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The 끼
―야! 용수철! 살아 있어?
다혜는 요즘 발성 연습이라도 하는지 귀가 아플 정도로 반가워했다. 수철은 잠시 전화기에서 귀를 뗐다가 다시 붙였다.
“하하, 그럼 살아 있지. 너도 잘 살아 있냐?”―그럼! 난 아주 굿이지!
박 대표의 말대로 라디오 고정 출연에 재미를 붙였는지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너, 요즘 잘나간다며?”―내가 아무리 잘나가 봤자 너에 비할 바는 아니지. 넌 대한민국에 최초의 칸 음악상을 안겨 준 영웅이잖아?
“……녀석, 여전하네.”
수철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다혜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기다려, 내가 곧 호주로 날아갈 테니까.
“그래, 알았어. 기다릴게. 그런데 그전에 할 일이 있어.”―뭔데?
“같이 밴드하자.”
―밴드?
다혜는 잠시 멈칫하고는 다시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밴드를 하자니?
“말 그대로야. 같이 밴드 하자고. 네가 건반을 맡아 줘.”―…….
“…….”
다혜는 수철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호주와 한국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밴드를 하자니?
―자세히 좀 말해 봐. 무슨 밴드를 어떻게 하자는 말이야?
“새로운 앨범을 만들었는데, 이번 앨범은…….”
수철은 다른 멤버들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다혜에게도 앨범의 색깔과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멤버 구성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와……?
귀를 쫑긋하고 듣던 다혜는 수철의 입에서 대단한 연주자의 이름이 나오자 탄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커스의 이름에서는 거품을 물었다.
―영준 교수님에다가 마커스 M까지? 실화야?
“응.”
수철은 자신이 가장 같이하고 싶어서 마커스에게 먼저 제안한 건데,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멤버들이 그의 이름을 듣고 환호했으니까.
“그리고 노래는 내가 할 거야.”
수철은 놀라는 다혜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뭐? 네가 노래를 한다고?
“응.”
―진짜?
“응.”
다혜는 전화를 끊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없었다.
너무 말이 없어서 수철이 먼저 물었다.
“내가 노래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응, 그렇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 장난 같기도 하고.
감정이 복잡해 보였다. 수철이 노래한다는 게 당장은 충격일 것이다.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차차 극복하면 되고.
우선 급한 걸 물었다.
“밴드는? 하기 싫어?”―하고 싶지, 너무나…….
다혜는 목소리의 풀이 꺾여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랑?
다혜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실력, 경험, 나이, 안목 등 차이 나는 게 한둘이 아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에 잔뜩 쪼그라들었다.
수철이 한 번 더 물었다.
“같이하고 싶긴 해?”―응, 그렇지만…….
말끝을 흐렸다. 피해를 끼칠까 봐 선뜻 같이하겠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철은 다혜의 반응을 예상했었다. 다들 유명하지만, 멤버들 중의 몇몇은 유명해도 너무 유명하다. 다혜가 부담을 갖는 건 당연했다.
수철은 단지 다혜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부족한 점은 자신이 도와주면 되니까. 그게 팀을 꾸리는 이유다.
주저하는 다혜에게 수철은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럼 같이해.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쉽게 생각해. 어려울 거 없어.”―…….
수철의 단호함에도 다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았다.
“지금 결정하기 어렵다면 천천히 생각해 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그리고 쌤이랑도 상의를 해 보고.”
수철은 다혜를 잘 알고 있다. 좋은 기회를 놓칠 녀석이 아니다. 게다가 다혜는 수철과 같이 음악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 수철을 밴드로 끌어들인 것도 다혜다.
분명 다혜는 수철의 말대로 박 대표와 상의를 할 것이고, 그러면 박 대표는 수철의 의도를 파악하고 같이해 보라며 부채질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며 시간을 줬지만 결국 같이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 * *
“지금 결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중에 제가 노래한 데모를 들어 보고 결정해도 괜찮아요.”
수철은 같이 팀을 할 것을 제안하면서 멤버들에게 노래를 들어 보고 결정하기를 권했다. 그렇게 하는 게 앞으로 팀을 탄탄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굳이 미뤄? 난 당장 합류할게.”
“나도!”
모두 수철이 얘기를 꺼내자마자 빠르게 결정했다. 그만큼 수철을 신뢰하고 있었다. 수철은 나이가 가장 어리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된 분위기였다. 자신은 노래만 하고 마커스나 영준이 형 같은 사람이 팀을 이끌어 주길 바랐는데,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모두가 수철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을 더 넣는 게 어떨까요? 퍼커시브(Percussive)를 연주해 줄 사람으로요.”
수철을 포함해서 이미 여섯 명의 팀이 구성됐다. 하지만 수철은 한 명을 더 넣고 싶었다. 다양한 타악기를 연주해 줄 사람으로.
바로 존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지.”
마커스는 흔쾌히 동의했다.
“난 당연히 좋지. 사촌 동생이랑 같이 여행하며 연주하는 게 어릴 적부터 꿈이었어.”
존의 사촌 형인 루카스는 당연히 좋아했다.
수철은 존에게 퍼커시브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음악에 다양한 타악기를 넣고 싶고, 무엇보다 공연 때는 타악기가 많을수록 그루브가 올라가니까 꼭 필요하다고 했다. 존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를 외쳤다. 루카스와 같이 환상의 타악기 조합을 만들어 보겠다고 자신했다.
이로써 7명의 슈퍼밴드가 완성됐다.
―드럼 루카스, 퍼커시브 존, 베이스 마커스, 기타 이언, 관악기 영준이 형, 건반은 다혜, 노래 수철.
수철은 야외 파라솔에 앉아서 팀의 구성원을 박 대표에게 보냈다.
팀 이름은 뭐로 하지?
