님.”

많은 감독이 수철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자신의 작품에 음악을 맡기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레베카는 일일이 나서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수철은 부담스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레베카, 저는 영화음악을 할 계획이 없어요.”“걱정 마세요, 예의상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 감독님들도 아세요, 수철 씨가 바쁘다는 것을요.”

레베카는 명함을 주고받는 게 서로의 자존심을 챙기는 일이라며 수철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든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CHEERS!

CHEERS!

수철은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든 사람과 잔을 부딪쳤다. 이번만큼은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수철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니까.

영화제 관계자들, 음악 관계자들, 필립 윤과 배우들, 그리고 할아버지 3인방까지, 일일이 잔을 부딪치다 보니 수철은 취기가 빨리 올랐다. 하지만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어서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덕분에 만찬회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고, 수철은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뻗었다.

* * *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침에 전화를 켜자마자 난리가 났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수철이 수상 소감에서 이름을 말한 사람들은 모두 전화를 했었고,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문자를 보내 왔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낯선 사람의 문자도 많았다. 이름도 모르는 장관이라는 사람의 축하 메시지도 있었고, 심지어 프랑스 대사관에서까지 문자를 보내 왔었다.

수철은 빠르게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후 박 대표와 다혜에게 전화했고, 다른 사람에겐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지이이잉.

전화는 계속 진동했다. 아침을 먹을 때도, 점심때도.

사라와 스테파노, 해리가 축하 전화를 했고, 제시와 영준이 형을 포함한 멤버들도 전화를 했다. 호주의 친구들과 마커스, 이언도 축하 문자를 보내 왔다.

이게 이렇게 대단한 건가?

수철은 칸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실감했다. 온 세상이 상 받은 소식을 다 아는 것 같았다. 이날 하루는 통화하고 문자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피로가 몰려올 정도였다.

* * *

수철이 전화에 시달릴 때 사라 제이는 ‘백자의 눈물’ 주제곡을 팝페라로 부를 거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제목은 ‘TO BE NEAR YOU’에요.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도자기공과 백자가 역사의 혼란 속에서 서로 떨어지게 됐지만, 가까이 가기 위해서 간절하게 손을 뻗는 모습을 가사에 담았어요.”

사라는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가사는 필립 윤 감독님이 직접 쓰셨어요. 그만큼 입체감이 도드라진다는 뜻이겠죠?”

“아, 그렇겠군요.”

사라의 얘기를 노트하던 기자들은 손을 멈추고 사라를 봤다. 기자들의 표정만 봐도 사라가 얼마나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자들은 사라의 얘기를 들으며 연신 미소를 보였다.

“음악은 어제 칸에서 상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훌륭한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사라가 한번 더 되묻자 기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2의 오페라의 유령이 될 것인가!]

사라가 주제곡을 부르게 됐다는 소식이 퍼지자 영국 언론은 떠들썩했다. 사라가 몇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오페라의 유령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평론가들은 급하게 편성된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고, BBC에서는 얼마 전 출연했던 수철의 모습을 재편집해서 내보내며 수철의 음악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용수철 작곡가는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영국과 유럽을 들썩이게 한 천재 작곡가죠. 거기에다 칸에서 사운드트랙상을 받고, 그 주제곡을 영국이 사랑하는 팝페라 가수, 사라 제이가 부르게 됐습니다. 이보다 더한 핫이슈는 없죠.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리포터가 내민 마이크에 ECM 관계자가 환한 미소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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