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196화 (196/239)

#196화. 멤버의 재구성

2시간가량을 날아서 태즈메이니아(Tasmania)의 호바트에 도착했다.

“헤이!”

멀리서 마커스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거봐, 수철. 한번은 태즈메이니아에 오게 될 거라고 했지?”

마커스는 인사 대신 농담부터 던졌다.

“하하, 그렇네요.”

수철은 환하게 웃었다.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이거 하나 달아 줄게.”

마커스는 태즈메이니아를 대표하는 동물이라며 호랑이를 닮은 동물 배지를 수철의 가슴에 달아 줬다.

“이곳을 대표하긴 하지만 현재는 발견되지 않는 동물이야. 마지막으로 발견된 게 육십 년 전이니까.”

지금은 어딘가에 생존해 있길 바랄 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 너도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레인저가 된 거야. 축하해.”

마커스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도 선물이 있어요.”

수철은 손을 맞잡고는 가방에서 미니 고려청자를 꺼내서 내밀었다.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려고 한국에서 사 온 것이다.

“땡큐!”

마커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청자를 돌려보며 신기해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한번 봐야지?”

태즈메이니아를 구경시켜 주겠다며 수철을 차로 이끌었다.

* * *

“와, 다르네요?”

“하하, 많이 다르지?”

태즈메이니아는 호주 본토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마치 제주도가 육지와 다르듯이.

호주가 천혜 자연의 느낌이 강하지만 태즈메이니아는 그중에서도 탑이었다.

사방이 뻥 뚫려서 광활했고, 시선을 가리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탁 트인 뷰는 정말 아름다웠다. 낮은 언덕에서는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고, 바다에는 발가벗고 뛰어다녀도 될 정도로 인적이 없었다. 거기에다 일몰은 성경에나 나올 법한 장관이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지.”

섬을 구경시켜 주고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마주 앉았다.

“여기 바다엔 성게와 굴, 전복 같은 해산물이 많아.”

“아…….”

“무엇보다 좋은 건 굳이 따서 냉장고에 넣어 둘 필요가 없다는 거야.”

“……?”

“여기 사람들은 잘 가져가지 않거든. 그러니까 그냥 놔두고 필요할 때마다 따 먹으면 돼. 이 거대한 바다가 나의 냉장고인 셈이지. 음하하!”

마커스는 통쾌하게 웃었다. 자신이 이곳을 떠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며.

노다지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또 앨범을 만들 거라고?”

저녁까지 먹고서야 마커스는 수철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수철은 끄덕였다.

“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베이스는 내가 치는 거고?”“맞아요, 그런데 지난번이랑은 달라요.”

“음악이?”

“음악도 다르고, 접근법도 달라요.”

“접근법?”

수철은 마커스에게 이번 앨범의 컨셉에 대해서 설명했다.

“음악은 지난번과 같이 정해진 장르는 없어요. 하지만 전체적인 색깔은 달라요. 한국적인 색채가 섞일 거에요. 그리고…….”

마커스는 진지한 얼굴로 수철의 설명을 들었다. 얘기가 길어질수록 마커스의 표정은 점점 심각하게 변해 갔다.

수철이 선물한 미니 고려청자를 만지작거리던 마커스가 청자를 내려놓고 수철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세션이 아니라 같이 밴드를 하자고?”

“네,”

“앨범을 내고, 쇼케이스도 하고?”

“네.”

“거기에다, 네가 노래까지 하겠다고?”

“네.”

“리얼리?”

“리얼리!”

수철은 마커스의 계속되는 질문에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눈을 부릅뜬 거처럼 보였다.

“오케이, 수철, 이제 내 생각을 말해 볼게.”

마커스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난 너랑 같이 음악 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야. 너의 엄청난 재능을 맛봤으니 안 할 수가 없지. 네가 불러 주면 나에겐 영광이야. 작곡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작사 능력까지 갖췄잖아?”

“…….”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칭찬부터 늘어놓는 건지.

수철은 그 의도를 궁금해하며 말없이 바라봤다.

수철이 대꾸가 없자 마커스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난 솔직히 왜 네가 노래까지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욕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마커스는 솔직했다. 작사, 작곡, 편곡에 노래까지 다 하려고 하는 수철이 마커스의 눈엔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수철에게 물었어야 할 얘기였다. 수철은 그 얘기를 먼저 해 준 마커스가 오히려 고마웠다.

“제가 노래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욕심 때문에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마커스가 나중에 들어 보면 알 거예요.”

수철은 마커스를 믿고 있다. 마커스에겐 그만큼의 경륜이 있으니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음악과 노래를 들어 보면 알 게 뻔했다.

“음,”

마커스는 잠시 수철의 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뭔가 결정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오케이! 난 네가 하자면 무조건 할 거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마커스는 표정을 바꾸고 주먹을 쥐어서 내밀었다. 수철도 주먹을 쥐어서 부딪쳤다.

