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세마치장단
“여기서부터가 128번째 마디예요.”
사라는 그제야 128번째 마디가 어딘지 알았다. 자신도 이 부분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세션 녹음을 할 땐 몰랐는데 연습을 하며 눈치챘다. 그런데 어째서 이상하게 느꼈는지, 문제를 파악하진 못했다. 그런데 수철은 한번 만에 정확하게 짚어 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수철을 보며 계속 노래했다.
To be near you. To― be― near― you―
사라의 노래가 끝났다. 그녀는 다른 악기는 필요 없이 기타만 가지고 수철과 둘이서 녹음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무대에서 수철과 둘이 있는 상상을 했다.
짝짝짝!
관객들의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페이드 아웃(fade out)으로 조용히 기타 소리를 줄여 가던 수철이 드디어 연주를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대충 이렇게 치면 될 거 같아요. 분위기만 잡아 본 거니까 참고하세요.”
수철은 기타를 내려놓으며 의자 옆에 세웠다.
“…….”
대충 분위기만 잡아 본 거라니.
사라뿐만이 아니라 밖의 사람들도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얼굴에서 열이 나는지 볼을 문질렀다.
사라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수철 씨가 직접 기타를 쳐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는데. 부탁해도 될까요?”
수철은 그 말에 손사래를 쳤다.
“네? 하하, 전 기타리스트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분이 좀 방만해서 그렇지, 본격적으로 연주하면 저보다 잘 치실 거 같아요.”
잘 치실 거 같다니? 영국 최고의 기타리스트에게?
수철을 빤히 보는 사라의 머릿속엔 이 말이 맴돌았다.
* * *
복도에서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멈춰 서 있었다. 뉴에이지 기타의 최고봉일 뿐만 아니라 영국 팝페라 앨범의 절반은 이 사람의 손을 거쳤는데.
사람들은 수철의 연주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만 저쪽으로.
엔지니어는 같이 음악을 들던 스탭들에게 손짓했다. 복도 끝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어땠어요?”
엔지니어는 턱을 매만지며 자리에 앉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믿기 어려워요. 듣는 순간 ‘이게 정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 있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팔짱을 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자 옆에 앉은 사람도 동참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건 초등학생이 들어도 차이를 알 거 같아요.”
표현이 과했지만 그만큼 연주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우린 왜 그동안…….”
말끝을 흐리며 그동안 자신들이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자책했다. 묵묵히 사람들의 의견을 듣던 엔지니어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럼, 저 용수철이라는 분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거죠?”
“네.”
“알았어요.”
엔지니어는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사람이 물었다.
“한 번 더 연주를 부탁해서 녹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연주를요?”
“직접 세션에 참여해서 연주를 해 주면 좋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잖아요.”
“……?”
“그러면 연주를 받아 놔야 나중에 비슷하게 치기라도 하죠.”
“……!”
엔지니어는 당연한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제가 가서 얘기하고 올게요.”
엔지니어가 콘트롤 룸을 향해 등을 돌렸다. 그때 사라가 먼저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잠깐 안으로 들어오실래요?”
* * *
“밖에서 들으셨죠?”
우르르 안에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사라가 물었다.
사라는 컨트롤 룸 밖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네, 들었어요.”
엔지니어가 대표로 대답하자 사라가 다시 수철을 봤다.
“수철 씨, 이번 앨범에 참여하는 스탭분들이에요. 이분이 엔지니어시고, 옆에 분이 녹음을 보조하시는 분이고, 옆에 분이 사운드 디렉팅 하시는 분이세요.”“아, 네. 안녕하세요.”
수철은 사라의 소개에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사라가 말을 이었다.
“아까 연주를 모니터링한 얘기를 같이 나누면 좋을 거 같아요. 복도에서 다 듣고 있었거든요.”
“아, 그랬나요?”
