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예상하지 마라
짝짝짝.
박 대표는 누구의 말처럼 한 편의 긴 서사시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용히 박수 치며 새롭게 태어난 ‘Radiate’에 경의를 표했다.
사람들은 지친 기색으로 시선을 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마치 자신들이 노래한 것 같이.
“다음은 ‘The 끼’ 부를게요.”
잠시 휴식을 취한 수철은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고개를 끄덕이자 엔지니어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루브하고 펑키했다. 수철은 네 마디를 흘려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것이 눈을 뜨면, 난 다시 세상에 혼자가 돼.
아무도 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너도 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노래 사이사이에 마커스가 굵은 베이스 줄을 두드리며 슬랩 베이스로 그루브를 조였다 풀었다 반복했다. 루카스의 펑키한 드럼도 마커스의 뒤에서 그루브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박 대표는 새삼 팀의 대단한 연주력에 감탄했다. 수철이 아니라면 어떤 가수와도 이렇게 같이 밴드를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음악은 마치 끼가 요동치듯이 들썩였다. 높은 파도가 물결을 일으키며 밀려오듯이 그루브가 계속 밀려왔다.
수철은 그 파도 위에 올라타서 파도를 지휘하듯이 노래했다.
―어쩔 수 없어. 우린 하나야.
처음부터 그랬어. 둘이 아니라 하나였어.
내 안에서 눈을 뜬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어.
컨트롤 룸의 사람들도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레베카는 손뼉을 부딪치는 시늉까지 하며 흥을 탔다. 마치 흑인들이 무대에서 리듬을 타듯이.
박 대표는 이 모습을 보며 쇼케이스에서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예상됐다.
‘The 끼’는 두 번을 녹음했다. 수철이 먼저 전체를 부르고 나서,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여자 보컬이 1도, 3도, 5도의 화음을 넣으며 코러스를 시작했다.
―우― 빠르게 달아올랐어.
―아― 네가 눈떴을 때.
―우― 빠르게 달아올랐어.
―아― 네가 눈떴을 때.
난, 난난, 나나난. 우후― 둡뜨두둡!
수철은 코러스를 등지고 멜로디에 웨이브를 주며 곡의 절정을 한껏 끌어올렸다. 수철의 열기에 뒤에서 코러스를 넣는 보컬들도 상기되었다. 그 모습이 부스 유리창으로 보였다. 수철의 소리가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와서 상기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음의 고저(高低)가 막힘없이 뻗어 나오는 것을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소리는 놀라움을 넘어 오싹할 정도였다.
수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사람들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사람들은 거부할 수 없었다. 정복당해서 멈춰 있었다.
뒤에서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던 이 부장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머릿속 곳곳을 자극하는 소리에 몸을 움찔움찔했다.
엔지니어는 침이 마르는지 연신 물을 마셔 댔다.
이것이 수철이 부스 안에서 노래할 때 컨트롤 룸의 풍경이었다.
―우린 같은 곳을 보고 있어.
절정이 지나서 음악이 엔딩을 향해서 나아가자 사람들은 다시 몸을 들썩였다. 엔딩을 앞두고 등장한 태평소와 트럼펫이 주고받는 연주는 일품이었다. 모두의 귀를 자극하며 흥을 한껏 끌어 올렸다.
관악기 소리가 사라지자 음악은 빠르게 엔딩으로 치달았다. 태평소와 트럼펫이 주고받던 멜로디는 어느덧 수철과 코러스가 주고받는 소리로 바뀌었다. 마치 서로 번갈아 널뛰기를 하듯이 지르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엔딩을 몇 마디 앞두고서야 둘의 소리는 조금씩 평안을 찾아갔다.
둘로 나뉘어 있던 소리는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졌다. 가사에서 수철과 끼가 하나 되듯이 소리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 끝이 났다.
수철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코러스들도 마찬가지로 숨을 헐떡였다.
박 대표의 예상대로 오늘 녹음에서 모두가 수철의 흡입력 강한 소리를 경험했다.
특히 ‘Radiate’와 ‘The 끼’를 부를 때는 모두 수철에게 동화돼서 마치 자신이 부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수철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꽉 쥔 채 수철이 부르는 가사 하나하나에 감동했다.
아무도 못 봤지만, 수철이 ‘Radiate’를 부를 때 박 대표는 눈가를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닦아 냈다. 수철의 노래가 절정에 달했을 때, 박 대표에게는 노래가 아니라 수철의 절규처럼 들렸었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수철의 그 마음이 박 대표에게도 전이되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형님, 먼저 갈게요.”