“감사해요. 마커스.”“감사는 내가 해야지.”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데 수철, 내가 뭘 우려하는지는 알지?”“네, 작곡자가 욕심내서 노래까지 다 하려다가 앨범을 망치는 거요. 그런 경우는 흔하잖아요?”“그래, 맞아. 그런 경우는 흔하지.”

마커스는 자신의 말뜻을 파악한 수철을 보며 끄덕였다.

“솔직히 작곡자가 그러는 것도 이해는 돼. 가수가 자신이 만든 곡의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같이 팀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지. 작곡자가 절제하지 않으면 팀이 피해를 받게 되니까. 연주자가 작곡자의 들러리는 아니잖아?”

곡을 만든 작곡자와 그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가수 사이에서는 자주 딜레마가 발생한다. 서로가 곡을 해석하는 느낌이 달라서. 어쩔 수 없는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문제는 그것이 쌓이면 서로에게 불신이 생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연주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둘 중 한 명이 빠져 버리면 팀이 삐걱대다가 깨지는 경우가 흔하다. 마커스는 그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곡자가 노래까지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잘된 경우가 몇이나 되지?”

마커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수철은 알 수가 없다. 세어 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으니까. 마커스는 잠시 수철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결국 작곡가가 자기 색깔을 못 내고 시들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어. 어느 순간엔 작곡까지 별로가 되어 버리더라고. 그래서 팀이 깨지는 거고.”

마커스는 확실히 연주자답게 팀의 미래를 먼저 걱정했다.

수철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데모를 들어 보시면 아실 거예요. 제가 왜 노래를 하려는지요.”“오케이, 알았어. 하지만 데모는 참고만 할게. 난 이미 결정했으니까, 너와 한배를 타기로. 그리고 아까 얘기는 노파심에서 한 거니까 기분 나빴다면 잊어버려.”“기분 나쁘지 않아요. 먼저 말해 주셔서 오히려 고맙죠.”

수철이 미소를 보이자 마커스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노래에 대해서 더는 묻지 않았다.

수철이 가장 같이 팀을 하고 싶었던 마커스가 허락했으니, 이제 다음 사람을 섭외할 차례다.

“마커스.”

“응?”

“루카스의 드럼은 어떻게 생각하세요?”“훌륭하지. 왜? 루카스도 끌어들이게?”

“끌어들여요?”

“같은 편으로 말이야.”“하하, 네, 저는 루카스가 같이하면 좋을 거 같아요.”

친구인 존의 드럼도 훌륭하지만, 수철에겐 재즈에 익숙한 드럼보다는 모든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드러머가 필요했다. 존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의리로 할 수는 없다.

“루카스라면 난 환영이야. 같이하고 싶은 드러머지.”

수철은 마커스가 흔쾌히 받아들여서 다행이었다. 드럼과 베이스는 연주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잘 맞아야 하니까.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아?”

“……?”

“나의 제2 전성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네? 하하.”

“하하.”

마커스는 기분이 좋아서 너스레를 떨더니 바다를 향해 몸을 틀었다.

“한동안 내 냉장고의 해산물들은 못 먹게 될 테지만 말이야. 하하.”

마커스는 자신이 냉장고라고 부르던 바다를 보며 껄껄 웃었다.

* * *

“헤이, 수철!”

수철은 시드니에 돌아오자마자 루카스를 만나러 갔다. 루카스가 운영하는 클럽에 들어서자 멀리서 그가 묵직한 팔을 들어 올렸다. 털이 수북한 얼굴과 팔뚝을 볼 때마다 친구처럼 대하는 게 부담스럽다.

“마커스가 하면 난 무조건이지! 마커스를 거절할 드러머가 지구상에 어딨어?”

루카스는 무조건 오케이 했다. 드러머답게 마커스가 참여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수철, 네가 있으니까 흥행은 보장이 될 테고. 하하.”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숨기는 게 없이 말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루카스는 수철이 노래하는 것에 대해선 아무 코멘트가 없었다.

“당연히 잘하니까 하겠다는 거 아니야? 수철, 너에 대한 검증은 다 끝났잖아. 널 말릴 사람이 누가 있어?”

루카스는 오히려 누가 수철이 노래하는 걸 말리면 대들 자세였다.

“땡큐, 루카스.”

“유어 웰컴.”

루카스는 수철과 마커스와 같이 팀을 한다는 게 마냥 좋은 것 같았다. 망설이지도 않고 질문도 없었다.

“건배해야지?”

신이 나서 대낮인데도 맥주를 꺼내 와서 내밀었다.

수철은 루카스의 거대한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맥주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 * *

수철은 기타를 선택하면서는 좀 망설였다. 잭과 이언을 놓고.