수철은 다 들었다는 얘기에 뻘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사람들은 사라가 판을 깔아 줬는데도 선뜻 먼저 말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봤다. 사라가 엔지니어를 바라보자 엔지니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아까 그 부분이 뭐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독특한 부분이 있던데요.”
“어떤 부분이요?”
“후렴으로 넘어가는 부분이요. 거기서 갑자기 리듬이 독특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보컬과 너무 잘 맞아서 신기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리듬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 말에 수철이 눈을 번쩍 떴다.
“아! 그건 세마치장단이라는 거예요.”“세마치장단이요?”
“네, 이 영화가 한국의 백자를 소개하는 영화다 보니까 한국 전통 음악의 리듬을 넣어서 멜로디를 만들었거든요. 서양 악기로 편곡했지만, 멜로디가 살아 있어서 그 장단이 잘 맞게 들린 거예요.”
“아…….”
셋은 동시에 탄성을 냈다. 수철이 계속 설명을 이었다.
“세마치장단은 덩—덩―딱! 쿵, 딱! 이렇게 조금 빠른 3박자를 말하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그 부분에서 8분의 6박자로 박이 바뀌니까 세마치장단을 두 번 쓴 거죠. 굳이 그렇게 한 이유를 묻는다면, 우울한 정서를 걷어 내려고 그랬던 거예요. 먼저 녹음한 리듬이 있어서 완전히 장단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리듬을 나누며 느낌을 준 거예요.”
“아…….”
셋을 아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벌어진 입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책을 읽어 주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아이들 같았다.
그때 사라가 얼굴을 내밀었다.
“두 번째 반복 때는 그게 아닌 거 같던데요?”
“아니라니요?”
“첫 번째랑 달라진 거 같았어요. 두 번째 반복 때는 원래 기타리스트가 더 화려하게 치지 않았나요?”
사라는 처음으로 확신을 갖고 얘기했다. 수철은 빙그레 웃었다.
“네, 정확히 보셨어요. 그 부분은 사라의 말이 맞아요.”
수철은 사라와 눈을 마주치며 끄덕였다. 사라는 수철의 칭찬에 배시시 입이 벌어졌다. 수철은 그런 사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부분은 영화에서 도자기공이 백자를 빚으려고 멈췄던 물레를 다시 밟는 장면이에요. 그래서 변화를 준 거죠. 성장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요.”
“아…….”
“쉽게 말하면 원래 기타리스트가 우울한 정서를 화려하게 풀어냈다면 저는 반대로 간 거예요. 우울함을 더 파고들어서 더 이상 우울하지 않게 만든 거죠. 마치 우울의 바닥을 드러내서 기쁨으로 승화시키듯이요. 그래서 멜로디가 두 배로 들어간 거예요.”
“……!”
사라는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으로 수철을 봤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린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말은 없지만, 수철의 말에는 동조하고 있었다.
수철의 말대로 작은 변화만으로도 음악에서 우울한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다. 우울한 게 아니라 경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멜로디를 두 배로 친 결과였다.
대체 저 사람은.
사라의 표정이 그랬다.
해리가 말한 천재라는 게 이거였나?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때 감정을 추스른 엔지니어가 다시 물었다.
“혹시 다른 악기는 코멘트할 게 없나요? 얘기해 주시면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충격에 까먹고 있었지만 사라도 물어보려던 질문이었다.
“다른 악기는 다 좋았어요.”
수철은 미소로 대답했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참! 바이올린도 조금 자제하면 더 좋을 거 같아요.”“자제요? 어떻게요?
엔지니어는 몸을 숙이며 되물었다. 이제 그에게 바이올린을 누가 연주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철의 얘기만 잘 들으면 된다는 표정이었다.
“절정 부분에서 솔로로 치고 들어올 때 조금 과한 거 같아요. 의도는 알겠는데, 조금만 절제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다음에 보컬이 치고 들어올 때 확실한 존재감이 생기죠. 입체감이 사는 건 당연하고요.”“아……. 네, 그렇겠군요.”