업무 중에 잠시 빠져나왔던 이 부장은 수철의 노래가 끝나자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꽉 쥐어서 흔들고는 사라졌다. 승리를 확신한다는 뜻이었다.
* * *
노래 녹음이 끝나자마자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믹싱, 마스터링을 순서대로 마치고, 완성된 음악을 들어 본 윤천화 미술가는 3일 만에 자켓을 완성했다.
“정 실장이 보기엔 어때?”“글쎄, 전 잘…….”
“민 팀장은?”
“저도 잘…….”
처음 자켓을 봤을 때 사람들은 갸웃했다. 마치 삐뚤어진 4차원 세계를 보듯이 비현실적인 공간에 도형과 형상들이 서로 뒤섞여서 찌그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앨범과 무슨 상관이지?
모두 그런 생각을 했다. 자켓의 첫인상이 그랬다. 불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음,
박 대표는 예술가의 의도를 알고 싶어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들여다봤다. 그 정도 유명세를 떨치는 예술가라면 분명 뭔가 숨은 의도가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빨리 알 수 없다는 게 좀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박 대표의 시선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뭔가가 있었다. 박 대표가 고개를 들어서 직원들을 봤다.
“다시 한번 자세히 봐 봐, 뭔가 보이지 않아?”
“……!”
박 대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을 집중해서 보던 직원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와― 다 연결되네요?”“그러게요! 이 형상들이 다 창작자의 머릿속이었네요.”“하하, 그럼 음악을 듣고 수철 씨가 창작할 때 머릿속이 어떤지 형상화한 건가요? 미술천재가 음악천재를요?”
직원들은 뒤늦게 그림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마치 수수께끼라도 푼 듯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문제는 한참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보면 볼수록 중독성 있고 매력적이긴 하지만 누가 이렇게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짜증을 안 내면 다행이죠. 요즘처럼 참을성 없는 세상에요.”
눈치 없는 유 팀장은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정 실장은 유 팀장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유명하시다고 해서 저는 앤디 워홀처럼 팝아트 같은 걸 보낼 줄 알았어요. 판화로 찍어 내듯이 알아보기 쉬울 거요. 그런데 그게 아니네요?”“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자켓이라기보다 예술 작품 같아요.”
민 팀장도 정 실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모두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난 일이 발생했다. 등을 돌리고 각자 일을 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반응을 내놓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마음에 드는데요? 이미지가 머릿속에 딱 박혀서 지워지지가 않아요.”“네, 저도요. 자켓이 너무 선명하면 음악이 주는 모호함이 퇴색되고, 볼수록 식상하고 질리는데, 이 그림은 그렇지 않아요. 계속 시선을 끌어요.”“저도 그렇습니다. 계속 쳐다보게 됩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하면서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의심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볼매라고, 자꾸 볼수록 마음에 드는 건 박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그게 윤천화 미술가만의 매력이에요.
이 부장은 예상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의 작품은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뭐지? 하며 갸웃하다가 나중엔 그 뜻을 스스로 찾아내고, 점점 빠지게 되죠. 그렇게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고요. 하하.
이 부장은 박 대표가 겪었던 과정을 그대로 얘기했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천 미술가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그다음은 알아서 그녀의 작품전을 찾아가게 되죠. 그게 천 미술가의 작품에 빠져드는 단계에요. 우리끼리는 그걸 천 미술가의 수법이라고 하죠. 하하.
박 대표는 이 부장의 말처럼 윤천화 미술가의 다음 전시회를 방문하게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앞으로도 수철의 작품에 그림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할 거 같았다.
―수철의 음악과 윤천화 미술가의 작품이 서로의 퀄리티를 높이고 있는 거 같지 않나요?
이 부장은 윤 미술가를 발견한 자신의 안목을 자족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존중해서 그렇겠지.
박 대표는 그렇게 생각했다. 퀄리티를 높인 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는.
며칠 후, 박 대표는 윤 미술가에게 전화했다. 볼수록 자켓이 마음에 들어서 그녀와 친분을 만들어 놓고 싶었다.
―저도 티켓 구매하고 공연을 보러 가겠습니다.