이번엔 좀 더 밴드 이름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풀 SA’도, ‘와이 트리오’도 그동안 실력에 비해 팀 이름이 약하다는 코멘트가 있었다. 수철이 지은 것이 아닌데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좀 부끄러웠다.
잠시 고민하다가 멤버들이 다 모였을 때 투표로 정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인종도 다양하고 연령도 다양한 국제적인 7인조 팀이 며칠 만에 뚝딱 탄생했다.
수철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쭉 켰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왠지 팀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 * *
어둠이 내리고 집으로 돌아온 수철은 컴퓨터를 켜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져서 오래전 도어스에서 알바할 때 만들었던 음악을 찾아냈다. 헤드폰을 쓰고 한 번씩 쭉 들었다. 음악을 다 듣고 나서 의자에 기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음악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얼마 후 들었던 음악 중에 몇 곡을 선곡해서 별도의 폴더에 나눠 넣었다.
그리고 침대와 책상을 정리하고는 배낭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창문을 잠그고 두툼한 배낭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가사 여행을 떠난다. 이번엔 지난번보다 더 장거리 여행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집을 나서는 수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혼자 여행할 기회가 한동안 없을 것 같았다.
으으으.
공항으로 향하던 수철은 새삼 처음 맞는 호주의 겨울이 을씨년스러웠다. 얼음이 얼거나 눈이 오지는 않지만 뼈가 시린 느낌이었다. 몸을 움츠리게 했다.
한국은 한창 더울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 * *
수철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하기 시작했다.
호주와 가까운 섬나라인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 뉴질랜드, 피지(Fiji)를 돌며 원시 부족의 음악을 접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철은 그들이 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 댈 때마다 인간 본연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소리엔 가식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소리를 통하여 서로 단합하고 동질성을 공유했다. 소리는 이들에게 일체감을 주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근본이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은 솔직하게 자신들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소리는 영적인 뭔가를 숭배하는 토속신앙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소리는 수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리는 이들이 즐거움을 표하는 소리였다. 이들은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것에 감사하며 즐거움을 표했다. 소리뿐만이 아니라 몸동작과 몸에 칠한 분장에서도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가 잘 드러났다.
이렇게 3가지 정도의 특징이 수철에겐 잘 보였다.
부족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소리의 바탕은 같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서로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두둥 두두둥.
우우우―
수철은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부족들과 어울리며 같이 춤을 추고 타악기를 두들겼다. 부족들은 자신들과 같이 호흡하며 소리를 지르는 수철을 환영하고 마음에 들어 했다. 집으로 초대해 자신들만의 음식을 대접했다. 그들은 기뻐했지만, 수철에겐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힘든 시간이었다. 음식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재료들이.
수철은 이렇게 여행하며 매일 가사를 썼다.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과 연결해 보기도 했고, 왜 누군가는 문명을 쫓고, 왜 누군가는 문명을 거부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떤 삶이 더 나은 걸까 고민도 해 봤다. 자신이 원시 부족으로 빙의하는 상상도 해봤다.
저 사람이 내가 태어난 곳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내가 이곳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자신의 삶이 어땠을까. 그 느낌을 가사에 담았다.
제목은 ‘하늘 아래 두 개의 생명체’로 정했다.
* * *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족의 춤이 인상적이었다. 굵은 몸통에 굵은 팔뚝과 다리. 이들이 큰 함성을 지르고, 울퉁불퉁한 굵은 근육을 움직이며 전진하는 모습. 혀를 내밀며 무서운 표정을 짓는 모습은 위압적이었다. 이들 부족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상이 됐다.
문득 호주의 원주민인 에버리진이 떠올랐다. 마오리족이 건장하고 우람한 전사라면 에버리진은 비장한 전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와 힘은 마오리족이 월등하지만 날카로운 눈매는 에버리진이 더 강렬했다. 덩치는 작아도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는 에버리진이 더 강해 보였다.
만약 호주의 에버리진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 뗏목을 타고 서로의 나라를 찾아가 전쟁을 벌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 봤다. 둘의 모습이 너무 상반되기에.
힘일까? 간절함일까? 진정한 승자는 누굴까?
이런 생각을 하며 가사를 만들어 봤다.
제목은 알기 쉽게, ‘누가 이길까?’
* * *
“시바(Siva)요?”
“네, 여기서는 그렇게 불러요.”
“무슨 뜻인가요?”
“여신이요, 공주를 뜻하기도 하고요.”
피지에서 만난 어떤 원주민들의 춤은 이색적이었다.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들어서 물었더니 통역이 친절히 설명을 붙였다. 힌두교에서 시바(Siva)는 무서운 신을 말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시바는 다르다고. 부드럽고 예쁜 이미지가 있다고.
수철은 그들의 춤을 바라보다가 그 모습을 바로 가사로 옮겼다. 도화지에 스케치하듯이 가사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제목은 있는 그대로 시바(Siva)로 붙였다.
이 가사는 레게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들의 모습이 딱 그랬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애잔한 정서가 춤과 노래에 녹아있지만,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 * *
수철은 여행의 막바지에서 최고의 가사를 썼다.
그리고 제목을 ‘The 끼’로 붙였다.
어느 날 부족들이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앉아 그들이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서 굽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른들이 고기가 끼워진 꼬챙이를 돌리자, 아이들은 마치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가를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겐 특별한 별미이자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순간 수철은 불가를 돌며 춤추는 아이들을 보다가 자신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미친 듯이 춤추고 노래하던 꿈속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수철도 아이였다.
수철은 모닥불에 비치는 아이들의 춤을 보면서 그렇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가사인 ‘The 끼’를 썼다.
이 음악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올 것이란 걸 직감했다. 가사도 음악도 날 것 그대로의 끼를 드러낼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