엔지니어는 머릿속으로 연상하며 길게 대답했다. 수철은 엔지니어가 더 잘 연상하게 도와줬다.
“문을 열 때 확 여는 거보다 똑똑 노트하고 열면 좋지 않을까요?”
“……!”
대체 한번 듣고 어디까지 꿰고 있는 건지.
엔지니어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사라를 봤다.
“사라, 아까 쳤던 기타를…….”
수철의 기타를 녹음해 놨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라도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챘다.
“수철 씨, 한 번 더 연주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라는 자신들은 수철처럼 음 기억력이 뛰어나지 못하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괜히 수철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수철은 무슨 뜻으로 한 번 더 연주를 요청하는지 알기에 바로 끄덕였다.
“네, 그러죠.”
수철은 엔지니어가 가져다 놓은 마이크 앞에 기타를 대고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숨죽이고 수철의 기타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시선은 모두 수철의 움직이는 손가락에 고정한 채.
* * *
“언제쯤 돌아가시는 거예요?”
사라는 녹음실을 떠나는 수철을 배웅하며 물었다. 내심 한 번 더 수철이 녹음실을 방문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다음 주쯤에 가요. 프랑스에 들렀다가 일정 마치면 바로 돌아갈 거예요.”
“그렇군요.”
사라는 아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럼, 마에스트로 스테파노를 만나고 바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 물음에 수철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아세요?”
“레베카에게 들었어요.”“아니, 스테파노를 어떻게 아시냐고요.”
사라는 멈칫하며 수철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당연히 알죠. 그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클래식은 몰라도 그분 이름은 다 알걸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 마에스트로 스테파노.”
생각해 보니 수철만 모르고 있었다. 수철을 빼고는 스테파노를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할아버지들조차도.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무안해졌다.
“레베카는 제 매니저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죠?”
“네, 그럼요.”
사라는 마지막으로 레베카와 인사를 나눈 후 수철과 가볍게 포옹했다.
“수철 씨,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할게요.”“네, 사라. 잘 지내세요.”
* * *
수철이 가고 나서 스탭들은 마치 회의라도 하듯이 원탁 테이블에 커피를 한 잔씩 놓고 빙 둘러앉았다.
“아까 사라에게 마디 수를 얘기할 때 있잖아요?”
“네, 그게 왜요?”
사라는 엔지니어의 물음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때 수철은 마치 펼쳐 놓은 음악의 설계도를 보면서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 말에 사라는 그때를 떠올리며 생각하다가 웃음을 보였다.
“맞아요. 호호. 그래서 저는 그냥 수철의 말은 필터링 없이 다 들었어요.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사라의 말에 모두 끄덕였다. 그때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사운드 디렉터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연주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
“그냥 소리가 흐르는 거 같았어요. 그것도 지루하지 않게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서 내려가는 물같이. 그렇게 소리가 흐르더라고요.”
사운드 디렉터다운 평이었다.
“그렇게 흐르면서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다 보여 주는 것 같았어요. 다른 악기들이 묻히거나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다 살렸다는 뜻이에요.”
“……!”
사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까 자세히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느낌을 사운드 디렉터가 정확히 표현해 줬다.
사라도 오늘 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수철의 연주는 마치 물처럼 흐르며 옆의 자연들과 호흡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소리가 안정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수철이 말하는 노래와 가사에 녹아드는 바로 그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철은 최고의 음악가가 연주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데모니까 누군가 편하게 쳤을 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말한 거겠지.
“거기에다 즉흥적으로 친 거였잖아요? 악보도 보지 않고.”
마지막으로 엔지니어 보조까지 한마디 했다.
사라는 그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다.
사라는 수철을 잡고 싶은 마음이 강력하게 들었었다. 음악을 펼쳐 놓고 편곡을 상의하며 연주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었다. 수철의 재능이 탐이 났었다. 수철을 옆에 두고 싶다는 충동도 들었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하지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수철은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프리버드다. 어느 누구도 그의 재능을 손에 쥘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