윤천화 미술가는 자켓을 마치고 나서도 매일 음악을 듣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공연에 와서 직접 무대 위의 수철을 보겠다고 했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철이 만든 음악을 들으면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중의 몇 곡은 저를 긴 시간 동안 명상에 잠겨 있게 해요. 용수철이라는 예술가를 만나게 된 건 저에게 행운이에요. 그리고 그림은 제가 먼저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맡겨 주시면 영광이에요.
윤천화 미술가는 나긋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박 대표는 서둘러 초대권을 보내고, 빠른 시간 내에 수철과 만날 기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박 대표는 앞으로도 수철과 윤천화 작가의 콜라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형태는 다르지만 결은 같으니까.
* * *
“내일 12시에 온오프라인 동시 유통이니까 보도 자료 발송하지 않은 데 있나 다시 한번 확인해봐. 담당자들 연락해서 프로모션 체크하고.”
“네.”
앨범이 나오자 팀장들은 보도 자료를 노출하고 플랫폼의 프로모션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실장들은 각각 흩어져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러 갔다.
금별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원래는 국내보다 해외 파트에만 힘을 싣기로 했지만, 국내 앨범의 흥행과 쇼케이스의 흥행이 직결되어 있고, 국내에서 먼저 흥행해야 가까운 아시아권에서도 빠르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 금별에서 나온 쇼케이스 보도 자료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앨범 홍보 자료를 뿌리면서 쇼케이스 보도 자료를 같이 뿌리는 건.
“진짜 기자가 쓴 거 같지 않아요?”
정 실장이 보도 자료를 출력해서 내밀었다.
“재밌네.”
박 대표가 보기에도 보도 자료는 흥미로웠다.
[아무런 예상도 하지 마라.]
용수철은 항상 그래 왔다. 우리가 무슨 기대를 하든 그걸 뛰어넘었다.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오디션에서는 루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스타 탄생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냉정한 오디션 시스템을 비웃으며 사라졌다.
그다음은 또 어땠는가?
하준과 하린이라는 걸출한 두 명의 가수를 키워 내며 금별기획의 야심작 ‘사랑은 익스트림’에서 3가지 버전의 주제곡을 선보였다. 순식간에 시청자를 매료시키며 소리의 입체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주제곡은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우리의 상식을 무참히 무너트려 버렸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습작처럼 발표한 앨범 ‘3인 3색’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렉트릭 사운드를 들려주며 또 한 번 ‘대체 용수철이 누구인가?’를 떠올리게 했고, 곧이어 영화 음악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백자의 눈물’이라는 명작을 빛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칸의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사라 제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며 아직도 전 세계 사람의 감성을 두드리고 있다.
처음 등장부터 음악계를 양분하며 떠들썩하게 만든 문제의 곡, ‘Radiate’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스테파노가 새롭게 편곡하며 지휘봉을 잡아서 이제 용수철은 클래식계까지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이제 말해 보라. 용수철의 이런 행보를 예상한 적이 있는가? 그가 어떤 시도로 또다시 우리를 자극할 것인지 예상한 사람이 있는가?
그에게 가요 프로그램의 1위를 얘기하는 건 어쩌면 무례한 행위다. 그의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음악가의 한계를 벗어났다. 예상을 뛰어넘어서 변화하고 진화해 왔다.
이제 용수철은 또다시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다.
이번엔 악기가 아니라 마이크를 잡는다.
천재 작곡가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던 그가 이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그러니 감히 말한다.
아무 판단도, 예상도 하지 말고 공연장으로 가라.
그냥 그가 주는 소리를 받아들여라.
마음을 비우고 가서 그가 내뿜는 소리를 가득 채우고 돌아와라.
그의 노래를 들어 본 사람으로서 감히 말한다. 그가 주는 감동은 추운 겨울을 이겨 낼 든든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작가가 쓴 것처럼 매끄럽진 않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기자가 쓴 것 같네요.”“글이 거칠어서 그런지 진심인 거 같은 착각도 드네, 하하.”“하하, 금별은 뭐 하나 해도 디테일이 예술이네요.”
* * *
공연을 일주일 남겨 놓고 티켓 판매를 시작했다. 이런 식의 판매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주일 남겨 놓고 티켓을 팔다니, 모험 중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와아―!
결과는 대박이었다.
예스!
이진석 부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티켓을 오픈한 지 반나절도 안 돼서 15,000석이 전부 매진됐다.
역시 데이터는 정확했어!
금별기획의 계산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하,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부장은 계속되는 격려 전화에 입을 다물 새가 없었다.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