잭은 친구라서 편하지만, 재즈만 해 와서 표현의 폭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이언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경험도 많지만, 독불장군 같은 부분이 있어서 팀워크가 걱정됐다. 마커스와 루카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언이 없는 자리에서 이언의 인간성 문제를 거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언을 잘 아는 마크에게 슬쩍 물어봤다.

―까다로운 구석이 있지만, 억지로 강요하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면 정말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야.

수철은 마크의 말을 믿고 우선 이언을 만나 보기로 했다. 만약에 하는 일이 많아서 거절하면 그때는 편하게 잭과 얘기를 해 보면 되니까.

그런데,

“수철, 사랑해! 내가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야!”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덤벼들었다. 좋아서 와락 껴안으려고 했다.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언은 수철과 같이 팀을 하고 싶었는데, 수철이 너무 잘나가서 말을 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철이 말을 꺼내니까 환호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 * *

―와! 마커스? 마커스 M?

영준이 형은 놀라서 되물었다.

―진짜 마커스 M이랑 같이하는 거야?

“네.”

영준이 형은 지난번 앨범 때 마커스 M이 세션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당연했다. 말을 안 했으니까.

―정말 대단하다. 마커스가 참여하다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누구야?

“드럼 치시는 분은 루카스라고…….”―루카스? 잘 알지.

영준이 형은 말을 끊으며 아는 체를 했다.

“아세요?”

―당연하지! 존의 사촌 형이잖아? 뽀빠이 루카스.

깜빡하고 있었다. 존을 소개해 준 사람이 영준이 형이었다는 사실을.

그런데 뽀빠이?

―그게 루카스의 별명이야. 팔뚝이 굵은 게 뽀빠이 같다고. 하하

“아, 네. 하하.”

―그리고 다른 사람은 없어?

“기타리스트까지 구했어요. 이언이라고.”―아, 이언. 기타 잘 치지. 싱가폴 기타리스트, 영국에서도 활동했었고.

영준이 형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마당발이었다.

―형은 모르는 사람이 없네요?

“이언이랑은 예전에 같은 무대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 영국에서도 방송 같이한 적이 있고.”

“대단하시네요.”

―네가 더 대단하지. 어떻게 마커스를 합류시킨 거야? 와―!

영준이 형은 한 번 더 감탄했다. 역시 마커스의 명성은 대단했다.

“근데 형, 하실 수 있겠어요?”―멤버들과 상의를 해 봐야지. 네가 편의만 봐준다면 말이야.

영준이 형은 너무 하고 싶어 했다. 마커스까지 합류를 했으니 그 마음은 더 컸다.

“네, 편의는 봐 드릴게요. 앨범 녹음은 꼭 참여하시고, 공연은 편하게 조율하세요. 큰 공연 위주로 하시고, 다른 공연은 관악기 없이 가던지, 아니면 세션을 쓸게요.”―그래, 고마워. 그렇게만 해 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지금 바쁘기는 해도 멤버들이 너랑 한다는데 반대하진 못하지. 오히려 자기들도 끼워 달라고 할 거 같은데?

“네, 우선은 멤버들에게 형이 잘 말해 주세요. 제가 나중에 따로 한 번 더 얘기할게요.”―그래, 그렇게 하면 좋겠다.

영준이 형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그런데 작업 기간은 얼마나 잡고 있어?

“작사, 작곡하는 데 두 달 반 잡고, 보컬 녹음까지 다 합쳐서 석 달 잡고 있어요.”―그 정도 시간이면 괜찮네. 그때쯤이면 우리 공연도 비수기니까.

“네, 시간은 잘 맞는 거 같아요.”―보컬 녹음은 한국에서 할 거라고?

“네,”

―잘됐다. 앨범 핑계 대고 이번 기회에 한국 한번 갔다 와야겠다. 다른 건 괜찮은데 음식이 너무 그리워서 말이야. 특히 청국장이. 하하.

“하하. 청국장. 그런데 형.”―응.

“형은 시드니로 와야 하는데요? 악기 녹음은 시드니에서 할 거니까요.”―…….

“관악기 녹음만 한국에서 따로 할까요?”―……가능할까?

“못 할 것도 없죠. 대신 관악기 편곡은 형이 다 맡아 주세요. 딜?”―오케이, 딜.

이로써 영준이 형까지 팀에 합류하게 됐다. 영준이 형은 수철의 제안에 기뻐하며 흔쾌히 허락했다. 수철과 제대로 팀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벌써 흥분된다고 했다. 거기에다가 마커스까지 합류하게 됐으니. 광대뼈가 상승하는 게 눈에 보였다.

―건반은 내가 소개할까? 잘 치는 사람이 한 명 있거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있어?”

“네.”

영준이 형이 갸웃하며 되묻는데도 수철은 건반 연주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팀을 구상할 때부터 일찌감치 정해 놓은 사람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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